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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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토미의 로고
잉크토미(Inktomi)는 미국의 웹 검색 결과 제공 및 인터넷 관련 솔루션 제공 업체이다.

역사

초창기

1994년에 UC 버클리에서 시작한 슈퍼컴퓨터 개선 프로젝트 NOW[1]가 잉크토미의 시작에 큰 영향을 줬다. 당시 슈퍼컴퓨터는 여러 개의 컴퓨터를 병렬로 연결해서 성능을 내기보다는 고성능을 낼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된 한 개의 컴퓨터를 사용했다. 이 방식은 이후 급격히 증가할 트래픽을 처리하는데 있어 거대한 비용 문제[2] 및 비효율을 유발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NOW 프로젝트는 폭증하는 트래픽과 기술의 발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확장하기 쉬운 슈퍼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병렬 컴퓨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였다. 당시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연구를[3] 진행하고 있었던 UC 버클리의 교수 에릭 브루어와 대학원생들이 이 프로젝트의 영향을 받아 병렬 컴퓨팅을 이용한 슈퍼컴퓨터를 완성했다. 이 슈퍼컴퓨터에 돌릴 프로그램으로 대학원생의 프로젝트에 기반을 둔 검색엔진[4]을 선택했고, 1995년 9월 26일에 결과물을 공개했다. 이 검색엔진이 잉크토미의 기반이 되었다.[4][5]

초기에는 정부의 지원도 받았지만, 1996년 2월에 상업화됐다. 상업화를 막 했던 당시 130만 개 이상의 웹문서[5]를 보유한, 제법 큰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한 검색 엔진 업체였고, 속도도 (당시 기준으로) 인상적이었다. 잉크토미는 인포시크, 라이코스, 익사이트 등 당시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다른 검색엔진이 선택한, '자체적인 포털 사이트를 연 후, 사업 분야 확장을 통해 증가하는 페이지뷰를 이용해 수익을 얻는 전략' 대신 '다른 포털 사이트에 자신의 검색 결과를 판매하여 수익을 얻는 전략'을 선택하여 포털 사이트들과의 갈등을 피하는 방향으로 운영된다. 잉크토미는 1996년 5월 당시의 인기 검색 특화 포털 사이트 중 하나인 핫봇(HotBot)에 검색 결과를 제공하면서 본격적으로 검색 시장에 뛰어든다.

전성기

잉크토미의 데이터베이스의 크기는 1998년 1억 1천만 개로 늘어나는 등 [6] 계속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유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검색 결과를 제공받는 기업도 늘어가 1999년 잉크토미의 미국 검색 시장 점유율은 40%에 달하고 2000년에는 전 세계 인터넷 검색 엔진의 60%를 차지하는 등 1998년~2000년 사이에는 전 세계 검색 시장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잉크토미의 전성기 동안에 잉크토미가 검색 결과를 제공한 포털 사이트 중 대표적인 곳은 다음과 같다.[6]


이렇게 검색엔진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90년대 후반부터는 서버 트래픽 솔루션 및 캐시 서버(1997년), 쇼핑 검색(1998년), 기업용 검색 솔루션[15](2000년), 인터넷 방송 소프트웨어(2000년), CDN(2000년) 등의 분야에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문어발 식으로 확장하여 인터넷 인프라 유지에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11]


확장한 사업 중 서버 트래픽 솔루션 분야와 캐시 서버 분야는 AOL, MSN 등의 대형 인터넷 포털과 통신회사에 네트워크 캐시 상품을 납품하여 1998년에 전 세계 네트워크 캐시 상품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2000년에는 52%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등 검색결과 제공과 더불어 잉크토미의 주력 분야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2000년에는 네트워크 캐시 분야에서 얻은 수익이 포털 사이트에 검색결과를 납품하여 얻은 수익의 두 배가 넘는 등[12] 네트워크 캐시 분야는 잉크토미의 주요 수익원이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은 잉크토미가 2000년 2분기 당시 흑자를 내는 몇 안 되는 인터넷 기업 중 하나가 되는 바탕으로 작용했다.

몰락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1등의 자리에 있다보니 검색엔진 분야에 신경을 비교적 덜 쓰게 되었다. 당시 인터넷 포털 업계에 퍼진 검색을 천대하는 분위기[16], 그리고 그에 따른 검색 결과 제공 분야의 수익성 악화도 잉크토미가 검색보다는 다른 분야에 투자를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물론 이 때에도 잉크토미의 목표 중 하나가 입력한 검색어와 관련된 검색 결과를 도출하는, 정확한 검색엔진을 만드는 것이었던 만큼, 구글의 성장세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잉크토미는 구글의 PageRank에 대한 나름의 대응책[17]을 세우고 자사의 검색 결과를 구글의 검색 결과와 대조해보는 등 지속적으로 구글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13] 결과적으로 검색 결과의 품질에서는 구글에 밀리지 않았다.[14]


하지만 잉크토미의 검색 결과는 페이지의 미리보기를 제공하지 않아서 구글보다 사용하기 불편했다. 또, 자사의 검색결과를 다른 사이트에 제공할 때 검색 결과를 보내는데 꽤 오래 걸려 쾌적한 사용감을 제공하지 못했다. 당시 잉크토미의 연구진이 이 문제를 발견하고 구글처럼 미리보기를 도입하고 직접 검색 사이트를 개설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고객과의 마찰을 피하고 싶었던 경영진은 이 의견을 무시했다. 결국 잉크토미는 검색엔진 분야에서 구글에 추월당하기 시작하는데, 이 때쯤 닷컴버블이 터져 큰 타격을 입었다. 거기에 닷컴버블 직후 그동안 잉크토미에서 검색 결과를 사갔던 주요 고객들이 이탈하거나[18] 부도가 나 추가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하지만 잉크토미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분야는 버블 이전에는 잉크토미에게 가장 많은 수익[19]을 안겨주던 분야였던 서버 트래픽 솔루션 및 캐시 서버 사업 분야이다. 닷컴 버블로 인해 인터넷 트래픽도 확 줄었고, 이 때문에 한창 좋았을 때에 인프라에 공격적으로 투자하여 돈을 퍼부은 유선 통신회사들은 갑자기 자금난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에 회계 부정 사태가 일어났는데, 논란에 휩싸인 기업 중에는 큰 규모의 통신회사인 월드컴도 있어서(...) 월드컴과 연관된 통신회사들 역시 이 때에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된다. 잉크토미의 주요 수익원인 솔루션 및 캐시 서버 제공 분야의 고객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잉크토미도 큰 피해를 입게 된다.


확장한 사업도 영 시원찮은 상황이었다. 특히 쇼핑 검색 분야는 2년 정도 운영하다 2001년에 팔아버렸는데, 운영하는 2년 동안 적자만 엄청 났다(...). 이후 2003년에 야후!에 인수될 때까지 직원들의 90%를 정리해고 하면서 웹 검색 결과 제공 이외의 사업에서 전부 다 손을 떼고 다시 검색에만 집중하기 시작했지만 추락 이전의 기세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야후!에 인수된 후 잉크토미는 알타비스타, 올더웹과 함께 야후! 산하의 자회사가 되어 검색엔진 기술 R&D 센터로써 계속 존재했고, 그래도 2000년대 초반 및 중반까지는 구글과 더불어 웹 검색 시장을 양분하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MSN이 자체적인 검색 엔진을 2005년에 공개하면서[20] 야후!와의 검색 결과 제휴 관계를 끊어 잉크토미의 검색 업체로써의 입지는 좁아지게 되었고, 2009년에 야후!가 자체적 검색 엔진을 포기하며 해당 분야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기고 bing과 제휴하면서 잉크토미의 검색엔진은 사실상 bing에 흡수된 상태이다.

잉크토미코리아

1999년에 잉크토미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진출했다. [15] 2000년에 천리안에 검색 결과를 제공하고[16] 2001년에는 다음에 검색 결과를 제공하기도 했지만[17], 한국에서는 검색 결과 제공 업체보다는 서버 트래픽 솔루션 제공 업체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다른 솔루션 제공 업체들과 공동으로 협업을 하고, 한국의 네트워크 캐시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선방했지만, 닷컴버블 이후 잉크토미 본사가 정리해고를 하는 과정에서 2002년에 동종 업계의 기업인 펜타시스템에 인수된다.[18]

인터넷에 미친 영향

위에 열거된 고객의 목록에서 알 수 있듯, 잉크토미는 야후!, Hotbot, AOL, MSN 등 90년대 후반의 웬만한 주요 인터넷 검색엔진 및 포털 사이트의 검색 결과의 대부분을 제공했던, 세계 최강의 검색 업체 중 하나였다. 이렇게 널리 쓰이다 보니 잉크토미는 한 때 검색 엔진 최적화[21]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제 1의 연구대상이자 목표대상이기도 했다. 기업 자체는 사실상 소멸했지만, 잉크토미에서 사용했던 기술은 지금도 많은 검색 엔진에 사용되고 있다.[19]

서버 트래픽 처리 관련 분야에 있어서도 병렬 컴퓨팅을 이용해서 확장이 쉬운 서버 컴퓨터의 사용에 앞장서고 네트워크 캐시를 이용해서 트래픽 부담을 감소시키는 방식을 퍼뜨리는데 큰 역할을 하는 등, 잉크토미는 오늘날 트래픽의 홍수 속에서도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통신 환경을 형성하는데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인터넷에 미친 영향은 크지만 잉크토미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사실상 전무하다. 고객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자체 사이트를 개설하지 않는 등 직접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진 것이 그 원인이다.

여담

  • 잉크토미의 첫 고객인 '핫봇'을 소유한 회사인 와이어드 디지털은 '와이어드(Wired)' 잡지도 소유한 기업이었다. 이 잡지는 기술 분야의 영향력 있는 잡지 중 하나였고, 핫봇과 잉크토미는 적어도 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홍보 때문에 예상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트래픽을 맞았고, 그 결과 잉크토미의 서버가 견디지를 못해 핫봇은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잉크토미는 당시의 다른 검색엔진과는 다르게 병렬 컴퓨팅을 활용해서 용이한 확장이 가능한 컴퓨터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고, 그 덕에 워크스테이션을 급히 공수해서 연결하는 방식으로 서버를 빠르게 확장하여 문제를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 초기에는 대학교 건물 내에 서버가 있었는데, 서버실 내부에 스프링쿨러가 있는 등(...) 삐끗하면 서버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컴퓨터 보관에 영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고 한다. 이 문제는 소방법을 위반하고(!) 컴퓨터 위에 플라스틱 덮개를 씌우는 방식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 회사 내에서 물총 싸움(...)을 벌이는 때가 있는 등 상당히 자유로운 사내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 마이크로소프트의 포털인 MSN이랑 계약 이야기가 한참 오갈 즈음에, 빌 게이츠에 대한 검색 결과 중 빌 게이츠를 악마로 묘사하는 내용이 담긴 웹 문서를 검색 결과 상위권에서 임시적으로 제거한 적이 있다(...). 이 업체도 마이크로소프트 앞에서는 을에 불과했다.
  • 미국 정부는 2000년에 정부의 여러 가지 서비스와 기록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포털 사이트인 'Firstgov'[22]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잉크토미가 상업화되기 전에 지원을 해준 정부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싶다고 밝히며 자사의 검색엔진을 2000년 8월에 기부하여[23] 사이트의 개장을 앞당겼다. 참고로 초기에 잉크토미를 지원한 정부기관은 외계인 고문소로 잘 알려진 DARPA의 전신인 ARPA다(...).[20]

참고한 자료

[21] [22] [23] [24]

각주

  1. 'Network of Workstations'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약자이다.
  2. 일반적인 PC를 한참 뛰어넘는 고성능 컴퓨터를 설계하고 제조하는데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 그렇게 큰 비용을 들여 개발을 해도 몇 년만 지나면 기술의 발달로 첨단 컴퓨터가 시원찮은 컴퓨터가 되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3. NOW와는 다른 프로젝트였다.
  4. 웹의 크기가 크게 늘어나면 강력한 컴퓨터가 가장 먼저 필요할 업종이라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다.
  5. 이 때가 1996년임을 생각하자. 월드 와이드 웹이라 불리는, 우리가 아는 인터넷은 아직 개발된지 3, 4년밖에 되지 않았으며, 가정집에 인터넷은 고사하고 컴퓨터가 없는 경우가 있는 경우보다 훨씬 많았던 시절이다.
  6. 검색엔진 옆의 괄호 안의 숫자는 검색 결과를 제공한 연도이다.
  7. 자체적인 검색결과를 확보하기 위한 인수는 2003년에 했으나 구글과의 계약기간이 남아서 인수 이후에도 약 1년간은 계속 구글로부터 검색결과를 제공받았다.
  8. AOL이 1998년에 넷스케이프를 인수하여 하나로 묶어 서술하였다.[1]
  9. AOL과 그 계열사들의 경우 익사이트의 검색엔진을 주로 사용했으나, 1999년부터는 익사이트 이외에도 잉크토미, 구글, 오픈 디렉토리 프로젝트 등 다른 검색엔진의 검색결과도 도입하기 시작하여 AOL 내의 검색결과 중 익사이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다.[2]
  10. 당시 알타비스타의 모회사인 컴팩,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사이의 거래 때문에 1999년에 잠시 알타비스타로 갈아탄 적이 있지만, 세 달만에 다시 잉크토미의 고객이 된다.[3]
  11. http://www.clickz.com/clickz/news/1716907/gotocom-adds-inktomi-search-functions
  12. http://www.prnewswire.com/news-releases/looksmart-and-inktomi-renew-multi-year-agreement-to-distribute-looklistings-71207937.html
  13. http://www.pcmag.com/article2/0,2817,1411815,00.asp
  14. 일본의 NTT에서 운영하는 포털사이트 및 검색엔진이다.
  15. 당시의 주요 검색엔진 및 포털 사이트 중 하나였던 인포시크에서 해당 분야를 사들여 운영을 시작했다.
  16. 인터넷 상의 문서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줘 90년대 중반에 환대를 받았지만, 수익 문제가 중요해진 90년대 말에 검색 기능은 유지는 힘들면서 수익도 별로 안 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17. 문서 색인 알고리즘에 문서로 이어지는 링크의 anchor text를 평가 기준에 포함시키는 등의 독자적인 링크 분석 알고리즘을 추가하였고 수집한 문서를 분석한 후 이를 검색 키워드와 대조하여, 해당 검색어를 입력한 사람이 이 문서를 읽는다면 내릴 평가를 예측하는 알고리즘도 만들었다.
  18. 이 즈음(2000년대 초반)에 이탈한 주요 고객으로는 야후!, AOL(넷스케이프) 등이 있다. 두 업체 모두 새로운 검색 결과 제공 업체로 구글을 선택했고, 상당 수준의 인터넷 방문자 수를 확보하고 있기도 해서 상승세를 이어가던 구글에게 추가적인 추진력을 줌과 동시에 잉크토미에게 타격을 줬다.
  19. 가장 많을 때는 수익 비율의 70%까지 차지했다. 나머지는 검색 결과 제공 분야에서 얻었다.
  20. 이것이 2015년 현재에는 bing으로 잘 알려진 검색엔진의 기반이다.
  21. 검색엔진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직업으로, 웹페이지가 검색 순위 상위권에 포함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도 한다.
  22. 2015년 12월 현재에는 www.usa.gov로 이름이 바뀌었다.
  23. 이 포털사이트에 사용하는 조건으로만 기부한거지, 미국 정부에게 검색엔진의 권리 자체를 넘긴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