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

-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5월 3일 (일) 13:28 판 (문자열 찾아 바꾸기 - "일려고" 문자열을 "이려고" 문자열로)

형이 널 벌한다는 게 아니라

범죄에 대해서 범죄자가 속한 사회에서 인과응보 개념으로 부과하는 것. 이라는 골자는 인류문명이 형성되고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겠지만, 형벌을 집행하는 이유나 형벌 집행의 방법론 등 저 개념 안에서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전근대와 근대 시민혁명 이후가 상당히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전근대의 형벌

전근대 시대에는 도덕의 영역이 구분되지도 않았고 자유권리 등의 사상도 (고대 그리스 등등의 지방에서 잠깐 통용됐던 걸 제외하면) 주창되지 않았던 상태였다. 따라서 전근대의 형벌은 범죄자의 행동을 제재해서 사회의 치안을 보전하기 위한 목적과 범죄자에게 고통 및 굴욕을 가해서 피해자들의 복수심 또는 (농경사회에서는 이런 기회 아니면 풀 기회 자체가 별로 없는) 대중의 가학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이 서로 분화되지 않고 섞여 있다.

그 결과로 고대 그리스 문화권의 청동소 형벌이나 중국 명나라능지처참 등등 형벌의 집행 자체가 지역사회의 축제 역할을 겸했던 사례가 전근대 문화에선 일반적으로 발견되며, 굳이 저렇게 형벌의 집행이 축제를 겸하지 않더라도 전근대의 형벌은 공개적으로, 그리고 수형자에게 굴욕을 안겨주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예가 많았다. 또 무죄 추정의 원칙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범죄 용의자로서 관아에 끌려온 사람들은 일단 증명만 안 된 범죄자인 것으로 보고 증거가 없는 상태에도 고문을 작렬시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고문을 형벌과 구분되지 않는 개념으로 인식한 경우도 꽤 있다.

춘추전국시대 때 통용되었던 형벌

  • 묵 : 범죄자의 얼굴에 죄명을 문신으로 새기는 것.
  • 의 : 코를 베는 것. 볼드모트를 보면 알겠지만 일단 코를 자르면 생김새가 매우 흉측해지는 데다가, 고대 중국인들은 영혼이 코를 통해서 몸으로 드나든다고 보았기 때문에 (스스로 自 자가 코를 형상화한 글자) 토속신앙(?)적인 의미에선 영혼 살인이나 마찬가지였다.
  • 월 : 발뒤꿈치를 잘라 앉은뱅이 신세로 만드는 것. 발뒤꿈치가 아니라 아킬레스 건을 잘랐을지도 모른다.
  • 궁 : 고자되기. 춘추전국시대 땐 좆만 깔끔하게 자르는 기술력이 없어서 궁형을 받고 나서 좆이 잘린 자리가 썩어들어가는 그 냄새도 예술이었다고 한다. 사마천이 "죽을래 궁형 받을래?"의 선택지에서 궁형을 선택하고 사기 집필의 위엄을 달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 대벽 : 사형. 다만 저 당시에는 궁형보다 급이 낮은 형벌이었다고 한다.

고사성어 덕후들은 제법 봤을 단어들인데, 그렇지 않고서는 별로 유명하지가 않다.

당태종 이세민의 율령에서 정의된 형벌

태형
조선시대 태형 볼기짝을 회초리로 때린다
  • 태 : '회초리'로 10대에서 50대까지 때린다. 어린아이 종아리 때리는 게 애가 죽으라고 때리는 게 아니듯이, 이것도 버릇을 고치라고 때리는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싱가폴이나 사우디 등 형벌로서의 체벌이 현대까지 남아 있는 국가에서, 법에 의해 집행되는 체벌을 '태형'이라고 번역하지 '장형'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는 없다.
현대 중국의 곤장
  • 장 : '곤장 맞는다'가 이것을 의미하는데, 거의 사람 키만한 무지막지한 몽둥이로 60대에서 100대까지 때린다. 장독이 올라서 죽는다는 이야기가 익숙할 텐데, 그 말대로 '버릇 고치라고' 때리는 태형과는 달리 진짜로 범죄자를 반병신 만들거나 죽이려고 때리는 형벌이다.
  • 도 : 요즘 말로 하면 징역. 다만 수감자 인권을 존중하는 현대의 감옥과는 매우 달랐으며, 심지어 조선시대의 감옥은 수형자의 밥값을 가족이 내야 했다고.
  • 유 : 유배. 장형과 병과되며 장독이 올라 있는 만신창이같은 몸으로 3000리쯤 되는 먼 길까지 압송되어서, 왕이 풀어줄 때까지 거기서 갇혀 살아야 하는 형벌이다. (예컨대 정약용은 18년 동안이나 장기강진이라는 곳에 갇혀 있었다.) 중국에서는 진짜로 원래 살던 데서 3000리 이상 떨어진 지역에 보냈다는데 조선시대 때는 한반도 안에서 "원래 살던 데서 3000리 이상 떨어진" 지역으로 유배를 보낼 수가 없어서, 3000리 채울 때까지 팔도유람(...)을 하는 코스가 몇 개 있어서 그 코스를 돌린 다음에 유배지로 보냈단다.
  • 사 : 사형. '민간인은 교수형, 군인은 총살형'으로 사형 집행 방법이 규정되어 있는 현대와 달리 한자 문화권에선 같은 사형이어도 죄질이나 수형자의 신분에 따라서 여러 방법으로 집행했다. 중국에서야 능지처참이나 FM 팽형 같은 잔혹한 사형 방법이 통용되었지만 조선에선 그런 건 유교적 덕치주의 이념에 안 맞는다고 짤랐다.

의 5가지 형벌이 당태종 이세민에 의해서 정의되었다. 그리고 이 골자는 서양의 근대 정치 이념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근대 민주주의에서의 형벌

전근대 형벌의 관습이 남아서 지금도 범죄자에게 고통 및 굴욕을 가하는 것을 형벌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형벌로서 공개적인 굴욕을 줘 버리면 낙인 효과라는 게 생겨서 범죄자가 갱생하기가 힘들어지고 그러면 오히려 범죄자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는 게 증명이 돼 있어서 요새는 형벌의 목적 자체가 범죄자의 교화 및 재사회화로 옮겨간 상태. 교도소에서 직업훈련을 시키는 것이 이것.

현대 대한민국의 형법에서는 형벌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정해두고 있다. 여기 써 있는 순서대로 강한 형벌이다.

  • 사형
  • 징역
    • 무기징역
    • 유기징역 : 같은 징역이고 기간만 다른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형법에서 무기징역과 유기징역은 아예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유기징역은 단일범죄의 경우 1월부터 30년까지, 경합범이나 누범 등의 사유로 형기가 가중되는 경우엔 50년까지 선고 가능하다. (원래는 각각 15년, 25년이었는데 조두순 이후로 기준이 늘어난 것.)
    • 집행유예
  • 명예형 :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일 다음의 자격을 상실시키는 것을 말한다. 장역 및 집행유예 기간 중에는 당연히 정지되며 (당연정지. 때문에 공무원은 징역 및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자동으로 짤린다.) 자격상실 및 자격정지가 형벌로 부과되는 경우는 일단 몸은 자유로 풀어주면서 이런 권리들만 박탈하는 것이다.
    1. 공무원이 되는 자격
    2. 공법상의 선거권과 피선거권
    3. 법률로 요건을 정한 공법상의 업무에 관한 자격
    4. 법인의 이사, 감사 또는 지배인 기타 법인의 업무에 관한 검사역이나 재산관리인이 되는 자격
    • 자격상실 : 위에 적어둔 자격을 죽을 때까지 상실시키는 것.
    • 자격정지 : 위에 적어둔 자격을 기간을 정해두고 그 기간 동안 정지시키는 것.
  • 벌금 : 5만원 이상의 재산을 법에 의해서 국가의 이름으로 몰수하는 형벌. 벌금으로 징수된 돈은 국고로 들어가며, 세금과 함께 다음해 국가예산으로 편성된다. 민사상 손해배상과는 전혀 다른 개념임에 유의. 즉 범죄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민사재판을 따로 걸어야 된다.
  • 구류 : 1일 이상 30일 미만의 기간동안 범죄자를 지정한 장소에 구금한다. 쁘띠 징역형인 셈이지만 여기다가 따로 쓴 건, 형법상에서 이건 벌금보다 아래의 형벌로 다루기 때문이다.
  • 과료 : 2천원 이상 5만원 미만의 재산을 국가의 이름으로 물수하는 것. 다만 경범죄처벌법에서도 형벌로서 벌금을 묘사하고 있지, 과료를 묘사하고 있는 곳은 찾아볼 수가 없다.
  • 몰수 : 범죄의 도구로 쓰인 물건을 국가에서 압류하는 것. 사형부터 과료까지의 다른 '형벌'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형법에선 이것도 형벌로 명기하고 있다.

죄형 법정주의란 개념이 있어서,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그 짓이 법에서 범죄라고 써 있지 않는 이상은 형벌을 못 때리게 돼 있다. 그리고 형벌을 때리더라도 딱 법에 써 있는 만큼만 때려야 하기 때문에, 조두순 사건이나 삼풍백화점 사건 등 잔학무도한 범죄자들에게 법의 한계로 중형을 때릴 수 없자 국민들은 물론 어쩔 수 없이 법에 써 있는 대로밖에 선고를 못 하는 판사 자신도 피꺼솟을 하는 일이 더러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