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

근대 시대부터 등장한 해상 무기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함은 1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온 개념으로, 그 이전의 전함을 찾는다면 전열함이라는 대형 범선을 이런 식으로 부르기는 했다. 근데 더 넓은 의미로 보면 '무장한 배' 라는 의미로 모든 배들을 전함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당장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판옥선이나 세키부네같은 목재함들을 전함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하지만 전함과 비슷한, 전선의 화력을 담당하며 맷집(...)을 책임지는 함급 자체는 미국남북전쟁때 처음으로 나온 개념으로 보인다. 당시 등장한 전함은 철갑선으로, 철갑선 자체는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목재 토대 위에 철판을 씌워놓은 이전의 철갑선들과는 다르게 이 시대의 배들은 배 전체를 금속으로 만든 본격적인 개념의 철갑선이었다.

당시의 철갑선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최초로 전투를 벌였던 남군의 버지니아 호와 북군의 모니터 호가 있는데, 당시의 전투는 서로의 구식 대포가 서로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무승부로 끝났다.

이후, 이런 상황은 전함의 타격력이 증대되고 본격적인 회전식 포탑[1]이 장착되게 되면서 이른바 전노급 전함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후 1892년 영국 해군이 정식으로 "Battleship" 함급을 채택함으로써 본격적인 전함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이후 세계 각국은 해군력에 우위를 두기 위해 건함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당시에는 조준 기술이 미달하여 근거리 전투를 상정하고 다수의 부포와 소수의 주포를 둔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 주류였다. 그러나 1900년이 지나자 전함의 교전거리가 길어지게 되면서 전함은 한계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은 사거리와 용도에 따라 주포와 부포의 구경이 제각각 달랐고, 위력과 사거리가 각각 달라 제대로된 화력투사가 어려웠다.[2] 세계 여러 열강들은 긴 교전거리에서도 효과적인 우위를 두기 위해 전함을 개발해내기 시작했다. 1906년, 영국에서 HMS 드레드노트 (Dreadnaught)라는 전함을 건조하고 취역하게 되자, 세계 여러 열강들은 놀랐다. 당시 이 전함은 기존의 전함보다 우월한 기술이 적용되어 있었는데, 대구경 주포를 대량으로 탑재했다. 이전의 전함들은 주포보다 부포를 집중적으로 배치해서 효율성이 떨어졌지만, 드레드노트는 배수량의 한도 내에서 대구경 주포를 대량으로 탑재해서 화력을 대폭 강화시켰으며, 사격관제는 개별이 아닌 사령탑에 위치한 포술장의 명령에 따라 통일된 사격관제술을 이용해 주포의 집탄을 늘려 집중된 화력투사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 뿐만 아니라, 기존의 증기기관 대신 증기터빈을 장착하여 고속을 낼 수 있었고, 상대의 전함이 나랑 비슷하다고 상정하여 적의 공격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대응방어라는 개념이 추가되었다.

이 드레드노트의 등장으로, 기존의 전함들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고, 영국은 이 전함의 등장으로 전 세계의 그 어떤 전함과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그래도 비싼 전함의 건조 비용이 배로 늘어나서 재정 파탄의 우려가 있었고, 이 전함의 등장으로 인해 전 세계 여러 열강들이 너도나도 드레드노트와 비슷한 전함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잇따라 건조하게 되면서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다른 드레드노트급 전함보다 우위를 가지기 위해서 이런저런 기술력을 넣다보니 전함의 건조비용이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건함경쟁에 있어서 최정점을 찍은 나라가 영국과 독일이었다[3].

아무튼 당시 전함의 위상은 오늘날의 항공모함이나 핵무기와 거의 동등한 위치에 서있어 국력을 가늠하는 강력한 무기로 인식되었고, 전함을 많이 보유한 국가=강력한 국가라는 공식이 확증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의 열강들은 1차 세계대전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군사력에 엄청 큰 제한을 걸어두었고, 각종 신병기 개발, 전력 규모 등 많은 부분에서 제한을 두고 있었다. 그중에서 전함도 단연 포함이 되어있었다. 전 세계의 열강들은 1921년 워싱턴에 모여서 해군의 군비경쟁과 군사력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기존의 전함을 퇴역시키고, 신규 전함의 건조가 취소되었다.

하지만 이런 전함도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는데, 2차세계대전 당시 위력을 입증한 항공모함때문이다. 일본미국의 뒷통수를 맛깔나게 후려친 진주만 공습때 바로 이 항공모함이 사용되었는데, 4척의 항공모함과 350여기의 항공기를 동원한 대규모 공습으로, 항공모함은 그 위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며 차세대 주력함급으로서 화려하게 실전에 데뷔하게 된다.

이후 전함은 그저 항공모함의 호위역할에 머무르는 신세가 되었고, 가성비때문에 토마호크 포대로 사용되다 90년대 초반 아이오와 급의 퇴역으로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시대별 전함 발전사[편집 | 원본 편집]

제2차 세계 대전 사양 전함 목록[편집 | 원본 편집]

미국[편집 | 원본 편집]

영국[편집 | 원본 편집]

독일[편집 | 원본 편집]

프랑스[편집 | 원본 편집]

이탈리아[편집 | 원본 편집]

일본[편집 | 원본 편집]

관련 문서[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위에서 설명한 모니터 호는 회전식 포탑이 있었다. 근데 버지니아 호그런 거 없다.
  2.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한계가 잘 드러난 전투가 러일전쟁 당시에 일어났던 쓰시마 해전에서 일어났다.
  3. 이 두 국가는 보다 절대적 우위를 가지기 위해서 전함을 대량으로 건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정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는 해군의 몰락으로 가져왔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해 대량의 배를 잃어버렸고, 영국은 전쟁 이후 해군력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서히 쇠퇴하여 이전의 위상을 잃어버렸다.
  4. 이 당시의 철갑범선에는 증기기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