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도등대

Chirho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10월 14일 (수) 21:34 판 (→‎사건사고)

틀:등대

개요

당사도 인근 해역은 남쪽은 서해에서 남해로 진입하는 선박들의 항로가 되며, 동쪽 해역은 제주도와 완도, 고흥 등지를 연결하는 연안여객선들의 주요 항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서쪽 해역은 제주도와 목포, 진도등을 연결하는 항로로 사용되고 있는 지점이다. 이 섬을 북쪽으로 수많은 섬들과 암초들이 펼쳐지고 남해안 다도해 특유의 협수로들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에 해당 해역을 지나는 선박들의 항로표지로 이 등대가 이용되고 있다. 이 등대의 불빛은 20초마다 23마일거리까지 비춰지기 때문에 추자도쪽에서도 이 등대의 불빛을 볼 수 있으며, 제주항에서 완도항으로 가는 여객선을 탔을 경우 이 등대가 배의 좌현방향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지점이 전체 항로의 3분의 2쯤에 해당하는 지점이므로 한시간 내외 거리로 도착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등대 연혁

  • 1909년 1월 : 대한제국 세관공사부 등대국 자지도등대 초점등
  • 1945년12월 : 미군정청 운수부 해사국
  • 1955년12월 : 목포지방해무청
  • 1977년12월 : 목포지방해운항만청 자지도등대
  • 1988년 8월 : 목포지방해운항만청(항로표지관리소로 명칭변경)
  • 1997년 5월 :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자지도항로표지관리소
  • 1999년 1월 : 목포지방해양수산청 당사도항로표지관리소
  • 2008년 3월 : 목포지방해양항만청 당사도항로표지관리소

당사도 정보

이 등대가 위치한 당사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에 딸린 섬으로 면적 1.461㎢, 해안선 길이 8㎞, 산 높이 171m의 삼각산으로, 인구는 26가구 46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1]. 소안면의 중심이 되는 소안도 기준으로는 서쪽 약 3.5㎞, 완도항에서 20.8km의 해상에 위치한다.

이 섬에 사람이 처음 들어와서 살게 된 것은 조선 선조 당시로, 청주황씨가 처음으로 입도하였으며 그 후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한 곳이다.

  • 가는 방법 : 완도군 노화읍 이목항에서 새마을 15호 탑승, 오전 7시30분, 오후 3시40분 하루 2회 출발(2800원, 40분 내외 소요) 참고로 이목항까지 가려면 해남 땅끝에서 배를 타고 완도로 가야 한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만 1시간 내외.

섬 이름의 변천사

  • 이 섬의 원래 이름은 조선시대 당시에는 육지로 드는 관문 역할을 하는 섬이라 하여 항문도(港門島)(...)라는 이름이 붙었었으나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섬의 이름을 바꾸었는데 바꾼 이름이 바로 자지도(者只島)이다(...)[2] 대체 어떤 놈들이 작명한거야 결국 이 섬의 이름이 바뀌기 전 이름이나 바뀌고 난 후의 이름이나 둘 다 부르기가 상당히 거시기(...)한 관계로 진짜 앞, 뒤 거시기 1982년에 당사도(唐寺島)로 바꾸게 된다. 물론 주민들은 아직도 자지도가 더 익숙하다고(...)[3]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전라도편에는 이 섬의 이름이 좌지도(左只島)라고 기록되어있다. 거기도 자지도라고 적기 민망했을 듯
  • 섬의 이름을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등대가 속한 항로표지소 이름은 1999년에야 바뀌게 된다. 위쪽의 등대 연혁을 보면 알겠지만 1997년에도 자지도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었을 정도.
  • 참고로 당사도로 이름이 바뀐 사연도 썩 좋은 사연은 아니라고 한다. 장보고 장군이 청해진을 설치하였을 당시 당나라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 섬의 형새가 임금왕(王)자의 형세라 하여서 당나라 도인이 와서 王자의 가운데 혈처를 깎아내고 그 곳에 절을 지어서 구슬옥(玉)자가 되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이 때 지은 당나라의 절이 있었던 섬이라고 하여 당사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청해진이 설치되었을 때 당나라의 배들이 이 섬에 기항하면서 무사고를 기원하여서 당사도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다.

사건사고

당사도 동편는 있는 섬은 소안도라고 하는 작은 섬으로 일제시대 당시 이 섬의 주민 6000명 중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만 800명이었고, 이 작은 섬에서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항일의 섬이다. 아무튼 등대가 불을 밝힌지 2개월도 채 안된 1909년 2월 24일 동학의병에 참여했던 옆의 섬 소안도 주민 7명이 등대를 습격하여 등대 기기를 파괴하고 일본인 등대수를 처단했었다. 일명 "자지도 등대 습격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 이 사건이 일어나자 일본은 헌병 1개소대 30명을 소안도에 파견하기도 하였었다.

  • 일본측에서는 자지도 등대 습격사건으로 4명의 일본인이 살해되자 이 당시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해 1910년에 조난기념비(遭難記念碑)를 세웠다. 이 비석은 해방 후 파손되었는데 남아있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등대간수가 1909년 적의 흉탄에 쓰러졌기에 이를 후세에 알리고자 1910년 이 비를 세운다.[4]
  • 1997년에 자지도 등대 습격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소안도 항일운동 기념사업회에서 항일전적비를 일본이 세운 조난기념비 옆에다가 세우게 된다. 그리고 파손되어 방치되어있던 일본의 비석을 항일운동의 중요증거자료로 보존하기 위하여 다시 해당 비석을 항일전적비 옆에다가 세워놓게 된다. 일본측에서 세운 비석의 내용으로 해당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교차검증하고, 아픈 역사의 흔적이라 하더라도 잊지 말자는 의도.

기타사항

  • 지도책을 보면 각 지도마다 섬의 이름이 제각각인 경우도 꽤 많다. 바뀐 이름인 당사도부터 시작하여, 대놓고 자지도(...)라고 적어놓은 책도 있으며, 자개도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표기한 해도도 있다고 항문도가 없는게 천만다행
  • 이 섬은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 낚시꾼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섬이기도 하다.
  • 이 섬에는 차도가 없으므로 차량 자체가 필요없다. 섬 어디든 걸어서 갈 수 있다
  • 해수욕은 당사도 선착장쪽 바다에서 할 수 있다.
  • 고무보트를 빌려타면 인근의 보길도나 복생도를 둘러볼 수도 있다. 단, 배멀미를 이겨내야 한다.

각주

  1. 2014년 기준
  2. 섬의 모양이 한자 "只" 모양과 흡사하다고 붙은 이름이다
  3. 관련 정보
  4. 일본측의 입장에서 쓴 내용임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