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여소야대()는 정치 현상의 하나이며, 정권을 잡은 집권여당이 의회에서 야당보다 의석 수에서 밀리는 상황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주로 분점정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장점[편집 | 원본 편집]

대통령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는 분점정부, 특히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제에 있어서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삼권분립의 원칙에 의해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가 분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집권여당이 다수파가 되어 입법부인 의회를 장악한 상황이라면 대통령의 의지대로 국정 운영을 펼치기에 용이하다. 특히 여당의 의석이 의회 정족수의 과반을 넘거나 더 나아가 개헌을 만족하는 2/3 이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에는 국가의 근간인 헌법을 여당 독자적으로 고쳐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야당의 견제 기능이 무력화 되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국가라면 집권여당과 함께 자칫 독재의 길로 빠져들 우려가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입법부인 의회를 야당이 다수파가 되어 여소야대 정국을 만드는 경우,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기능이 작동하기 용이하고 행정부와 집권여당은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하여 야당과 협치를 해야하며, 이 과정 자체가 의회 민주주의와 여소야대의 선기능으로 볼 수 있다.

단점[편집 | 원본 편집]

여당과 야당의 정치성향이나 지지층의 성향이 극단으로 갈려 갈등이 심한 상황이라면, 다수파인 야당이 여당의 입법이나 행정부의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하는 이른바 발목잡기 혹은 반대를 위한 반대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기 쉽다. 특히 대통령 선거와 의원 선거의 일정이 다르고, 대통령의 임기와 의원의 임기가 다른 경우, 행정부에 대한 민심의 중간평가 성격으로 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소수파로 전락하고 야당이 다수파로 득세하는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지기 쉽다. 이 경우 행정부에 대한 불신임이 선거로 표출된 경우에 해당하여 야당은 행정부 및 집권여당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하기 쉽고,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이 빠르게 사라져 레임덕을 초래할 수 있다. 대립이 심한 경우에는 합리적인 입법이나 정책 자체가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폐기되는 상황도 발생하게 되어 국민들의 정치혐오를 더욱 부추길 우려도 높아진다.

사례[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 정치에 있어서 여소야대가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시기는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면서 탄생한 제6공화국 이후로 보는 편이다. 그 이전에는 의회정치가 빈약했고 특히 박정희전두환 두 정치군인이 권력을 장악한 군사정권 시절에는 야당 정치인들을 대놓고 가택연금, 투옥 등으로 손발을 잘라버리거나 계엄령을 발동하여 국회를 무력화시키는 등 독재가 횡횡했기 때문이다.

  • 노태우 정부
    노태우가 총재로 재임하던 집권여당 민주정의당6.29 선언으로 국민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이후 치러진 제13대 대선에서 유력했던 야당 정치인들인 김영삼김대중이 끝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각자 야권 표를 분산시켜 어부지리격으로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정권 출범부터 여당인 민정당은 127석에 불과한 의석 수로 국회 과반을 달성하지 못하였고, 야권에서는 하나된 목소리로 5공 청산을 위한 청문회를 개최하는 등 정국 주도권을 빼앗긴 전형적인 여소야대에 직면했다. 야권은 전 국민적인 지지에 힘입어 5공 청산을 내걸면서 전두환을 비롯한 5공 실세들을 청문회에 불러들여 질타를 가했고, 신군부 출신이자 5공화국 출범에 적지않은 기여를 했던 노태우는 자칫 식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난국을 타파하기 위하여 노태우가 꺼내든 비장의 카드가 바로 3당 합당이라는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사건으로, 야당이던 통일민주당(김영삼)과 신민주공화당(김종필)을 끌어들여 일거에 217석을 확보한 공룡 여당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다. 이로 인해 졸지에 김대중이 이끌던 평화민주당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초라한 야당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3당 합당은 인위적인 정계계편으로 여소야대를 한 순간에 여대야소 국면으로 전환시킨 사건이었다.
  • 김영삼 정부
  • 김대중 정부
  • 노무현 정부
    전임자 김대중과 같은 민주당 후보인 노무현이 당선되어 정권 재창출을 실현하였으나, 당시 한나라당은 여전히 국회 과반을 넘기는 거대 야당이었고, 지자체장들 역시 한나라당이 다수를 점유하던 상황이었다. 거기에 노무현의 지역구도 타파를 기치로 기존 민주당의 권력 구조를 인위적으로 개편하려는 시도가 이뤄졌지만 극심한 계파갈등이 난무한 끝에 결국 친노계의 열린우리당이 따로 떨어져 나오면서 그렇지 않아도 여소야대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던 노무현 정부는 커다란 난국에 직면하였다. 한나라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무현 비토정서가 강했던 새천년민주당과 연합하게 되었고, 마침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의 발언을 문제삼아 선거개입 혐의로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소추를 가결시키기에 이른다.(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가결됨에 따라 법률에 의거하여 즉시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었고, 당시 국무총리였던 고건이 권한대행을 수행했다.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에 대한 심리를 진행한 끝에 탄핵소추가 기각되면서 무리한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범 야권은 국민적인 역풍에 직면하였고, 그 결과로서 17대 총선에서 여당 열린우리당이 152석의 과반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여소야대가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신진세력을 중심으로 노무현 정부의 기조와는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고, 대통령과 여당의 불협화음이 빈발한 끝에 열린우리당은 지리멸렬하며 노무현의 레임덕이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턱걸이로 과반을 확보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탈달하면서 힘들게 끝냈던 여소야대 정국이 다시 재현된 것은 덤.
  • 이명박 정부
  • 박근혜 정부
    보수정당 후보인 박근혜가 당선되면서 보수정권 재창출이 이뤄졌지만, 박근혜의 실정으로 국민적 반감이 높아진 끝에 20대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122석에 그친 반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이 되면서 새누리당은 졸지에 여소야대는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에게도 의석 수에서 밀리는 참패를 당했다. 물론 이후 무소속 의원들 중에서 친여권 인사들이 새누리당에 복당하면서 7석을 더 확보하긴 했으나 여전히 국회 과반에 한참 못미치는 숫자였으므로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또한 새누리당 내부적으로도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와 친박계가 극심한 계파갈등을 표출했고, 주도권은 잡은 친박계가 친이계를 대거 공천에서 제외시키는 이른바 공천학살이 이뤄졌기 때문에, 총선 이후에도 당내 갈등은 쉽사리 통합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었고, 야권에서는 전 국민적인 대통령 퇴진 여론에 힘입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상정했고,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비박계를 중심으로 탄핵소추에 찬성하는 기류가 형성되면서 물흐르듯 탄핵소추가 가결되었고, 박근혜의 직무는 정지되었다. 또한 비박계를 중심으로 새누리당을 탈당하며 바른정당이 탄생하였고, 새누리당의 의석은 94석까지 쪼그라들어 개헌저지선도 무너졌다. 최종적으로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 심리끝에 인용되면서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파면되는 장면이 연출되었고, 새누리당은 여당의 지위마저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후 이미지 쇄신을 위해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변경하였다.
  • 문재인 정부
    탄핵 정국에서 치뤄진 19대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무난하게 당선되면서 자연스럽게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국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로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었으며, 당시 캐스팅보트로 주목받았던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과 연대하는 대신 비박계를 중심으로 따로 떨어져나온 바른정당과 합당을 선택하여 바른미래당을 출범시켰고, 이 과정에서 합당에 반대하던 국민의당 소속 의원들이 민주평화당을 구성하면서 군소정당으로 남게 되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어떻게든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복잡하게 분열된 야권과 연대를 모색했지만,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던 바른미래당 역시 내분을 겪으면서 구 새누리당 출신 의원들이 탈당하여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하면서 이합집산이 심화되었다. 다시 세력이 초라해진 바른미래당은 손학규를 중심으로 호남계 의원들이 주축이 된 민생당으로 결집했고, 상황을 지켜보던 안철수가 다시 국민의당을 재창당하며 복잡한 야권 개편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야권 분열에 힘입어 친문계를 중심으로 뭉친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에서 무려 180석을 가져가면서 여소야대 정국이 마무리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도의 헛점을 공략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하면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는 꼼수를 부렸고, 이에 질세라 더불어민주당도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하면서 맞불작전을 펼쳤으며 결과적으로 양당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가 위성정당 창당으로 변질되어 양당체제가 더욱 공고해지고 말았다.
  • 윤석열 정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및 유력 여권 정치인들의 권력형 성범죄나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정권심판론이 크게 대두되었고, 이러한 기류속에 치러진 20대 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이 민주당 후보 이재명을 0.78% 차이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두면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순식간에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여당에서 야당으로 처지가 바뀌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180석의 거대 야당을 상대로 국정운영을 해야하며, 21대 국회의원 임기도 2년 정도 남아있는 상황이기에 윤석열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치고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2년 후 22대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타파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