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글쓰기에 입문하려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희곡/시나리오

Bryson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7월 14일 (화) 00:18 판

이제 우리도 소비만 하지 말고 생산을 해 보아요.

이 문서에는 독자적으로 연구한 내용이 들어갑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무례하지 않도록 작성해 주시고, 의견 충돌 시 토론 문서에서 토론해 주세요.


시나리오

시작하기 전

S#1 리브레 위키, 글쓰기 안내서 - 시나리오


한 위키러가 글쓰기 안내서 항목을 클릭한다.

글을 읽던 위키러는 한 항목에 눈길이 간다.


위키러 (실눈을 뜨며) 시나리오 편인건가?


위키러는 턱을 괸 채 시나리오 항목을 클릭한다.


안녕하세요. 시나리오의 세계로 오신걸 환영합니다. 이 곳에 발을 들여놓으신 이유는 다양할 겁니다. 심심해서 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부푼 기대감을 안은 채 찾아오신 분들도 있겠죠. 만약 당신이 후자의 경우라면 한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왜 시나리오를 쓰려고 하는 가?

시나리오는 사실 여러분들께 그닥 추천할만한 글쓰기는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여러분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다면 소설을 권하고 싶습니다. 모든 글쓰기가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시나리오라는 글은 당신에게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것은 다반사. 작품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 막혀 끙끙대기를 수십번. 자신이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투자자에게 막혀 결국엔 이상한 괴작으로 전락하기 일수. 만약 "시나리오는 감정묘사도 없고 행동하고 대사만 필요하니 쉽게 쓸 수 있을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면 돌아가시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잠깐. 이런 의문이 드신 분들이 있으실지도 모르실겁니다. 왜 저런 고생을 하면서도 왜 해마다 수백, 수천명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까요? 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의 세계에 푹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쓴 이야기가 영상으로 다시 탄생해 내 눈앞에서 살아움직일 때의 감동, 자신의 이야기를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을 볼 때의 쾌감은 결국 다시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게 만듭니다.

자, 이제 당신이 스크린 앞의 관객들에게 최고의 감동을 주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시나리오를 어떻게 하면 잘쓰는 지 우리 함께 알아가도록 하죠.

시나리오 왜 못쓰는 가?

방식의 문제

역으로 생각해 봅시다. 왜 항상 영화 기획사 한편에는 불쏘시게로 전락한 시나리오들이 산처럼 쌓여있을 가요? 한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의 작업을 살펴보도록 하죠.

오늘 김아무개씨는 길을 걷다가 문득 엄청난 소재가 떠오릅니다. 그는 곧장 책상으로 달려가 컴퓨터를 킵니다.

S#1 회사. 저녁. 옥상.

배경묘사, 인물묘사, 묘사, 묘사 … 인물 A와 B가 문을 열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A: (행동) 대사, 대사, 대사, 대사

B: (행동) 대사, 대사, 대사, 대사

묘사, 묘사, 묘사, 묘사

김아무개씨는 계속 쓰고 고민하고를 반복하다가 한 중반부가 끝날 때쯤 쓰기를 멈춥니다. 그리고 문득 불안해집니다. '이거 재밌나? 내가 보기에는 완벽한데...' 결국 고민하던 김아무개씨는 핸드폰을 꺼냅니다.


그날 저녁, 김아무개씨와 그의 친구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네요.

김아무개: (복사본을 친구에게 건내며) 야, 이거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인데 한번만 보고 평가해주라. 솔직하게.

친구는 건네받은 시나리오를 읽고 있습니다. 근데... 표정이 뭔가 미묘합니다.

친구: 으음... 이거 괜찮다. 나는 특히 여기서 여주인공이 부장한테 어퍼컷 날릴 때 속이 다 시원하더라 진짜 내 상사를 패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거 말고도 여기 둘이 키스하는 장면은 내가 여자여도 로맨틱할 것 같아. 근데... 이거 초반은 좀 별론 것 같고...... 중반부도...... 결말은 없으니까 모르겠는데.... 여튼 그냥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집에 돌아온 김아무개씨. 기대와는 다른 평가에 기분이 언잖아 보이네요. 그러나 김아무개씨는 다시 컴퓨터에 앉아 원고를 고치기 시작합니다. 어디보자... 일단 자신과 친구들이 좋아하는 장면은 놔두고 다시 수정하는 전략을 세웠군요.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어퍼컷 장면은 자기가 생각해도 좋은 장면이었거든요.


한달 뒤, 김아무개씨는 그 친구를 다시만나 수정된 시나리오를 다시 건네줬습니다. 결말까지 완성한 자신의 역작을 말이죠.

친구: (읽으면서) 확실히 다르긴 하네. 그래도 여기 어퍼컷하고 키스부분은 그대로라 좋다. 근데... 아직도 초중반은 뭔가 이상한데... 이번에 새로 쓴 결말도 그렇고...

김아무개씨는 고생해서 쓴 자신의 시나리오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서운해 합니다. 왜 몰라주는 걸까요.

김아무개: 어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친구는 김아무개씨를 힐끗 봅니다.

친구: 일부러 널 화나게 하려는 건 아닌데... 정말로 모르겠어. 왜 이상한 건지. 그냥 나랑 안맞는 것 같아.


이후에도 김아무개씨는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고칩니다. 그리고 그 친구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줬죠. 그러나 반응은 모두 친구와 같았습니다. 그는 더 조급해졌죠. 자... 어디 그가 쓴 시나리오를 한번 볼까요. 음... 장소도 바뀌고 스토리라인도 다 바뀌었네요. 그러나 어퍼컷 장면은 그대로 있습니다. 어지간히도 그 장면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1년 뒤. 김아무개씨는 시나리오 집필을 완성합니다.

김아무개: 이정도면 됐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김아무개씨는 자신의 시나리오의 저작권을 등록한 뒤, 한 영화 제작사에 메일을 보냅니다.


그리고 2주 뒤, 제작사로부터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귀화의 시나리오는 박수를 쳐줄만합니다. 재치도 있고 대사도 매우 훌륭합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부분은 역시 장면묘사입니다. 특히 어퍼컷 장면은 정말로 속이 시원하더군요. 설정에도 오류는 없었습니다. 세세한 부분까지도 신경 쓴게 매우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귀화의 시나리오는 저희 제작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요.

아무래도 김아무개씨의 시나리오가 퇴짜를 맞은 것 같습니다. 김아무개씨는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럴만 하죠. 자신이 공들인 1년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렸으니...

그러나 김아무개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영화계는 인맥이 없으면 안돼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쩔수 없습니다.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수 밖에요.

여러분들이 이 김아무개씨의 이야기를 보고 뭔가 문제점을 느끼셨을 겁니다. 아마 장면에 집착했다는 부분일텐데요. 장면에만 집착하다보니 스토리가 개판이었던 겁니다. 친구가 이상한 걸 느낀 것도, 제작사가 거절을 한 이유도 분명 이런 스토리 때문입니다. 너무 충동적으로 글을 썼던 것이 문제였죠.

요약하자면 시나리오는 시작이 반이 아닙니다. 준비가 반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시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프로작가 이아무개씨의 작업을 통해 무슨 뜻인지 설명을 드리죠.

프로 시나리오 작가 이아무개씨. 그는 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드라이브를 하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작기한을 1년으로 잡고 완성하고자 다짐합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이아무개씨가 메모 카드 묶음을 왕창 사왔습니다. 뭐에 쓰려는 걸까요.


8개월 뒤, 이아무개씨는 글을 한줄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는 거라고는 오직 메모카드에 뭔가를 끄적 거리는것 뿐입니다.

지금 이 아무개씨가 쓰고 있는 것은 단계별 개요입니다. 단계별 계요는 이야기를 단계별로 구성한 겁니다. 메모 한 장에 한 장면씩, 약 한 줄에서 두 줄 정도로 그 장면의 내용을 간단하게 적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실의에 빠진 채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한다. 그러다 히치하이킹을 하려는 그녀를 보게 된다.

같이 말이죠. 그리고 그 뒷장에는 이 장면이 이야기 구성에서 어느 단계인지 적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는 것이죠. 어느 장면이 발단인지, 1장의 절정은 어느 것인지, 이 장면이 2장 중간에 들어가는 것인지, 이게 복선인지 등등. 중심플롯이던 보조플롯이던 마찬가지 입니다. 참고로 각 장마다 묶음으로 묶어두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걸까요? 그냥 시놉시스로 적어도 되는 건데 말이죠.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아무개씨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쓰는 것의 70~80%는 자신의 실력의 절반조차도 못미친다는 사실을 말이죠. 이것은 재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어떤 천재던지 자신이 만드는 것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재능을 절반조차도 쓰지 못한 괴작들입니다. 그래서 이아무개씨는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능력이 절정으로 발휘된 글을 찾을 때까지 장면을 모으고 있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하나의 장면을 수십가지의 방법으로 묘사해놓고는 시나리오에는 그 장면을 빼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어쩔 때는 묶음을 통채로 버릴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범인(凡人)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재능있는 작가들이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만들수 있는 수준에는 한도가 없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물론 모든 시나리오 작가들이 메모카드를 활용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작가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단계별 개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무기이자 연장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만약 여러분이 작가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달라고 하면 흔쾌히 보여주겠지만 '단계별 개요'를 보여달라고 하면 정색을 하고 거절할 겁니다. 그들에겐 이게 가보보다도 더 소중하기 때문이죠.[1]


이아무개씨는 드디어 자신의 스토리를 완성했습니다. 자신이 다듬을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 완성됐다는 흥분감에 도취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아무개씨는 잠시동안 창작에서 손을 때기로 합니다. 당분간 여행을 갔다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3주 뒤, 이아무개씨는 자신의 단계별 개요를 훑어보고 있습니다. 그렇게나 버리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는데도 다시 보니 실망스럽습니다. 아무래도 또다시 쓰게 생겼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어렸을 때 만든 만화나 소설등을 어른이 되고 다시 보신적이 있나요? 그때 감정은 그리움 반 창피함 반정도 일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창피함을 느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퇴고를 많이 했던간 한 몇 일 길게는 몇 주동안 집필하던 작품에서 손을 한번 떼보세요. 그리고 다시 일어봤을 때 만족스러우면 그때 진행하시는게 좋습니다. 물론 다 완성했을때 하시는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너무 부족하게 되거든요.


1주 뒤, 아무개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10분으로 요약한 글을 씁니다. 그리고는 근처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날 저녁, 이아무개씨는 친구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네요.

이아무개 : 이번에 내가 시나리오 하나를 쓰고 있는데 한번 들어봐.

아아무개씨는 친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요약해서 말해 줍니다. 이아무개씨는 글 솜씨는 뛰어나지만 말주변은 별로 없는 탓에 말을 좀 버벅거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잠자코 듣고 있습니다. 잠깐 '음'같은 작은 감탄사를 내뱉을 뿐입니다.

이아무개: ... 대충 이런 내용인데 어때?

그러나 친구는 아무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계속 뭔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아무개씨는 순간 환희를 느낍니다. 대답이 없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거든요. 어쩐지 오늘 밤은 술이 잘 들어갈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단계별 개요' 모두 작성하고 완벽한 스토리라인을 구축했다면 이제 평가받을 시간입니다. 이아무개씨는 자신의 스토리를 10분으로 요약했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노력을 엑기스로 담아냈죠. 일반적으로 영화의 런닝타임은 120분정도 입니다. 10분짜리로도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120분동안 감동시키는 것은 더더욱 무리입니다. 이아무개씨는 그를 잘알고 있습니다. 별 볼일 없는 스토리에 시간을 쏟아봤자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아무개씨는 친구에게 요약을 말해주면서 눈치를 살펴봅니다. 발단에 잘 넘어오는지, 주인공의 동기에 납득하는지, 클라이막스에 내가 기대했던 감정을 느끼는지, 주의가 산만해지는지 등등. 여러분들이 평가를 받을 때 얻어야하는 것은 작품이 좋고 나쁘고가 아닙니다. 내가 계획한 대로 관객들이 따라오고 있는 가를 살펴봐야합니다. 전체적인 감상은 여러분들이 의도된대로만 된다면 저절로 좋아집니다. '와! 좋다'같은 말을 듣고 싶었더거라면 부모님께 보여드리세요. 적어도 싫다는 말씀은 안하실테니까요.

이런 평가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결과는 침묵입니다. 여러분들이 여행을 가서 절경을 볼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와! 저 숲들봐 저기 오크나무들이 가득 들어찬게 정말 마음에 든다. 그리고 저 폭포봐 정말로 웅장해. 게다가 그위에는 커다란 무지개까지 있어! 폭포랑 숲 그리고 무지개까지 모여있으니 내 마음도 상쾌해지는 것 같아!'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글쎄요... 저는 그런 사람을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정말로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아무말도 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모든 집중력이 아름다움에 쏠리기 때문이죠. 그야말로 무아지경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토리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재미있는 스토리에 빠지게 되면 아무 말없이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단순한 감탄사 정도 밖에 나올수 없는 것이죠.[2]


이아무개씨는 친구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결과는 모두 침묵. 대성공이었죠.


드디어 이아무개씨는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약 9개월만의 쾌거입니다. 어디 이아무개씨가 쓰고 있는 걸 한 번 볼까요?

집안 - 새벽. 현관문이 열리고 김첨지는 조심히 집으로 들어온다. 어제가 마누라 생일이었는데 깜빡하고 회식에 갔다. 심지어는 연락도 안해서 마누라가 화났을게 분명하다. 그래도 아내를 위해 캐이크를 준비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이걸로 화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김첨지는 문을 살짝 닫고 구두를 벗는다. 그는 제발 아내가 깨지 않기를 빌며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 여편내가 뭔가 만들었나 싶어 킁킁거린다. 비린내인 것 같은 데 아내가 무슨 음식을 하다 쏟은 것 같다. 예전부터 아내는 뭘 자주 흘렸으니까. 김첨지는 케이크를 들고 안방으로 간다. 깨우는 건 미안하지만 자다가 일어나서 케이크를 보면 분명 서프라이즈일거다. 그럼 아내도 웃으며 그를 용서할지 모른다. 그는 살금살금 안방으로 간다. 그런 그가 안방을 보더니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다. 손에서 케이크가 떨어졌고 그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케이크위에 주저앉았다. 그의 아내가 피투성이가 된 채 천장에 매달려있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뇌리에 아내의 시체가 박힐 뿐이었다.


지금 이아무개씨가 쓰고 있는 것을 트리트먼트라고 합니다. 트리트먼트는 단계별 개요의 한 두 문장을 하나의 단락으로 늘리는 과정입니다. 아마 이아무개씨의 트리트먼트는 원래 이런 모습이었을 겁니다.

김첨지가 집에 돌아와 죽은 아내를 발견한다.

트리트먼트에서 작가는 절대로 대사를 쓰지 않습니다. 단,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도만 적습니다. '그가 그녀에게 나지막히 부모님 얘기를 꺼낸다.'정도로 말입니다. 대신 작가는 보조 텍스트를 적습니다. 위 트리트먼트의 보조텍스트 중 하나를 보도록 하죠.

... 미안하기도 하고 이걸로 화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 문장은 시나리오에서 표현될 수 없습니다. 등장인물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매순간마다 인물들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트리트먼트에 적습니다. 이후 트리트먼트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적을 때 이런 보조텍스트들이 도움을 줍니다. 작가들은 흔히 인물들의 생각과 심정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대사가 꼬여버리고 작품성은 떨어지게 되죠.

이 단계에서도 퇴고는 불가피합니다. 단계별 개요에서는 괜찮았지만 막상 트리트먼트로 쓰다보면 이상한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작가는 트리트먼트에서도 스토리라인을 계속 가꾸게 됩니다. 다만 전반적인 설계는 절대로 바꾸지 않습니다.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움직일 때까지 계속되는 장면 수정과 재배열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트리트먼트는 약 60쪽에서 100장 내외입니다. 혹시 10장으로 된 트리트먼트를 보셨다면 아마 단편이거나 말만 트리트먼트고 그냥 개요일 가능성이 큽니다. 참고로 트리트먼트는 거의 시나리오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저작권 등록이 가능합니다.


드디어 이아무개씨는 1달을 남겨두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합니다. 트리트먼트가 있다보니 하루에 10장을 가볍게 쓰는군요. 경의로운 속도입니다.


그러나 이아무개씨는 종종 다시 트리트먼트 파일을 꺼내 수정합니다. 아마 시나리오를 쓰다가 이상한 부분을 수정하는 거겠지요.


한 달뒤, 이아무개씨는 드디어 시나리오를 완성했습니다.

이아무개: (기지개를 피며) 좋았어! 완성이다!

이아무개씨는 완성된 시나리오를 기획사로 보냈습니다.


이틀 뒤, 영화사에서 전화가 오는군요. 이아무개씨는 마음이 설랩니다. 자신의 경험상 전화가 온다는 건 희소식일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시나리오 파트에 즐어가면 드디어 대사를 쓸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의 초보작가들이 실수 하는 부분은 대사를 먼저 쓴다는 점입니다. 대사를 먼저쓰게 되면 대사에 맞춰 스토리를 전개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정말 터무니 없는 스토리가 나옵니다. 사람은 상황에 맞게 말합니다. 모 노래와는 달리 말하는 대로 세상이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특히나 시나리오는 더더욱 말입니다.

여기서 이아무개씨는 또다시 퇴고를 하게 됩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생각해보니 먹힐줄 알았던 부분이 꽤나 이상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런경우 다시 트리트먼트 과정으로 돌아가 수정을 하게 됩니다. 정말로 끝없는 퇴고의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되는 속도는 가히 파괴적인 수준입니다. 일단 트리트먼트라는 안내서가 있고 각 인물의 생각이 적힌 보조 텍스트덕에 대사를 쉽게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보조 텍스트덕에 각 인물의 개성이 살아난 대사를 수월하게 쓸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이런 과정없이도 만들어진 시나리오가 있다고 반론을 제기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충동적으로 글을 썼음에도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몇몇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율을 따졌을 때, 충동적인 시나리오와 전략적인 시나리오, 어느 것이 더 명작반열에 올라섰을지는 자명합니다. 게다가 전자의 경우는 거의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자신의 재능을 반도 못살린 작품을 가지고 명작에 올라섰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재능일까요? 그리고 만약 그런 사람이 전략적으로 글을 써 자신의 재능을 100%살렸다면 과연 어떤 결과물이 탄생했을까요? ...상상은 여러분들께 맡기겠습니다.

태도의 문제

현실적인 문제

용어와 전략

이야기의 구성

구조

사건

장면

비트

시퀀스

이야기

시나리오 용어

플롯, 어떻게 짤까?

각주

  1. 즉흥적으로 글을 쓰기로 유명한 스티븐 킹도 이런 준비 자세는 시나리오 작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의 저서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연장통이라는 표현을 통해 작가들이 항상 글을 쓸 준비를 해놓는다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물론 스티븐 킹은 소설 작가다보니 시나리오 작가의 연장과는 매우 다르지만 말입니다...
  2.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명작에 대한 세세한 분석을 내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나리오를 접하고 있는 시점에는 분석이 나올 수 없습니다. 자신의 스토리를 들려줬을 때, 그 즉시 상대방이 자세한 평가를 내린다면 아직 부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