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칵테일사랑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5월 15일 (금) 10:21 판 (사진 2장 추가)
인천광역시청
인천시의 계륵 인천 아시아드 주 경기장

仁川廣域市/Incheon Metropolitan City

개요

대한민국의 광역시로, 서울특별시 서쪽에 위치한 해안도시. 인구는 2,964,199명이다. [1]

역사

삼국시대에 미추홀(매소홀현)이었으며, 비류가 지금의 남구 문학동 문학산 자락에 문학산성을 축조하였다. 이후 소성현이 되었으며 수주(지금의 부평)나 율진군(지금의 과천)의 속현으로 예속된 적이 있었다. 고려시대에 경원부가 되었고, 이후에 인주로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 초기인 1413년 10월 15일에 인천군으로 바뀌었으며, 1460년에 인천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인천관아와 인천향교는 남구 관교동(현재는 행정구역상 문학동 소속)[2]에 두었다. 옛 인천도호부는 지금의 인천광역시 중구, 동구, 남구, 남동구, 연수구 및 경기도 시흥시 북부(옛 소래읍 지역) 일대를 관할구역으로 두었다.

한편으로 지금의 인천 서구, 부평구, 계양구, 경기 부천시 일대 및 서울 구로구 일부는 삼국시대에 주부토군이었으며, 후에 수주가 되어 인접한 군소 군현들을 속현으로 두었으며 안남도호부, 계양도호부가 되었다가 부평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는 부평도호부가 되어 경기 서부지역의 중추 고을 역할을 담당했다. 부평관아와 부평향교는 지금의 계양구 계산동에 두었다.

1883년 개항으로 제물포(지금의 중구)에 인천감리서가 설치됨으로써 인천의 사실상의 중심이 관교동에서 제물포로 옮겨갔다. 1895년과 1896년의 행정구역 개편을 거치면서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는 인천부, 부평군으로 개편되었으며, 인천부 중 구 부내면(관교동)은 구읍면으로, 다소면 일부(제물포)는 부내면으로 개편이 이루어졌다. 개항 이후로 경인선이 개설되고 외국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인천은 근대적인 도시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합으로 관교동을 포함한 인천부 외곽은 부평군과 통폐합되어 부천군으로 개편되었고 지금의 중구, 동구 일대만이 인천부로 남았다. 1936년 인천부 1차 확장으로 인천부의 영역이 지금의 옥련동, 관교동 일부로 확장되었고 1940년 2차 확장으로 부평이 인천으로 편입되었다. 옛 인천도호부 지역 중 부천군 소래면 지역은 인천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1973년 부천군 폐지로 시흥군에 편입되어 현재는 시흥시 북부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인천 용현동 일대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으로써 북한에 밀렸던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1981년에는 인천직할시로 승격하여 경기도에서 분리되었다. 1989년에 영종도 일대와 계양구 북부가 인천에 편입되었고, 1995년에는 옹진군, 강화군 및 김포군 검단면이 인천에 편입되었고, 인천광역시로 개편되었다.

소속 자치단체

부채문제

  1. 2015년 3월말 기준 인천광역시 인구 현황 <인천광역시청>
  2. 관교동이라는 지명 자체가 인천아와 인천향에서 유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