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공화국

1972년 10월 17일 ~ 1981년 3월 2일까지의 8년 4개월 14일간 존속하였던 한국의 4번째 공화국.

겨울공화국, 긴급조치시대, 약칭 긴조시대라 불릴만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대 흑역사.

1 개요[편집]

3선 개헌을 통과시킨 이후, 3선 연임에 성공한 박정희1971년, 다시는 대통령 선거에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들과 정치권을 안심시키는 제스쳐를 취했지만 결국 1972년 들어 10월 유신을 전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악용하여 계염령을 선포하고 헌법의 효력 정지, 국회 해산, 정치활동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한다. 또한 해산한 국회를 대신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국가의 중대사를 의결토록 하였고, 나아가 그간 국민들의 직접선거로 이뤄지던 대통령 선거마저도 통일주체국민회의의 투표를 거치도록 간접선거로 바꿈으로서, 본격적인 독재체제를 굳혔다. 제4공화국 시기는 수많은 정치탄압, 반정부 시위, 민주화 투쟁 등 그야말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시련이 닥친 시기다.

2 역사[편집]

1971년 12월 27일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국가보위법)이 통과되었다. 국가보위법에서는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었는데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1972년 5월부터 개헌작업이 시작되엇다. 1972년 10월 17일에 유신체제 수립이 선언되며 기존 헌정체제가 중단되었다.

1975년 긴급조치 9조는 대통령과 유신헌법에 대한 모든 비판을 금지시키는 조치였다.

3 정치[편집]

중심 행위자는 대통령, 군부, 관료였고 의회와 사법부는 배제되었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입법, 사법, 행정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되었다.

박정희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적 민주주의'는 군대조직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민주주의로 각종 비효율과 비능률, 시간지체를 없앤 민주주의다. 의회가 크게 탄압당했고 야당의 활동이 마비되었다.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되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이 대통령이라 형식적 선거인단에 불과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국회의원의 삼분의 일을 추천했는데 대통령이 지명하는 방식이었다.

국회의 권한은 대폭 축소되었다. 예를 들면 국정감사권을 박탈당했다. 의회와 사법부 권한이 축소되며 행정부는 견제받지 않게 되었다.

가산제적 1인 지배체제라는 점에서 북한과 유사하다.

4 사회[편집]

국민의 자유가 축소되었다. 언론,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약당했다. 시민사회는 군대처럼 조직되었다. 학생은 학도호국단 활동을 해야 했다. 노동자도 군대식 통제를 받게 되었다. 국민은 국가 계획에 조직적으로 동원되었다.

5 경제[편집]

6 외교[편집]

6.1 남북 관계[편집]

이 당시 북한은 대남강경노선을 취했다. 북한은 4대 군사노선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1) 전 국토 요새화 2) 전 인민 무장화 3) 전 군의 간부화 4) 장비 현대화였다. 북한은 여러 무력도발을 자행했다. 다만 정부에 의해 안보위기가 과장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1971년이 지나며 안보위기가 약해지고 남북대화국면으로 전환했다.

6.2 한미 관계[편집]

6.3 한중 관계[편집]

6.4 한일 관계[편집]

6.5 기타[편집]

7 평가[편집]

7.1 긍정적[편집]

7.2 부정적[편집]

8 사건/사고[편집]

9 이 시기를 다룬 대중매체[편집]

1995년 10월 18일부터 1996년 1월 15일까지 문화방송에서 방영하였던 드라마이다.
2005년 4월 23일부터 2005년 9월 11일까지 문화방송에서 방영하였던 드라마이다. 주로 다뤄지는 이야기는 제5공화국 시기이나, 전반기 전두환의 대두시기는 제4공화국 말미의 10.26 사건부터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이 매우 심도있게 다뤄졌다.

10 각주

  1. 약칭 정의구현사제단
  2. 이들은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며 사형이 확정되고 불과 하루만에 형이 집행된 사례이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는 사형이 집행된 1975년 4월 9일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3. 이리역은 익산역의 옛 이름이다.
  4. 이 선거 역시 유신헌법이 개헌되기 이전 시기이므로 박정희와 동일하게 통일주체국민회의간접선거로 치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