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등대

Text-Justify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3월 13일 (일) 21:17 판

틀:등대 틀:문화재

개요

러일전쟁 당시 일본은 해상권 장악을 위하여 한반도독도를 비롯한 대한제국의 영토 곳곳에 등대를 설치하게 된다. 이 울기등대가 위치한 곳도 그 중 하나로 1904년 당시에는 목재 장대인 등간을 설치하여 운영하다가 1905년 전쟁이 종료된 이후 대한제국 정부에 해당 시설을 인도하였었다. 1906년 3월 대한제국 정부는 러일전쟁 당시 급조된 전국의 항로표지 32곳을 정비하여 개축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중 하나인 이 울기등대는 1910년 기존의 나무등간이 높이 6미터의 백색 8각형의 콘크리트 탑으로 개축되어 동해안의 항로표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현재 사용중인 신등탑은 구등탑 주변의 해송림이 자라면서 바다에서 등대의 불빛이 보이지 않게 되자 약 50미터 떨어진 곳에다 24미터의 등탑을 신축하여 건설한 것이다. 이 등대가 자리한 곳 바로 앞바다는 문무대왕비릉으로 알려져 있는 대왕암[1]으로, 일본인들이 러일전쟁 당시 등대를 설치할 당시에는 울산의 끝자락이라는 의미로 울기(蔚埼)라고 불렀으나 이 지명이 일제시대의 잔재라는 의견이 제기되어서 주민 의견 등을 수렴하여 등대 점등 100주년에 한자를 蔚氣로 변경하였다.

구등탑

대한제국 당시 건축된 6미터의 등탑으로 당시 근대 건축기법이 잘 나타나 있어 보존가치가 높다. 특이한 점은 등대 입구가 아치형으로 되어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동일하게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목포구등대와 거의 같은 모습이다.

각주

  1. 경주 감포 앞바다의 문무대왕릉과는 다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