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

(반월성에서 넘어옴)
경주 월성
월성.JPG
건축물 정보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387-1번지
대지면적 201,116 m2
문화재 정보
종목 사적 제16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개요[편집 | 원본 편집]

경주 월성(月城)은 신라의 궁궐이 있었던 도성으로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겨먹었다고 하여서 반월성(半月城)이라고 부르거나 신월성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왕이 있는 성이라 하여서 재성(在城)이라 불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이 곳에 처음 성을 쌓은 것은 파사 이사금 22년(101년)으로 이전의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겨왔으며, 이후 문무왕 시기에 안압지임해전, 첨성대 일대가 편입되면서 성의 규모가 보다 확장되었다. 그러나 현재 학계의 입장은 월성의 설립 시기에 관해서 삼국사기의 기록대로인 파사왕대설, 4세기설, 문무왕 14년(675년)설 등으로 나뉜다.

전설[편집 | 원본 편집]

원래 이 곳에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석탈해가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석탈해를 사위로 삼았으며, 이후 신라 제4대 왕인 탈해 이사금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특성[편집 | 원본 편집]

성의 동쪽과 북쪽, 서쪽은 흙과 돌을 혼합하여 쌓았으며, 남쪽은 자연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및으로는 방어시설인 해자가 일부 복원되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동궁과 월지로 통하던 문터가 그대로 남아있다.

발굴 및 복원[편집 | 원본 편집]

아직 월성일대는 완전한 발굴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다만 전파를 이용한 지표 탐사결과 성 내부에 수많은 건물터가 그대로 땅 속에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어느 정도 건물지의 위치가 확인된 상황이다.

월성의 복원사업은 2006년에 시작하여, 기본적인 물리탐사를 하였으며, 여기서 11개의 문터와 6개의 건물터를 확인하게 되었다. 이후 3D영상복원을 먼저 시행하여서 어느 정도 대략적인 당시 모습을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2015년 현재까지의 발굴 및 복원상황은 당시의 해자 시설을 일부 복원한 상태이며, 월정교 역시 복원이 완료된 상태이다.(다만 이 월정교의 복원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다) 해자는 계속해서 발굴중인 상태이며, 이 결과에 따라서 월성의 정확한 본래 규모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발굴사업은 2025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며, 2015년 현재 진행중인 내외부의 발굴조사를 비롯하여 왕궁유적의 복원, 궁궐, 문, 전각 등의 주요 유적까지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