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G-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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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25 ukraine.jpg
무기 정보
종류 요격전투기
길이 19.75m
14.01m
높이 6.10 m


Микоян и Гуревич-25

나토 코드: Foxbat

미그25냉전소련과 동구권의 요격전투기. 소련에서 만들어진 이 전투기는 냉전시대의 하늘을 풍미했던냉전의 상징격인 전투기로 음속의 3배에 달하는 속도로 서방권을 공포에 빠트렸었다. 이 때문에 무적의 전투기라는 오해로 인해 그 실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서방권을 크게 위축시켰다. 또한 그 실체가 드러난 후 소문에 대한 반동과 잘못된 운용으로 평가절하 되기도 했지만 많은 역사적 사건과 함께하면서 동서 냉전의 단면적을 고스란히 보여준 전설적인 전투기이다. 가장 빠른 전투기이자 가장 높이 올라간 전투기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나토코드는 폭스배트다. 후계기로 미그31이 있다.

개발

파일:800px-Mig-25.jpg

소련은 냉전시기 미국의 핵폭격기를 요격하는 요격기로 소련 공군과 소련 방공군에서 운용할 요격전투기를 필요로 했다. 제2차세계대전기 독소전에서 폭격기를 요격할 요격기의 가치를 알게된 소련은 영공 방위에 요격기 부분을 많이 할애하였고 미국의 폭격기들이 점차 고고도 비행을 하게 되고 속도도 점차 빨라져 B-58이나 비질런테 같은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폭격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성층권에서 비행하며 알짱거리는 전략정찰기를 요격하는데 애로사항이 꽃피면서 점차 신형 요격기 개발에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기존 미그21이란 걸출한 요격기가 있긴 했지만 B-52이상 되는 비질런테 같은 초음속 폭격기 요격과 고고도 요격능력의 미확보로 큰 효과를 보기 힘들었기에 시대에 맞는 신형 요격기를 도입할 때가 오고 있었다. 당시는 전략 폭격기의 시대가 저물고 대륙간탄도탄을 이용한 핵투사 방식이 점차 주로 자리매김 하던 시기였지만 미국은 메가톤급 대형 핵탄두를 투사하기 위한 폭격기 개발에 착수하고 추적과 요격이 불가능한 전략 폭격기 발키리 개발에 들어가게 된다. XB-70 발키리 폭격기는 음속의 3배 이상의 속력을 내며 고고도를 비행해 당시 방공능력으론 방어가 불가능했고 이 소식을 접한 소련은 마침내 신형 요격전투기의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소련은 미군의 어떠한 사항의 공습으로부터 소련 영공을 방어할 수 있도록 미군의 초음속 폭격기와 XB-70 발키리에 대응할 수 있는 음속의 3배 이상의 속도를 내고 고도 27킬로미터에 도달가능한 요격전투기의 수요를 창출하게 된다.

North American XB-70A Valkyrie in flight with wingtips in 65 percent (full) drooped position 061122-F-1234P-021.jpg파일:800px-North American XB-70 on ramp ECN-1814.jpg

(발키리 폭격기)

이 개발에 참여한 설계국은 수호이 설계국과 미코얀.구레비치 설계국(이하 미그)이였고 미그 설계국은 이전에 개발된 요격기들을 바탕으로 개발을 진행시켜 나갔다. 미그 설계국 내에서 3개의 판이한 엔진 배치형태를 가진 설계안들[1]이 나왔고 선택된 설계안은 가장 무난한 형태였던 첫번째 설계안이 선택되었다. 이것 말고도 요격기 특성상 빠른 가속력을 위해 가변익 설계도 고려된 모양이지만 대기가 희박한 고고도에서 가변익의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어 삼각 후퇴익 형태로 변형되었다. 항공기의 재질은 니켈 강철로 제작되었는데 고속으로 비행하는 항공기 특성상 티타늄이 적격이였는데도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간단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비싼 티타늄보다 싼 스테인레스로 제작해 단가를 낮추고 유지비용을 낮추는게 목적이였다.

시제기인 Ye-155R1이 1964년 3월 6일에 첫 비행에 성공한데 이어 디수의 시제기가 제작되어 시험비행에 투입되었고 결국 1967년에 소련 에어쇼에서 공식적으로 기체의 존재를 공표했다. 생산은 그 이후인 1960대 후반부터 진행되어 1180여대의 기체가 생산되어 배치되었다.

성능

전장이 19미터가 넘는 대형 전투기이자 고공 요격을 위해 만들어진 전투기다. 우리가 흔히 전투기 하면 생각나는 기본적인 형상으로 종전의 전투기들과는 다르게 수직미익이 두개인 색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비행성능

파일:800px-MiG-25RBS Pichugin-1.jpg

작열하는 미그25의 투만스키 엔진

미그25는 최대한 빨리 높은 고도로 치고 올라가야 하는 요격전투기인 만큼 그 부분에선 현존하는 어떤 전투기보다도 우위에 있고 동생인 미그31역시 이 부분은 미그25에 미치지 못한다. 미그25는 최대 분당 2킬로미터의 상승속도를 보유하고 있어 여건만 따라 준다면 5~10분 내 성층권에 도달할 수 있는 강력한 상승능력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최대 27킬로미터에서 30킬로미터에 달하는 고도에서 작전하는 고공 전투기로, 평균 작전 고도도 20킬로미터 대에 달해 거의 오존층이 있는 고도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에 당시로서도 그렇고 지금도 격추가 까다롭기도 하다. 이렇게 고고도에서 작전하는 몇 안 되는 전투기중 하나인데다 실전배치된 전투기는 미그25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미그25의 동생인 미그31 말고는 사실상 유일무이한 작전고도다. 여기에 최대 속도가 음속의 3배에 달하는 엄청난 속력을 가진 전투기라 냉전시대 미국을 전전긍긍하게 만든 전투기이기도 하다. 최대 속도는 레이더로 측정된 시나이 사막의 미그25가 기록한 음속의 3.2배에 달하는 속도인데 이 기록은 실전배치된 전투기로선 최고 기록이다. 미그25는 이런 속도와 고고도 성능을 이용해 발진하고 몇분 내로 성층권을 돌파한 후 고고도에서 음속의 3배에 근접한 초음속으로 적기를 추격 및 요격한 뒤 그 독보적인 속도로 이탈하는 전형적인 요격기 전술을 지향하고 있었고 이러한 속도는 실전에서도 여러 미그25에 대한 요격 시도를 좌절시키기도 하였다.

다만 속도는 음속의 2.6~2.8까지가 적정선이였고 운용 한계상 음속의 2.83배 까지가 한계였다. 그 이상 올라간다면 엔진의 파손을 감수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미그25가 장착한 투만스키 엔진은 고속성능을 내기 위해 수명이 짧기도 하였고 음속의 3배 이상으로 비행하는 건 엔진에 큰 무리를 주는 행위였기에 되도록이면 그런 비행은 자제되도록 제약을 두고 있었다. 그래도 그 제약된 속도만도 음속의 2.5배인데 이게 무장 다 달고 연료 채운 채로 실전에서 내는 작전 속도다. 타 전투기들이 최고의 여건 하에서 내는 최고속도로 미그25는 일반 비행을 한다는 의미로 현재도 이런 기종은 전무한 상태다. 이런 엄청난 비행성능을 보유한 전투기였기에 미국과 서방권이 전전긍긍한 것도 무리가 아니며 원래 운용 목적대로 운용되었다면 당시엔 적수가 없는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을수도 있다. 사실 미그 25는 화려한 공중전과는 거리가 매우 먼 기종인데, 고속능력과 상승능력에 집중 투자한 결과로 선회력이 상당히 떨어지고 민첩성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요격기라 격투전에는 부적합한 기종이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미그25를 로켓 비행기 등으로도 부르기도 했다고 하며 무리한 기동을 할 시 기골이 파손되어 기체를 손실할 수 있다고 한다. 기동 한계는 5G정도고 이것도 과하다 생각했는지 2.2G가 넘지 않도록 운용을 권장했다 한다. 한마디로 격투전 하지 말란 거다. 보통 6G에서 최대 9G의 기동을 하는 일반 전투기에 비하면 저 수치는 미그25의 한계를 보여주는 바다. 한마디로 위에서 언급한 대로 미그25는 빠른 속력을 이용해 치고 빠지는 형식의 공중전에 적합한 편이다. 대신 순간 가속력과 상승력이 좋은 편이라고...아니 사실상 이것 빼면 시체나 다름없는 기종이다.

전자장비

무장능력

미그25는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대형인 빔펠 R-40 공대공 미사일을 주력으로 주로 R-40 4발을 반능동 레이더 유도와 적외선 유도 반반으로 장착하여 운용하였다. R-40미사일은 최대 사거리 80킬로미터에 달해 미국의 AIM-7스패로보다 길고 작약량도 훨씬 많아 전투기 보단 폭격기나 수송기 요격에 적격이였다. 지금이야 R-33이나 R-77같은 미사일과 사거리 120킬로미터대의 암람C 능동형 공대공미사일이 주력이 되었지만 당시로서 80킬로미터면 상당한 수준이며 요격 임무엔 적격인 무장이였다. 이 외에 폭격기 요격임무 외에 전투기급 항공기와의 교전에선 R-23과 R-60 미사일의 운용능력을 확보하고 있어 전투기 급의 교전에 사용할 수 있다. 이중 R-23과 R-60은 서방의 스패로와 사이드와인더급에 해당하며 여기에 고성능의 빔펠 R-73(AA-11 아처)도 운용가능해 단거리에서 준중거리에 해당하는 WVR에서 단점이였던 낮은 기동성을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

종합

결론적으로 본다면 상승능력과 고고도 작전능력, 그리고 속도는 현존하는 최고의 비행성능을을 보유한 기체로서 미그31과 함께 요격전투기로선 여전히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는 평가이다. 고속으로 공격하고 이탈하는 설계적 운용방식을 따랐으면 실전에서도 상당한 전과를 올릴수 있었겠으나 미그25리는 기종을 이해하지 못한 타 운용국들이 무리하게 전투기들간 정면 격투전에 투입시켰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평을 하는 건 미그25 입장에서는 나름 억울한 사항이다. 최대 5G 정도만의 기동을 상정한 요격전투기에 격투전 등은 상정한 바가 아니므로 이는 기체 문제가 아닌 운용자 측의 이해도 문제이다. 다만 고성능 레이더에 비해 저열한 소프트웨어는 미그25의 잠재능력을 끌어올리기엔 부족했고 요격 임무에만 특화되어 다른 확장성이 부족했다는 분명한 한계점이 존재한다. 그래도 하드웨어적 스펙은 그 단점을 상쇄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였고 지상관제소와 조기경보기의 지원 하에 거점 요격과 영공 방어란 본 임무대로 운용되었다면 지금의 평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실전

1971년 소련에서 정찰형 미그25R과 미그25RB 두대가 이집트에 배치되어 이스라엘의 시나이 반도 일대를 정찰했다. 20회에 달하는 정찰 기간동안 기록 하나가 세워지기도 했는데 그것이 음속의 3.2배를 넘는 속도를 기록한 것이다. 당시 미그25를 발견한 이스라엘 공군이 F-4E를 출격시켜 추적했지만 최대 출력으로 도주하는 미그25를 잡는데 실패했다. 이때 미그25를 추적했던 레이더가 미그25기 최대 음속의 3.2배로 비행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이집트에 배치되어 이스라엘을 왔다갔다 하면서 정찰사진을 찍고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물론 요격 시도는 있긴 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1973년까지 소련군 미그25들은 이집트에서 철수했다. 이후 소련 공군은 소련과 이란 국경에서 미국과 이란의 연합합동작전인 Dark Gene 작전에 미그25를 출격시켜 미군과 이란군을 견제하도록 했지만 직접 교전에 말려들지는 않았다. 한편 시리아의 미그25는 여전히 이스라엘 영공을 들락날락 하면서 이스라엘의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있었다. 결국 미그25 요격작전을 전개해 RF-4 2대를 보내어 미그25를 꾀어내고 전자전으로 교란시켰다. 여기에 매복했던 F-15가 미그25를 기습해 한대를 잡았고 나머지 한대를 영공 밖으로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이 작전 이후로도 미그25가 영공을 지속적으로 침입하긴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결국 호크에 피격된 시리아 미그25가 후연소기를 켜고 추적한 F-15에 격추되면서 시리아는 이스라엘 정찰을 단념하게 되었다. 리비아에선 미국과 리비아간 발생한 시드라만 사건에 리비아군 미그25가 미군기를 견제출격 하기도 했었다.

친소 정책을 펼쳤던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도 미그25를 보유해 1982년 이란.이라크 전쟁에 투입시켜 이란 공군과 교전을 벌였다. 이라크의 미그25는 이란 공군의 F-5E를 격추시키는 전적을 올리기도 하는 것 외에 C-130 수송기를 격추시키며 승승장구했고 미그25PD형은 이란의 RF-4 2대를 연달아 격추시키면서 1986년의 공중전에서 우세를 기록하였다. 반면에 F-14A가 미그25를 격추시키기도 했고 이라크의 미그25 에이스 모하메드 라얀[2] 대령이 이란군 F-14A에 격추되어 전사하기도 하였다. 이라크는 전쟁기간 동안 10대 이상의 미그25를 손실하였다.

그리고 걸프 전쟁의 발발로 이라크의 미그25는 미군의 전투기들과 직접 교전하게 되었다. 첫번째 충돌은 사막의 폭풍작전 첫째날 Zuhair Dawood 중위의 미그25가 미 해군의 CV-60 새러토가에서 이함한 Scott speicher 소령의 F/A-18C 호넷을 격추시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호넷의 조종사 스콧 소령은 사망하였고 미군은 지대공 미사일에 의한 격추라고 주장했으나 동료들의 진술 등으로 미그25에 의해 격추된것으로 인정되었다. 이 사건은 베트남전 이후 최초의 미군기 격추라는 의미를 가진다. 1월에는 이라크군의 미그25PD형이 속도라는 최고의 장점을 내세워 공격기를 엄호하던 EF-111A 전자전기를 기습해 미사일을 발사하여 편대에서 이탈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들과는 다르게 두대의 또다른 미그25는 F-15 두대가 발사한 AIM-7 스패로 미사일에 격추되었고 다수의 미그25를 손실하면서 걸프 전쟁에선 이란.이라크 전쟁 때 같이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거의 일방적으로 미군기에 밀리는 형상을 띠었다. 그래도 본래 운용 특성을 살려 F-111같은 공격기가 임무를 단념하게 하는 요격 임무를 성공시키는 등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걸프 전쟁 후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을 비행하던 미그25가 F-16에게 암람으로 격추되는 수모도 겪기도 하고 미군의 프레데터 무인기를 격추시키며 최초의 무인기와 유인기간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라크 전쟁에서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대신 항공전력 보존을 위해 모래 속에 파묻히면서 활약의 기회는 없었다. 이라크가 전쟁에서 패배하고 사담 후세인이 축출되면서 모래속에 파묻힌 미그25는 후에 미군이 발굴해 내었다.

사건사고

빅토르 벨렌코 중위 망명사건

1976년 9월 6일 소련 극동방공군 소속 빅토르 벨렌코 중위갸 미그25를 몰고 망명한 사건이다. 당시 연해주에 위치한 체그에흐카 기지에서 출격한 방공군 소속의 미그25 한기가 갑자기 경로를 이탈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레이더에 미그25의 침투를 포착한 일본은 F-4EJ를 긴급 출격시켜 대응에 나섯으나 벨렌코 중위는 소련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급격히 고도를 하강시켜 해수면에 가까운 저공비행을 시작한다. 결국 레이더에서 목표를 상실한 항자대는 패닉에 빠졌지만 벨렌코 중위는 항자대의 스크램블로 항자대 기지인 치토세 공항에 유도착륙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북해도 상공으로 진입한 벨렌코는 항자대의 요격을 기다렸으나 유도착륙은 커녕 하늘은 깨끗했고 설상가상으로 연료마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자 벨렌코 중위는 직접 활주로를 찾아 북해도 하코타테 공항에 비상착륙을 시도했다. 벨렌코 중위의 미그25는 하코타테 공항의 활주로를 250미터 벗어나 논에서 정지했고 벨렌코 중위는 망명 의사를 밝히고 망명에 성공한다.

소련은 기체의 반환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단번에 씹혔다. 당연하지만 오랫동안 서방을 긴장시켰던 비밀병기가 제발로 기어들어 왔는데 그냥 줄 리 있나... 미국은 미그25를 분해해 본토로 수송한 뒤 철저하게 조사하여 미국과 서방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미그25의 실제에 대해 드디어 알수 있게 되었는데, 음속의 3배 이상의 속도에 뛰어난 격투전 능력, 그리고 우수한 전자장비로 무장한 환상의 전투기로 알고 있던 서방은 미그25의 의외의 모습들을 보고 적잖히 놀랄수밖에 없었다. 미그25는 시대를 앞서간 기술 대신 지극히 평범한 기술로 제작되었고 기체 외피는 니켈 강재에 전자장비는 여전히 진공관을 사용하는 상식적인 기체였다는 점이다. 미국이 내린 결론은 미그25는 제공기가 아닌 단순한 요격기라는 것이였다.

벨렌코 중위의 망명 이유는 처우 개선과 고위층 간부의 딸인 아내와의 불화가 큰 이유로 보고 있으며 벨렌코 중위는 원하는 대로 미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생을 보냈다.

계열기

운용국가

과거 운용국

파일:1544142602183.jpg 러시아군의 미그25

소련 개발국이자 최대 운용국이였다. 소련 공군과 방공군에서 운용되다가 후계기인 미그31로 점차 교체되어갔다. 70년대 이집트에 파견되어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고 유럽 방면과 극동방면에 배치되어 방공 임무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미그25 망명사건 같은 사건을 겪기도 하는 등 냉전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 하늘의 맹주로 자리매김 했었다. 그러나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소련을 구성하던 각 공화국의 기지에 배치되어 있던 미그25는 소련의 후계국인 러시아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그루지아,밸로루시 등 과거 소련의 구성국이였던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이들 국가로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러시아 소련에서 이관받은 대부분의 미그25를 보유했었다. 미그31로 교체될 때 까지 운용되었지만 지금은 전량 퇴역하여 극히 일부 말고는 운용되지 않고있다. 대신 후계기인 미그31이 남부군구와 동부군구에 배치되어 자매기의 임무를 승계하고 있으니 미그25 계열의 맥은 이어지고 있는 샘이다. 특이한 점으론 우주비행사 훈련용과 상승고도를 이용한 성층권 관광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과거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소속되어 있을 때 배치되어 있던 미그25중 독립하면서 소련에서 뜯어낸 미그25 79대를 보유했었다. 우크라이나 공군에서 방공기로 운용했지만 지금은 노후화로 인해 러시아의 상황과 같이 같이 전량 퇴역하여 운용하지 않는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 등과 같이 과거 소련 붕괴 때 자동적으로(?)넘겨받은 기체들이다. 카자흐스탄 공군에서 운용하였지만 지금은 퇴역했다. 특기 사항으론 미그31운용국이기도 하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투르크메니스탄

이라크 소련에서 도입한 미그25를 운용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많은 활약을 한 전적으로 소련을 제외하면 그래도 이란을 상대로는 미그25를 잘 운용하긴 했지만 걸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이라는 상대와 이에 겹친 무리한 운용으로 큰 피해를 입거나 이라크전에선 아예 대적도 못하고 모래속에 파묻혀 있기까지 했다. 이라크전의 종전으로 이라크 보안군이 새로 창설된 지금은 전량 퇴역하여 미운용 상태이며 미국제 전투기로 재무장에 나서고 있다.

불가리아

벨라루스

인도

현재 운용국

알제리

리비아

시리아

각주

  1. 첫번째 것은 일반적인 쌍발기처럼 수평으로 배치,두번째 것은 엔진이 기체 하부에 배치된 형태였고 세번쩨 것은 수직으로 엔진이 포개져 있는 형태였다고 한다.
  2. 모하메드 대령은 10대의 이란기를 격추시킨 에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