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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수학위원회(Commission on Mathematics)는 보고서를 내어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교육과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ref>Commission on Mathematics (1959). [http://babel.hathitrust.org/cgi/pt?id=mdp.39015024219001;view=1up;seq=3 Program for college preparatory mathematics]</ref> | 1959년 수학위원회(Commission on Mathematics)는 보고서를 내어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교육과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ref>Commission on Mathematics (1959). [http://babel.hathitrust.org/cgi/pt?id=mdp.39015024219001;view=1up;seq=3 Program for college preparatory mathematics]</ref> | ||
{{인용문2|위원회의 주요 제안은 다음 아홉 가지 주장으로 윤곽을 드러낸다. | {{인용문2|위원회의 주요 제안은 다음 아홉 가지 주장으로 윤곽을 드러낸다. | ||
# | # 개념과 문제해결능력 양쪽으로, [[미적분학]]과 [[해석기하학]]의 단계에 이르는 대학수학에 대한 확고한 준비 | ||
# 대수와 기하에서 연역추론의 본질과 역할 이해하기 | # 대수와 기하에서 연역추론의 본질과 역할 이해하기 | ||
# 수학적 구조("패턴")의 참된 인식—예를 들어, [[자연수]], [[유리수]], [[실수]], [[복소수]]의 성질 | # 수학적 구조("패턴")의 참된 인식—예를 들어, [[자연수]], [[유리수]], [[실수]], [[복소수]]의 성질 | ||
# 일관된 개념([[집합]], [[변수]], [[함수]], [[관계]])를 신중하게 사용하기 | # 일관된 개념([[집합]], [[변수]], [[함수]], [[관계]])를 신중하게 사용하기 | ||
# 부등식을 방정식과 함께 다루기 | # 부등식을 방정식과 함께 다루기 | ||
# | # 좌표·평면기하와, 입체기하 및 공간지각의 기초의 결합 | ||
# 11학년에서 삼각법 도입—[[좌표]], [[벡터]], [[복소수]]를 중심으로 | # 11학년에서 삼각법 도입—[[좌표]], [[벡터]], [[복소수]]를 중심으로 | ||
# 12학년에서 초등"함수" 강조 (다항함수, 지수함수, 삼각함수) | # 12학년에서 초등"함수" 강조 ([[다항함수]], [[지수함수]], [[삼각함수]]) | ||
# 12학년을 위한 추가적인 대안 단위 추천: 통계 활용이 있는 확률론 도입 또는 현대대수학 도입|Program for college preparatory mathematics, pp.33-34}} | # 12학년을 위한 추가적인 대안 단위 추천: 통계 활용이 있는 확률론 도입 또는 현대대수학 도입|Program for college preparatory mathematics, pp.33-34}} | ||
[[파일:fruitset.png|섬네일|1964년 SMSG에서 출간한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 | [[파일:fruitset.png|섬네일|1964년 SMSG에서 출간한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 |
2015년 5월 25일 (월) 16:47 판
현대식 교실을 살펴보자. 교사가 묻는다. "왜 2+3=3+2인가요?"
학생들이 주저하지 않고 답한다. "왜냐 하면 둘 다 5이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아니요, 정답은 덧셈의 교환법칙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한다. "왜 9+2=11인가요?"가 교사의 다음 질문이다.
학생들은 다시 지체없이 말한다. "9 더하기 1은 10이고 10 더하기 1은 11이기 때문입니다."
"틀렸어요." 교사가 소리친다. "정답은 2의 정의에 의해
9+2=9+(1+1)
인데, 덧셈의 결합법칙이 성립하기 때문에
9+(1+1)=(9+1)+1
입니다. 이제 10의 정의에 의해 9+1이 10이고 11의 정의에 의해 10+1이 11이 되는 것입니다."— Morrris Kline (1973). Why Johnny can't add: The failure of the New Math. p. 1.[1]
뭐가 다른 거지?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새수학(New Math)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 지속된 미국의 수학교육 운동이다.
배경
20세기 전반 초등수학교육의 주류는 존 듀이를 중심으로 한 진보주의 교육이었다. 진보주의 교육은 고등학교에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그들의 전문 분야에 특화된 교사들이 진보주의 운동에서 비롯된 홀리스틱 교육을 위해 자신들의 과목을 포기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2] 이렇게 되자 진보주의 교육이 진행되던 20세기 전반 미국 고등학교에서 대수와 기하 과목의 수강비율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학년 | 대수 | 기하 |
---|---|---|
1909-1910 | 56.9% | 38.9% |
1914-1915 | 48.8% | 26.5% |
1921-1922 | 40.2% | 22.7% |
1927-1928 | 35.2% | 19.8% |
1933-1934 | 30.4% | 17.1% |
1948-1949 | 26.8% | 12.8% |
1952-1953 | 24.6% | 11.6% |
1954-1955 | 24.8% | 11.4% |
진보주의 교육은 1950년대부터는 교육과정에 대한 결함이 거세게 비판을 받으며 퇴조해갔다.[4] 한편 수학교육 체제를 개편하자는 논의는 1930-40년대에 이미 존재했으며, 1950년대 초반에 대학 수학자들에 의해 수학 프로젝트가 다수 출범하였다.[5] 1957년 10월에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쏘아올렸고 미국은 자신들이 과학기술의 우위를 잃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6] 1958년 LIFE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론이 가장 중요시하는 문제는 "인플레이션, 전쟁 회피, 차별"에서 "방어경쟁에서 소련을 따라잡는 것, 그리고 뛰어난 과학자를 양성하는 것"으로 바뀌었다.[7]
새수학이 전세계로 퍼진 원인으로는 다음이 거론된다:[8]
진행 과정
1950년대에 다수의 새수학 프로젝트가 만들어졌는데, 이들 대부분은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자금을 지원받았다. 그중 주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9]
- 학교수학 일리노이 대학 위원회(University of Illinois Committee on School Mathematics, UICSM) (1951)
- 매릴랜드 대학교 수학 프로젝트(University of Maryland Mathematics Project) (1957)
- 칼리지보드 수학위원회(Commission on Mathematics of the College Entrance Examination Board) (1959)
- 학교수학연구그룹(School Mathematics Study Group, SMSG) (1958)
- 대 클리브랜드 수학 프로젝트(Greater Cleveland Mathematics Project) (1959)
- 매디슨 프로젝트(Madison Project) (1957)
- 종합 학교수학 프로젝트(Comprehensive School Mathematics Project) (1963)
1959년 수학위원회(Commission on Mathematics)는 보고서를 내어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교육과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10]
위원회의 주요 제안은 다음 아홉 가지 주장으로 윤곽을 드러낸다.
- 개념과 문제해결능력 양쪽으로, 미적분학과 해석기하학의 단계에 이르는 대학수학에 대한 확고한 준비
- 대수와 기하에서 연역추론의 본질과 역할 이해하기
- 수학적 구조("패턴")의 참된 인식—예를 들어, 자연수, 유리수, 실수, 복소수의 성질
- 일관된 개념(집합, 변수, 함수, 관계)를 신중하게 사용하기
- 부등식을 방정식과 함께 다루기
- 좌표·평면기하와, 입체기하 및 공간지각의 기초의 결합
- 11학년에서 삼각법 도입—좌표, 벡터, 복소수를 중심으로
- 12학년에서 초등"함수" 강조 (다항함수, 지수함수, 삼각함수)
- 12학년을 위한 추가적인 대안 단위 추천: 통계 활용이 있는 확률론 도입 또는 현대대수학 도입
— Program for college preparatory mathematics, pp.33-34
SMSG에서는 실험적인 수학교과서를 만들어 퍼블릭 도메인으로 배포하였는데, 이때 집합 개념을 조기에 도입하는 등 여러 면에서 혁신을 시도했다.[11][12] 1959년에 SMSG에서 출간한 7-12학년 수학 교과서는 1959-1960학년도에 약 2만 6천 명의 학생이 사용했다.[13]
비판
1962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활동 중인 수학자 64명은 새수학을 주도하는 수학자들이 무의식 중에 모든 어린이들이 수학자스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거나 장차 전문 수학자가 될 사람들만 교육받을 가치가 있다고 가정하는 게 아니냐며 비난했다.[14] 1965년 리처드 파인만은 새수학은 쓸데없을 정도로 엄밀함을 추구하며 또한 많은 정의가 나오는데 정작 새로운 사실이 없다고 비난했다.[15] 1973년 모리스 클라인은 그의 저서 Why Johnny Can't Add: The Failure of the New Math에서 엄청난 자원이 새수학 교육 프로그램에 투입되었지만 전통 수학교육의 결점을 고치는 데 실패했으며, 새수학이 단지 수학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16] 또한 1964년 FIMS(First International Mathematics Study)에서 연구에 참가한 국가 중 미국은 최하위였으며 상황이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음을 근거로 새수학이 미국의 낮은 수학 성취도를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비난 또한 존재한다. 다만 이 시기에 연구에 참여한 미국학생들 대다수는 전통수학으로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비난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는 반박이 존재한다.[17]
새수학에 대한 비판으로 기본으로 돌아가기(Back to Basic)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영향
대한민국과 새수학
우라나라 수학교육에는 시기상으로 1963년 제2차 교육과정에 영향을 주는 게 맞지만, 한 발 느리게 따라가는(...) 우리나라 교육의 특성상 1973년부터 시작되는 제3차 교육과정에 영향을 주었다. 집합을 토대로 수학 내용을 전개하였으며, 수학적 구조와 엄밀성을 강조하였다. 6, 70년대에 임용되신 수학 선생님 만나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거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안 계시겠지... 제3차 교육과정의 국민학교 1학년 과정의 일부를 잠깐 보자.
(1) 수
(가) 낱낱의 사물을 묶는 조작을 통하여 집합을 알아보고, 크기가 같은 두 집합을 비교하기
① 집합의 원소를 알아보기
② 원소의 개수가 같은 두 집합을 일대일 대응에 의하여 비교하기
...
(2) 연산
...
② 기초적인 덧셈의 교환법칙을 알아보기
③ 기초적인 덧셈의 결합법칙을 알아보기— 제3차 교육과정 국민학교 교육과정(1973.02)
일부만 뽑았는데 이 정도다. 이런 수학, 잘하는 학생이나 영재, 수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은 쫓아가기는 하는데과연 그럴까?, 대부분의 학생은 걍 수포자가 되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해 버린다. 대부분을 위한 수학 교육이 아닌, 소수를 위한 수학 교육이 되어버리고, 때문에 4차 교육과정부터는 이러한 교육의 뼈저린 반성이 일어나게 된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
각주
- ↑ 원문: Let us look into a modern mathematics classroom. The teacher asks, "Why is 2+3=3+2?"
Unhesitatingly the students reply, "Because both equal 5."
"No,", reproves the teacher, "the correct answer is because the commutative law of addition holds." Her next question is, "Why is 9+2=11?"
Again the students responds at once: "9 and 1 are 10 and 10 and 1 more is 11."
"Wrong," the teacher exclaims. "The correct answer is that by the definition of 2,- 9+2=9+(1+1),
- 9+(1+1)=(9+1)+1.
- ↑ Valente, Evandro R., "Mathematics Curriculum Coaching and Elementary School Students’ Mathematics Achievement in a Northeast Tennessee School System" (2013). Electronic Theses and Dissertations. Paper 1783.
- ↑ Jones, P., & Coxford, A. (1970). Mathematics in the evolving schools. In National Council of Teachers of Mathematics (Ed.), A history of mathematics education i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pp. 11–92).Washington, DC: National Council of Teachers of Mathematics; Valente, Evandro R., "Mathematics Curriculum Coaching and Elementary School Students’ Mathematics Achievement in a Northeast Tennessee School System" (2013). Electronic Theses and Dissertations. Paper 1783. p.26에서 재인용.
- ↑ 朴州信 (1999). 「브루너(J. S. Bruner)의 교육사상 연구」. 『교육문화연구』, 5, pp.403-404.
- ↑ Walmsley, A. L. E. (2003). A history of the new mathematics movement and its relationship with current mathematical reform. University Press of America.
- ↑ Ready, Patricia M (1992). The Diffusion of New Math.
- ↑ O'Neil, Paul. "US Change of Mind." Life March 3. (1958): pp.91-100; Ready, Patricia M (1992). The Diffusion of New Math. 에서 재인용.
- ↑ 김연식 외 3명 (1995). 수학교육학 용어 해설 (2). 대한수학교육학회 논문집. 제5권 제1호. p.249.
- ↑ Walmsley, A. L. E. (2003). A history of the new mathematics movement and its relationship with current mathematical reform. University Press of America.
- ↑ Commission on Mathematics (1959). Program for college preparatory mathematics
- ↑ Ralph A. Raimi (1995.10.22). Whatever Happened to the New Math?. 2015년 5월 16일에 확인.
- ↑ 여기에서 SMSG에서 만든 교과서를 찾아 제한 없이 다운로드할 수 있다.
- ↑ Hayden, R. W. (1981). A history of the" new math" movement in the United States.
- ↑ "On the Curriculum of the High School". The American Mathematical Monthly, Vol. 69, No. 3 (Mar., 1962), pp. 189-193.
- ↑ Feynman, R. P. (1965). New textbooks for the "new" mathematics. Engineering and Science, 28(6), 9-15.
- ↑ 김연식 외 3명 (1995). 수학교육학 용어 해설 (2). 대한수학교육학회 논문집. 제5권 제1호. p.251.
- ↑ Willoughby, S. S. (1990). Mathematics Education for a Changing World. Association for Supervision and Curriculum Development, 1250 N. Pitt Street, Alexandria, VA 22314-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