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천

다문천(多聞天)은 불교에서 섬기는 천부부처 가운데 하나다. 달리 비사문천(毘沙門天)이라고도 부른다. 대한민국에서는 대체로 다문천 쪽으로 부르며, 일본에서는 독존상으로 안치되어있는 경우 비사문천으로, 사천왕 중 일존으로서 안치되어있는 경우 다문천으로 부르는 것이 통례다.

다문천은 지국천, 증장천, 광목천과 함께 사천왕의 일존으로서 꼽히는 무신(武神)이며, 사천왕 중에서도 가장 그 위상이 높아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등지에서 독존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어있기도 하다. 비사문천이라는 한자명은 산스크리트어 이름인 바이슈라바나(वैश्रवण, Vaiśravaṇa)를 음역한 것으로서, 그 의미는 「바이슈라바스 신의 아들」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잘 듣는 자」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여 이를 의역한 한역명이 곧 다문천이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불교의 사천왕 중 일존이자 그 수장격으로, 북방을 담당하는 무신. 수미산의 제4층 수정타(水精埵)에서 권속으로 야차나찰 무리를 거느리며 북구로주(北俱盧洲)를 다스린다. 항상 도량을 지키며 다문(多聞)이라는 이름대로 부처의 설법듣기를 즐긴다고 한다. 또한 재보신으로서의 성격도 띠고 있어 시재천(施財天)이라고도 부른다.

밀교에서는 십이천의 일존으로 북방을 수호하며, 일본에서는 칠복신의 일각으로서도 꼽힌다. 칠복신으로서의 비사문천은 불법수호, 출세, 개운번성, 지혜를 대표하고 있다.

유래[편집 | 원본 편집]

다문천은 인도 신화의 재보신이자 야차왕인 쿠베라가 그 전신(前身)이다. 본래 히말라야의 카일라스산에서 거주하는 쿠베라는 재보신으로서의 성격이 강했지만 중앙 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점차 재보신보다는 무신으로서의 역할이 중시되어, 이윽고 불교의 호법선신 · 사천왕이 되었다. 인도, 중국에서 북방이란 이민족이 침공해오는 주요 루트이기에 북방을 담당하는 신에게 무신, 전신으로서의 가호를 바라게 된 것이다.

이런 사정은 옛날 한반도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서, 여진·거란·몽고라는 북방 이민족들에게 숱한 침탈을 받아왔던 고려 시대에는 사천왕, 그중에서도 외적이 침범하는 북방을 지킨다는 다문천에 대한 신앙이 호국 사상과 결부되어 특별히 발달했다.

다른 신과의 관계[편집 | 원본 편집]

다문천은 천부의 부처 중 가장 높은, 수미산의 정상에 있는 도리천(忉利天)에 기거하는 제석천(帝釈天)의 직속 수하이다. 다른 사천왕들을 이끄는 위치이기도 하기에, 밀교가 발달했던 통일 신라, 고려 시대에는 제석천과 사천왕, 혹은 사천왕을 중심으로 한 호법도량이 많이 발달했다.

길상천(吉祥天)은 다문천의 아내 혹은 여동생으로 그려지며, 아내일 경우 길상천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선이사동자(善膩師童子)를 둔다. 다문천에게는 이외에도 수많은 자식들이 있다고 전해진다. 다문천의 둘째 아들은 독건(獨健)으로, 이 독건은 도교이랑신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또한 다문천의 전신인 인도의 야차왕 쿠베라의 셋째 아들이었던 나라쿠바라는 중국에 들어와 다문천의 셋째 아들(혹은 손자), 나타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 나타삼태자는 독건의 동생이라고도, 조카라고도 전해진다.

그 수하로는 팔대야차대장을 위시하여 사천왕을 받드는 팔부귀중(八部鬼衆) 가운데 야차와 나찰을 권속으로 두고 있다.[1]

도교 전설과의 습합[편집 | 원본 편집]

북방의 수호신 다문천은 북쪽의 이민족들에게 잦은 공격을 받아왔던 옛 중국에서 깊은 숭배를 받게 되며, 탁탑천왕이라는 이름으로 민간 신앙에 받아들여져 도교의 신으로도 취급되었다. 세월과 함께 당나라 태종 때 북방의 이민족을 정벌한 명장 이정이 신격화되면서 이 탁탑천왕과 동일시되고, 《봉신연의》, 《서유기》 등 고전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익숙한 모습인 탁탑이천왕에 이르게 된다. 탁탑천왕 이정이 다문천과 동일시되면서 인도의 야차왕이었을 시절 때부터 다문천의 아들이었던 나타태자 또한 이정의 되바라진 셋째 아들로 변모를 이루게 된다.

《봉신연의》에서는 탁탑천왕 이정 말고도 다문천의 다른 화신이 한 명 더 등장하는데, 바로 마가사장(魔家四将) 중 셋째인 마예해(馬禮海)다. 마예해는 봉신되면서 다문천왕(多天王)으로 봉해진다.[2]

형상[편집 | 원본 편집]

불상과 탱화에서 표현되는 다문천의 모습은 갖가지지만 오른손에 보탑을 들고 왼손에 삼차극을 든 무장의 형상이 보편적이다. 보탑은 재물의 신으로서 성격을, 삼차극은 무신으로서의 성격을 나타낸다.

중국의 민간 신앙에서 다문천은 녹색의 낯빛에 한손에 우산을, 한손에 다문천의 수하 동물인 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대한민국의 사천왕상에서 다문천의 지물이 비파가 되어있는 경우도 보이지만 이것은 조선 시대 이후의 것[3]으로, 그 이전에 지어진 사천왕상은 역시 무신의 성격이 강해 삼차극 또는 을 들고 있다. 한편 티베트 불교에서 다문천은 재보신으로서의 성격이 특히 강해서 그 지물이 보탑과 더불어 보석을 비롯한 재물을 토해내는 보서(寶鼠, 몽구스)가 되어있는 예가 대부분이다.

사천왕상에서 북방다문천왕의 낯빛은 검은색으로 칠해지는 경우가 잦은데, 이는 검은색이 북방을 상징하는 빛깔이기 때문이다.

다문천에 얽힌 각종 전설[편집 | 원본 편집]

중국[편집 | 원본 편집]

당명황
당나라 6대 황제인 당현종을 이른다. 연간에 적도의 침략을 받아 위난에 처했을 때 다문천이 수하 동물인 쥐를 보내 적병의 무기를 모두 망치고 나자 다문천의 둘째 아들인 독건이 천병(天兵)을 이끌고 현종을 구원했다는 전설이 있다.

일본[편집 | 원본 편집]

쇼토쿠 태자 (성덕태자)
일본 아스카 시대의 왕족. 모반을 일으킨 모노노베 일족을 토벌할 때,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비사문천이 쇼토쿠 태자 앞에 나타나 두 비법을 하사했다는 전설이 있다.[4]
우에스기 겐신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각별한 비사문천 신앙을 품고 있어, 군기에도 비사문천의 비(毘) 자를 사용했다. 겐신이 비사문천 신앙을 가진 이유는 쇼토쿠 태자의 전설처럼 겐신이 인년 인월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겐신의 본래 이름도 호랑이가 들어간 카게토라(景虎)이다.
쿠라마텐구
우시와카마루에게 무예를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텐구. 쿠라마데라(鞍馬寺) 절에서 본존으로 모시고 있는 비사문천의 밤의 모습이라고도 한다.

대중문화 속의 다문천[편집 | 원본 편집]

  • 게임 여신전생 시리즈에서 비사문천은 고레벨 귀신족으로서 등장한다. 게임에 등장하는 사천왕 중에서 언제나 비사문천이 가장 레벨이 높으며, 지국천, 증장천, 광목천과 세트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천왕들이 등장하지 않을 때에도 비사문천만이 단독으로 등장하기도 하며, 스토리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경우도 많다.
  • 만화고스트 스위퍼》에는 칠복신 관련 에피소드에서 비사문천 본인이 등장한다. 미카미 레이코가 제시한 소룡공주의 누드 사진에 의해 회유 당한다.
  • 만화 《에어 기어》에서 오사카 지역의 스톰라이더 중 3인의 맹주를 의미하는 '트라이던트'는 비사문천의 삼차극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에 트라이던트 중 한 명인 벤케이의 별명은 '나니와의 비사문천'이다.
  • 판타지 소설아키 블레이드》의 등장인물 중 다미엔 데브롯은 야차왕 쿠베라가 불법에 귀의하여 비사문천이 될 때 버린 미련이 환생한 존재이다.
  • 슈팅 게임동방성련선》에는 히지리 뱌쿠렌, 나즈린 등, 비사문천과 직접적으로 관계 있는 인물이 다수 등장한다. 토라마루 쇼는 비사문천의 대리로서 비사문천 대신 신앙을 받는 화신의 역할이며, 나즈린은 이를 감시하는 비사문천의 직계제자다.

각주

  1. 이는 다문천의 전신인 쿠베라가 본래 약샤(야차)와 락샤사(나찰)의 왕이었던 과거가 반영된 것이다.
  2. 다문천의 "문(聞)"이 《봉신연의》에서 굳이 "문(文)"으로 바뀐 까닭은, 또 다른 다문천의 화신인 탁탑천왕 이정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한 장치인 듯하다.
  3. 봉신연의》에서 다문천왕으로 봉해지는 마예해가 사용하는 보패가 비파인 것을 보면, 비사문천의 지물이 비파인 것도 꽤 오래된 전통으로 짐작된다.
  4. 이 전설로 인해 일본에서는 비사문천과 호랑이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믿어지게 되었다. 비사문천을 본존으로 모시는 시기산(信貴山)의 사찰, 쵸고손시지(朝護孫子寺) 절에 호랑이 인형이 다수 비치되어있는 건 이런 일화에서 연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