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급 항공모함

두루치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1월 26일 (토) 15:35 판
렉싱턴급 항공모함
Lexington class aircrafr carrier
USS Saratoga (CV-3) underway, circa in 1942 (80-G-K-459).jpg
CV-3 새러토가의 모습
선박 정보
종류 순양전함
항공모함
건조 2척
운영 미국
취역 2척
퇴역 렉싱턴 격침, 새러토가 퇴역 후 핵실험 처분
정원 약 2700여 명
제원
엔진 터보-전기 추진
속도 33노트, 최대 38노트
무장 8인치 2연장 함포 2기 > 127mm 38구경 양용포
40mm 보포스 대공포
항공기 70여기~90기
전장 270.7m
선폭 32.8m
흘수 9.9m
배수량 36000톤
47700톤 (만재)

렉싱턴급 항공모함(Lexington class aircraft carrier)은 제2차 세계 대전미국의 정규 항공모함이다.

사실상 미 해군이 보유한 첫 정규항모라고 할 수 있으며 렉싱턴급 순양전함을 개장한 함급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렉싱턴과 새러토가 자매함 2척이 활약했다.

건조

렉싱턴급 순양전함

파일:H41961 (1).jpg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구상도

렉싱턴급 순양전함은 미국 최초의 순양전함으로 미국은 순양전함이란 함급이 가진 잠재력과 타국의 제1차 세계 대전 시기 운용 등을 보며 1916년 전간기 순양전함 건조를 계획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미뤄졌다가 1920년즈음에야 렉싱턴급 건조가 승인되고 건조가 진행된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순양전함이란 함급 자체기 사양세에 접어들자 해군 조약으로 톤수 쿼터만 차지할 뿐 실질적인 전력으로는 회의적인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 점차 항공모함이 차후 해군의 주력이 될 것으로 점쳐지던 당시, 미 해군은 순양함 등을 개장해서 항공모함을 건조할 계획을 세우며 각종 설계안 등을 검토하던 중 마침 앞으로 대형화 될 함재기를 수용 가능한 선체에 이미 건조가 꽤 진행되어 버리기도 아까웠던 렉싱턴급 순양전함 렉싱턴과 새러토가가 미 해군의 눈에 들어왔고 렉싱턴급 순양전함을 기반으로 한 항공모함 건조 계획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이 두 렉싱턴급 자매는 항공모함으로의 개장에 들어가게 된다.

비행갑판 개장

그렇게 가장 건조가 많이 진행된 렉싱턴과 새러토가가 개장 대상으로 선정되었고 순양전함 대신 항공모함으로 의장공사가 진행된다. 항공모함으로 개조가 결정된 나머지 렉싱턴급들은 모두 취소되었다. 요크타운급과 레인저급의 사례에서 볼수 있듯이 개방식 격납고를 선호했던 미국이였지만 베이스가 베이스인지라 폐쇄형 격납고를 적용하게 되었으며 비행갑판을 설치하면서 함재기를 발진시킬 수 있는 유압식 캐터펄트를 장착했다.

설계 및 성능

항공

렉싱턴급 항공모함은 약 70~78대 정도의 항공기 운용 능력을 보유한 평균적 성능의 정규 항공모함으로 일본의 아카기보다 4대 정도 더 많고 카가보다 약 10대 정도가 적은 편이나 격납고 천정에 고정된 추가적인 예비기 20대까지 포함하면 카가나 쇼카쿠급 항공모함보다도 운용항공기 수가 더 많다.

렉싱턴급 항공모함이 운용하였던 항공기 기종은 당시 기본적인 항공기 사항이던 전투기, 뇌격기, 급강하 폭격기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렉싱턴급 항공모함은 초반부에는 그루먼사의 F2F-1 전투기와 F4B 전투기를 운용했었고 스무대의 B G뇌격기를 운용했었다. SBU 급강하 폭격기 역시 스무대 정도를 운용하였다. 이후 이는 F4F 와일드캣 전투기로 교체되기도 하였으며 뇌격기와 폭격기 역시 헬다이버나 돈틀리스 등의 신형 기종으로 교체된다. 함재기를 발진시키기 위해 장비되는 캐터펄트의 경우, 보통 2개의 캐터펄트를 장비한 일반적인 미국 정규항모와 달리 1개의 유압 캐터펄트만 장비하고 있다. 착함방식은 타 항모들과 동일한 강제착함 방식이다.

함체

요크타운급, 레인저 등과 같이 태평양 전쟁 전 건조된 항공모함인 렉싱턴급은 순양전함의 선체 위에 비행갑판을 깐 형태라 함재기 운용능력은 동급의 항공모함보단 떨어졌지만 애초에 렉싱턴급은 순양전함이라 함체 규모는 당시 일반적인 항공모함들 보다 조금 더 컸고 비행갑판을 깐 이후에는 전장이 270미터에 달해 당대 항공모함 치곤 큰 편이라서 쓸모없이 허우대만 좋다는 의미인 '흰 코끼리'라는 별명까지 얻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덕에 렉싱턴급은 전쟁에서 70대 이상 함재기를 탑재한 채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고 미국이 보유한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정규 항공모함으로서 작전 가능한 항공모함이 될수 있었다.

방어력은 순양전함을 개량했기에 방어력은 일반 항공모함들 보다 우위에 있었다. 비록 순양전함들이 얇은 장갑으로 지적받긴 했지만, 사실상 포화를 주고받으며 자체 장갑으로 방어하는 컨셉이 아닌 함종인 항공모함으로선 상당한 수준의 방어력을 자랑했고, 현측 장갑벨트는 보통 127mm에서 최대 178mm로 중전차 전면장갑 수준 두께의 STS 특수강재 장갑판을 현측 벌지에 두르고 있었던 데다 데크 등의 장갑도 최대 100mm를 넘는 부분이 있는 등, 전반적으로 두꺼운 장갑을 두르고 있었다. 대신 일반적인 항모로 건조된 선체들과 달리 순양전함 베이스 선체의 닫힌 폐쇄식 구조의 격납고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산호해 해전에서 뇌격을 받은 상태에 렉싱턴의 정압기실에서 발생한 스파크로 인해 내부 유폭이 발생했는데 이때 폐쇄식 구조 때문에 폭발 분산이 외부로 이루어지지 않아 폭압이 선체 내부로 집중되었고 이 때문에 선체 중요 부분들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렉싱턴은 이 때문에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후에 미 해군에 의해 뇌격 자침되었는데 이건 영국의 일러스트리어스 같은 장갑항모들에게서도 지적되던 사항이었고 이러한 폐쇄식 구조 내 폭발은 함체에 지속적인 피로를 준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도 순양전함 선체 기반의 장점으로는 순양전함 특유의 빠른 속도에 있었는데, 새러토가는 최대 38노트에 달하는 속도를 기록하기도 한 만큼 확실히 고속성능 하나는 뛰어난 편이었다. 추진 방식은 스팀 터보로 전기추진을 하는 하이브리드 추진 방식으로 구동축은 모두 4개씩 각각의 프로펠러를 돌려 함을 추진한다.

전자장비

전자장비로는 Mk.4 탐색 레이더와 Mk.37 사격통제장비의 조합과 RCA-CXAM 조기경보 레이더가 탑재되었다(새러토가). 또한 함에 장착된 8인치 포를 통제하기 위한 Mk.19 레이더와 Mk.33 지상탐색 레이더가 탑재되었다.

무장

함의 고정무장으로 구시대적 항공모함 설계사상을 따라 중순양함이 사용하는 8인치(203mm) 2연장 함포 4문을 장착해 함대함 포격전에 대비하였다. 이 함포는 나중에 127mm 양용포로 교체되어 포격전보단 대공 방어로 치중하게 된다. 후기 개장 기준으로 40mm 보포스 대공포 및 20mm 오리콘 대공포가 배치되었다.

운용

전간기

실전

1941년, 일본이 미국 하와이 주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전쟁을 도발했을 당시 미 태평양 함대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는 와중에도 태풍 때문에에 입항이 늦어졌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세 자매처럼 진주만 공습이 진행되고 있을 때, 렉싱턴은 미드웨이 섬으로 항공기를 수송하는 임무를 맡아 진즉 태평양을 한복판으로 나와 있던 덕에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렉싱턴의 항공기 수송 임무는 진주만 공습 직후 취소되었고 곧 전쟁이 본격화되며 뱃머리를 돌린 렉싱턴은 박살난 진주만으로 귀항하여 새로운 전장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이후 진주만을 떠나 태평양으로 항해를 시작한 렉싱턴이 향한 곳은 미군 수비대가 고립된 미크로네시아의 마샬 제도로, 마샬 제도를 공격하는 일본군을 공습해 고립된 미군 수비대를 구원하고자 했으나 렉싱턴이 도착하기 전에 수비대가 항복하면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편 대서양 함대에 배치되어 있던 자매함 새러토가도 전쟁 발발 직후 위급한 웨이크 섬을 구원하기 위해 급히 모항 샌디에이고항에서 태평양으로 급속 항진하였으나 언니와 마찬가지로 도달 전 섬의 함락 소식을 받고는 도로 회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미군이 수세에 밀리던 41년 동안 렉싱턴급 자매들도 공세적인 행동 없이 한 해를 보내게 되고 전쟁은 점점 격화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태평양으로 기세를 이어가던 일본군은 1942년 5월 호주까지 진격해 호주를 고립시키고자 산호해의 요충지 포트모르즈비를 점령하고 산호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자 했다. 이에 미군은 호주를 구원하기 위해 렉싱턴과 요크타운으로 구성된 항모 기동부대를 산호해로 진주시켰고 렉싱턴은 일본 함대[1]와 전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툴라기에서의 전초전 후, 상호 항모부대에 대한 수색전이 벌어지던 중 정찰기와 요크타운의 함재기에서 들어온 정찰을 통해 경항모 쇼호를 포함한 일본 함대 하나를 발견했고 곧 렉싱턴은 요크타운과 함께 함재기를 발진시킨다. 그리고 10시 40분, 항모 쇼호의 상공에 도달한 렉싱턴의 항공대는 즉각 공습에 들어갔으며 2발의 450kg 폭탄과 4발의 어뢰가 명중하며 쇼호에게 선제타를 날렸다. 렉싱턴의 일격으로 쇼호는 중파 이상의 치명타를 입었으며 무력화된 쇼호는 뒤이은 요크타운 항공대들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다.

사실상 쇼호를 잡은 렉싱턴은 사상 첫 항공모함 간 전투에서 적 항모를 격파한 전과를 냈고 오후 동안 일본군의 주력 함대, 그러니까 쇼카쿠와 즈이카쿠를 찾기 위한 정찰을 이어나갔다. 물론 이는 일본군고 마찬가지여서 쇼카쿠의 정찰기가 미 항모부대로 잘못 정찰하고 대규모 공습 부대를 출격시켰으나 오인된 첩보였고 오히려 렉싱턴은 레이더를 이용해 와일드캣 편대를 긴급 출격 시켰다. 덕분에 복귀중이던 쇼카쿠의 공습 부대는 뇌격기들이 격추당하는 피해까지 입었으며 어둠이 내린 뒤에야 모함 쇼카쿠(?)에 도달할수 있었다. 쇼카쿠에게서 착륙 허가를 받은 공습 부대의 항공기들은 위험한 야간 착륙에 대비하여 폭탄을 버리고 조명이 켜진 항모의 비행갑판으로 고도를 낮추던 그 때, 착륙을 진행하던 일본 조종사들은 어쩐지 알수 없는 위화감에 휩싸이게 된다.

분명 착함을 유도할 발광 신호기의 불빛은 무슨 일인지 전혀 찾아볼 수도 없었고 대신 왠 낯선 인원이 깃발을 흔들어 대며 본 적 없는 행동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항모 진입 경로로 접근하고 있는 항공기 다수를 포착했던 렉싱턴은 이들을 스크램블했던 와일드캣 편대로 파악하고 착함 유도를 진행중이었는데 어째 점점 가까워지는 비행기들은 와일드캣 치곤 날개 모양도 다르고 동체도 얄쌍한, 아무리 봐도 일본 비행기들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렉싱턴에선 착함을 시도하고 있는 저 항공기들의 정체가 일본 항공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 와중에 갑판 신호수는 여기가 아니라며 잘못된 착륙임을 일본 항공기들에게 알린다. 일본 조종사들은 조종사들 대로 자신들이 착함하려던 항모가 자신들이 찾던 렉싱턴이라는 사실에 기겁하였고 곧장 선회하여 도주를 시도하였다. 결과적으론 이 야단 속에서도 일본 공격기들은 미군의 대공포화를 뚫고 무사히 쇼카쿠로 귀환하는데 성공하였다.

지난 밤의 소동이 지나고, 수평선에서 여명이 밝아오는 시점에서 06시경 일본군과 미군은 각각 정찰기를 발진시켰고 곧 두시간 뒤인 08시경 양측은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공격에 들어간다. 그리고 약 두시간 뒤인 10시 55분, 레이더로 일본군의 공습을 탐지한 렉싱턴은 요격을 위해 급히 와일드캣 전투기 편대를 발진시켰지만, 고도를 잘못 파악하는 바람에 더 높은 곳에 있던 일본기들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와일드캣은 8대의 격추기록을 내며 선전하였지만 공습을 저지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워낙 상황이 급박하였는지라 급강하폭격기인 돈틀리스까지 출격시켜 요격을 시도하였다.

결국 일본군의 접근을 허용하고 만 렉싱턴을 향해 14대의 뇌격기가 공뢰(공대함 어뢰)를 투하하였고 그 중 2발이 렉싱턴의 함저에 직격한다. 어뢰 피격으로 함수부와 기관실이 침수된 렉싱턴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출격했던 렉싱턴의 함재기들은 뇌격과 폭격으로 쇼카쿠에게 반격을 날렸고 공뢰들은 모두 빗나갔지만 폭탄 1발[2]을 쇼카쿠에게 명중시켰고 요크타운과의 합동 공격으로 함미 비행갑판과 격납고를 파괴되고 선수 엘리베이터를 기능불능 상태로 만들어 전열에서 이탈시키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어뢰에 맞으면서 파손된 항공 연료탱크에서 누출된 휘발유가 증발하며 발생한 유증기가 선체에 고여 있었으며 얼마 뒤 중앙제어실 인근 모터에서 발생한 스파크가 튀며 유폭으로 이어지게 된다. 폭발은 렉싱턴을 대파시켰고 이후 두어번 대규모 폭발이 이어지며 결국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미군은 진주만으로 회항시키려던 기존 계획을 접고 표류하는 렉싱턴을 향해 뇌격 처분으로 자침시킨다.

그렇게 산호해 해전에서 렉싱턴이 짧은 함생을 마감한 것과 달리 회항했던 새러토가는 1942년, 운없게도 새해를 맞은지 12일 만에 어뢰도 맞아 다시 귀항해 수리해야 했고 미드웨이 해전이 끝난 뒤인 그 해 7월에나 전선으로 복귀해 치열한 과달카날 전역에 참전한다. 새러토가는 2차 솔로몬 해전에서 일본 경항모 류조를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렸는데, 엔터프라이즈와는 달리 운이 없는 건지 아니면 어뢰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건지는 몰라도 8월 31일 일본 잠수함 I-26으로부터 어뢰공격을 받아 복귀한지 약 한달여 만에 또다시 전열에서 퇴장당한다.

때문에 중요했던 과달카날 전역 시기에 새러토가는 전장 대신 도크에 있어야 했고 과달카날 전역 말, 11월 22일에야 전선에 복귀하여 홀로 싸우던 엔터프라이즈와의 임무를 교대한다.

새러토가는 애식스급이 배치되고 미국이 주도권을 쥐게 된1943년 10월 말, 공세적인 행동에 나섰고 라바울 일대 뉴 조지아 전역과 부겐빌 침공에서 미군 지상군을 항공 지원하였다. 이 때, 벌어진 사건인 라바울 전역 당시 새러토가는 라바울에 증원된 일본 수상함대를 구축하는 임무를 띄고 경항모 프린스턴(CVL-23)과 38전대를 구성했다. 5개의 비행장과 겹겹이 구축된 대공 포대로 요새화된 라바울은 말벌집이라고 불리며 난공불략의 거점으로 여겨졌고 이 라바울 심프슨 항에 증원된 제2함대는 중순양함 7척, 경순양함 1척, 구축함 4척 및 지원함을 포함한 19척의 대함대로, 비록 손상입은 유조선 1척을 호위하기 위해 중순양함 초카이와 구축함 1척이 전열에서 이탈하긴 했지만 그래도 미 해군의 작전을 위협할 규모였다.

그런 이유로 미 해군은 당장 2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38전대에게 공습 명령을 내렸고 새러토가와 프린스턴은 단 1회의 공습으로 최대한의 피해를 주는 걸 목표로 하였다.

이윽고 11월 5일 오전(09시), 새러토가는 일본 2함대를 타격하기 위해 함재기들을 발진시키기 시작했고 33대의 헬캣 전투기와 16대의 어벤저 뇌격기, 그리고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 19대가 새러토가의 비행갑판을 떠나 프린스턴에서 발진한 함재기들과 합류했다. 새러토가의 항공 부대를 주력으로 97대의 대규모 편대를 형성한 공습 부대는 2함대가 있는 블랑쉬 해엽, 심프슨 항으로 항로를 잡았다.

공습을 감지한 일본군은 해엽으로 진입하는 미군 항공기를 저지하기 위해 70대의 제로 전투기들을 출격시켰지만 분산된 각자 공격 대신 밀집 대형을 이룬 미군 공격대는 일본군을 기만한 채 공습 직전 대형을 풀고 일본 제2함대로 돌입하였다.

공습은 성공적이었고 주력 함정들을 전투불능 상태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중순양함 마야는 기관부에 폭탄을 맞고 대파, 타카오는 함저에 침수가 발생하였고 3발의 폭탄이 집중된 아타고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모가미급 중순양함 모가미는 1발이 명중하며 그나마 다른 함정들보단 피해 정도는 낮았지만 당장 전투에 나가기는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다. 이밖에 경순양함 아가노(뇌격)와 노시로가 명중탄을 맞았고 구축함들도 폭격으로 큰 손상을 입어 일본 제2함대의 발은 묶이게 되었다.

성공적으로 공습을 완료한 새러토가는 돌아오는 함재기를 복귀시킨 후 해역을 빠르게 이탈하였고 일본 제2함대는 라바울을 떠나 정비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적 함대를 라바울에서 몰아내는 활약을 한 새러토가였지만, 전역에서 전투는 이어지고 있었고 부겐빌 침공에 나선 지상군 엄호와 지원을 위해 프린스턴과 함께 작전을 지속하게 된다. 지상에 대한 공습과 함께 11일에는 경순양함과 구축함으로 구성된 일본 함대에 명중탄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지속되는 라바울 항공전에 함재기를 출격시켜 공습과 공중전에 참여하였다.

1944년부터는 중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해상 공세에 참여하여 마샬 군도 전역에 대한 공습을 진행했고 에식스급의 취역으로 인하여 정규 항모 수량에 여유가 생김에 따라, 영국 동양함대 지원을 위해 태평양에서 인도양 방면으로 배속되어 에식스급이 마리아나 제도 공격전을 벌이던 때 새러토가는 인도양에서 자바와 수마트라 방면에서 해상 작전을 진행하였다.

새러토가의 마지막 작전은 이오지마 전투였고 여기서 카미카제 공격을 받아 대파되어 전선에서 이탈한 새러토가는 그렇게 도크에서 종전을 맞는다.

최후

파일:WVdBHJ1.jpg
크로스로드 베이커

비록 전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엔터프라이즈와 함께 전장을 누볐던 새러토가였지만 본국의 반응은 사뭇 싸늘했다. 구형 순양전함 개조 항공모함이라 24척이나 건조된 에식스급보다 항공모함으로서 성능도 떨어졌고 선체의 노후화 문제도 있었기에 미 해군은 비싼 운용비용을 쓰면서 새러토가를 운용할 마음이 없었고 역시 엔터프라이즈와 같이 기념함으로 남기고자 하는 노력도 있었으나 결국 폐기가 결정되었다.

새러토가의 최후는 스크랩 처리된 엔터프라이즈의 마지막보다 비참했다. 새러토가는 비키니 환초에서 실시한 핵실험인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원자폭탄 베이커의 수중폭발로 격침되었는데 최근 환초 바닥에서 그 선체가 발견되었다. 참 여러모로 안쓰러운 함생을 살다 간 함급.

동형함

여담

산호해 해전에서 침몰한 렉싱턴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매우 유명하다. 뇌격 이후 유폭으로 회생 불능이 된 렉싱턴의 갑판에 옹기종기 모여 퇴함 처분을 기다리던 미 해군 수병들은 어느 한 수병이 렉싱턴의 냉동창고에 아이스크림이 남아있다는 걸 알리자 그 빅뉴스는 삽시간에 갑판 위 다른 수병들에게 퍼져나갔고 앞으로 없을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수병들은 곧장 다시 함내로 들어가 도끼와 망치 같은 연장으로 창고를 부수고 아이스크림을 단체로 털어갔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아이스크림을 담을 용기가 마땅치 않아 철모에 사발째로 떠가기도 했고 퇴함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미 해군 수병들은 따가운 햇살과 불타는 군함 위에서 시원한 한때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각주

  1. 쇼카쿠와 즈이카쿠, 그리고 쇼호로 구성된 항모 기동부대였다.
  2. 폭탄 1발이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450kg 짜리 항공폭탄은 지근거리에서 폭발 시 현대 주력전차(40~60톤)를 전복시킬수 있는 위력을 발휘한다. 또한 현대 아음속 대함미사일들의 탄두중량 2배에 달하는 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