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owl of rice.jpg

로 만드는 음식을 가리킨다. 쌀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는데(꽁보리밥 등) 보통 쌀의 대체재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밥이라고 한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현대 한국에서는 압력밥솥에, 옛날 한반도에선 가마솥 등에서 만들어왔다. 근본적으로 그저 삶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뚝배기나 일반 냄비, 솥, 압력솥으로도 충분히 지을 수 있다.

한국어에서는 관용적인 표현으로서 식사(食事)를 가리키는 단어로 자주 쓰인다. 또한 식사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안부를 묻는 인사 등에도 자주 차용되어 쓰였다. 대표적인 예로 "밥 먹었어?"라는 질문이 정말로 '밥'을 먹었는가, 어떤 '밥'을 먹었는가 라던가 정말로 '식사'를 하고 왔는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고, 단순한 인삿말이기도 하다.

주식[편집 | 원본 편집]

사람은 탄수화물에서 대부분의 영양소를 공급 받는 만큼 "한국인은 밥심(힘)이다"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과거 농사를 짓던 어른들은 상당히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는데, 밥 먹는 양도 그렇거니와 그 영양분을 모두 힘쓰는 일에 투자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 도시인들은 세계의 문화가 들어서게 되면서 주식이 굳이 밥이 아닌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기본으로는 밥을 먹지만, 현대의 빠듯하고 빠른 행동력이 필요한 생활에서 밥 한끼를 제대로 챙겨 먹는 것은 어려움이 요할 때가 있다. 또는 환경적으로 밥을 기본으로 한 식사가 불가능 한 환경에서는 밥을 먹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때문에 과거와 다르게 매 끼 식사를 밥을 먹기 보다는 빵이나 면 등 밥을 대체할 음식을 먹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어르신들이나 소화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의 경우 밥을 추천 받는데, 소화기관이 쌀을 잘 소화하게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쌀을 과거에서부터 계속 소비하다보니 소화기관이 쌀을 잘 소화하도록 발달되어진 것. 그래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다르게 밥을 기본으로 한 식문화가 발달하고 유지되어 왔다.

기본 요령[편집 | 원본 편집]

  • 묵은 쌀은 좀 불리면 햅쌀과 다름 없는 맛이 난다.
  • 밥솥 눈금과 계량컵이 있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물과 쌀을 1:1로 맞추거나, 손을 펴서 쌀 표면을 눌러봤을 때 손가락만 담기는 정도면 된다. 취향에 따라 물을 적게 잡으면 고두밥, 많이 잡으면 진밥이 된다.
  • 밥통에 바로 쌀과 물을 넣는 것이 아니라 쌀을 어느 정도 씻겨서 밥을 지어야 한다. 처음에는 가볍에 휘저은 다음 물을 버리는 것을 권한다. 쌀에 농약이나 먼지 등이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 취향에 따라 잡곡을 첨가하여 잡곡밥을 하거나, 조미료(참기름, 소금 등)을 첨가하여 응용 요리에 필요한 조미밥을 만들면 된다.
  • 마지막으로 물을 조절하면 되는데 물을 표준에 맞추거나 약간 적게하면 고들밥이 물을 표준보다 조금 더 넣으면 진밥이 된다. 단, 물을 너무 많이 넣으면 밥이 떡진 것처럼 되어버린다. 밥이 마치 떡과 밥 사이의 무언가로 되어버리기에 쌀과 물의 양이 1대 1.3 이하로 되도록 조절해줘야 한다.[1]

밥의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선사시대[편집 | 원본 편집]

탄화미.jpg

한민족은 아주 옛날부터 밥을 먹고 살았다. 옆의 사진은 부여송국리유적에서 발견된 탄화미인데, 탄화미란 유적 출토 곡물의 하나로 불에 타거나 지층 안에서 자연 탄화되어 남아 있는 쌀을 말한다. 저 탄화미의 시간 연대는 약 기원전 6세기로 추측되며 한민족은 2600년전부터 이미 쌀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2]

삼국 시대[편집 | 원본 편집]

삼국시대 때부터 한국인은 밥을 무서울 정도로 많이 먹기로 유명했는데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김춘추의) 식사는 하루에 쌀 세 말(斗)과 수꿩 아홉 마리였는데, 경신년(660)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로는 점심을 먹지 않고 아침과 저녁만 먹었다. 그러나 이것들을 계산해보면 하루에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였다.[3]
삼국유사

고도비만으로 안 죽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조선시대[편집 | 원본 편집]

조선시대에서도 다식 문화는 여전했는데,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식에 힘쓰는 것은 천하에서 으뜸이다. 최근 표류되어 류큐에 간 자가 있었는데, 류큐 왕국의 백성들이 너희의 풍속은 항상 그 주발에 쇠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실컷 먹으니 어찌 가난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웃었다고 한다. 대개 그들은 전에 이미 우리나라에 표류되어 와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다.[4]
— 이익,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미 조선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문제가 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다식과 관련된 일화가 있었는데, 한양을 점령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량을 조선군의 식사량으로 계산하니 1달치 정도였다. 당연히 조정에서는 한 달만 버티면 일본군들이 물러가리라 생각했는데 고니시 부대의 식사량을 본 밀정이 일본군들의 식사량이 조선군의 1/3 정도임을 보고하자, 조정에서는 일본군들이 승리를 위해 일부러 식사량을 줄인다고 생각했다고……. 근데 이 얘기가 더 쩌는 것이, 당시 명나라군의 군량은 조선군은 2/3이었다고 한다(!) 대식가로 유명한 그 중국이!

1890년대 프랑스에서 유통되던 한국 관련 사진 엽서, 사진 아래에 'COREE, Bon appetit!'라고 적혀 있다. 한국어로 옮기면 '한국, 많이 드십시오!'이다.[5][6]

조선 말기의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이 밥을 많이 먹는 것을 무척 신기하게 생각했고, 한국인은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는다는 식으로 기록을 많이 해놓았다. 당장 저 섬네일에도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한국인이 밥과 국을 들고 있는데 이 그릇의 크기가 가히 밥솥급이다.

일상 용어[편집 | 원본 편집]

  • 인사 : 밥을 먹었느냐, 챙겼느냐 등으로 물어본다.
  • 작별인사 : 나중에 밥 사주겠다, 나중에 밥 먹자는 식으로 "시간 되면 만나자"는 작별인사때도 사용한다.
  • 체중 : 마른 사람에게는 "밥 좀 먹어라 ~", 뚱뚱한 사람에게는 "밥 좀 그만 먹어라 ~"는 식으로 사용한다.
  • 비하 : "밥맛이다", "밥 맛 떨어진다"라는 식으로 "재수없다"는 의미와 비슷하다.
  • 비교 :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라는 말이 있다. A나 B나 특징이 똑같을 때 말한다. 주로 상대방을 깎아내릴때 쓴다.
  • 과거의 힘든 상황 : "쌀밥에 고깃국" 이라는 옛 말이 있다. 1960,70년대에는 쌀 자체가 귀하여 보리밥을 지어 먹었고, 고기를 구매할 여력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말 뜻은 보릿고개와 비슷하다. 현재는 좀처럼 쓰이진 않는다.
  • 처량한 신세 : "찬밥 신세"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찬밥처럼 별 신경도 못 받고 치이는 신세라는 뜻.
  • 실직 : "밥줄이 끊어졌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 폭언 : "밥 숟가락 놓고싶냐?"라는 식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폭언 형태가 있다.
  • 대립 : "밥그릇을 놓고 싸움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어느 지역 구의 표심 싸움을 할 때에 "A 지역 구를 두고 세 의원이 밥그릇 싸움 중이다"라고 말한다.

요리[편집 | 원본 편집]

일반적으로 백미를 재료와 함께 볶아서 만드는 볶음밥부터 푹 끓인 국에 밥을 넣고 먹는 국밥류까지 여러 요리의 종류가 있다.

각주

  1. 밥통마다 사양이 다르므로 설명서를 참고하거나 밥통 내의 지시선을 확인해 짓도록 하자.
  2. http://www.rice-museum.com/front/prod/all/allView.do?pageIndex=1&sflag=AL&skey=&skeyword=&sflag1=&board_seq=5
  3. http://www.instiz.net/pt/236709
  4. 이익(李瀷),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7권, 한국고전종합DB
  5. 주영하, 식탁 위의 한국사(http://aladin.kr/p/DIVy), 휴머니스트, 2013, p.61
  6. 컬러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