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심돈

창룡문 옆의 북동노대에서 바라본 동북공심돈의 모습
  • 東北空心墩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수원 화성의 요새시설 중 하나로 화성의 북동쪽 방위의 시야확보를 위해 건설된 요새시설이다. 높이는 약 5.4m, 바깥쪽 둘레가 약 38m정도의 크기에 달하는 시설로 맨 꼭대기층에 올라서면 수원 화성 전체가 조망될 정도로 너른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특성[편집 | 원본 편집]

동북공심돈의 원형은 중국 요동의 계성에 있는 평돈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요동의 계성은 중국을 오가는 조선의 사신들이 지나는 길목에 있는 성으로, 그 모습이 사신들을 통해 조선에 알려졌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서북공심돈과는 달리 성벽의 성가퀴와 살짝 떨어뜨려서 공심돈을 건설하였으며, 내부의 계단도 단순한 목조 계단이 아니라 벽돌로 반시계방향으로 돌아서 올라가게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모습이 마치 소라껍질의 형태와 비슷하다고 하여서 "소라각"이라는 별명이 붙어있기도 하다.

공심돈 전체에는 총 40개의 총안구가 뚫려있어고, 화포를 쏘기 위한 열쇠모양의 포혈이 23개가 뚫려있어서 여러 각도에서 공격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맨 최상층에도 별도의 성가퀴를 둘러놓고 포루(鋪樓)를 정면 2칸, 측면 1칸의 크기로 건설해 놓았는데 2칸 중 1칸에는 온돌시설을 갖추어 놓아서 성을 지키는 병력이 상주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내부의 나선형 계단은 올라가는 입장에서 보면 반시계방향으로 돌아가계 설계가 되었는데 이는 혹시라도 공심돈 내에 적이 침투하였을 때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올라가는 측은 우측 공간이 벽면으로 제한되고 위쪽에서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우측이 틔여있는 공간이 되어 무기를 충분히 휘두를 수 있도록 하여 방어자 입장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기타 이야깃거리[편집 | 원본 편집]

  • 수원 화성의 완공 이후 정조가 이 동북공심돈을 두고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건설된 시설물이니 한번씩 둘러보라면서 신하들에게 이 공심돈 구경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꽤나 마음에 들었었던 모양
  • 현재의 동북공심돈은 일제강점기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완전히 뽀개졌던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다. 이미 일제강점기의 사진을 보면 최상층부의 포루가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이 확인이 되며, 1920년대의 사진을 보면 외측 벽채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있다. 한국전쟁 직후의 사진을 보면 공심돈이 거의 완파되어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부서져 있는 모습이었다. 만일 누각만 날아간걸 복원한 것이었으면 화서문쪽에 있는 서북공심돈처럼 별도로 보물로 지정될 수 있었겠지만, 거의 완파 후 동시기에 재건축되다시피 한 인근 창룡문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보물급의 문화재로는 지정되지 못하게 되었다.
  • 화성성역의궤에 나타난 동북공심돈의 묘사가 좀 특이한데, 겉모습을 그린 태측도와 외측도 이외에 공심돈의 벽을 생략하고 내부를 단면의 투시도 형태로 그린 그림이 별도로 존재한다. 아무래도 공심돈이라는 시설 자체가 조선에서 처음으로 건설된 시설이다 보니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그림까지 그려넣게 된 모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