호미곶등대


호미곶등대
Homigot Lighthouse from New Millennium Memorial Hall.jpg
등대 정보
번호 1342 / M4406
위치 경상북도 포항시시 호미곶면 대보리
36°04′40.4″N 129°34′04.1″E
등고 31m
높이 26.4m
관할기관 해양수산부 포항지방해양수산청
점등일자 1908년 12월 20일
광파표지 12초 1백섬광 / 27해리(48km) / 명호: 106~347º
음파표지 Air Siren 60초 1회 / 5해리(No.4316)
전파표지 DGPS(위성항법정보국) / 100해리(No.4204)
문화재 정보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39호
지정일 1982년 8월 4일

대한민국 육지의 최동단인 호미곶에 위치한 등대로 높이가 26m를 넘어서는 상당히 높은 편에 달하는 등대임에도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건축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래쪽은 8각형이며, 둘레는 아래쪽이 24m, 윗부분이 17m인 위쪽이 좁은 6층 규모의 등탑으로 각 층의 천장마다 당시 건립주체였던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이 조각되어 있다.

등대의 기능은 인근 대보항 이외에 호미곶의 연안항로 표지를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며, 1,000칸델라의 광력에 약 16해리까지 닿는 백색 섬광을 12초마다 1회 발신하며, 광달거리는 48km(26해리)까지 닿으며, 에어사이렌을 60초에 1 취명을 하며 통달거리는 약 5해리에 이른다.

건립배경[편집 | 원본 편집]

이 등대는 1901년 일본이 대륙침탈의 기반을 다지는 도중 일본수산실업 전문대학교 실습선이 지금의 대보항 앞바다에서 항해중 태풍을 만나 암초에 부딛혀서 승무원과 학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일본은 이 사고의 원인이 한국 연안의 해안시설 미비로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대한제국에 손해배상을 요구하게 되었다. 당시 힘이 없던 대한제국은 어쩔 수 없이 등대를 건립하게 되었으며, 1908년 4월 13일에 착공, 같은 해 11월 19일에 준공, 다음달인 12월 20일에 점등을 하여 등대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당시 설계는 프랑스 사람이 맡았으며, 건축은 중국인 기술자가 하였다고 한다.

여담으로 당시 등대 건설 공사를 할 때 인근 주민들은 호랑이 꼬리에 불을 놓게 되는 격이라고 하면서 이 등대의 건립을 상당히 꺼림칙하게 여겼다고 한다.

명칭 변천사[편집 | 원본 편집]

역사가 오랜 등대인데다 호미곶 자체의 지명이 여러번 바뀌면서 이 등대의 이름도 거기에 맞춰서 바뀌게 되었다.

  • 1908년 : 동외곶등대 - 처음 점등 당시 대한제국 관보에 실린 명칭이다.
  • 1918년 : 장기갑등대 - 대한제국 당시 행정구역상 장기현 소속이었기 때문에 이 일대를 장기곶이라고도 불렀다. 이것을 을 뜻하는 일본식 표현인 갑(岬)을 써서 장기갑으로 바뀌었다.
  • 1988년 : 장기곶등대 - 전국의 갑을 곶으로 개칭할 때 장기곶으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 2001년 : 호미곶등대 : 2001년 12월 호랑이 꼬리라는 의미로 이 곳의 명칭을 호미곶으로 명명하면서 현재의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참고로 2002년 1월 새계수로기구의 해도지명 변경 승인 이후부터는 전 세계 해도에도 이 곳의 명칭이 정식으로 호미곶으로 바뀌게 되었다.

기타 이야깃거리[편집 | 원본 편집]

  • 매년 1월 1일이면 전국 각지에서 해맞이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이 등대 부근으로 바글바글 모여든다. 치여죽을 수 있으니 참조하자.
  • 이 등대 바로 옆에는 대한민국 유일의 등대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등대덕후가 되고 싶다면 한번쯤 방문해 보도록 하자.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