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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성 : 돌로 쌓은 성
*석성 : 돌로 쌓은 성
*토석혼축성 : 토성 기반 위에 돌을 쌓거나 외벽을 돌로 만든 성. 전통적인 한국 축성방식은 이 경우가 많다.
*토석혼축성 : 토성 기반 위에 돌을 쌓거나 외벽을 돌로 만든 성. 전통적인 한국 축성방식은 이 경우가 많다.
*전축성 : 벽돌로 쌓은 성. 한국내 성의 경우 완전한 전축성은 없고 [[수원 화성]]의 경우 일부 시설물들{{ㅈ|[[서북공심돈]]이나 각종 포루들}}이 전축성에 해당한다.
*전축성 : 벽돌로 쌓은 성. 한국내 성의 경우 완전한 전축성은 없고 [[수원 화성]]의 경우 일부 시설물들{{ㅈ|[[동북공심돈]]이나 각종 포루들}}이 전축성에 해당한다.
*교축성 : 성벽 일부의 재료를 달리하거나 혼합하여 축조한 성벽이다. [[수원 화성]]이 대표적 사례
*교축성 : 성벽 일부의 재료를 달리하거나 혼합하여 축조한 성벽이다. [[수원 화성]]이 대표적 사례



2019년 2월 1일 (금) 09:06 판

개요

한국은 과거로부터 성곽의 나라라고 할 만큼 많은 성곽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그 기원은 청동기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성곽의 원시적 형태인 해자와 목책 등이 확인되어 선사시대부터 취락단위로 성곽이 존재하였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특성

한국의 성은 산의 봉우리와 능선, 계곡에 성곽을 쌓고 지형적 약점을 보완하는 각종 시설물을 배치하였다.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옹성, 치성, 망루 등 별도의 시설물을 따로 축조하지 않고도 이러한 시설물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축성되어 성곽 축조에 드는 노동력과 비용을 절감한 흔적이 보인다.

또한 한국의 성은 생활공간이 확보되는 지배층괴 피지배층의 공동 공간이었으므로 유사시 비전투력인 일반 백성들이 전투에 참여함으로씨 병력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많은 성곽(특히 산성) 내에서 학인 되는 여러 크기의 냇돌 무더기가 발견되는데 이는 전투기술을 습득히지 못한 어린이나 여성들을 포함한 백성들의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힘을 가정 적게들이고 적을 땅어할 수 있는 지형의 이점을 최대힌 휠용하여 평지성과 배후성의 배치를 갖추었다.

평지성의 경우 대개 앞쪽에 물을 이용해 천연의 저지선을 민들고 배후의 산에 산성을 동반하는 이른바 기각지세를 이루었다. 이러한 배치를 통해 하나의 성곽이 적의 공격 목표기 되면 다른 성들이 적의 배후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방어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 산성괴 평지까지를 포힘하는 산성과 나성을 결힘한 독특한 도성제도를 성립시키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성곽의 또 다른 특정은 돌을 이용한 축조기술의 발달을 들 수 있다. 물론 한국 지질 특성상 주변에 널린 암석이 화강암인지라 석재 자체는 매우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화강암이라는 단단한 암질의 석재를 다루는 것은 과거에는 매우 어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축성방식이 협축식이건 내탁식이건 관계없이, 인공으로 다듬은 석재이건 자연석이건 재료에 관계없이 한국의 성벽은 성벽 바깥 면을 정교하게 짜맞추어 매우 견고한 성곽을 축조하였다.

성곽의 구조상으로 볼 때도 우리나리의 성곽은 부대시설의 배치에있어서 산의 능선을 최대로 이용하였으며 매우 독특한 형식의 시설물도 갖추고 있다. 계곡의 중앙부엔 수문과 성문을 설치하여 통행을 편리하게 하였고, 성문은 홍예식, 평거식, 계단식, 현문, S자로 굽어드는 문, 암문 등 다양한 형식의 문을 갖추었다. 이외에 각종 양식의 옹성과 수구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이 다양한 성곽 시설물의 존재는 그만큼 기술 응용 에 있어서 지형과 각 시설물의 기능을 최적으로 조화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왜성

한국 내에는 한국인이 쌓은 전통 성곽이 아닌 왜성도 존재하는데 이는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국내에 침략한 일본군이 쌓은 성으로 해당 기간에만 한시적으로 축조된 성곽이다. 이러한 왜성들은 한국의 전통 성과는 다른 양식을 보여주지만 당시 일본 전국시대 축성 양식을 국내에서 엿볼 수 있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발전

고대국가가 성립되면서 왕경을 포함하는 도성제가 성립되었으며 한국적인 형태로 정형을 이루게 되었다. 삼국은 모두 강이나 하천을 낀 평지성과 배후에 산성을 구축한 특별한 전통을 갖추었다. 북방에서 영토의 확장과 국력의 증강을 꾀하였던 고구려는 일찍부터 축성술이 빌달 하였으며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리 산성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고구려 초기의 성곽은 대부분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산꼭대기에서부터 골찌기에 걸쳐 정연하게 성돌을 쌓아올 린 형태로 평지성인 왕성과 배후에 자리한 산성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다가 평양 천도 이후 산성과 평지성이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도성체제를 갖추었다. 이외에 고구려는 교통로의 요충지에 해당히는 협곡에 차단성을 쌓고 높은 산정에 군사적 조망과 봉수대의 기능을 히는 보루등 기능적측면을 강조한 성곽을 많이 축조하였다

삼국 중에서 가장 많은 성곽을 축조한 것으로 알려진 백제는 궁성을 포함하여 배후의 산과 시가지 를 포함하는 나성을 갖춘 독특한 도성 체제를 구축하였는데 이러한 나성은 고려와 조선에도 이어졌다.

신라는 비록 삼국 가운데 가정 늦게 성장하 였으니 견고한 성곽 축조를 통해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다.통일신라시대에는 오소경이 정립되띤서 낮은 구릉의 읍성괴 그 배후의 산성으로 이루어지는 배치가 정형회 된다 실제 중원경(현 충주지역)에는 평지의 충주읍성괴 배후의 충주산성 대림산성이 축조되고, 현재의 청주에 해당하는 서원경에는 청주음성괴 배후의 우암산성과 상당산성이 짝을 이루고 있다‘이러한 경향은 고구려식 산성 제도가 남쪽으로 확대되면서 도읍의 기본적인 구성은 물론 지방 도시끼지 같은 계획하에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통일신라시대에 완성을 본 축성술은 고려시대가 되면서 읍성산성이 분리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산성은 대규모의 대피용으로 이용되었다. 이렇게 읍성과 산성이 분리되면서 산성은 보다 험히고 높은 곳에 축조되는 대신 성벽의 높이기 낯이지고 성벽의 너비가 좁아지는 특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외서는 성곽의 변화기 크게 일어났다. 조선 초기에는 국경지대에 성곽 축조가 집중되었고 내륙에는 읍성이 대대적으토 축조, 정비되면서 내륙에 자리한 산성의 가능이 점차 약해지게 되었다. 또한 화약과 화포의 시용이 증가하띤서 성곽의 성벽이 낮아지고 옹성과 치성, 해자를 동반히는 시설들이 증가하였지만 규모가 큰 산성만을 주로 사용하면서 기존에 사용되던 작은 규모의 산성들은 폐성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모습은 결과적으로 왜란과 호란에서 많은 허점을 드러내게 되었고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도성의 방비가 강조되었다. 남한산성, 북한산성, 강화도 일대에 대대적인 성곽 정비가 단행되는 등 한양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역의 성곽과 행궁이 강화된 것이 이 시기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축조된 수원 화성은 한국 성곽 기술의 총체적 집합제리고 할 수 있다

도성(읍성 포함)과 산성 이외에도 우리니리에는 장성도 함께 축조되었다. 기록상으로는 백제가 북방의 침입을 저지히가 위해 쌓은 청목령~서해에 이르는 장성이 가장 앞선 기록으로 나타나며 이후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았고 신라는 패강장성과 동북장성, 관문성을,고려시대에는 압록강 입구부터 동해안의 정평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았다. 이들 장성은 산성들을 연결하는 구조로 중국의 장성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세종때 입록강과 두만강 방면 행성의 축조료 이어지는 등 역시 후대까지 계속되었다

분류

축성 재료에 따른 분류

  • 목책성 : 목책을 쌓아서 만든 성
  • 토성 : 흙으로 쌓은 성
  • 석성 : 돌로 쌓은 성
  • 토석혼축성 : 토성 기반 위에 돌을 쌓거나 외벽을 돌로 만든 성. 전통적인 한국 축성방식은 이 경우가 많다.
  • 전축성 : 벽돌로 쌓은 성. 한국내 성의 경우 완전한 전축성은 없고 수원 화성의 경우 일부 시설물들[1]이 전축성에 해당한다.
  • 교축성 : 성벽 일부의 재료를 달리하거나 혼합하여 축조한 성벽이다. 수원 화성이 대표적 사례

성이 있는 지형에 따른 분류

성의 기능에 따른 분류

  • 도성 : 국가의 수도가 있는 곳. 한양도성이나 반월성이 해당한다.
    • 궁성 : 궁궐을 둘러싼 성. 한국의 경우는 성이라기 보다는 궁궐을 둘러싼 담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 행재성 : 왕이 행차하는 행궁이 자리한 성. 수원화성, 남한산성, 북한산성이 해당한다
  • 읍성 : 지방 행정의 중심지가 되는 곳에 자리한 성
  • 창성 : 국가에서 지은 창고(군량, 물자, 세곡, 무기고 등)가 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쌓은 성
  • 군사적 목적의 성
    • 수영성 : 수군 기지인 수영이 주둔하고 있던 성. 현존 수영성은 충청수영성 1곳이 유일하다. 편의상 진성
    • 병영성 : 육군 기지인 병영이 주둔하고 있던 성. 현존 병영성은 강진의 전라병영성과 울산의 울산병영성이 남아있으며 그 외에 상당산성이나 공산성, 진주성은 읍성과 병영성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였다
    • 진성 : 군사기지 목적으로 쌓은 성
    • 관문성[2] : 주요 길목의 관문이 되는 곳에 쌓은 성. 현존 관문성의 대표 사례로는 조령 관문이 있다.

축성 방법

  • 판축법
  • 삭토법
  • 협축법
  • 내탁법

성곽용어

한국내 성 목록

현재 대한민국 내에는 2,182곳의 성곽 유적이 확인되어있다. 이는 현 대한민국 영역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북한지역의 경우 현재 정확한 실태 파악은 어려운 상태이다.


각주

  1. 동북공심돈이나 각종 포루들
  2. 경주에 있는 장성인 관문성과는 무관하다
문화재청.png
이 문서의 일부는 문화재청한국성곽 용어사전 문서 2007년 발간 특정판을 원출처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