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역


무등역(無燈驛)철도역의 관리상의 분류로, 역에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역을 의미한다. 현재엔 일부 임시승강장 외엔 존재하지 않기에 현재는 역사상의 용어이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무등역은 역에 전기가 들어가지 않아 전등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역을 일컫는 용어이다. 이런 역에서는 정상적인 조명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석유 램프나 가스등, 심지어는 횃불을 써서 업무를 처리하고, 심지어 열차를 통제하는 신호에도 사용해야 했다. 덕분에 근무자나 이용객의 불편은 물론이고, 안전 사고의 위험까지 있어서 1960년대에는 간선 상의 이런 무등역을 해소하는 것이 과제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철도는 전기 조명보다 그 역사가 길기 때문에 당연히 과거에는 대부분의 역이 이러한 무등역이었고 분류의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열차는 주간에만 운전하는게 보통이었고, 그나마도 느리고 빈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통이 발전하고, 장거리 노선이 운영되면서 밤새 달리는 야간열차가 생겨나게 되면서 조명은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백열 전구의 발명으로 전기조명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전기조명은 과거의 가스등을 빠르게 대체해 나갔지만, 송전망의 확대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철도 전체에 보급은 시일이 걸리는 일이었다.

한국 철도의 경우도 이는 비슷해서, 전기 사업은 19세기 말에 개시되어 1900년 7월 8일에는 남대문역에 접객용 조명설비가 들어간 것이 최초가 되어 초기부터 보급이 이루어졌지만, 확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1]

과거의 상황[편집 | 원본 편집]

1969년도의 자료에서는 당시 존재하던 572개 역 중에서 185개 역이 이러한 무등역이었으며, 주요 간선인 경부, 호남, 중앙선 등에도 39개소가 존재했다고 한다. 당시 무등역은 승객의 부상 우려가 크고 무임승차 단속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탈선 사고나 휘발유가스를 실은 화차의 화재 사고 등 위험이 있고, 입환 작업에도 부담을 주기에 문제시되고 있었다.[2]

당시의 주요 간선 무등역 현황은 다음과 같다.

해소[편집 | 원본 편집]

이후 전력망이 보급되면서 역 건물이 없는 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보통역이나 배치간이역의 무등역은 점차 해소가 되었다. 자료에서는 1980년 충북선 복선화를 하면서 공전역삼탄역을 마지막으로 무등역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언급되나[3], 다른 자료에서는 다른역과 달리 공전역의 전기 가설 일자를 1977년으로 명기해 두고 있다[4]. 따라서 자료상으로는 1977년에 공식적인 무등역은 해소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에는 임시승강장 중에 전등이 미가설된 역이 남아있지만, 현실적으로 열차 정차가 없거나, 주간에만 열차가 정차하는 경우(비동역)에 국한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역무원이 배치되는 역에서 무등역인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될 것이다.

각주

  1. 철도기술연구원. "철도기술백서".[1]
  2. '캄캄한여로…횃불찾아 우왕좌왕 무등역 32% 각종철도사고의 원인'. 중앙일보 1969년 8월 29일 보도.
  3. 철도기술연구원, 전게서.
  4. 철도청(1993). "한국철도요람집". p.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