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식스급 항공모함

두루치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1월 6일 (일) 20:29 판
에식스급 항공모함
Essex class aircraft carrier
파일:800px-USS Essex (CV-9) underway in March 1951.jpg
네임쉽 CV-9 에식스
선박 정보
종류 항공모함
건조 24척
운영 미국
스페인(공여)
취역 24척
퇴역 전량 퇴역(4척 보존)
제원
엔진 웨스팅하우스 증기터빈 4기
추진력 15만 마력
속도 32.7노트
무장 127미리 38구경 양용포×8
40미리 보포스 대공포,20미리 오리콘 대공포
항공기 90~126대
전장 (숏타입) 265m / (롱타입) 270m
선폭 45m
흘수 8.4m
배수량 27100톤 (27500톤)
36830톤 (36950톤) (만재)

에식스급 항공모함(Essex class aircraft carrier)은 제 2차 세계대전기 미국의 정규 항공모함이다.

개요

태평양 전선에서 전쟁 중반부터 활약하기 시작했고 렉싱턴급 항공모함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후계함으로, 엔터프라이즈 혼자 외롭게 지키던 전장을 넘겨받아 전세의 전환을 가져온 항공모함이다.

총 32척이 예정되었고 실재 23척이 건조되어, 당시 어떤 나라도 달성하지 못한 규모의 정규 항모 전력을 갖추었고 일본제국 해군을 질적인 면과 양적인 면 모두에서 압도하며 일제를 패망시키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은 미국의 반격과 공세의 중심으로 전쟁 기간 동안 단 1척의 손실도 입지 않았으며 전후 현대전에 해당하는 냉전 시대 초반까지 개장하여 6.25 전쟁과 대만 사태에 투입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냉전기 제트기 시대의 도래로 대형화되는 함재기를 수용하기 힘들어지자 경사갑판 개조 같은 현대화 작업을 거쳐 운용되었고 이후 2선급에서 운용되다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의 취역으로 임무를 인계하고 마침내 전량 퇴역한다.

한편, 6.25 전쟁에도 미 해군 함대 항공모함으로 다수 참전한 함급이며 중국과 대만 간 금문도 분쟁 당시에도 대만해협에 전개되기도 하는 등, 우리나라와 동북아시아와도 인연이 깊은 항공모함이다.

건조 배경

때는 제2차 세계 대전 직전, 해군의 건함 경쟁을 억제하여 지출을 줄이려던 영국과 이에 호응한 미국에 의해서 강대국간의 해군 군축조약이 맺어졌다. 총 두 차례 맺어졌으며 워싱턴 해군조약 체결로 제한선이 마련되었다. 각 열강들은 이들 제한선 속에서 해군전력의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였으며 미국 역시 이 과정에서 점차 쓸모가 없어지던 순양전함의 존재가치를 파악하고 건조중이던 렉싱턴급 순양전함 렉싱턴과 새러토가를 렉싱턴급 항공모항으로 개장하였고, 여기에 2만 톤급 정규 항공모함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두 척(요크타운, 엔터프라이즈)을 건조하고 남은 1만 5천 톤으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축소 염가형으로 와스프급 항공모함 한척을 건조한다.

그러나 일본이 조약을 탈퇴함에 따라 건조 톤수에 제한이 사라지면서 미국은 항공모함의 수를 증강시키려 노력하였다. 기본적으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설계가 준수하였기 때문에 운영시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조금 개량한 호넷을 한척 더 건조하였고 이후 배수량을 증가시켜 성능을 향상시킨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이 함급을 에식스급이라고 하며 에식스급 자체는 전쟁 전에 계획되어 설계가 완료되었고 태평양 전쟁 동안 건조가 진행중이었다. 미국이 기를 쓰며 전황을 유지시키려 했던 것도 에식스급의 건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후 1960년대 까지 냉전 초반 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으로 계속 운용되면서 현대화 개량을 받게 되어 경사갑판을 달게 되고 증기식 케터펄트를 장착하는 등의 개량을 거치게 되었다.

설계 및 성능

항공기 운용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태평양 전쟁 초반의 전쟁경험을 통하여 이전 함급 요크타운급 항공모함과 항공 편제에서 차이를 보인다. 일단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에 비해 함재기 탑재능력이 늘어 90대 정도의 항공기 운용능력을 갖춘 요크타운급보다 많은 120대 이상까지 운용가능했다. 비행갑판의 모습도 보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현측 승강기를 장착해 운용하였으며 이런 점은 후계함인 미드웨이급 항공모함에도 계승된다. 대전기 건조된 항모이므로 에식스급도 직선형의 비행갑판을 사용했지만 전후 경사갑판으로 개장되며 함재기 이착륙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케터펄트는 여전히 유압식에 함수에 두개가 장착되어 있었다. 에식스급의 함재기 편재는 이전 경험들을 바탕으로 새로 편제되었고 전투기와 폭격기의 비율이 늘어난 편이다. 보통 36/18/36의 비율로 구성되며 이는 전투기 36대, 뇌격기 18대, 급강하 폭격기 36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1943년에는 F6F 헬캣의 배치도 함께 진행되면서 전투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었고 후기에는 대전기 최강의 항재전투기인 F4U 콜세어도 운용하며 후진적인 일본군의 항공 전력을 크게 압도하였다.

전후 경사갑판 개장 모습

F-80 슈팅스타를 종전 직전에 탑재하기도 했고 전후 경사갑판으로 개량된 후 제트전투기와 프롭전투기를 혼용 운용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때는 상당수의 제트전투기를 이함시키기도 했으나 콜세어 같은 대전기 항공기들 역시 갑판 위에서 함께 현역 운용되었다. 특히 콜세어는 한국전쟁에서 지상공격기로 악명을 떨치며 인민군과 중국군에게 공포의 대상 중 하나였다. 대전기 이후 1950년대엔 F9F 쿠거를 필두로 한 제트기를 한국전쟁에서 대량 운용, 1960년대에는 공격기로 A-4 스카이호크와 F-8 크루세이더도 운용되었고 F-4 팬텀의 운용은 선체 한계상 불가했다.

함체

요크타운급 항공모함과 달리 해군조약의 제한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능들이 추가된 에식스급은 당시 존재했던 태평양의 어떠한 항공모함보다도 우수한 성능을 보유한 항공모함이었다. 에식스급은 대형화된 선체로 90대에서 최대 126대의 함재기 정상 운용 기록도 있으며 이는 일본이 보유했던 정규항모 아카기,카가,다이호,쇼카쿠급 모두 상회하는 전투능력으로서 성능적 우위에 있는 무기체계가 대량생산되어 나오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군함이라고 할 수 있다. 에식스급은 숏타입과 롱타입으로 나누어지며 이 롱타입은 하위 함급으로 타이콘데로가급이라 분류하기도 하는데 약 5미터 정도 차이나는 편이다. 당연하지만 숏타입 에식스급도 전장 265미터로 타 항공모함보다 큰 규모이며 이렇게 대형화된 선체는 함재기 운용능력을 크게 향상시켜 주었다.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전자장비도 당연히 발전되어 갔고 에식스급에도 이러한 전자장비를 장착함으로서 조계경보능력을 전쟁 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방공체계를 형성하였다. 에식스급은 탐색 레이더로 SG레이더를 달게 되었고 요크타운급이나 레인저급에 장착되었던 Mk.37 사격통제장비의 Mk.4 레이더가 저공 침투를 잘 탐색해내지 못하던 성능상 한계를 인식해 에식스급에는 이 사통장비에 Mk.12와 Mk.22 레이더를 장착하여 저공 침투에 대한 대응능력도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다중 탐지체계와 전자장비의 발달로 에식스급과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시계외 거리에서도 적 항공기의 침투를 조기에 탐지해 함재기를 출격시키는 등의 대응이 가능했고 보유 대공포와 레이더간의 연동능력 역시 보유하여 에식스급의 배치 이후, 일본군은 웬만한 항공기의 수로는 미군의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방공망을 뚫고 함대에 유효 타격을 주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공격 난이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였다.

함이 보유한 고정무장은 원거리 방공무기로 127mm 38구경 양용포와 이 포가 탑재된 포탑 터럿 8문이 각 4개씩 양측에 배치되었고 중거리 방공수단인 40mm 보포스 대공포는 32문에서 72문까지 조밀하게 배치되어 화망구성의 주축을 담당했다. 단거리 방공무장은 20mm 오리콘 대공포 55~76문을 배치하였다. 이런 방식의 다중 방공망은 이전 세대의 항공모함들도 마찬가지 였으나 에식스급은 화력을 강화하고 VT 근접신관이 장착된 대공포탄을 사용하며 더욱 효과적인 방공망을 형성할 수 있었다.

장갑 배치는 현측 장갑 벨트 부분이 가장 두터운 102mm STS 특수강으로 제작되어 어뢰와 흘수를 노리는 폭탄을 방어하였고 조약 때문에 방뢰기능을 사실상 포기한 거나 다름없던 요크타운급의 가장 큰 단점을 보완하였다. 또한 항공모함에 있어 중요한 메인 데크에 배치된 장갑 역시 64mm의 두께로 깔려 있어 비행갑판을 뚫고 들어오는 항공폭탄을 방어할 수 있게 된 구조였다. 비행갑판의 장갑은 장갑항모보단 얇은 37mm 정도였다.

실전

태평양 전쟁

에식스급은 태평양 전쟁 중후반대 부터 활약하기 시작한 항공모함이다. 에식급은 1943년 마리아나 제도 침공전에서 첫 실전에 투입되었다. 네임쉽인 에식스를 비롯하여 3척의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미 해군 태평양 함대 소속 항공모함 기동부대에 배속되어 길버트 제도, 미셸 제도, 부타리타리 환초에서 일본군 항공세력 소탕작전에 참가해 일본군의 저항을 조기 무력화시켰고 이후 침공전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타라와 환초 점령전에서 전개되는 미 해병대를 지원하여 요새화된 타라와 환초의 토치카와 진지를 항공지원으로 파괴하면서 타라와 환초에서 고착된 지상군을 지원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환초 때문에 전함의 포격지원이 마땅치 않아 항공모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었고 에식스급은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 냈다.

'개구리 뛰기' 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미군의 태평양 제도 진공작전이 본격적으로 일본군을 쓸어버리기 시작하는 1944년에는 이미 상당수의 에식스급이 배치되어 미 해군의 주요 항공모함 세력을 형성하였고 44년의 벌어진 대표적인 전투로 일본은 미국의 압도적인 힘 앞에 뭉개져 버린다. 그 유명한 필리핀해 해전에서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TF58 함대에 배속되어 작전에 투입되었고 네임쉽 에식스와 에식스급 항공모함 요크타운,호넷이 이들 함대의 주력 항공모함으로 배속되어 있었다. 에식스급의 대형함 격침 기록은 없지만 일본 항공세력을 소거하는데 크게 일조하였고 이는 에식스급이 치른 해전 중 가장 중요한 전과이기도 하다.

레이테만 해전에도 참가해 일본의 정규항모인 즈이카쿠를 공동격침하고 잉여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를 비롯해 일본 최후의 해상전력을 소거하는 전과를 세웠다. 그리고 이오지마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 당시 지상군에 대해 항공지원과 대만 항공전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이며 전쟁의 말미를 장식했다.

일본의 멍청한 행위 중 하나인 카미카제를 당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함정이 에식스급 벙커힐로 후미 비행갑판에 큰 구멍이 난 사진이 유명하다. 물론 겉보기만 심각해 보였을 뿐, 작전수행 능력만 일시적으로 상실했고 스스로 자력항해 하여 복귀하였다. 당연하게도 카미카제로 격침된 미 해군 정규항모는 단 한 척도 없었고 단지 신경쓰이는 귀찮은 정신나간 존재들일 뿐이었다.

냉전기

태평양 전쟁 이후에도 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으로 활동하였는데, 한국전쟁에서 11척의 에식스급 항공모함을 동원하였고 전쟁 당시 UN군 해군전력의 핵심으로 자리잡음으로서 한국전쟁에 투입된 대부분의 해군기들은 이 에식스급에서 발진하였고 북한과 중국에게 있어 항공모함에 대한 공포를 심어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인 1956년, 중국과 대만간 금문도 무력분쟁시엔 확전을 막기 위해 미 해군의 에식스급이 대만 해엽으로 파견되어 무력시위를 하기도 했고 이때의 경험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은연중에 중국이 항모 보유에 집착하게 되었다.

스페인에 공여되어 스페인의 정규 항모로서도 활동하곤 했지만 1960년 전후로 대형 함재기 운용 불가와 같은 태생적인그 한계에 도달함에 따라 퇴역하게 되었고 지금은 4척이 보존처리 되어있다.

동급 함정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