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Hornet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4월 30일 (일) 23:06 판

추미애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2024년 현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생애

대구광역시에서 세탁소집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이후 사법고시에 통과하였으며, 당시 영호남 지역감정이 심했던 시대 상황상 영호남 사람 사이에 결혼을 꺼렸던 분위기가 팽배했는데, 추미애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라북도 정읍시 출신의 남편과 결혼에 성공하였다.[1]

이후 1995년 8월 27일에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를 지낸 김대중의 도움을 받아 정계에 입문한다. 1997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선거 당시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면서 높은 대중성에 강한 돌파력, 그리고 추진력을 바탕으로 '강한 여성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심으며, 15대, 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그녀는 당내 개혁적 소장파 그룹인 '푸른정치모임'에 속하면서 지금은 국민의당으로 가거나 정치생명이 끝난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과 함께 정풍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1]

2002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에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선대위에서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이끌며 '희망돼지 저금통'을 들고 거리로 나가 노무현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면서 성금을 끌어모은 덕분에 '돼지엄마'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돼지아빠'라는 별명을 얻은 정동영 의원과 함께 '돼지부부'로 불리기도 했다.[1]

그러나, 2003년에 민주당에서 친노 성향의 국회의원들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둘로 쪼개지는데, 추미애는 열린우리당 합류를 거부하고 민주당에 남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녀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한 대중들의 분위기가 냉랭한 상황에서 광주광역시에서 삼보일배를 하며 대국민 사죄를 하면서까지 자존심을 굽혔으나, 패배하여 정치 생명이 벼랑끝에 몰리고 말았다.[1]

이후 추미애는 2년 동안 미국 유학길에 오르며 와신상담하였으며, 2007년에 민주당을 탈당하고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며 정치활동을 재개했으나, 컷오프에서 광속탈락당하고 말았다. 이후 2008년에 열린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명박의 뉴타운 공약에 한나라당에게 수도권 민심을 뺏긴 상황에서도 광진 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2009년에는 노동법 개정안 날치기 통과 사건에 휘말려 2개월간 당원권이 정지당하는 시련을 맞기도 하였다.[1]

2016년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진구 을의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로써 추미애는 여성으로는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원 5선에 성공하게 되었다.[2]

2016년 8월 27일,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당 대표로 선출,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최초로 TK(대구·경북) 출신의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

2017년 4월 4일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의 상임선거대책위원회장으로 임명되었다.[3]

2017년 4월 22일 오후에는 전라북도 전주시 삼천동 삼익수영장 인근 로터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유세 현장에서 “이번 대선은 10년 만에 돌아온 기회로, 기필코 유서를 쓰고라도 정권교체를 해야한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서는 “민주당을 걷어차고 나가신 어떤 대표는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적자'라고 하면서 아무하고나 손잡을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겨냥했다.[4]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