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칠란트급 장갑함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Panzerschiff der Deutschland Klasse
Bundesarchiv DVM 10 Bild-23-63-06, Panzerschiff "Admiral Graf Spee".jpg
어드미럴 그라프 슈페
선박 정보
종류 장갑함(중순양함)
건조 3척
운영 독일(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
취역 3척
퇴역 전 함 격침 및 자침[1]
정원 1590명
제원
엔진 MAN 디젤추진 보일러 ×8
2축 터빈
속도 28~29 노트
무장 28.3cm L/52 3연장 함포탑 ×2
15cm 함포탑 4기
항공기 아라도 Ar196 수상기
전장 190m
선폭 22m
흘수 7.3m
배수량 12,100톤
16,200톤 (만재)
Lützow ONI.jpg

도이칠란트급 장갑함(Panzerschiff der Deutschland Klasse)은 독일국[2]중순양함이다.

포캣전함이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함정으로 도이칠란트라는 이름[3]이 가진 상징성 때문에 뤼초로 개명되었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바이마르 공화국의 구식 전드레드노트 전함 대체를 위해 건조되어 건조 당시에는 장갑함으로 분류되었지만 차후 재분류 과정에서 중순양함이 되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건조[편집 | 원본 편집]

실전[편집 | 원본 편집]

전간기[편집 | 원본 편집]

건조되었을 당시부터 영독 해군조약(1935년) 채결 전까지 전간기 독일 최강의 함정으로, 독일 영해 내 제해 임무를 맡으며 사실상의 전함 역할을 하였다.

대외적으로도 독일 국가해군[4]의 총기함을 맡으며 각종 해외 행사에서 독일 해군을 대표하였다.

대전기에 접어들면서 대서양의 통상파괴전에 투입되었고 그라프 슈페의 전과와 베저위붕 작전에 참가한 뤼초의 사례가 유명하다.

1936년 독일이 스페인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며 크릭스마리네에서는 주역 함정인 도이칠란트와 어드미럴 셰어를 대표로 스페인 해역에 파견했고 나중에 그라프 슈페까지 활동하게 된다 파견된 도이칠란트급 함정들은 프랑코 국민군으로 향하는 독일군의 해상 물자를 엄호하였고 공화군 쪽으로 향하는 소련 물자들을 감시하는 한편 스페인 공화군 측 해군을 견제하는 초계 활동을 벌였다.

이때까진 직접적인 개입을 배제하는 원칙에 의해 주로 비전투 임무에 참여하였으나 1937년 5월 29일 공화군의 폭격기(투폴레프 ANT-40)가 항구에 정박해 있던 도이칠란트를 국민군의 함정으로 오인하여 폭격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3발의 폭탄에 피격된 도이칠란트에선 31명이 사망하고 74명이 부상당하였고 크릭스마리네는 다음날 보복 공격을 감행해 셰어를 비롯한 파견 함정들로 공화군의 거점도시인 알 메리아 에다 포격을 가했다. 여기서 어드미럴 셰어는 200발의 포탄을 소모하여 70여명의 사상자를 냈고[5]와 다수의 시설을 파괴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편집 | 원본 편집]

1939년 전쟁이 발발할 시점 일주일 전 북대서양으로 나가 있던 도이칠란트는 통상 파괴임무를 준비하였고 폴란드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북대서양의 항로를 차단하며 다수의 영불 상선들을 격침 및 나포하였다.

도이칠란트와 비슷하게 전쟁 발발 전 자매함들 중 가장 멀리 나가있었던 어드미럴 그라프 슈페 역시 1939년 9월부터 남대서양 항로를 통행하는 연합군 선박을 공격해 5척을 격침시키는 위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슈페의 활동으로 위협을 느낀 영불 해군은 슈페를 저지할 연합 함대를 [6] 남대서양으로 파견하였고 이윽고 우루과이아르헨티나 사이의 라플라타 강 어귀에서 슈페를 포착했으며 이윽고 영국 순양함들이 슈페와 조우한다. 영국 중,경순양함들과 교전을 결정한 슈페는 포격으로 한 척을 대파에 가깝게 두들겼고(HMS 엑세터) 교전에 참여한 다른 두 척도 포탑을 타격하는 피해를 주었지만 슈페는 전투엔 지장이 없는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슈페 역시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고 식수시설 등 기반시설의 파괴로 원양 작전이 불가능해진 채로 어귀에서 후퇴하였다. 곧 이어 시작된 영국 해군의 추격 속에 중립국인 우루과이 항구로 피신한 그라프 슈페는 72시간 동안만 기항 후 떠나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고 영국 해군이 온다는 잘못된 정보까지 받게 된다. 이에 본국과의 논의 끝에 결국 자침이 결정되었고 12월 18일 항구 외해에서 자폭, 침몰한다.

불타는 그라프 슈페

그해 11월 귀환한 도이칠란트는 1940년 중순양함으로 재분류되어 뤼초란 함명을 부여받는데, 함명이 독일 그 자체인지라 마침 소련으로 팔려가며 공석이 된 중순양함 뤼초의 이름을 가져온다.[7]

한편 전쟁이 발발한 시점에서 항구에 정박해 있던 셰어는 5대의 영국 브리스톨 블레넘 폭격기의 공습을 받게 되는데, 셰어를 명중시킨 폭탄 하나는 불발탄이라 피해를 주지 못했고 나머지는 근처 바다에 떨어져 폭발했다.

1차 공격에서 브리스톨 폭격기 1대를 격추시킨 셰어는 이어진 2파 공격에서 5대의 폭격기 중 4대를 격추하였고 큰 손상 없이 생존하였다.

재분류 이후 개장을 마친 도이칠란트(이하 뤼초)는 1940년 노르웨이를 침공(베저위붕 작전)하는 함대에 합류하여 오슬로를 공격하는 6개의 함대 중 5그룹[8]에 들어간 뤼초는 4월 8일 400여명의 독일 지상군 병력을 태우고 함대와 함께 항구를 출항했다. 자정 무렵 짙은 안개를 뚫고 오슬로 인근 피요르로 진입한 5그룹은 나쁜 시계 덕에 해안 포대들의 사격을 피할 수 있었으나 토브룩 해안에서 엠덴이 기뢰와 접촉하며 일정이 지체되었고 그 사이 독일군의 침공을 인지한 노르웨이군의 집중 포격이 시작되었다.

203mm 해안포와 어뢰의 집중 공격을 받은 블뤼허가 침몰하는 동안 뤼초도 요새에서 발사된 15cm 포탄을 얻어맞아 포탑과 갑판, 항공기 격납고가 손상을 입었고 결국 퇴각하여 피요르 밖에다 병력을 상륙시켰다. 뤼초는 손상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인 4월 9일 까지 해안 요새들에 포격을 가해 지상군을 지원하였고 오슬로 점령이 마무리 될 즈음 손상으로 5그룹에서 이탈, 독일로 귀환한다.

그러나 귀환하던 뤼초는 영국 잠수함 HMS 스피어피쉬의 뇌격을 받아 함미가 절단 직전까지 가는 큰 피해를 입었고 자력 항해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항구로 예인되어 장기간 수리를 받게 된다.

1940년 10월, 뤼초가 항구에서 골골대던 시기, 덴마크 해엽을 빠져나온 셰어는 대서양으로 진입하며 2차대전에서 첫 실전에 돌입하였다. 남대서양의 항로를 급습하는 작전으로 셰어는 크릭스마리네의 수상함정들 중 가장 화려한 통상 파괴전을 벌이게 되었고 작전 종료 때까지 약 11만 3천톤에 달하는 총 격침 톤수를 달성하였다. 또한 크릭스마리네의 수상함정들 중 유일하게 대서양 외부로 진출한 함정이기도 하며 비록 잠깐이지만 인도양까지 진출한 이력이 있다. 이후 셰어는 독소전으로 인해 노르웨이에 배치되어 소련으로 향하는 호송선단을 견제하였다.

그 와중에 겨우 살아난 뤼초는 1941년 말이 되어서야 항구를 떠날 수 있었다. 전열에 복귀한 뤼초는 1942년 말 전투 임무에 투입되는데, 노르웨이에서 전함 티르피츠가 철수하면서 북극항로에서 전력 공백이 발생했고 크릭스마리네의 건재함을 보여줘 영국 호송전단을 위축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중순양함 어드미럴 히퍼와 5척의 구축함으로 이루어진 전단이 영국 해군을 상대하는 동안 뤼초가 호송전단을 타격한다는 레겐보겐 작전(무지개 작전)을 수립하게 되고 12월 25일 작전을 개시한다.

30일, 유보트로부터 호송전단 위치를 전달받은 함대는 바렌츠 해에서 영국 선단과 조우하고 교전에 들어가는데, 히퍼와 구축함 전단이 교전을 벌이는 동안 뤼초는 구축함 3척과 선단 색출에 나서 영국 호송선단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짙은 안개로 전방의 선단이 아군 함대일 가능성과 함께 적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교전을 회피하라는 수칙 때문에 뤼초는 목표를 눈앞에 놓고 물러났으며 결국 아무 성과 없이 철수한다.[9]

전후[편집 | 원본 편집]

설계 및 성능[편집 | 원본 편집]

공격력[편집 | 원본 편집]

포켓 전함이라는 별명답게 3연장 28.3cm L/52 포탑 2문을 보유한 도이칠란트급은 모두 6문의 283mm의 함포로 무장한 순양함으로, 포문 수는 적으나 통상 중순양함 함포 구경인 203mm 를 훨씬 상회하는 화력을 갖췄다.

방어력[편집 | 원본 편집]

주요 현측 장갑대(장갑 벨트)의 두께는 80mm, 갑판 장갑의 두께는 45mm 였으며 주포탑 전면은 140mm 정도였다.

항해 능력[편집 | 원본 편집]

동급 함정[편집 | 원본 편집]

도이칠란트
어드미럴 셰어
어드미럴 그라프 슈페

둘러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자침: 3번함 그라프 슈페.
  2.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독일.
  3. 유래는 당연히 독일.
  4. 크릭스마리네 창설 전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의 해군이다.
  5. 사망 19명.
  6. 항모 4척, 전함 2척, 순양전함 1척과 여러 순양함들로 구성되었다.
  7. 팔려간 '어드미럴 히퍼급' 5번함 뤼초는 소련 해군에 배치되었고 그 뒤 그녀의 운명은... 항목 참조.
  8. 대서양 방면의 항구를 공격하는 나르빅 행 1그룹(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 트론헤임 행의 2그룹(중순 어드미럴 히퍼와 구축함 4척), 베르겐 행의 3그룹(경순 퀴니히스베르그와 쾰른, 어뢰정 6척과 수송함)이 있었고 수도인 오슬로를 공격하는 5그룹(중순 블뤼허, 뤼초, 경순 엠덴, 어뢰정 및 소해정 다수)이 사실상의 주공이었다. 이 외에 크리스티안달, 아렌델을 공격하는 4그룹, 에게르순을 공격하는 6그룹으로 나뉘었다.
  9. 어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