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식스급 항공모함

에식스급 항공모함
Essex class aircraft carrier
USS Essex (CV-9) underway in March 1951.jpg
네임쉽 CV-9 에식스
선박 정보
종류 항공모함
건조 24척
운영 미국
스페인(공여)
취역 24척
퇴역 전량 퇴역(4척 보존)
제원
엔진 웨스팅하우스 증기터빈 4기
추진력 15만 마력
속도 32.7노트
무장 127미리 38구경 양용포×8
40미리 보포스 대공포,20미리 오리콘 대공포
항공기 90~126대
전장 (숏타입) 265m / (롱타입) 270m
선폭 45m
흘수 8.4m
배수량 27100톤 (27500톤)
36830톤 (36950톤) (만재)

에식스급 항공모함(Essex class aircraft carrier)은 제 2차 세계대전기 미국의 정규 항공모함이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태평양 전선에서 전쟁 중반부터 활약하기 시작했고 렉싱턴급 항공모함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후계함으로, 엔터프라이즈 혼자 외롭게 지키던 전장을 넘겨받아 전세의 전환을 가져온 항공모함이다.

총 32척이 예정되었고 실재 23척이 건조되어, 당시 어떤 나라도 달성하지 못한 규모의 정규 항모 전력을 갖추었고 일본제국 해군을 질적인 면과 양적인 면 모두에서 압도하며 일제를 패망시키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은 미국의 반격과 공세의 중심으로 전쟁 기간 동안 단 1척의 손실도 입지 않았으며 전후 현대전에 해당하는 냉전 시대 초반까지 개장하여 6.25 전쟁과 대만 사태에 투입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냉전기 제트기 시대의 도래로 대형화되는 함재기를 수용하기 힘들어지자 경사갑판 개조 같은 현대화 작업을 거쳐 운용되었고 이후 2선급에서 운용되다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의 취역으로 임무를 인계하고 마침내 전량 퇴역한다.

한편, 6.25 전쟁에도 미 해군 함대 항공모함으로 다수 참전한 함급이며 중국과 대만 간 금문도 분쟁 당시에도 대만해협에 전개되기도 하는 등, 우리나라와 동북아시아와도 인연이 깊은 항공모함이다.

건조 배경[편집 | 원본 편집]

때는 제2차 세계 대전 직전, 해군의 건함 경쟁을 억제하여 지출을 줄이려던 영국과 이에 호응한 미국에 의해서 강대국간의 해군 군축조약이 맺어졌다. 총 두 차례 맺어졌으며 워싱턴 해군조약 체결로 제한선이 마련되었다. 각 열강들은 이들 제한선 속에서 해군전력의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였으며 미국 역시 이 과정에서 점차 쓸모가 없어지던 순양전함의 존재가치를 파악하고 건조중이던 렉싱턴급 순양전함 렉싱턴과 새러토가를 렉싱턴급 항공모항으로 개장하였고, 여기에 2만 톤급 정규 항공모함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두 척(요크타운, 엔터프라이즈)을 건조하고 남은 1만 5천 톤으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축소 염가형으로 와스프급 항공모함 한척을 건조한다.

그러나 일본이 조약을 탈퇴함에 따라 건조 톤수에 제한이 사라지면서 미국은 항공모함의 수를 증강시키려 노력하였다. 기본적으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설계가 준수하였기 때문에 운영시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조금 개량한 호넷을 한척 더 건조하였고 이후 배수량을 증가시켜 성능을 향상시킨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이 함급을 에식스급이라고 하며 에식스급 자체는 전쟁 전에 계획되어 설계가 완료되었고 태평양 전쟁 동안 건조가 진행중이었다. 미국이 기를 쓰며 전황을 유지시키려 했던 것도 에식스급의 건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후 1960년대 까지 냉전 초반 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으로 계속 운용되면서 현대화 개량을 받게 되어 경사갑판을 달게 되고 증기식 케터펄트를 장착하는 등의 개량을 거치게 되었다.

설계 및 성능[편집 | 원본 편집]

항공기 운용[편집 | 원본 편집]

에식스급 요크타운, 개장 이전 모습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태평양 전쟁 초반의 전쟁경험을 통하여 이전 함급 요크타운급 항공모함과 항공 편제에서 차이를 보인다.

일단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에 비해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함재기 탑재능력이 늘어 90대 정도의 항공기 운용능력을 갖추고 있던 이전 요크타운급보다 많은 약 100대(최대 126대) 이상의 함재기를 상시 운용 가능했다. 케터펄트의 경우 요크타운급과 유사한 유압식 케터펄트로 함수방향으로 두 개소가 장착된 것 역시 동일했지만, 비행갑판의 모습도 보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경해 운용공간의 효율성을 추구함과 함께 함재기 이착륙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격납고와 연결된 승강기를 현측으로 이동시켰다. 이런 점은 당시 설계 및 건조가 진행중이던 후계함인 미드웨이급 항공모함에도 계승된다.

비록 대전기 건조된 항모이므로 에식스급도 직선형의 비행갑판을 사용했지만 전후엔 경사갑판을 추가 개장되며 함재기 이착륙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에식스급의 함재기 편재는 이전 렉싱턴급과 요크타운급을 운용하며 얻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새로 편제되면서 뇌격기의 비중이 줄어들고 전투기와 폭격기의 비율이 늘어난 편 역시 에식스급의 특징이기도 하다. 보통 에식스급의 함재기는 36/18/36의 비율로 구성되며 이는 전투기 36대, 뇌격기 18대, 급강하 폭격기 36대로 이루어져 함대 방공능력이 증가하였다. 여기에 1943년에는 F6F 헬캣의 배치도 함께 진행되면서 전투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었고 후기에는 대전기 최강의 함재 전투기인 F4U 콜세어도 운용하며 자체 무장이 가능한 전투기가 배치됨에 따라 전투기의 비중을 늘려 폭장 능력은 유지한 채 방공 능력을 크게 강화했다.

전후 경사갑판 개장 모습

이후 제트 전투기인 F-80 슈팅스타를 종전 직전에 탑재하기도 했고 전후 경사갑판으로 개량된 후 제트전투기와 프롭전투기를 혼용 운용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때는 상당수의 제트전투기를 이 착함 시키기도 했으나, 콜세어 같은 대전기 항공기들 역시 갑판 위에서 함께 현역 운용되었다. 특히 콜세어는 한국전쟁에서 지상공격기로 악명을 떨치며 인민군과 중국군에게 공포의 대상 중 하나였다. 대전기 이후 접어든 냉전기엔 1950년대엔 F9F 쿠거를 필두로 한 제트기를 한국전쟁에서 대량 운용, 1960년대에는 공격기로 A-4 스카이호크와 F-8 크루세이더의 모함으로 운용되었지만, F-4 팬텀의 운용은 협소한 선체 한계상 불가했다.

함체[편집 | 원본 편집]

요크타운급 항공모함과 달리 해군조약의 제한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능들이 추가된 에식스급은 당시 존재했던 태평양의 어떠한 항공모함보다도 우수한 성능을 보유한 항공모함이었다. 에식스급은 대형화된 선체로 90대에서 최대 126대의 함재기 정상 운용 기록도 있으며 이는 일본이 보유했던 정규항모 아카기,카가,다이호,쇼카쿠급 모두 상회하는 전투능력으로서 성능적 우위에 있는 무기체계가 대량생산되어 나오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군함이라고 할 수 있다. 에식스급은 단선형(숏타입)과 장선형(롱타입)으로 나누어지며 이 롱타입은 하위 함급으로 타이콘데로가급이라 분류하기도 하는데, 약 5미터 정도 차이나는 편이다. 물론 숏타입 에식스급도 전장 265미터로 타 항공모함보다 큰 규모이며 이렇게 대형화된 선체는 함재기 운용능력을 크게 향상시켜 주었다.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전자장비도 당연히 발전되어 갔고 에식스급에도 이러한 전자장비를 장착함으로서 조계경보능력을 전쟁 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방공체계를 형성하였다. 에식스급은 탐색 레이더로 SG레이더를 달게 되었고 요크타운급이나 레인저급에 장착되었던 Mk.37 사격통제장비의 Mk.4 레이더가 저공 침투를 잘 탐색해내지 못하던 성능상 한계를 인식해 에식스급에는 이 사통장비에 Mk.12와 Mk.22 레이더를 장착하여 저공 침투에 대한 대응능력도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다중 탐지체계와 전자장비의 발달로 에식스급과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시계외 거리에서도 적 항공기의 침투를 조기에 탐지해 함재기를 출격시키는 등의 대응이 가능했고 보유 대공포와 레이더간의 연동능력 역시 보유하여 에식스급의 배치 이후, 일본군은 웬만한 항공기의 수로는 미군의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방공망을 뚫고 함대에 유효 타격을 주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공격 난이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였다.

함이 보유한 고정무장은 원거리 방공무기로 127mm 38구경 양용포와 이 포가 탑재된 포탑 터럿 8문이 각 4개씩 양측에 배치되었고 중거리 방공수단인 40mm 보포스 대공포는 32문에서 72문까지 조밀하게 배치되어 화망구성의 주축을 담당했다. 단거리 방공무장은 20mm 오리콘 대공포 55~76문을 배치하였다. 이런 방식의 다중 방공망은 이전 세대의 항공모함들도 마찬가지 였으나 에식스급은 화력을 강화하고 VT 근접신관이 장착된 대공포탄을 사용하며 더욱 효과적인 방공망을 형성할 수 있었다.

장갑 배치는 현측 장갑 벨트 부분이 가장 두터운 102mm STS 특수강으로 제작되어 어뢰와 흘수를 노리는 폭탄을 방어하였고 조약 때문에 방뢰기능을 사실상 포기한 거나 다름없던 요크타운급의 가장 큰 단점을 보완하였다. 또한 항공모함에 있어 중요한 메인 데크에 배치된 장갑 역시 64mm의 두께로 깔려 있어 비행갑판을 뚫고 들어오는 항공폭탄을 방어할 수 있게 된 구조였다. 비행갑판의 장갑은 장갑항모보단 얇은 37mm 정도였다.

실전[편집 | 원본 편집]

태평양 전쟁[편집 | 원본 편집]

에식스급은 태평양 전쟁 중후반대 미군이 태평양을 건너 공세에 들어가는 시점부터 활약하기 시작한 항공모함이다. 1943년 마리아나 제도 침공전에서 첫 실전에 투입된 네임쉽인 에식스를 비롯하여 3척의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미 해군 태평양 함대 소속 항공모함 기동부대에 배속되어 길버트 제도, 미셸 제도(콰잘레인 환초 공습), 부타리타리 환초에서 일본군 항공세력 소탕작전에 참가해 일본군의 저항을 조기 무력화 하며 제대로 된 신고식을 치뤘고 침공전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타라와 환초 점령전에선 전개되는 미 해병대를 지원하여 요새화된 타라와 환초의 토치카와 진지를 항공지원으로 파괴하면서 타라와 환초에서 고착된 지상군을 지원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환초 때문에 전함의 포격지원이 마땅치 않아 항공모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었고 에식스급은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 냈다.

에식스급은 일명 '개구리 뛰기'(Frog hopping) 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미군의 태평양 제도 진공작전이 본격적으로 일본군을 쓸어버리기 시작하는 1944년에 이미 상당수의 에식스급이 배치되어 고속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편성하였고 이들은 미군 공세의 주연으로, 44년의 벌어진 중요한 전투에서 일본 해군 전력을 산산조각 내 버린다.

대표적인 것이 그 유명한 필리핀해 해전에서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은 항모 부대인 TF58 함대를 구성하여 작전에 투입되었고 네임쉽 에식스를 비롯한 7척의 에식스급 항모들[1]가 항모 부대를 구성하고 있었다. 당시 에식스급의 대형함 격침 기록은 없지만 에식스급 3척에서 출격한 헬캣 등 미군 함재전투기들이 일명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으로 알려진 항공전에서 승리함에 따라 일본 해군의 항공세력을 궤멸 상태로 몰아넣는데 크게 일조하였고 이는 에식스급이 치른 해전 중 가장 중요한 전과로 일본 해군은 더이상 미 해군을 소멸시키기 위한 공세로 전환하지 못했다.

이후 레이테만 해전에 접어들며 10척 이상이 건조된 에식스급들은 명실상부 미 해군 항모 부대를 장악하고 일본 해군의 장례를 주관하기에 이른다. 에식스, 인트레피트, 프랭클린에서 발진한 함재기들의 공습은 일본 해군의 중순양함 나치와 항모 치토세, 그리고 태평양 전쟁의 시발점인 쇼카쿠급 항공모함 즈이카쿠를 격침시켰으며 더 나가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를 비롯해 일본 최후의 해상전력을 소거하는 전과를 세웠다. 그리고 이오지마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 당시 지상군에 대해 항공지원과 대만 항공전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이며 전쟁의 말미를 장식했다.

특히 고속 항모기동부대로 활동하며 태평양 전쟁 후반 각종 주요 전투에 참여한 만큼, 에식스급들은 일본 해군의 발악을 집중적으로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전 말 카미카제의 표적이 되어 벙커힐과 랜돌프, 그리고 인트래피트가 피해를 입었다. 랜돌프[2]의 경우 후미 비행갑판에 큰 구멍이 난 사진이 유명하며 벙커힐 역시 카미카제 공격 직후 큰 화제와 함께 지친 듯 그걸 바라보는 수병들의 모습이 잘 알려져 있다. 카미카제 공격으로 벙커힐은 대파당해 종전 후까지 돌아오지 못하였고 공습을 받아 함이 기우는 지경까지 간 프랭클린의 경우 결국 자력 항해로 복귀하긴 했지만 수리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방치되다 폐기되기도 했다.

물론 카미카제로 벙커힐의 사례처럼 나름 피해를 입긴 하였지만 정작 격침된 미 해군 정규항모는 단 한 척도 없었고 미군의 전력에는 큰 손상을 주지 못한, 쓸모없는 행위였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전장이 일본 앞바다로 당겨지면서 일본 본토에 상륙을 앞두고 있던 미군에게 상륙 부대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일본 해상세력은 척결1호 대상이었다.

냉전기[편집 | 원본 편집]

한반도 해상의 CVA-21 복서

태평양 전쟁 이후에도 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으로 활동하였는데, 한국전쟁에서 11척의 에식스급 항공모함을 동원하였고 전쟁 당시 UN군 해군전력의 핵심으로 자리잡음으로서 한국전쟁에 투입된 대부분의 해군기들은 이 에식스급에서 발진하였고 북한과 중국에게 있어 항공모함에 대한 공포를 심어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인 1956년, 중국과 대만간 금문도 무력분쟁시엔 확전을 막기 위해 미 해군의 에식스급이 대만 해엽으로 파견되어 무력시위를 하기도 했고 이때의 경험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은연중에 중국이 항모 보유에 집착하게 되었다.

스페인에 공여되어 스페인의 정규 항모로서도 활동하곤 했지만 1960년 전후로 대형 함재기 운용 불가와 같은 태생적인그 한계에 도달함에 따라 퇴역하게 되었고 지금은 4척이 보존처리 되어있다.

동급 함정[편집 | 원본 편집]

[[|썸네일|240픽셀|]] [[|썸네일|240픽셀|]]

함번 함명 진수/취역 퇴역 현황
CV-9 에식스
CV-10 요크타운
CV-11 인트래피트
CV-12 호넷
CV-13 프랭클린
CV-14 타이콘데로가
CV-15 랜돌프
CV-16 렉싱턴
CV-17 벙커힐
CV-18 와스프
CV-19 핸콕
CV-20 배닝턴
CV-21 복서
CV-31 보놈 리샤르
CV-32 레이테
CV-33 키어사지
CV-34 오리스카나
CV-35 리프라이절
CV-36 엔티텀
CV-37 프린스턴
CV-38 샹그릴라
CV-39 레이크 챔벌린
CV-40 타라와
CV-45 밸리 포지
CV-46 이오지마
CV-47 필리핀 시

각주

  1. 에식스를 포함해 CV-12 호넷, CV-13 프랭클린, CV-15 요크타운, CV-16 렉싱턴, CV-17 벙커힐, CV-18 와스프.
  2. 벙커힐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랜돌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