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읍

여수에서 돈 자랑 하지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하지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
— 전남동부 3개의 큰 고을의 특성을 나타낸 말. 광양도 안 나오는데 벌교이 나온다.

벌교읍(筏橋邑, Beolgyo-eup)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보성군 동부에 위치한 이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 문학기행 1번지

'보성'하면 누구나 녹차를 떠올리듯, 벌교하면 꼬막을 떠올린다. 일제 강점기 때 물자 수탈을 위해 항구가 개발되면서 크게 번성하였으며, 현재도 군청 소재지인 보성읍보다 인구가 더욱 많다. 면적도 호남 지방의 읍면 치고는 상당히 넓어서, 호남 지방에서 진안군 진안읍(115.92km²) 다음으로 면적이 넓은 읍이다. 반도 지형인 고흥군으로 가는 관문에 해당하며, 보성과 순천 사이에 있어서 개발되었을 적부터 보성, 고흥 지역의 물자가 모두 모이는 곳이었다.

행정구역 변천사[편집 | 원본 편집]

일본제국은 1910년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1914년 식민 통치의 효율성을 위해 부군면 통폐합을 강행하였는데 벌교가 보성군에 편입된 일은 부군면 통폐합보다 더 일찍 일어난 일이다. 만약 벌교가 보성군에 편입되지 않았거나 분리독립이 이루어졌다면, 지금쯤 전라남도에는 가 하나 더 있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원래 벌교는 보성에 속하는 곳이 아니었다. 현재도 낙안읍성으로 잘 알려져 있는 낙안군에 속해 있었다. 심지어 먼 옛날에는 낙안군의 관아가 벌교의 북쪽 지역에 있었으며, 거기서 유래한 지명이 바로 벌교읍 고읍리(古邑里)이다. 현재의 벌교읍 지역은 낙안군 분해 당시 최초로 보성에 편입된 고상면, 고하면, 남상면, 남하면 4개 면을 포함해 여러 개의 면들로 쪼개져 있었다. 1908년, 당시 껍데기만 대한제국이지 전권을 일제가 장악한 상황에서 통감부에 의해 낙안군이 분해되면서 고상면과 고하면이 고상면으로, 남상면과 남하면이 남면으로 통합된 채 보성군으로 넘어가게 된다. 낙안군의 나머지 지역은 순천군(현 순천시)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는 남면의 일부가 고흥군 동강면에 편입되었으며, 1915년에 고상면과 남면이 통합되어 '벌교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29년에는 벌교천 동쪽에 해당하는 순천군 동초면(옛 낙안군 소속)의 일부를 가져왔으며, 1937년 벌교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에 고흥군 동강면 장도리를 편입하여 지금에 이른다.

생활권 문제[편집 | 원본 편집]

하지만 벌교가 보성군에 편입됨으로써 수많은 문제가 터져나왔다.

벌교와 보성은 생활권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벌교와 보성은 각각 동서로 길쭉한 보성군의 동단과 서단에 자리잡고 있으며, 보성읍내와 벌교읍내 간의 거리는 28km나 된다. 이 거리는 보성읍에서 장흥군 장흥읍으로 가는 거리보다 긴 것이다. 게다가 보성에서 벌교로 갈 때, 산 2개를 타넘는다. 편입된지 107년이나 되었음에도, 생활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지역감정 등을 수반한 관련 문제들을 유발해 왔다. 주민들이 지역 범위를 인식할 때부터 사실상 별개의 고을로 취급한다. 벌교를 언급할 때 '전라도 벌교', '전남 벌교' 그러지 '보성군 벌교', '보성 벌교'라고는 말 안 한다. 보성군의 다른 읍면 사람이 자기 출신지를 대답할 때는 '나 보성에서 왔소' 그러지만, 벌교 사람이 자기 출신지를 대답할 때는 '나 벌교에서 왔소' 그러지 '나 보성에서 왔소'라고 하지 않는다. 주민정서 상으로는 벌교는 그냥 벌교다. 보성에 속해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오히려 벌교가 행정구역 상 보성군에 속해 있는 것을 불편한 진실로 취급한다. 정작 '보성 벌교'라는 말은 이 지역의 실상을 잘 모르는 외지인들이나 쓰는 말. 또한 이같은 행태로 인해, 행정단위를 붙이지 않은 '보성'이라는 지역명의 범위가 모호해졌다.

벌교 자체의 생활권도 문제가 생긴 것이, 원래 같은 고을이었던 순천시 낙안면·외서면은 말할 것도 없고, 이외에 또 순천보다 벌교가 가까운 송광면, 고흥보다 벌교가 가까운 고흥군 동강면·대서면 등이 현재 벌교를 중심으로 생활권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오리지널 보성의 일부인 조성면도 벌교 생활권으로 기울었다. 바꿔 말하자면, 같은 생활권이 무려 3개 지자체로 분열되었다. 특히 같은 분지 상에 있어 누가 봐도 같은 생활권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벌교와 낙안 간의 심리적인 분열이 많이 언급되었는데, 관광객들이 낙안읍성을 구경할 때는 선암사, 순천만 같은 순천시 관내 관광지와만 묶어서 구경하고, 벌교를 구경할 때는 녹차밭 같은 보성군 관내 관광지와만 묶어서 구경하기 때문에 정작 같은 생활권인 벌교와 낙안을 오가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는 것. 그래서 벌교~낙안 간에 증기기관차 선로를 깔자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너무 무리수인지라 실현되지 못하였다. 실제 벌교~낙안 간의 도로는 상당히 좋다. 이번에 도로를 새로 깔기도 했다. 반면 낙안~순천 도로는 굽이굽이 산길이 길어서 굉장히 불편하다. 종종 벌교에서 목욕하러 낙안온천에 가는데, 순천에서 낙안온천에 가는 건 원정이다. 하지만 이건 약과고, 더 큰 문제가 있다.

보성의 거의 모든 행정기관이 보성읍에 쏠려 있다. 상술했다시피 벌교읍은 보성읍보다 인구가 많은데, 정작 모든 행정기관이 보성읍에 쏠려 있다 보니 벌교 주민들이 불편을 겪게 된 것이다. 보성읍에 가보면 크고 아름다운 군청이 들어앉아 있으며 경찰서, 보건소, 교육청, 선관위, 통계청, 등기소까지... 이런 데에 볼일이 있으면 그냥 대장정하는 거다. 사실 보성군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보성읍에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나, 인구밀집지역인 벌교읍에 대해 털끝만큼의 고려도 안 했다는 게 흠. 그나마 벌교에 본진이 있는 것이 딱 2개 있다. 하나는 보성소방서인데, 벌교 시가지에 있는 게 아닌지라 별 의미는 없고, 다른 하나는 순천세무서 벌교지서. 그마저도 이게 벌교에 있는 이유도 단순히 벌교가 커서가 아니라, 고흥군을 같이 관할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안습. 군청에서도 벌교 편입 이후 100년이 넘도록, 벌교의 인구가 더욱 많았을 시절에도 출장 민원실 하나 설치해 주지 않았다. 게다가 각 지자체 별로 특정 시설을 하나씩 짓는다고 하면, 다른 지자체에서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그냥 군청소재지에 설치하면 그만이지만, 보성군에서 그러면 진짜 싸움 난다. 시설을 두 개 짓기에는 보성의 군세는 그리 크지 않고 하나를 짓는 게 적당한데 이것을 보성과 벌교가 서로 나눠먹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 지금껏 예산도 주로 보성읍 쪽에 쓰이는 경향이 많았으며, 그리하여 결국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사건이 발생한다. 후술.

우편처리 업무에도 약간 꼬인 점이 있는데, 보성군은 충분히 광주우편집중국 관할로 들어가도 적합한 위치이지만, 벌교의 존재로 인해 순천우체국 우편집중과 관할로 들어가게 되었다. 게다가 이렇게 안 하면 안 되는 게, 보성이 광주우편집중국 관할로 들어가게 되면 고흥군이 월경지가 된다(...). 정작 보성 옆의 장흥군은 영암집중국이 훨씬 가까운데도 광주집중국 관할이라 아이러니. 이 모든 상황을 알 리 없는 높으신 분들께는 보성군에서 벌교만 분리해 생각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보성과 벌교는 영원히 같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벌교가 행정 면에서 불편을 겪는 것과 반대로, 보성읍은 상권이 쇠퇴하였다. 똑같은 이유이다. 더 큰 동네에 점포를 내야 장사가 잘 될 거 아닌가. 다른 지자체에서는 군청 소재지에 상권이 몰리지만, 보성에서는 보성읍으로 가야 할 상권이 벌교의 존재로 인해 죄다 벌교로 가 버렸다. 보성읍에는 진짜 놀 데가 없다. 게다가 벌교에 있는 점포가 '○○○ 보성대리점' 같은 간판을 달고 있는 걸 보자면 벌교 사람도 존심 상하고 보성 사람도 존심 상한다.

주민들의 성향도 차이가 난다. 예로부터 산골은 험준하고 척박하여 주민들이 폐쇄적인 성향을 많이 띠고, 평야는 넓고 풍요로워 주민들이 인심이 후박하고 개방적인 성향을 많이 띈다고들 한다. 그 법칙을 그대로 따르듯, 호남정맥 내측 산골인 보성은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많이 띠는 반면에, 분지와 바다를 끼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 상업도시로 급속하게 개발되어 주변 고을과의 교류가 필연적이었던 벌교는 주민들 성격이 비교적 개방적이라고 한다.

또한, 벌교가 보성군에 소속되어 있는 사실로 인해 벌교의 존재감이 떨어지는 영향을 불러왔다. 누구라도 '벌교'라는 지명을 들으면 꼬막, 태백산맥 등을 떠올리며 무릎을 '탁!' 칠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큰 동네임은 확실하나, 오히려 독립된 시군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종 지도에도 축척을 웬만히 올리지 않으면 표시가 되지 않고, 대한민국에선 시군 단위로 지역을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만큼 언급도 적고 존재감도 없다. 명칭의 포괄성도 적은데, '보성'이라고 하면 보성읍 이외에도 보성읍 주변의 면들까지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벌교'라고 하면 대부분은 벌교 시가지나 벌교읍으로 한정해서 생각하지 벌교 주변의 면들까지 동시에 떠올리지는 않는다

벌교의 인구가 계속해서 추락하면서 벌교의 독립은 더 힘들어질 전망이다. 후술할 삼호읍이나 삼향읍은 산단이나 신도시라도 있지 벌교는 인구가 늘어날 그 무언가가 없어서 앞으로 인구 증가를 바라기는 힘들다. 상권이 크다고는 하지만 순천처럼 엄청난 교통의 요지도 아니고, 산업단지도 없고, 녹동이나 여수처럼 큰 항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지금 벌교권의 읍면들(낙안, 외서, 송광, 동강, 대서, 조성, 벌교)을 다 긁어모아도 이젠 인구가 3만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보성의 입장에서는 벌교의 독립을 반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벌교가 인구까지 흡수해버린 통에 보성읍에 인구가 없어서 벌교가 떨어져 나가면 보성군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즉 보성의 입장에선 벌교가 없어서는 안 될 지역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보성이 행정기관들을 죄다 보성읍에 몰아놓고 벌교에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은 보성탓도 벌교탓도 아닌 일제탓임을 기억하자. 일제는 고의로 낙안군을 찢어서 보성군과 순천군에 나눠붙였다. 이러한 일제의 만행에 벌교읍민도 보성군민도 낙안면민도 불편을 겪게 되었다. 낙안군이 현재까지도 존재했다면 보성, 낙안, 순천이 독립된 지자체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성이 지금처럼 쇠퇴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낙안 지역에 시가 하나 더 있었을 수도 있다.

같은 도에 비슷한 지역이 2군데 더 있다. 영암군 삼호읍무안군 삼향읍. 삼호읍은 인구가 3만 가까이 되어 군청소재지인 영암군을 발라버린지 오래이다. 목포와 가까워 목포생활권이다. 하지만 대불산단에서 나오는 돈을 영암읍에 바른다고 불만이 많기도 하고 어차피 목포생활권이니 목포시에 편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안 되면 분리승격이라도 시켜달라는 것. 삼향읍도 비슷한데, 원래부터 목포생활권이었고 목포와 무안 사이에 남악신도시가 건설되어 삼향읍에 도청과 도교육청이 생겨났다. 그 이후 인구가 4만 가까이 늘어 무안읍의 3배가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상술했듯이 남악신도시가 목포와 무안에 걸쳐있어 행정적으로 불편하니까 목포시로 편입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안 되면 남악신도시라도) 무안이 그걸 줄리가 없다. 다만 이 두 지역은 목포의 도시 확장을 위해 21세기 들어 도시화되어 인구가 급증한데 비해 벌교는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역사깊은 문제이다.

행정구역 개편 논의[편집 | 원본 편집]

벌교는 반드시 순천이나 보성에 편입되어야 한다고 하자. 벌교읍내~순천시내는 23km, 벌교읍내~보성읍내는 28km다. 순천이 더 가까운데, 왜 보성군 벌교읍이 되어야 했는가? 게다가 순천이 성장하면서 도로 사정도 더욱 좋아졌고, 순천 버스 88 또한 하루 60회씩이나 순천과 벌교를 왕복한다. 이것도 많이 감축돼서 그렇고, 보성교통이 운행을 맡았을 시절에는 순천 버스 77처럼 3대 동시배차까지 볼 수 있었던 빗자루질 노선이었다. 왜 굳이 벌교만 보성군으로 편입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반일 세력이 강한 낙안군을 둘로 나눠 결속을 막고, 성향이 정반대이고 생활권이 다른 동네와 합쳐놓아 서로 싸우게 해서 와해시킨다' 등으로 추측해 볼 수는 있겠지만, 정확한 이유는 그걸 주도한 일제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여간 썩을 일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벌교는 순천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생각에 그칠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를 보여주는 듯 2005년, 벌교읍 주민들이 순천시 편입 서명운동을 벌였다. 벌교읍이 인구빨로 보성군에서 지방세를 가장 많이 내는 동네인데도, 예산 없다고 당시 벌교읍 쪽 현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벌교에 다른 축제 예산이 투입된 것을 이미 꼬막축제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착각해 꼬막축제 예산을 부결시켜버리는 등 보성군 측의 대병크가 기폭제가 되었다. 이때 벌교읍민의 70%가 이에 동의했다고. 편입 신청서가 각 지자체는 물론이요, 행정자치부청와대에도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2005년이면 보성군민들에게 고평가를 받았던 하승완 군수가 재직했던 시절인데, 이 사건으로 인해 하승완은 다음 군수 선거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벌교 주민들의 불만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벌교읍사무소 홈페이지 게시판에 본문검색으로 '순천'만 쳐봐도 벌교의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된 글이 2005년 이후로 많이 작성된 것으로 나온다. 한편, '순천 편입해봤자 보성 시절처럼 다시 소외받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순천 편입이 아닌 분리독립을 주창하는 의견도 상당히 나왔다.

전라남도에서는 서부권에 예산을 밀어주고 전남의 돈줄인 포스코와 석유화학공단이 있는 동부권을 차별한다는 논란이 있는데, 요상하게도 서쪽인 보성에 예산을 밀어주고 인구가 많은 동쪽의 벌교를 차별하는 것과 양상이 완전히 같다. 프랙탈이 생각나는 대목.

'벌교군 보성읍'이라는 보성군민 공인 개그가 있을 정도로 이 문제는 역사가 깊다. 잊을만 하면 행정구역 개편 이야기가 나오곤 있지만, 문제는 벌교 주변 전체가 다 낙후된 상황이라는 것. 벌교에 뭔가 크고 아름다운 게 들어올 것 같지도 않다. 특히 벌교 나가면 보성군은 그냥 죽을 정도로 핵심적인 지역이라, 분리독립을 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벌교랑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가 분리독립에 성공했으며, 울릉군을 제외하고 가장 면적이 작은 군으로 유명한 증평군도 인구 3만은 채웠는데, 벌교를 인구 3만으로 독립시킬 경우 벌교+동강+대서+낙안+외서+송광+조성 이렇게 합쳐야 겨우 3만이 넘는다. 분리독립을 한다고 해도 너무 과소하여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3개 지자체로 쪼개져 있어 의견 수렴부터가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인구의 3할 이상을 잃게 되는 보성군에서 노발대발하면서 반발할 것은 안 봐도 비디오[1]. 사실 이게 참 억울한 게, 60년대까지만 해도 벌교의 시 승격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벌교읍 단독으로 인구가 4만 5천까지 올라갔는데, 이 당시에는 시 승격을 하면 소속 군에서 분리독립을 했기 때문에 행정구역 문제 따위는 한큐에 해결될 판이었다.

어쨌든,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 일제 때문에 벌교도 망하고 보성도 망하고 낙안도 망했다.

정치[편집 | 원본 편집]

일단 호남지방답게 새정치민주연합의 세가 강한 편이다. 그리고 기득권층이 몰려 있는 보성읍보다는 보수성이 덜 하긴 한데, 여기서 설명이 끝날 리가.

요약하자면 보성의 캐스팅보트. 그런데 캐스팅보트 지역 치고 콩고물은커녕 오히려 푸대접을 받았다는 데서 벌교의 기구한 역사를 다시 되새겨 볼 수 있다.

캐스팅보트라는 말에 정말 걸맞는 사례가 있다. 1967년 총선 보성군 단독 선거구에서 공화당 양달승 후보가 신민당 이중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때 벌교를 제외한 득표는 이중재 23,562 : 양달승 20,428이었으나, 벌교에서 이중재 5,089 : 양달승 11,437로 양달승 후보가 크게 앞선 것이 당락을 갈랐다. 그런데 양달승 후보 측의 벌교읍내에서의 광범위한 부정선거가 발견되어(...) 2년 뒤인 1969년에 벌교에서만 재투표, 결과는 이중재 4,017 : 양달승 5,681로, 벌교 제외 득표까지 합하여 이중재 후보가 당선자로 정정된 전례가 있다.

하승완이 3선에 도전했던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마침 위에서도 설명한 대병크로 인해 벌교 민심을 완전히 잃어버린 하승완이 자신의 소속 당이던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고, 민주당에는 정종해가 공천되었다. 후보자는 3번 민주당 정종해, 6번 한미준 김종표, 7번 무소속 하승완 총 3명이 나왔는데, 6번 김종표 후보는 표가 1,500여표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히 정종해와 하승완만 비교하도록 하자. 벌교읍 개표결과, 정종해 5,439 : 하승완 2,582. 정종해가 2배가 넘는 표를 얻었고, 그대로 정종해가 당선되었다. 사실 보성읍에서도 공천 버프로 정종해가 이겼긴 했지만 표차가 겨우 250표밖에 안 되었다.

하승완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듯,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의 판도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렇게 강한 지지를 받고 군수에 당선되었으면서 어째 하는 거라곤 유리궁전이랑 공원이랑 길 만드는 것밖에 없고 인사비리도 일삼던 정종해가 요번에도 민주당 공천을 등에 업고 3선에 도전했고, 상대는 서울특별시의회 의장도 지냈으며 고향으로 내려와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용부였다. 그 대병크가 하승완 때 터졌고, 정종해 때 태백산맥 문학관이 지어져서 벌교에선 하승완보다 정종해를 더 좋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정종해가 얼마나 군정을 못 하는지는 다 알려져 있었다. 이용부 본인도 줄곧 벌교를 중심으로 유세를 펼치는 등 벌교 쪽 민심을 많이 돌렸다. 결과는 정종해 13,031 : 이용부 15,944(보성군 전체)로 이용부의 승리.

군의원 선거구는 '나' 선거구이다. 6대 지선에서는 벌교읍 단독으로 2명을 뽑았다. 2-나 민주당 김판선, 4 무소속 강복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거기에 김판선 의원은 지금 보성군의회 의장이다. 이제 보성군 군정에서 벌교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도의원 선거구는 보성군 2선거구로, 군의원 선거구의 나, 다 선거구를 합쳐놓은 것이다.

경제/산업[편집 | 원본 편집]

요약하자면 꼬막 버프.

특산물[편집 | 원본 편집]

꼬막은 원래부터 벌교를 비롯한 순천만 연안의 대표 특산물이었는데, 벌교의 해안선이 의외로 좁아서 막상 대부분의 물량은 고흥군에서 책임졌다. 그러다 장도가 고흥군에서 보성군으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진짜 '벌교산 꼬막'의 채취가 많이 늘어났다. 그동안 쌓아온 명성과 교통의 편리성 등으로 인해 지금도 고흥 쪽에서 잡은 꼬막까지 벌교읍내에서 많이 유통되고 있다. 꼬막을 잡을 때는 갯벌 위에서 뻘배라는 것을 타고 채취를 하는데, 그 일련의 과정이 아주 고되기로 유명해서 1박2일 멤버들도 치를 떨었다.

언제부턴가 꼬막으로 아주 다양한 음식을 해서 한 상에 내놓는 '꼬막정식'이란 게 생났는데, 사실 벌교 요식업도 이 4글자로 설명 끝난다. 벌교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것으로 꼽히지만 식당에 따라 가격이나 품질의 편차가 심한 편이므로 잘 확인하고 가보도록 하자. 인기가 있었던 모양인지, 이제는 벌교 이외의 지역에서도 꼬막정식 전문점을 찾을 수 있다.

근데 2010년대 들어서는 꼬막이 거의 안 잡히는 모양이다. 태풍이라도 한 번 거하게 와서 해역을 뒤집어줘야 꼬막이 많이 서식하는데 그런 게 별로 없었다고. 꼬막이 없어서 다른 지역 꼬막까지 동원한다고. 그 다른 지역이라는 게 비단 순천만 일대뿐만이 아니라, 서해안 꼬막이나 일본 꼬막(...)이 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칠동천 유역을 중심으로 딸기 재배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딸기철만 되면 벌교에서 보성으로 넘어가는 2번 국도 가에 트럭을 세워놓고 딸기를 파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소쿠리 위쪽에만 좋은 거 깔아놓고 아래쪽에는 안 좋은 거 채워놓는 훼이크도 이따금 볼 수 있었지. 바가지도 씌워 지금은 남해고속도로가 개통해서 국도로 지나다니는 차도 줄어들고, 기후도 딸기농사에 부적합하게 변하고 있어 많이 쇠퇴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보다 쇠퇴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딸기 트럭도 한두 대 보이고, 순천시 등 인근 지역에 가면 과일가게들마다 포장지에 '벌교딸기'라고 되어 있는 딸기가 많이 진열되어 있고 소비도 꽤 하고 있다.

'꼬막으로 유명한 벌교'와 '녹차로 유명한 보성'의 이미지가 극명하지만, 누가 보성군 아니랄까봐 벌교에서도 녹차가 나서(...) 상당히 아스트랄한 풍경을 보여준다.

2차 산업[편집 | 원본 편집]

낙안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연산리에 벌교농공단지가 있다. 벌교 뿐만 아니라 보성군 전체가 전형적인 농어촌이다 보니 공업의 비중이 매우 낮다.

3차 산업[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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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편집 | 원본 편집]

일제강점기 당시 물산이 모이고 주요 교통로 중 한 곳에 해당하는 곳이었던 곳이라 꽤 이른 시기부터 일제의 수탈 등이 있었던 곳이다. 이런 이유로 벌교 읍내에는 일제시대의 건축물 등이 다수 남아있으며 이러한 점은 군산이나 포항, 목포 등지에 있는 적산가옥 거리와 비슷하다. 또한 이러한 내용은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에 등장하는 주요 지점들 중 하나로 등장하기에 이를 주제로 한 볼거리들이 다수 있는 편이다.

다만 벌교읍내의 근대문화유산 거리 자체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벌교 단독으로 관광코스가 되지 않고 보성 관내의 녹차밭(보성다원)이나 원래 구 낙안군 지역이었던 낙안읍성, 서부 경전선 라인으로 연결되는 순천 등지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경전선 연계 코스는 주요 내일로 코스 중 하나에 들어가기 때문에 경전선 이용 내일러의 경우 벌교역을 이용해 이쪽을 돌아본 뒤 다음 열차를 이용해 이동하는 방식으로의 단기코스가 가능하다.

교통[편집 | 원본 편집]

고속도로[편집 | 원본 편집]

남해고속도로의 서쪽 구간인 영암-순천 구간 중 벌교 나들목고흥 나들목 2개의 나들목으로 연결되어 있다. 서쪽의 벌교 나들목 방향에서는 양방향 진출입이 가능하지만 동쪽의 고흥 나들목의 경우는 반쪽짜리 IC여서 순천방향으로의 진출입만 가능하고 그 반대쪽에서의 진출입은 불가능하다.

국도 및 지방도[편집 | 원본 편집]

2번 국도이 벌교읍을 동서방향으로, 15번 국도이 남북방향으로 읍내를 관통해서 나간다. 원래 노선은 진짜 읍내의 2차선 도로였으나 두 노선 모두 고속화를 완료하면서 구부러진 선형을 펴고 읍내 외곽으로 살짝 비켜가는 선형이 되었다.

시가지 도로 상황[편집 | 원본 편집]

좁다. 이 두 글자로도 설명 완료.

오래된 도시인 만큼 시가지 도로를 확장할 여지가 없어서 시가지 도로는 전부 2차로짜리 도로다. 이제서야 우체국~선근3 구간을 확장해볼 기미가 보인다. 사실 2차로짜리인 건 보성읍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보성읍은 주차공간이라도 많지. 하여튼, 그래서 벌교읍내에 관광버스 몇 대가 들어오는 순간 헬게이트가 열려버린다. 눈내리는 벌교중과 동급의 헬게이트 특히나 이 관광버스의 승객 대부분은 꼬막정식을 먹기 위해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럼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일 때가 언제인 것 같은가? 당연히 꼬막축제 시즌. 만약에 꼬막축제 시즌에 방문하게 된다면 이왕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열차라면 더욱 좋다. 근데 서부경전선이잖아

철도[편집 | 원본 편집]

경전선 벌교역이 있다. 다만 전국 최악의 선형, 전국 최저 이용객을 자랑하는 서부경전선인지라 수준은 기대하기 힘들다.

벌교역에서 열차를 이용하면 순천, 광주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순천 방향으로는 값싸고 많이 다니는 순천 버스 88이 있고, 광주 방향으로는 열차를 타면 보성읍으로 돌아가는 형국인 데다가 광주 도심구간 접근성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결정저긍로 광주 가는 시외버스가 일 36회. 열차는 내일로 이용객이거나 아니면 정말 우연히 시간대 맞을 때만 타는 수준이다.

버스[편집 | 원본 편집]

일단 허벌나게 많이 다닌다. 벌교역 앞에 서 있으면 심심치 않게 버스를 볼 수 있다. 그만큼 교통의 요지라는 소리. 보성, 고흥, 순천 3개 시군의 버스를 한 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며, 시외버스도 상당히 자주 온다.

보성교통에서 농어촌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주로 조성을 거쳐 보성읍으로 가거나, 낙안, 외서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운행중이며 율어를 거쳐 보성으로 가는 버스도 가끔 있다. 고흥여객에서는 동강, 대서 방향으로 나가는 버스를 운행한다.

순천시 시내버스88번이 해룡면의 농산물도매시장에서 신대지구, 금당지구, 국민은행 사거리, 순천역 정문, 아랫장, 순천터미널 등 순천의 알짜배기 지역들을 모두 통과하면서 벌교 삼성병원 앞까지 운행한다. 88번은 예전 보성교통 시절에는 그 당시 돈으로 편도 2000원, 현재 물가였으면 2500원 이상이 되었을 흉악한 구간삥을 뜯었는데, 동신교통이 인수하여 순천 소속이 되고 나서 벌교터미널까지는 순천시내 기본요금인 1200원, 종점인 벌교역과 벌교삼성병원까지의 요금이 1600원으로 운임이 내려갔다. 400원을 아끼고 싶다면 벌텀까지는 걷자

이외에 68번은 벌교로 들어오려다가 만 것 같은 선형을 갖고 있다. 진짜로 군 경계에서 유턴한다(...).

시외버스는 벌교버스공용터미널에서 이용 가능하다.

해운[편집 | 원본 편집]

벌교를 넘어 보성군의 유일한 정기연락선인 '장도사랑호'가 있다. 군에서 직접 운영하며, 장암리 상진포구와 장도를 매일 2회 오간다. 날에 따라 운항시각이 조금씩 다르고 출항하지 않는 때도 있는데, 이 쪽 바다가 온통 뻘밭이라 수심이 얕아서 물 때에 따라 배가 못 뜰 수도 있기 때문. 자동차도 실을 수 있어서 장도 주민의 오랜 숙원이 해소되었다.

하위 리[편집 | 원본 편집]

벌교읍의 법정리는 총 21개이며 행정리(운영리)는 71개로 운영하고 있다.

각주

  1. 벌교와 조성을 합하면 보성군민의 40%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벌교와 조성이 보성에서 빠지면 보성군은 사실 상 인구를 절반 가까이 잃게되고 인구가 2만5천명 가량으로 전남 최저인 구례군보다도 인구가 적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