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석초

  • 橋石礁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북쪽 약 650m해상[1]에 자리한 수중 암초로 북위 36°05´32″, 동경 129°33´28″ 일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최상단부 수심은 1.5m이다.

2002년 11월 이 해저지형에 대한 지명이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지명위원회에서 교석초로 공식 명명되면서 대한민국 최초로 확정 고시된 해양지명에 등재되게 되었다.

전설[편집 | 원본 편집]

이 교석초 인근 육지는 구만리라 불리는 마을로 옛날 이 마을에는 마고 할멈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마고 할멈은 종종 영덕 축산쪽에 다녀오곤 하였는데 영덕까지의 길이 험한데다 호미곶에서 영일만을 타고 빙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이에 할멈은 영일만에 돌다리를 놓아서 편히 가려고 하였다. 구만리에서 축산리까지의 바다는 평소에는 파도가 세고 물도 깊어서 마고 할멈은 물이 잔잔한 날을 택해 구만리 앞 바다에서 돌다리를 놓기 시작하였다. 할멈은 치마폭에 큰 바위를 싸서 열심히 운반했으나 날이 새는 바람에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다리를 놓으려고 운반한 바윗돌이 구만에서 축산을 향해 일직선으로 바다 밑에 이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교석초라고 부른다.[2]

쾌응환호 조난사건[편집 | 원본 편집]

일본의 한반도 침략 야욕이 본격화되던 1907년 9월 9일 일본 수산강습소[3] 실습손인 쾌응환호(快應丸, 가이요마루 137톤)가 수산실험[4]중 이 교석초에 좌초하여 승선인원 36명 중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조난당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를 빌미로 일본은 교석초 해상에 등대를 세울 것을 요구하였고 이로 인해 호미곶등대와 교석초 등표가 세워지게 되었다.

이후 목조 기념비가 세워졌다가 조난된지 20년이 지난 1926년 9월 9일 당시 배의 학생이었던 소택가조(小澤嘉助) 등 제11회 졸업생 및 승조원 가족들이 해당 지점에 석조로 된 조난기념비를 세우고 해마다 위령제를 여는 등 참배를 왔으나 해방 직후 현지 주민들이 이 비석을 훼손하여 방치하였고 일본인들의 발길도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20여년간 방치되던 이 비석은 1971년 1월 재일교포인 한영출씨가 사비[5]를 들여 본래 위치보다 조금 더 바닷가 쪽에 세우게 되었다.

현재는 비석이 있던 자리에 해안도로가 개설되어 도로변에 비석을 옮긴 뒤 주변을 단장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일본의 후손들과 관계자들이 매년 참배를 하고 있다.

이 비석은 2009년에 이전 논란이 있었는데 찬성측은 일본인 관광객들의 접근이 쉬운 호미곶 광장으로 옮기거나 적어도 모조 기념비를 광장에 세울 것을 주장하였고 반대쪽은 일본인 관광객만을 생각해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기념비를 함부로 옮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였다. [6] 사실 이 이전 논란은 영일만 지명 유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연오랑 세오녀상 앞에 침략의 일환으로 들어왔다 사고가 난 일을 기념하는 쾌응환 조난 기념비를 설치한다는 계획으로 어찌보면 돈벌이를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까지 일어서 결과적으로 없던 일이 되었다.

교석초 등표[편집 | 원본 편집]

본래 수중의 암초이나 깊이가 워낙 얕아 해난사고의 위험이 있고 쾌응환호 조난사고와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꽤 일찍부터 항로표지 시설이 세워졌었다. 본래 초기에는 원추형 콘크리트 구조물의 등표가 세워져 있었으나 이후 20m높이를 가지는 원기둥 모양의 녹색 콘크리트조 구조물로 증축된 시설이다. 수면에서 15m높이의 등탑에 설치된 등명기에서는 5초마다 녹색 불빛[7]을 5해리 거리까지 발신하며 레이콘 시설이 병설되어 있다.

이 등표는 포항항의 좌현 항로표지가 되는 등표로 포항항에 입항하고자 하는 선박은 교석초 레이콘 10해리 전에 선명, 호출부호, 도착예정시간, 전출항지를 포항 VTS에 신고하여야 한다. [8]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이 교석초는 현지에서는 다리채라고 부르기도 한다. 교석초에 얽힌 전설을 생각하면 동일한 어원을 가지는 명칭이라 할 수 있다.
  • 교석초 인근 해역은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오체분시 당한 뒤 그의 왼팔이 버려진 현장이기도 하다.

각주

  1. 대보항 북동쪽 약 850m지점
  2. 포항지역 향토사, 해양과학원 해양지명 자료 인용
  3. 현 동경수산대의 전신
  4. 해류, 어족분포, 연해수심 등을 조사. 사실 남의 바다에 조사를 나온 셈
  5. 그가 새로 비를 세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비문에 밝혔다."…육십만 한국 교포가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그 옛날 망령들을 애도하는 한편 한·일 양국민의 우의를 돈독하게 하기 위하여…"
  6. 호미곶 '日 실습선 조난비' 이전 논란 - 경북일보 기사
  7. Fl G 5s 5M
  8. VHF CH16, 12 또는 SSB 2,183.4㎑, 1,881.4㎑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