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왕

근초고왕(近肖古王, 생년 미상~375년, 재위 기간 346년~375년)은 백제의 제13대 국왕이다. 조고왕(照古王), 초고왕(肖古王), 속고왕(速古王)이라는 이름으로도 전해진다. 346년에 계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뒤 백제의 최대 전성기를 이끌었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근초고왕이 즉위할 당시 나라 안팎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전통적인 위협이었던 낙랑고구려에 의해 정벌되자 고구려가 새로운 위협으로 떠올랐으며 나라 안으로도 왕이 계속 바뀌며 백제는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346년에 근초고왕이 즉위하게 된다.

근초고왕의 《삼국사기》 기록은 재위 2년에 기록된 하나의 기록을 제외하고는 그가 즉위한 지 20년 후부터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근초고왕이 20년 동안 힘을 모으고 있다가 한 번에 정복 활동을 벌여서 삼국의 패권을 휘어잡은 것으로 보인다.

흔히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비교되지만 광개토대왕은 즉위하자마자 활발한 정복 활동을 벌였고 근초고왕은 20년 동안 힘을 축적한 뒤 재위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정복 활동을 시작한 점이 다르다.

마한 정복[편집 | 원본 편집]

《삼국사기》 『온조왕본기』에는 백제가 마한의 여러 소국들을 정복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3세기까지만 해도 한반도 남서부 지방에는 마한 소국들이 꽉 차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학자들은 온조왕이 아닌 근초고왕이 마한 소국들을 정복했다고 주장한다.

25년 봄 2월에 왕궁의 우물이 엄청나게 넘쳤다. 한성의 민가에서 말이 소를 낳았는데, 머리는 하나였으며, 몸은 둘이었다. 일자가 말하였다. “우물이 엄청나게 넘친 것은 대왕께서 융성할 징조이며, 하나의 머리에 몸이 둘인 소가 태어난 것은 대왕께서 이웃나라를 합병할 징조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여, 마침내 진한과 마한을 합병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삼국사기》 온조왕본기 25년

위 기록에 따르면 백제는 마한 정복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때가 온조왕 때인지 근초고왕 때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백제가 애초부터 마한을 병합하려고 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후, 백제는 본격적으로 군사 행동을 벌인다. 백제는 왕이 사냥을 간다고 하면서 군사를 출동시켜 마한을 기습했는데 오직 두 성만이 항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나머지 두 성도 곧 정복되었으며 마한은 완전히 백제에 병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남방과의 교류[편집 | 원본 편집]

근초고왕은 신라가야 등 남방 세력들과 교류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이 부분은 엉뚱하게도 당시 일본천황 격이었던 진구황후의 업적에 기록되어 있었다. 최근 들어 여러 사학자들의 노력으로 교류의 주체를 백제로 보는 시각이 커지긴 했지만 왜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어쨌든 근초고왕은 366년 3월에 신라와 동맹을 맺고 탁순국 왕을 통해 일본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려 했으며, 마침내 367년에 둘 사이의 외교 관계가 수립되었다. 명마 두 필을 신라에 보내는 등 신라와의 교류도 두드러졌다.

고구려와의 전쟁[편집 | 원본 편집]

남방과의 교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무렵인 369년 가을, 갑자기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이끌고 민가를 약탈한다. 이 전투는 백제가 승리했으며, 371년에는 예성강 부근에서 고구려군을 또다시 격파한다.

같은해 겨울에는 백제군이 평양성까지 진격했는데, 이 전투에서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사한다. 이로서 백제는 최전성기를 맞았으며, 영토도 최대에 이른다.

고구려에서 갑자기 백제를 침략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가 맞다면, 고구려 입장에서도 백제가 거대한 위협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말년과 그 이후[편집 | 원본 편집]

근초고왕은 375년에 죽었으며, 다음 왕은 근초고왕의 아들이었던 근구수왕이 되었다. 하지만 근구수왕은 근초고왕 때의 영광을 다시 되찾지는 못했으며, 근구수왕 때부터 시작하여 5세기 말 삼근왕에 이를 때까지 백제의 쇠퇴는 계속된다.[1]

대중 문화에서[편집 | 원본 편집]

KBS에서 드라마 《근초고왕》이 나왔지만 역사 개념이 매우 막장스럽다. 그나마 시청자들에게 호평받고 있는 갑옷 고증을 제외하고는 엉터리 드라마다.

그 당시 왕들[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삼근왕 이후 동성왕, 무령왕, 성왕이 백제의 중흥기를 이끌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