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 개요[편집]

설날에 한복을 입고 윷놀이를 하는 모습.현실은 그딴 거 없다

새로운 해의 첫 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추석이랑 엄청 헷갈린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명절로 여기는 날이다.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아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음식을 해 먹거나 고유한 풍습으로 서로의 건강과 운을 빌어주는 날이다.

2 한국의 설날[편집]

추석과 함께 친척들이 합법적으로 돈을 뺏어가거나 뺏기는 대한민국의 2대 명절. 정월 초하루나 구정(舊正)이라고도 하며, 음력 1월 1일, 즉 새해 첫 날이다. 양력으로는 1월 말~2월 중순에 지내게 된다. 친척들이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이웃어른들에 세배를 하기도 한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에서 떡국을 끓여 먹으며, 윷놀이, 화투, 연날리기 등 기타 겨울에 할 수 있는 전통놀이를 즐기는 풍습이 있다. 흔히 설날의 전날과 다음 날을 묶어서 3일 연휴로 지정되어 있으며, 2016년부터는 대체휴일제가 적용되었다.

2.1 이름의 어원[편집]

'설날'이란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세 가지 주장이 있다.

  • '낯설다'의 어근인 설-을 활용한 것이라는 주장.
    • 묵은 해에서 새로운 해로 넘어가는 날이므로 새해에 대한 낯섦과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 시작된다는 의미인 '서다'[1]에서 '선날'이 파생되고 '설날'로 변화했다는 주장.
    • '서다'는 '개시하다'라는 뜻이므로 '선날'은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으로 해석한다. 이후 연음화 현상에 의해 설날로 바뀌었다는 것.
  • 옛말 '섧다'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주장.
    • '섧다'는 '삼가다,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의 옛말이다.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로 바뀔 때 시간 질서가 바뀌는 것이므로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해석의 경우 설날을 표기하는 여러 한자어 중, '신일(愼日)'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이외에도 한자어로 원일(元日)[2], 원단(元旦)[3], 정조(正朝)[4], 세수(歲首)[5], 세시(歲時)[6]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양력 1월 1일인 '신정'[7]에 대비되는 의미에서 '구정(舊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국립국어원에서는 설날 쪽을 추천하고 있다.

2.2 풍습[편집]

한 해의 운수가 그 해의 첫 날인 설날과 관련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기에 한 해의 운수를 점치고 태평과 풍년을 기원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유래하여 건강 및 장수를 의미하는 음식을 먹거나 서로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풍습이 주를 이룬다. 요즘은 핵가족 위주로 간소화되면서 없어진 풍습이 많지만 그래도 최대 명절이다 보니 단오칠월칠석에 비해서는 많이 남아있는 편.

2.2.1 설빔[편집]

새해를 맞아 아침 일찍 일어나 남녀노소 모두 새로운 옷을 해 입는데 이 옷을 '설빔(歲粧)'이라 한다. 전통적으로 평상복과 달리 섣달 그믐 이전에 화려하거나 알록달록한 색동저고리 등을 마련하여 대체로 대보름까지 입고 지낸다. 요즘은 한복도 거의 안 입는 추세라,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 혹은 꼬꼬마들이 기념으로 사 입는 것 이외에는 보기 힘들어졌다. 이 문서 제일 위에 있는 사진도 설정샷

2.2.2 차례세배, 덕담[편집]

여러 음식이 올라간 차례상.

유교적 전통에 따라, 새해 아침에는 가장 먼저 조상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제사를 올린다. 집안의 모든 식구가 참여하기 때문에 먼 곳에 사는 친척들도 설날 아침에는 한 데 모여야 하기 때문에 설날 전후로 이른바 민족 대이동이 발생한다. 설날 차례상에는 일반 제삿상과 다르게 대신 떡국이 올라가기도 한다.

차례가 끝나면 항렬 순서대로 세배를 올린다. 서로 흰 봉투가 오가거나 건강이나 행복을 빌어주는 덕담이라는 이름의 죽창이 오고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원래는 집안 어른들 뿐만 아니라 동네를 돌며 이웃어른이나 친인척들도 찾아뵈고 인사를 올리는 것이 예의였으나, 1990년대 말~2000년대초 이후에는 친척들에게 간단하게 인사하고 성묘를 가거나 핵가족화,개인주의의 발달로 개인적으로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2.2.3 음식[편집]

차례상의 음식들로 음복을 하는 것 외에도 세배하러 온 손님께는 떡국과 여러 가지 음식을 내어드린다.

떡국
계란지단과 김가루가 올려진 떡국. 진한 국물로 봐서는 고기육수 같다. 맛있겠다

둥근 떡의 모양이 동전(엽전)과 비슷하다 해서 금전운을 기원하거나, 길다란 가래떡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므로 밝다고 깨끗하다는 의미와 태양처럼 둥근 흰색 가래떡을 썰어 만들었다는 해석도 있다. 물론 지방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는 다를 수 있으며 개성의 경우 조랭이 떡국을 먹기도 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굴떡국, 다슬기떡국 등 뭘 더 넣든지 간에 맛만 좋으면 그만인 모양(...) 원래 국물은 꿩고기로 육수를 내어서 만드는 것이었으나 꿩이 워낙 귀한지라 닭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꿩 대신 닭이라는 표현이 떡국의 국물에서 나온 것.

다들 알다시피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의미로, 설날 뿐만 아니라 양력 1월 1일에 해먹기도 한다. 물론 아무때나 해 먹을수도 있지만.

식혜에 묻혀 덜 유명하지만 수정과는 전통적으로 설날에 먹던 고급 음료였다.[8]

기타

이 외에도 약과곶감 등등이 있다.

2.2.4 놀이[편집]

온 가족이 모이는 즐거운 날이므로 연날리기, 윷놀이, 널뛰기 등과 기타 놀이들을 하는 풍습이 있지만 요즘 들어서는 거의 보기가 힘들다. 연날리기의 경우 그 해의 재앙이나 못된 액을 연에 모두 실어서 날려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그냥 연싸움을 즐길수도 있다. 팽이치기제기차기, 눈썰매, 투호 등등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놀이는 많다. 그 중에서도 널뛰기는 '정초에 널을 뛰지 않으면 발에 가시가 박힌다' 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설날의 대표적인 놀이였던 모양. 윷놀이 또한 가장 보편적인 놀이로서 설날에 점을 치는 용도로도 쓰였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섣달 그믐날이나 새해 첫 날에 윷을 던져 나온 패로 좋고 나쁨을 점쳐보는 놀이가 있었으며, 이를 일컬어 나희(儺戱)라 하였다고 한다. 가능한 조합에 따라 모두 64개의 괘가 나오며, 각각의 경우에 따라 처신에 주의해야할 사항이나 그 해의 운수에 대한 풀이말이 정해져 있다.[9]

2.2.5 기타 풍습[편집]

요즘 들어서는 아래와 같은 풍습이 많이 사라지고, 찾아보기도 힘들다.

복조리

정월 초하루 아침에 파는 복조리를 집에 걸어놓으면 그 복조리 안에 복이 담긴다고 한다. 일찍사면 일찍일수록 복이 더 많이 들어온다 하여 이른 새벽부터 기다리기도 했으며, 그 해에 쓸 조리는 모두 그날 사기 때문에 여러 개를 사갔다고 한다.

야광귀 쫓기
설날 밤에 야광이란 귀신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다. 신을 잃어버린 아이는 그해 운수가 불길하다고 하여 모두들 신을 감추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또한 체를 마루 벽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면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볼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날이 밝으면 도망쳐 버린다고 한다.[10]

이 외에도 설날 전날인 섣달 그믐날에는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하여 밤을 새거나, 새해를 빚없이 시작하기 위해 1년동안 받아놓았던 금전적인 빚이나 채무 등도 모두 청산하려고 헀다.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집안 곳곳에 촛불을 켜놓기도 하고, 여자들은 1년동안 빗질할 때 빠진 머리를 모아 설날 저녁에 태웠다고 한다.

2.3 역사[편집]

설날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은 삼국시대 때부터 존재한다. 삼국사기의 「제사」편에서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다거나 시조 동명웡 사당에 배알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제사를 설날의 풍습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신라에서도 정월 2일과 정월 5일에 성대하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유사에는 비처왕 시절 설날을 쇠었다는 것이 나와있다.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이미 설과 단오, 추석 등이 명절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으며 구한말까지 설날은 음력 1월 1일으로 유지되었다.

1895년 을미개혁이 이뤄지면서 태양력이 도입되고 이후 양력 1월 1일이 설날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음력으로 풍습을 지내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양력설에 거부감을 느끼고 음력설을 지키려 했다. 한일합방 이후 일본은 조선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양력설을 강요하고 음력설날에는 흰 옷을 입거나 떡을 돌리는 등의 설 풍습을 금지하였다. 이에 큰 반발을 느낀 서민들은 양력설을 '왜놈 설'이라 부르기도 하면서 음력설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양력설을 쇤다는 것은 거의 매국행위와 가깝게 취급했던 듯.

하지만 광복 이후에도 이승만박정희 정부는 음력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1949년 대통령령으로 양력설만 공휴일로 인정하는가 하면 박정희 정부 때에는 음력설날을 공휴일로도 지정하지 않고 학교도 쉬지 못하도록 했다. 전두환이 집권하던 1985년에서야 음력설은 다시 공휴일로 돌아오게 되었고, 1989년에는 전후 1일까지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2.4 관련 창작물[편집]

다들 잘아는 "까치 까치 설날은~"으로 시작하는, 설날이 제목인 동요가 있다. 무려 1924년에 작곡된 노래다(...)


2.5 연도별 설날[편집]

3 북한의 설날[편집]

북한의 설날은 1953년 휴전 이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설날을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다가 1989년에설날을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음력설 연휴에서 북한의 경우 음력 1월 1일에서 3일까지 쉽니다.

4 외국의 설날[편집]

해외에서도 새해를 맞는 설날을 명절로 삼고 있다. 일본과 일부 서양권 국가들에서는 양력 1월 1일을 기념하며, 중국, 타이완싱가포르이슬람권에서는 각 나라의 음력[11]을 기준으로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4.1 중국의 설날[편집]

춘절이라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한국과 동일하지만, 대륙적 스케일 때문에 연휴가 일주일 이상으로 긴 편이다. 특히 이동에만 2~3일 이상 쓰는 사람들도 간혹 있어서 사람의 상황에 따라서는 일주일로도 부족한 상황에 직면하는 듯. 또 일부는 부모님과 함께 해외로 연휴를 떠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때쯤 뉴스에서 중국 춘절이 왔다니 뭐라니 하면서 시끄러운 것을 볼 수 있다.

음식은 지역적 특색에 따라 준비하는 것이 다르다. 한참 과거에서부터 풍습을 유지해왔으니 그 지역의 특산물로 요리를 해 먹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중국 역시 음력으로 계산하여 1월 1일이 되는 그 날을 춘절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음력 1월 1일을 설날이라고 부르듯이.

4.2 일본의 설날[편집]

4.3 이슬람권의 설날[편집]

5 관련 문서[편집]

6 각주

  1. 장이 서다와 같은 용법
  2. 元(첫째) 日(날)
  3. 元(첫째) 旦(아침)
  4. 正(정월) 朝(초하루)
  5. 歲(새해) 首(첫째, 머리)
  6. 歲(새) 時(시대)
  7. 신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본의 화력(和曆)에 의한 것. 위키백과:양력설 문서로.
  8. 옛날에는 재료가 되는 계피와 후추, 설탕 등이 희귀했기 때문.
  9. 이 문단은 위키백과:윷놀이#윷점에서 분기해 온 문단입니다.
  10. 이 문단은 위키백과:한국의 설날#복의 기원과 액막이에서 분기해 온 문단입니다.
  11. 중화권은 우리나라와 같은 음력, 이슬람권은 이슬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