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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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 정보 | box-width = 275px | 이름 = 어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 | 그림 =800px-PE Atomtest 1.jpg| 그림 설명 = 최후를 앞둔 3번함 프린츠 오이겐<ref>크로스로드 작전 때 찍힌 것으로 수중 핵폭발에 의해 격침되었다.</ref>| 제식명 = 어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 | 함번 = | 함급 = | 함종 = [[중순양함]] | 운용국 ={{국기|독일}}(나치 독일) | 건조 =5척 | 진수 = | 취역 =4척 | 퇴역 = 전 함 격침 밎 폐함 | 모항 = | 기준 배수량 = 14247~16170톤 | 만재 배수량 =18500톤 | 전장 = 202.8m | 선폭 = 21.3m | 흘수 = 7.2m | 승조원 =1382~1600명  | 동력원 =라몬트 중유 보일러 12대<br>3축 3엽 스크루 | 추진력 =133,631 마력 | 속도 = 32.7 노트(최대) | 항속거리 =  | 주포 =SK/C34 20.8cm 60구경장 2연장 주포탑 4기 | 부포 =Flak 10.5cm L/65 × 12<br>3.7cm SK C/ 30 ×12<br>2cm Flak 38 대공포 ×8| 미사일 = | 어뢰 =533mm 12연장 어뢰 발사관  | CIWS = | 기타 = | 레이더 = 사격통제레이더| 전자전 = | 소나 = | 함재기 = | 차량 = | 병력 = 상륙병력 탑승 이력<ref>베저위붕 작전 때 독일 산악사단이 2번함 블뤼허에 탑승했다.</ref> | 기타 = }}  
{{선박 정보
|선박이름 = 어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
|원어이름 = Admiral Hipper klasse Schwere kreuzer
|그림     = [[파일:PE Atomtest 1.jpg]]
|그림설명 = 최후를 앞둔 3번함 프린츠 오이겐<ref>크로스로드 작전 때 찍힌 것으로 수중 핵폭발에 의해 격침되었다.</ref>
|종류    = [[중순양함]]
|선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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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    = {{나라|나치 독일}}
|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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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     = 전 함 격침 밎 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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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량  = 14247~16170톤<br />18,500톤 (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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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dmiral Hipper ONI.jpg|200픽셀|썸네일]]


'''어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 (Admiral Hipper klasse Schwere kreuzer)은, [[나치 독일]]의 [[중순양함]]이다.
'''어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 (Admiral Hipper klasse Schwere kreuzer)은, [[나치 독일]]의 [[중순양함]]이다.


[[나치 독일]]의 해군 [[크릭스마리네]]의 중순양함으로 [[독일]] 제국의 해군 제독 프란츠 폰 히퍼로부터 유래했다.
[[나치 독일]]의 해군 [[크릭스마리네]]의 중순양함으로 [[독일]] 제국의 제독 프란츠 폰 히퍼로부터 유래했다.
==개요==
==개요==
[[File:Admiral Hipper ONI.jpg|240픽셀|썸네일]]
크릭스마리네 내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한 수상함으로 노르웨이 침공과 [[비스마르크 추격전]] 등, 대서양 전역에서 벌어진 여러 작전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다.
크릭스마리네 내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한 수상함으로 노르웨이 침공과 [[비스마르크 추격전]] 등, 대서양 전역에서 벌어진 여러 작전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다.


초도함인 어드미럴 히퍼와 3번함인 프린츠 오이겐이 잘 알려져 있고 모두 5척이 건조 및 진수되어 4척이 취역하였다.
초도함인 어드미럴 히퍼와 3번함인 프린츠 오이겐이 잘 알려져 있고 모두 5척이 건조 및 진수되어 4척이 취역하였다.
===성능===
==역사==
===평가===
==내역==
===건조===
===건조===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집권 이후, 제3제국 체제로 돌입한 독일국(Deutsches Reich)은 1차대전 패전으로 성립된 베르사유 조약을 깨곤 다시 재무장에 들어가게 된다.
그 과정으로 성립된 해군, 크릭스마리네는 장차 대서양에서의 작전을 위해 주변국의 순양함 전력을 상대하고 적국이 보유한 전함급 함선들의 공격을 회피할수 있는 중순양함의 보유를 실감하게 되는데, 초기에는 당시 워싱턴/런던 해군 군축조약에 맞춘 수준으로 주변국을 자극하는 것은 피하려고 했다.<ref>다만 독일은 조약 당사국은 아니었다.</ref>
그러나 처음 설계된 배수량 1만톤급의 조약형 중순양함은 요구하는 성능을 충족시키지 못하였고 크릭스마리네의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 제독은 설계를 재 검토할것을 지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파일:Bundesarchiv Bild 101I-757-0038N-11A, Norwegen, Schwerer Kreuzer.jpg|200픽셀|썸네일|산악사단을 상륙시키는 히퍼]]


===활약===
[[어드미럴 히퍼]]와 블뤼허는 노르웨이 침공 작전인 베저위붕 작전에 투입되었다.
[[어드미럴 히퍼]]와 블뤼허는 노르웨이 침공 작전인 베저위붕 작전에 투입되었다.
당시 작전 도중 트론하임 북서쪽의 히퍼는 영국 [[구축함]] 글로우웜과 조우해 글로우웜의 충각 공격을 받았으며 큰 손상을 입었으나 4월 9일 트론하임에 입성해 탑승하고 있던 병력을 성공적으로 상륙시키며 트론하임을 점령한다.  
당시 작전 도중 트론하임 북서쪽의 히퍼는 영국 [[구축함]] 글로우웜과 조우해 글로우웜의 충각 공격을 받았으며 큰 손상을 입었으나 4월 9일 트론하임에 입성해 탑승하고 있던 병력을 성공적으로 상륙시키며 트론하임을 점령한다.


그러나 상륙 함대의 기함으로, 함께 투입된 블뤼허의 결과는 좋지 못했는데, 새벽 5시 경 오슬로 점령을 위해 피요도르에 접근하던 블뤼허는 탑승한 독일군 산악부대원을 상륙시키려 하던 중 피요도르 사면에 구축된 오스카보리 요새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그러나 상륙 함대의 기함으로, 함께 투입된 블뤼허의 결과는 좋지 못했는데, 새벽 5시 경 오슬로 점령을 위해 피요르에 접근하던 블뤼허는 탑승한 독일군 산악부대원을 상륙시키려 하던 중 피요르 사면에 구축된 오스카보리 요새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요새로부터 1.8km 거리까지 접근한 블뤼허는 280mm 해안포로 집중 공격당했고 요새에서 발사한 어뢰에 피격당하며 2시간 만에 침몰하였다.
요새로부터 1.8km 거리까지 접근한 블뤼허는 280mm 해안포로 집중 공격당했고 요새에서 발사한 어뢰에 피격당하며 2시간 만에 침몰하였다.
[[파일:Senkingen av Blücher (5654566265).jpg|200픽셀|썸네일|침몰하는 블뤼허]]


당시 블뤼허는 취역한지 불과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최신함이었으나 이 작전으로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며 크릭스마리네에 큰 손실을 남겼다.
당시 블뤼허는 취역한지 불과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최신함이었으나 이 작전으로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며 크릭스마리네에 큰 손실을 남겼다.


오이겐은 1941년 비스마르크 추격전으로 알려진 라인 연습 작전에 참가해 HMS 후드와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게 명중탄을 내는 활약으로 히퍼급 중 가장 인상적인 활약상을 보여주었으나, 후드 격침 직후 연료탱크가 파손되는 손상을 입은 비스마르크와 해어져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였고 1달여 후인 6월 1일 항구로 귀환한다.
오이겐은 1941년 비스마르크 추격전으로 알려진 라인 연습 작전에 참가해 HMS 후드와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게 명중탄을 내는 활약으로 히퍼급 중 가장 인상적인 활약상을 보여주었으나, 후드 격침 직후 연료탱크가 파손되는 손상을 입은 비스마르크와 해어져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였고 1달여 후인 6월 1일 항구로 귀환한다.
그 뒤 영국 해엽 돌파작전인 캘베로스 작전에서 [[샤른호르스트급 순양전함|샤른호르스트급 전함]] 두척(샤른호르스트,그나이제나우) 과 함께 도버 해엽을 통과해 북해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고 기뢰에 접촉한 두 전함들과는 달리 무사히 킬 운하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뒤 영국 해협 돌파작전인 캘베로스 작전에서 [[샤른호르스트급 순양전함|샤른호르스트급 전함]] 두척(샤른호르스트,그나이제나우) 과 함께 도버 해협을 통과해 북해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고 기뢰에 접촉한 두 전함들과는 달리 무사히 킬 운하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다.
 
[[파일:Cruisers Admiral Scheer and Prinz Eugen at Lofjord 1942.jpg|220픽셀|썸네일|해협을 돌파한 후 수리중인 오이겐<ref>오른쪽은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어드미럴 셰어]]</ref>]]


대서양에서 북해로 무대를 바꾼 프린츠 오이겐은 1942년 2월 노르웨이로 이동하던 중 영국 잠수함 트라이던트가 발사한 [[어뢰]]에 함미를 직격당하며 대파되었다.
대서양에서 북해로 무대를 바꾼 프린츠 오이겐은 1942년 2월 노르웨이로 이동하던 중 영국 잠수함 트라이던트가 발사한 [[어뢰]]에 함미를 직격당하며 대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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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뤼초는 소련 해군에서 운용되며 자매함들과는 반대로 '독일군'을 상대로 싸웠다.
한편 뤼초는 소련 해군에서 운용되며 자매함들과는 반대로 '독일군'을 상대로 싸웠다.
뤼초가 소련 해군의 순양함이 된 것은 독소 불가침조약 때 독일이 공여한 것으로 1940년 까지 70%가 건조되었다.  
뤼초가 소련 해군의 순양함이 된 것은 독소 불가침조약 때 독일이 공여한 것으로 1940년 까지 70%가 건조되었다.
 
그러나 독소전의 발발은 뤼초의 운명을 바꿔놓았고 건조가 취소된 뤼초는 부유 포대로 레닌그라드를 공격하는 독일군에게 포격을 가했다.
그러나 독소전의 발발은 뤼초의 운명을 바꿔놓았고 건조가 취소된 뤼초는 부유 포대로 레닌그라드를 공격하는 독일군에게 포격을 가했다.
이에 루프트바페는 공습으로 독일제 순양함을 파괴해야 했고 결국 슈투카들의 공격을 받아 격침되나 1942년에 인양 후 재생 작업으로 부활, 레닌그라드 포위망 돌파 당시 독일군들에게 다시금 불벼락을 선사해 준다.
이에 루프트바페는 공습으로 독일제 순양함을 파괴해야 했고 결국 슈투카들의 공격을 받아 격침되나 1942년에 인양 후 재생 작업으로 부활, 1월의 천둥으로 알려진 1월 레닌그라드 공세 당시(레닌그라드 포위망 돌파공세) 독일군들에게 다시금 불벼락을 선사해 준다.
 
[[파일:Krasnoe Selo-Ropsha.JPG|200픽셀|썸네일|뤼초의 복귀전 1월 공세의 개요]]


뤼초는 소련에 판매 후 페트로파블롭스크로 개명되었고 1942년 인양 뒤에는 탈린으로 개명되었었다.
뤼초는 소련에 판매 후 페트로파블롭스크로 개명되었고 1942년 인양 뒤에는 탈린으로 개명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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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상으로 인해 히퍼는 퇴역 처분을 받아 킬 항에서 부유포대로 전용되었고 1945년 5월 3일 연합군의 킬 항 공습으로 침몰한다.
이 손상으로 인해 히퍼는 퇴역 처분을 받아 킬 항에서 부유포대로 전용되었고 1945년 5월 3일 연합군의 킬 항 공습으로 침몰한다.
===전후===
===전후===
[[파일:Operation Crossroads Baker Edit.jpg|240픽셀|썸네일|크로스로드 베이커]]
[[프린츠 오이겐]]과 뤼초(탈린), 그리고 항공모함으로 개장중이다 중단된 자이틀리츠가 전후까지 살아남는다.
[[프린츠 오이겐]]과 뤼초(탈린), 그리고 항공모함으로 개장중이다 중단된 자이틀리츠가 전후까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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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9에서 투하한 24kt의 원자폭탄 에이블(A)이 만든 핵폭발에서 살아남은 프린츠 오이겐은 2차인 베이커(B)에도 동원되어 수중 핵폭발에 의해 손상을 입었으나 침몰하지는 않았다.
B-29에서 투하한 24kt의 원자폭탄 에이블(A)이 만든 핵폭발에서 살아남은 프린츠 오이겐은 2차인 베이커(B)에도 동원되어 수중 핵폭발에 의해 손상을 입었으나 침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농도 방사능 오염을 뒤집어 쓴 오이겐은 승선이 불가능하게 되어 수리 대신 인근 콰잘레인 환초로 예인되던 중 좌초되면서 폐함 처분된다.
그러나 고농도 방사능 오염을 뒤집어 쓴 오이겐은 승선이 불가능하게 되어 수리 대신 인근 콰잘레인 환초로 예인되던 중 좌초되면서 폐함 처분된다.
[[파일:Prinz Eugen Schraube 1.jpg|220픽셀|썸네일|전시된 오이겐의 스크루.]]
방치되던 오이겐의 선체는 참전자들의 요청에 따라 스크루를 회수하여 라보에 해군 박물관에다 소장하게 되었고 콰잘레인에 남은 선체는 현재 유명 관광지가 되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설계 및 성능==
어드미럴 히퍼급 순양함은 조약형 순양함들을 능가하는 배수량과 우수한 무장을 보유하며 카탈로그 스펙상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함정이었으나, 내부적으로는 여러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20년간 단절된 독일의 건함 기술은 1차대전 말의 대형함들 설계를 바탕으로 재개되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변화하는 함정 설계 사상을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던 독일은 구식 전함의 설계를 그대로 신형함 설계에 축소 적용하는 방식으로 그 간극을 해결하려 했고 히퍼급의 문제점 역시 이같은 구식 건조 사상들에 의하여 촉발된다.
====공격력====
[[파일:Prinz Eugen Kiel rear guns.jpg|210픽셀|썸네일|Drh LC/34 203mm 함포 <ref>사진은 프린츠 오이겐</ref>]]
히퍼급의 주포탑은 두 문의 20.3cm(203mm) 함포가 들어가는 Drh LC/34 2연장 포탑으로, 함수와 함미 각각 4개씩 배치된 서 203mm 포는 총합 8문에 달한다.
사용되었던 203mm 함포는, SK/C34 20.3cm 60구경장 함포로써, 37도의 부양각과 60구경장의 장포신은 122kg의 탄을 초속 925m<ref>약 약 마하 2~3 사이로, 근거리에선 티거보다 관통력에서 앞서는 [[5호 전차|판터]] 전차의 주포 탄속과 엇비슷하다.</ref>의 속도로 33.5km 까지 쏴 날릴 수 있었는데, 이 수치들은 타국 중순양함과 비교했을 때 스펙 상 우월했고 적 순양함의 사거리 밖에서 원거리 공격을 가하거나 전함 등 상위 체급의 함선들을 견제할 수 있었다.
거기에 탄속은 곧 관통력과 비례하기 때문에 히퍼급의 주포에서 발사되는 고속탄은 근,중거리 교전에서도 적 순양함의 장갑을 효과적으로 무력화 시키리라 기대되었다.
부포이자 대공포는 2연장 SK C/33 L/65 105mm 포를 운용하는 6개의 Dopp/ LC 31 개방형 포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2연장)×6(포탑 수)=12이므로 모두 12문의 대구경 대공포를 갖추고 있어 타국 순양함 대비 높은 수준의 대공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105mm포는 최대 80도의 부양각으로 해상 표적에 대해선 17,700m, 공중 표적에 대해선 12,000m 이상 도달할 수 있었고 분당 15~18발의 빠른 발사속도는 비교적 높은 저지력을 제공해 주었다.
히퍼급은 주력 무장으로 중포와 함께 [[어뢰]]를 장착하여 전술적인 이점을 얻으려 했고 그 결과 3연장 533mm [[어뢰]] 발사관을 양 현측 갑판에 4개씩 배치하여 12발의 어뢰 운용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운용 어뢰인 G7a는 발사관 내 12발, 재장전용으로 12발을 따로 보관하여 모두 24발의 어뢰를 보관한다.
G7a 어뢰는 30노트 기준 12.5km 내 목표에다 뇌격을 가할 수 있는 성능을 지녔으며 지속적인 개량으로 14km 까지 항주거리가 증가했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다른 문제점은 몰라도 화력 정도는 출중한 순양함으로 볼수 있겠지만, 그건 스펙 상 각각의 무장들을 떼어놓고 봤을 때만 그런 것으로 개별 무장들은 독일제답게 타국 장비 대비 동등 또는 우위에 있었던 대신 그걸 모아놓은 히퍼급의 무장은 그렇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함 체급 대비 적은 포문 수와 작은 포 구경으로, 위 문제는 독일의 구식 건함 사상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단적으로 비슷한 시기 건조된 미국의 중순양함들<ref>뉴올리언스,위치타,볼티모어급 중순양함 등. 더 이전에 건조된 포틀랜드급과 팬사콜라급도 동일하다.</ref>이 8인치 포 9문을 기본적으로 달고 다녔던 것과 이탈리아, 일본 등의 추축국 순양함들도 그 이상의 포를 장착했던 것에 비하면 체급 대비 떨어지는 화력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한가지 더 아쉬운 점은 히퍼급의 체급이라면 283mm 주포를 달아도 충분한 크기인지라 기존 화력의 열세를 뒤집고 순양전함급의 화력을 발휘할 여지가 충분했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히퍼급보다 조금 작았던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이 283mm 주포 6문을 운용했었던 사실은 1만 5천톤의 체급 상 여유를 낭비하였다는 비판을 받을 만 한 부분이다.
====방어력====
히퍼급의 장갑 배치는 1차대전의 군함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함 전체에 장갑을 두르는 방식을 사용하여 주요 부위에 장갑을 배치하는 집중방어 개념보다 장갑 분배가 비효율적이었다.
이것이 배수량 증가의 원인으로 배수량은 구형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에 필적할 만큼 증가했지만 실질적인 방어력은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현측 주 장갑대는 70~80mm 정도이며 별도의 어뢰 벌지는 20mm두께 장갑판 내부로 다수의 격벽이 함체 내부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갑판 장갑은 가장 두꺼운 곳이 50mm, 상갑판은 이보다 더 얇은 15~30mm 로 기관 같은 중요 시설이 밀집된 선체 중앙에서 벗어날수록 갑판 장갑의 두께는 줄어들었다.
가장 두꺼운 장갑의 보호를 받던 함교는 150mm 장갑으로 보호받았고 적의 포화로부터 직접 노출되는 포탑은 전면이 105mm 에 측면 70mm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에 같은 추축국이던 이탈리아의 [[차라급 중순양함]]<ref>일명 자라급 중순양함 이라고도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상 차라급이 맞는 표기다.</ref>의 경우 히퍼급보다 작은 선체에도 불구하고 현측 150mm 장갑과 갑판 장갑 70mm~80mm, 주요 함교 구조물들도 150mm 장갑들로 보호받으며 일단 갑판 장갑 두께부터가 히퍼급의 주요 현측 장갑대와 맞먹는다.
거기다 집중 배치 구조의 장갑 설계는 선체를 키우지 않고도 함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 그 격차는 더욱 크다 할 수 있겠다.
====항해능력====
모두 12개의 라몬드 중유 보일러를 주 동력원으로 3개의 터빈을 돌려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구조의 기관 체계는 13만 마력으로 1만 4천~6천톤의 선체를 32노트 이상으로 항행시킬 수 있는 힘을 냈다.
다만 여기서도 기관부를 한곳에 밀집 배치하는 실수를 벌여 운없게 비 장갑구획을 통과한 소구경탄에도 항행불능이 될 수 있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동급 함정==
==동급 함정==
===취역===
[[파일:Bundesarchiv DVM 10 Bild-23-63-24, Schwerer Kreuzer "Admiral Hipper".jpg|240픽셀|썸네일|'''어드미럴 히퍼(Admiral Hipper)''']]
[[File:Bundesarchiv DVM 10 Bild-23-63-24, Schwerer Kreuzer "Admiral Hipper".jpg|240픽셀|썸네일|'''어드미럴 히퍼(Admiral Hipper)''']]


1935년 함부르크의 블롬 운트 포스 에서 기공되어 1937년 7월 6일에 진수한 히퍼급의 네임쉽으로 1939년 4월 25일 크릭스마리네로 배치되었다.
1935년 함부르크의 블롬 운트 포스 에서 기공되어 1937년 7월 6일에 진수한 히퍼급의 네임쉽으로 1939년 4월 25일 크릭스마리네로 배치되었다.
네임쉽답게 자매함인 ɑ프린츠 오이겐과 가장 많은 활약을 한 함정으로 베저위붕 작전과 바렌츠 해 해전에 참가하였고 다수의 통상파괴전을 수행하였다.
네임쉽답게 자매함인 프린츠 오이겐과 가장 많은 활약을 한 함정으로 베저위붕 작전과 바렌츠 해 해전에 참가하였고 다수의 통상파괴전을 수행하였다.
 


[[File:Bundesarchiv DVM 10 Bild-23-63-09, Kreuzer "Blücher".jpg|240픽셀|썸네일|'''블뤼허(Blücher)''']]
[[파일:Bundesarchiv DVM 10 Bild-23-63-09, Kreuzer "Blücher".jpg|240픽셀|썸네일|'''블뤼허(Blücher)''']]


히퍼급 [[중순양함]]의 2번함으로 1935년 킬에서 기공된 후 1937년 6월 8일에 진수되었다.
히퍼급 [[중순양함]]의 2번함으로 제1차 세계대전 독일 제국의 장갑순양함 SMS 블뤼허의 함명을 계승하였다. 1935년 킬의 도이체 베르케 조선소에서 기공된 후 1937년 6월 8일에 진수되어 2년 후인 1939년 9월 20일 정식 취역하였다.
취역 후 6개월 만에 격침되어 자매함 중 가장 빨리 손실된 블뤼허는 베저위붕 작전에서 독일 산악사단을 상륙시키려 접근하던 중 노르웨이군의 공격을 받아 허망하게 격침되었다.
취역 후 6개월 만에 참가한 베저위붕 작전에서 노르웨이 오슬로 점령작전 도중 격침되어 자매함 중 가장 빨리 손실되었으며 독일 산악사단을 상륙시키려 오슬로로 접근하던 중 노르웨이군의 포격 및 뇌격을 받아 허망하게 격침되었다.


 
[[파일:Bundesarchiv DVM 10 Bild-23-63-14, Kiel, Kreuzer "Prinz Eugen", Stapellauf.jpg|240픽셀|썸네일|'''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
[[File:Bundesarchiv DVM 10 Bild-23-63-14, Kiel, Kreuzer "Prinz Eugen", Stapellauf.jpg|240픽셀|썸네일|'''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


히퍼급 중순양함의 3번함으로 함명은 사부아 공작 외젠<ref>독일어권에선 프린츠 오이겐, 영어식으론 프린스 유진(Prince Eugene).</ref>의 이름을 땄다.
히퍼급 중순양함의 3번함으로 함명은 사부아 공작 외젠<ref>독일어권에선 프린츠 오이겐, 영어식으론 프린스 유진(Prince Eugene).</ref>의 이름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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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취역 직전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았으나 경미한 손상 외에는 피해가 없어 그해 8월 1일 정상적으로 취역한다.
1940년 취역 직전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았으나 경미한 손상 외에는 피해가 없어 그해 8월 1일 정상적으로 취역한다.


1941년 라인 연습 작전과 1942년 영국 해엽 돌파작전에 참여하였고 어뢰에 피격된 후에는 발트해로 활동 영역을 옮겨 종전 때 까지 배후도시 포격 및 지상군 지원 포격에 주력하였는데, 그 시기 유일한 대함 전과로는 경순양함 라히프치히를 들이받아 대파시킨 것이 있다.
1941년 라인 연습 작전과 1942년 영국 해협 돌파작전에 참여하였고 어뢰에 피격된 후에는 발트해로 활동 영역을 옮겨 종전 때까지 배후도시 포격 및 지상군 지원 포격에 주력하였는데, 그 시기 유일한 대함 전과로는 경순양함 라히프치히를 들이받아 대파시킨 것이 있다.
전쟁 끝자락인 1945년 4월 뤼초와 함께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은 오이겐은 뤼초가 격침당하는 와중에도 생존하여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피신해 그곳에서 종전을 맞이하였다.
전쟁 끝자락인 1945년 4월 [[도이칠란트급 장갑함|뤼초]]<ref>자매함 뤼초가 아닌, 구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도이칠란트의 새 함명으로 5번함 뤼초가 소련으로 팔려감에 따라 뤼초란 이름을 받게 되었다.</ref>와 함께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은 오이겐은 뤼초가 격침당하는 와중에도 생존하여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피신해 그곳에서 종전을 맞이하였다.


영국 해군에 의해 접수된 오이겐은 전후 미군에게 전리품으로 넘겨져 USS 프린츠 오이겐으로 개명된 뒤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원자폭탄 에이블과 베이커에 피폭되어 예인 콰잘레인 환초에서 좌초, 침몰한다.
영국 해군에 의해 접수된 오이겐은 전후 미군에게 전리품으로 넘겨져 USS 프린츠 오이겐으로 개명된 뒤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원자폭탄 에이블과 베이커에 피폭되어 손상을 입었고 예인 도중 콰잘레인 환초에서 좌초, 침몰한다.


 
[[파일:Lutzow1940.jpg|240픽셀|썸네일|'''뤼초(Lützow)''']]
[[File:Lutzow1940.jpg|240픽셀|썸네일|'''뤼초(Lützow)''']]


5번함 뤼초는 1937년 2월 8일에 기공되어 1939년 1월 7일 진수되었으나 1940년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으로 미완성된 채 소련으로 매각된다.
5번함 뤼초는 1937년 2월 8일에 기공되어 1939년 1월 7일 진수되었으나 1940년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으로 미완성된 채 소련으로 매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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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년 뒤인 1942년 9월 10일 뤼초를 인양한 소련 해군은 17일에 항구로 들여와 3문의 함포를 재생시켜 전선으로 복귀시킨다.
그러나 1년 뒤인 1942년 9월 10일 뤼초를 인양한 소련 해군은 17일에 항구로 들여와 3문의 함포를 재생시켜 전선으로 복귀시킨다.
부활한 뤼초는 다시 화력 지원 임무에 전용되었고 1944년 소련군의 독일군 포위망을 돌파하는 공세에서 지상군에게 지원 사격을 해 주었다.  
부활한 뤼초는 다시 화력 지원 임무에 전용되었고 1944년 소련군의 독일군 포위망을 돌파하는 공세에서 지상군에게 지원 사격을 해 주었다.
 
뤼초는 인양된 다음 페트로파블롭스크에서 탈린(Талрин)으로 개명되었으며 종전 후인 1953년에 연습함으로 전환되며 드네프르(Днепр)로 재 개명되었다.
뤼초는 인양된 다음 페트로파블롭스크에서 탈린(Талрин)으로 개명되었으며 종전 후인 1953년에 연습함으로 전환되며 드네프르(Днепр)로 재 개명되었다.
뤼초는 1956년 해상 막사로 개조되면서 군함으로의 임무를 마감하였고 1958년 4월에 함적에서 제명되며 퇴역 처분을 받는다.
뤼초는 1956년 해상 막사로 개조되면서 군함으로의 임무를 마감하였고 1958년 4월에 함적에서 제명되며 퇴역 처분을 받는다.
===미취역===
 
[[File:Aerial reconnaissance photo of German heavy cruiser Seydlitz at Bremen on 8 May 1942 (NH 91659).jpg|240픽셀|썸네일|'''자이틀리츠(Seydlitz)''']]
[[파일:Aerial reconnaissance photo of German heavy cruiser Seydlitz at Bremen on 8 May 1942 (NH 91659).jpg|240픽셀|썸네일|'''자이틀리츠(Seydlitz)''']]


4번함으로 예정되어 있던 자이틀리츠는, 1936년 말 기공에 들어가 1939년 초 진수되었지만 전쟁의 발발로 공정이 늦춰지다 1940년 95% 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건조가 중단된다.
4번함으로 예정되어 있던 자이틀리츠는, 1936년 말 기공에 들어가 1939년 초 진수되었지만 전쟁의 발발로 공정이 늦춰지다 1940년 95% 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건조가 중단된다.
그 뒤 1942년까지 브레멘 항에 방치되어 있던 자이틀리츠는 항모의 수요에 의해 다수의 함정들을 호위항모로 개조하기로 한 크릭스마리네에 의해 개조 대상으로 선정되었고 함명도 베저로 개명되었다.
그 뒤 1942년까지 브레멘 항에 방치되어 있던 자이틀리츠는 항모의 수요에 의해 다수의 함정들을 호위항모로 개조하기로 한 크릭스마리네에 의해 개조 대상으로 선정되었고 함명도 베저로 개명되었다.


그렇게 비행갑판 및 격납고 신설을 위하여 상부 구조물이 제거된 자이틀리츠는 20대의 Bf109T와 Ju87을 운용하는 호위항모로 개장이 진행되려 했지만 쾨니히스베르그로 예인된 후 물자 부족을 이유로 1943년 개장이 취소되며 이전과 같이 방치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비행갑판 및 격납고 신설을 위하여 상부 구조물이 제거된 자이틀리츠는 20대의 [[Bf109]]T와 [[Ju87]]을 운용하는 호위항모로 개장이 진행되려 했지만 쾨니히스베르그로 예인된 후 물자 부족을 이유로 1943년 개장이 취소되며 이전과 같이 방치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1945년까지 쾨니히스베르그에서 방치되던 자이틀리츠는 악화되는 전황에 따라 자침하였고 진격하던 소련군에 의해 접수되어 뤼초의 부품 공급용으로 전용되었으나 한편으로는 함을 완성하려고 하였고 여의치 못하여 전후 스크랩 처리되었다.
1945년까지 쾨니히스베르그에서 방치되던 자이틀리츠는 악화되는 전황에 따라 자침하였고 진격하던 소련군에 의해 접수되어 뤼초의 부품 공급용으로 전용되었으나 한편으로는 함을 완성하려고 하였고 여의치 못하여 전후 스크랩 처리되었다.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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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1일 (목) 18:36 기준 최신판

어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
Admiral Hipper klasse Schwere kreuzer
PE Atomtest 1.jpg
최후를 앞둔 3번함 프린츠 오이겐[1]
선박 정보
종류 중순양함
건조 5척
운영 나치 독일
취역 4척
퇴역 전 함 격침 밎 폐함
정원 1382~1600명
제원
엔진 라몬트 중유 보일러 12대
3축 3엽 스크루
추진력 133,631 마력
속도 32.7 노트(최대)
무장 SK/C34 20.3cm 60구경장 2연장 주포탑 4기
SK C/33 10.5cm L/65 × 12
3.7cm SK C/ 30 ×12
533mm 12연장 어뢰 발사관
2cm Flak 38 대공포 ×8
전장 202.8m
선폭 21.3m
흘수 7.2m
배수량 14247~16170톤
18,500톤 (만재)
Admiral Hipper ONI.jpg

어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 (Admiral Hipper klasse Schwere kreuzer)은, 나치 독일중순양함이다.

나치 독일의 해군 크릭스마리네의 중순양함으로 독일 제국의 제독 프란츠 폰 히퍼로부터 유래했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크릭스마리네 내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한 수상함으로 노르웨이 침공과 비스마르크 추격전 등, 대서양 전역에서 벌어진 여러 작전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다.

초도함인 어드미럴 히퍼와 3번함인 프린츠 오이겐이 잘 알려져 있고 모두 5척이 건조 및 진수되어 4척이 취역하였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건조[편집 | 원본 편집]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집권 이후, 제3제국 체제로 돌입한 독일국(Deutsches Reich)은 1차대전 패전으로 성립된 베르사유 조약을 깨곤 다시 재무장에 들어가게 된다.

그 과정으로 성립된 해군, 크릭스마리네는 장차 대서양에서의 작전을 위해 주변국의 순양함 전력을 상대하고 적국이 보유한 전함급 함선들의 공격을 회피할수 있는 중순양함의 보유를 실감하게 되는데, 초기에는 당시 워싱턴/런던 해군 군축조약에 맞춘 수준으로 주변국을 자극하는 것은 피하려고 했다.[2] 그러나 처음 설계된 배수량 1만톤급의 조약형 중순양함은 요구하는 성능을 충족시키지 못하였고 크릭스마리네의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 제독은 설계를 재 검토할것을 지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편집 | 원본 편집]

산악사단을 상륙시키는 히퍼

어드미럴 히퍼와 블뤼허는 노르웨이 침공 작전인 베저위붕 작전에 투입되었다. 당시 작전 도중 트론하임 북서쪽의 히퍼는 영국 구축함 글로우웜과 조우해 글로우웜의 충각 공격을 받았으며 큰 손상을 입었으나 4월 9일 트론하임에 입성해 탑승하고 있던 병력을 성공적으로 상륙시키며 트론하임을 점령한다.

그러나 상륙 함대의 기함으로, 함께 투입된 블뤼허의 결과는 좋지 못했는데, 새벽 5시 경 오슬로 점령을 위해 피요르에 접근하던 블뤼허는 탑승한 독일군 산악부대원을 상륙시키려 하던 중 피요르 사면에 구축된 오스카보리 요새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요새로부터 1.8km 거리까지 접근한 블뤼허는 280mm 해안포로 집중 공격당했고 요새에서 발사한 어뢰에 피격당하며 2시간 만에 침몰하였다.

침몰하는 블뤼허

당시 블뤼허는 취역한지 불과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최신함이었으나 이 작전으로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며 크릭스마리네에 큰 손실을 남겼다.

오이겐은 1941년 비스마르크 추격전으로 알려진 라인 연습 작전에 참가해 HMS 후드와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게 명중탄을 내는 활약으로 히퍼급 중 가장 인상적인 활약상을 보여주었으나, 후드 격침 직후 연료탱크가 파손되는 손상을 입은 비스마르크와 해어져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였고 1달여 후인 6월 1일 항구로 귀환한다. 그 뒤 영국 해협 돌파작전인 캘베로스 작전에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두척(샤른호르스트,그나이제나우) 과 함께 도버 해협을 통과해 북해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고 기뢰에 접촉한 두 전함들과는 달리 무사히 킬 운하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다.

해협을 돌파한 후 수리중인 오이겐[3]

대서양에서 북해로 무대를 바꾼 프린츠 오이겐은 1942년 2월 노르웨이로 이동하던 중 영국 잠수함 트라이던트가 발사한 어뢰에 함미를 직격당하며 대파되었다. 항행 불능 상태가 된 오이겐은 인근 트론하임 항구에서 응급수리를 받은 뒤 5월 킬 항에서 연말까지 모든 수리를 완료하며 훈련함으로 전열에 복귀했다. 한동안 연습함으로 있던 오이겐은 전쟁 말기인 1944년 발트해 전역에서 요새화된 섬과 연안을 포격하고 지상군을 지원하는 것으로 다시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시기엔 투쿰스 포격을 비롯해 소련의 배후 도시들을 포격하는 한편 추축국에서 중도 이탈한 핀란드에서 독일군 철수 선단을 호위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오이겐은 대형 사고를 치는데, 경순양함 라히프치히를 들이받아 대파시킨 것으로, 10월 15일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오이겐은 비교적 경미한 손상으로 1달여의 수리 기간이 끝나고 복귀했지만 라히프치히는 수복이 불가능하여 기본 수리만 받은 후 항구를 떠나지 못하는 사실상 퇴역 상태가 되었다.

한편 뤼초는 소련 해군에서 운용되며 자매함들과는 반대로 '독일군'을 상대로 싸웠다. 뤼초가 소련 해군의 순양함이 된 것은 독소 불가침조약 때 독일이 공여한 것으로 1940년 까지 70%가 건조되었다.

그러나 독소전의 발발은 뤼초의 운명을 바꿔놓았고 건조가 취소된 뤼초는 부유 포대로 레닌그라드를 공격하는 독일군에게 포격을 가했다. 이에 루프트바페는 공습으로 독일제 순양함을 파괴해야 했고 결국 슈투카들의 공격을 받아 격침되나 1942년에 인양 후 재생 작업으로 부활, 1월의 천둥으로 알려진 1월 레닌그라드 공세 당시(레닌그라드 포위망 돌파공세) 독일군들에게 다시금 불벼락을 선사해 준다.

뤼초의 복귀전 1월 공세의 개요

뤼초는 소련에 판매 후 페트로파블롭스크로 개명되었고 1942년 인양 뒤에는 탈린으로 개명되었었다.

전쟁 막바지 히퍼를 기함으로 한 통상파괴전단이 바렌츠해에서 영국 선단을 제압하기 위해 출격했지만, 하달되어 있던 소극적 교전수칙에 의해 함대는 선단을 제압할 기회를 놓쳤고 영국 순양함대의 접근을 허용하며 히퍼는 영국 순양함이 발사한 6인치(15cm) 포탄 3발에 피탄당했다. 13km 밖에서 날아온 6인치 포탑은 히퍼의 기관실을 명중시켰고 속도가 26노트 이하로 줄어들면서 히퍼는 도중에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손상으로 인해 히퍼는 퇴역 처분을 받아 킬 항에서 부유포대로 전용되었고 1945년 5월 3일 연합군의 킬 항 공습으로 침몰한다.

전후[편집 | 원본 편집]

크로스로드 베이커

프린츠 오이겐과 뤼초(탈린), 그리고 항공모함으로 개장중이다 중단된 자이틀리츠가 전후까지 살아남는다.

뤼초는 종전 후 1953년 드네프르로 개명된 뒤 1958년까지 소련 해군에서 훈련함과 해상 막사로 운용되다 퇴역하였다.

한편, 미국의 노획품이 된 프린츠 오이겐은 미 해군 함정인 USS 프린츠 오이겐으로 취역해 1946년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실험함으로 동원되었다. B-29에서 투하한 24kt의 원자폭탄 에이블(A)이 만든 핵폭발에서 살아남은 프린츠 오이겐은 2차인 베이커(B)에도 동원되어 수중 핵폭발에 의해 손상을 입었으나 침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농도 방사능 오염을 뒤집어 쓴 오이겐은 승선이 불가능하게 되어 수리 대신 인근 콰잘레인 환초로 예인되던 중 좌초되면서 폐함 처분된다.

전시된 오이겐의 스크루.

방치되던 오이겐의 선체는 참전자들의 요청에 따라 스크루를 회수하여 라보에 해군 박물관에다 소장하게 되었고 콰잘레인에 남은 선체는 현재 유명 관광지가 되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설계 및 성능[편집 | 원본 편집]

어드미럴 히퍼급 순양함은 조약형 순양함들을 능가하는 배수량과 우수한 무장을 보유하며 카탈로그 스펙상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함정이었으나, 내부적으로는 여러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20년간 단절된 독일의 건함 기술은 1차대전 말의 대형함들 설계를 바탕으로 재개되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변화하는 함정 설계 사상을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던 독일은 구식 전함의 설계를 그대로 신형함 설계에 축소 적용하는 방식으로 그 간극을 해결하려 했고 히퍼급의 문제점 역시 이같은 구식 건조 사상들에 의하여 촉발된다.

공격력[편집 | 원본 편집]

Drh LC/34 203mm 함포 [4]

히퍼급의 주포탑은 두 문의 20.3cm(203mm) 함포가 들어가는 Drh LC/34 2연장 포탑으로, 함수와 함미 각각 4개씩 배치된 서 203mm 포는 총합 8문에 달한다.

사용되었던 203mm 함포는, SK/C34 20.3cm 60구경장 함포로써, 37도의 부양각과 60구경장의 장포신은 122kg의 탄을 초속 925m[5]의 속도로 33.5km 까지 쏴 날릴 수 있었는데, 이 수치들은 타국 중순양함과 비교했을 때 스펙 상 우월했고 적 순양함의 사거리 밖에서 원거리 공격을 가하거나 전함 등 상위 체급의 함선들을 견제할 수 있었다. 거기에 탄속은 곧 관통력과 비례하기 때문에 히퍼급의 주포에서 발사되는 고속탄은 근,중거리 교전에서도 적 순양함의 장갑을 효과적으로 무력화 시키리라 기대되었다.

부포이자 대공포는 2연장 SK C/33 L/65 105mm 포를 운용하는 6개의 Dopp/ LC 31 개방형 포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2연장)×6(포탑 수)=12이므로 모두 12문의 대구경 대공포를 갖추고 있어 타국 순양함 대비 높은 수준의 대공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105mm포는 최대 80도의 부양각으로 해상 표적에 대해선 17,700m, 공중 표적에 대해선 12,000m 이상 도달할 수 있었고 분당 15~18발의 빠른 발사속도는 비교적 높은 저지력을 제공해 주었다.

히퍼급은 주력 무장으로 중포와 함께 어뢰를 장착하여 전술적인 이점을 얻으려 했고 그 결과 3연장 533mm 어뢰 발사관을 양 현측 갑판에 4개씩 배치하여 12발의 어뢰 운용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운용 어뢰인 G7a는 발사관 내 12발, 재장전용으로 12발을 따로 보관하여 모두 24발의 어뢰를 보관한다.

G7a 어뢰는 30노트 기준 12.5km 내 목표에다 뇌격을 가할 수 있는 성능을 지녔으며 지속적인 개량으로 14km 까지 항주거리가 증가했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다른 문제점은 몰라도 화력 정도는 출중한 순양함으로 볼수 있겠지만, 그건 스펙 상 각각의 무장들을 떼어놓고 봤을 때만 그런 것으로 개별 무장들은 독일제답게 타국 장비 대비 동등 또는 우위에 있었던 대신 그걸 모아놓은 히퍼급의 무장은 그렇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함 체급 대비 적은 포문 수와 작은 포 구경으로, 위 문제는 독일의 구식 건함 사상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단적으로 비슷한 시기 건조된 미국의 중순양함들[6]이 8인치 포 9문을 기본적으로 달고 다녔던 것과 이탈리아, 일본 등의 추축국 순양함들도 그 이상의 포를 장착했던 것에 비하면 체급 대비 떨어지는 화력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한가지 더 아쉬운 점은 히퍼급의 체급이라면 283mm 주포를 달아도 충분한 크기인지라 기존 화력의 열세를 뒤집고 순양전함급의 화력을 발휘할 여지가 충분했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히퍼급보다 조금 작았던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이 283mm 주포 6문을 운용했었던 사실은 1만 5천톤의 체급 상 여유를 낭비하였다는 비판을 받을 만 한 부분이다.

방어력[편집 | 원본 편집]

히퍼급의 장갑 배치는 1차대전의 군함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함 전체에 장갑을 두르는 방식을 사용하여 주요 부위에 장갑을 배치하는 집중방어 개념보다 장갑 분배가 비효율적이었다. 이것이 배수량 증가의 원인으로 배수량은 구형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에 필적할 만큼 증가했지만 실질적인 방어력은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현측 주 장갑대는 70~80mm 정도이며 별도의 어뢰 벌지는 20mm두께 장갑판 내부로 다수의 격벽이 함체 내부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갑판 장갑은 가장 두꺼운 곳이 50mm, 상갑판은 이보다 더 얇은 15~30mm 로 기관 같은 중요 시설이 밀집된 선체 중앙에서 벗어날수록 갑판 장갑의 두께는 줄어들었다. 가장 두꺼운 장갑의 보호를 받던 함교는 150mm 장갑으로 보호받았고 적의 포화로부터 직접 노출되는 포탑은 전면이 105mm 에 측면 70mm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에 같은 추축국이던 이탈리아의 차라급 중순양함[7]의 경우 히퍼급보다 작은 선체에도 불구하고 현측 150mm 장갑과 갑판 장갑 70mm~80mm, 주요 함교 구조물들도 150mm 장갑들로 보호받으며 일단 갑판 장갑 두께부터가 히퍼급의 주요 현측 장갑대와 맞먹는다. 거기다 집중 배치 구조의 장갑 설계는 선체를 키우지 않고도 함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 그 격차는 더욱 크다 할 수 있겠다.

항해능력[편집 | 원본 편집]

모두 12개의 라몬드 중유 보일러를 주 동력원으로 3개의 터빈을 돌려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구조의 기관 체계는 13만 마력으로 1만 4천~6천톤의 선체를 32노트 이상으로 항행시킬 수 있는 힘을 냈다.

다만 여기서도 기관부를 한곳에 밀집 배치하는 실수를 벌여 운없게 비 장갑구획을 통과한 소구경탄에도 항행불능이 될 수 있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동급 함정[편집 | 원본 편집]

어드미럴 히퍼(Admiral Hipper)

1935년 함부르크의 블롬 운트 포스 에서 기공되어 1937년 7월 6일에 진수한 히퍼급의 네임쉽으로 1939년 4월 25일 크릭스마리네로 배치되었다. 네임쉽답게 자매함인 프린츠 오이겐과 가장 많은 활약을 한 함정으로 베저위붕 작전과 바렌츠 해 해전에 참가하였고 다수의 통상파괴전을 수행하였다.

블뤼허(Blücher)

히퍼급 중순양함의 2번함으로 제1차 세계대전 독일 제국의 장갑순양함 SMS 블뤼허의 함명을 계승하였다. 1935년 킬의 도이체 베르케 조선소에서 기공된 후 1937년 6월 8일에 진수되어 2년 후인 1939년 9월 20일 정식 취역하였다. 취역 후 6개월 만에 참가한 베저위붕 작전에서 노르웨이 오슬로 점령작전 도중 격침되어 자매함 중 가장 빨리 손실되었으며 독일 산악사단을 상륙시키려 오슬로로 접근하던 중 노르웨이군의 포격 및 뇌격을 받아 허망하게 격침되었다.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

히퍼급 중순양함의 3번함으로 함명은 사부아 공작 외젠[8]의 이름을 땄다. 1936년 4월 23일 킬에 위치한 크루프 게르마니아 조선소에서 기공되었고 1938년 8월 22일 진수되었다. 1940년 취역 직전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았으나 경미한 손상 외에는 피해가 없어 그해 8월 1일 정상적으로 취역한다.

1941년 라인 연습 작전과 1942년 영국 해협 돌파작전에 참여하였고 어뢰에 피격된 후에는 발트해로 활동 영역을 옮겨 종전 때까지 배후도시 포격 및 지상군 지원 포격에 주력하였는데, 그 시기 유일한 대함 전과로는 경순양함 라히프치히를 들이받아 대파시킨 것이 있다. 전쟁 끝자락인 1945년 4월 뤼초[9]와 함께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은 오이겐은 뤼초가 격침당하는 와중에도 생존하여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피신해 그곳에서 종전을 맞이하였다.

영국 해군에 의해 접수된 오이겐은 전후 미군에게 전리품으로 넘겨져 USS 프린츠 오이겐으로 개명된 뒤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원자폭탄 에이블과 베이커에 피폭되어 손상을 입었고 예인 도중 콰잘레인 환초에서 좌초, 침몰한다.

뤼초(Lützow)

5번함 뤼초는 1937년 2월 8일에 기공되어 1939년 1월 7일 진수되었으나 1940년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으로 미완성된 채 소련으로 매각된다. 소련은 매각된 뤼초를 페트로파블롭스크(Петропавловск)로 재명명 했고 1941년 70%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8월 15일 취역, 레닌그라드 공방전에 투입되었다. 공방전 동안 해상 부유 포대로 활용되던 뤼초는 배치 한달여 만인 9월 17일 한스 울리히 루델이 모는 슈투카의 공습으로 같은 장소에서 활약하던 전함 마라와 같이 격침되었다.

그러나 1년 뒤인 1942년 9월 10일 뤼초를 인양한 소련 해군은 17일에 항구로 들여와 3문의 함포를 재생시켜 전선으로 복귀시킨다. 부활한 뤼초는 다시 화력 지원 임무에 전용되었고 1944년 소련군의 독일군 포위망을 돌파하는 공세에서 지상군에게 지원 사격을 해 주었다.

뤼초는 인양된 다음 페트로파블롭스크에서 탈린(Талрин)으로 개명되었으며 종전 후인 1953년에 연습함으로 전환되며 드네프르(Днепр)로 재 개명되었다. 뤼초는 1956년 해상 막사로 개조되면서 군함으로의 임무를 마감하였고 1958년 4월에 함적에서 제명되며 퇴역 처분을 받는다.

자이틀리츠(Seydlitz)

4번함으로 예정되어 있던 자이틀리츠는, 1936년 말 기공에 들어가 1939년 초 진수되었지만 전쟁의 발발로 공정이 늦춰지다 1940년 95% 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건조가 중단된다. 그 뒤 1942년까지 브레멘 항에 방치되어 있던 자이틀리츠는 항모의 수요에 의해 다수의 함정들을 호위항모로 개조하기로 한 크릭스마리네에 의해 개조 대상으로 선정되었고 함명도 베저로 개명되었다.

그렇게 비행갑판 및 격납고 신설을 위하여 상부 구조물이 제거된 자이틀리츠는 20대의 Bf109T와 Ju87을 운용하는 호위항모로 개장이 진행되려 했지만 쾨니히스베르그로 예인된 후 물자 부족을 이유로 1943년 개장이 취소되며 이전과 같이 방치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1945년까지 쾨니히스베르그에서 방치되던 자이틀리츠는 악화되는 전황에 따라 자침하였고 진격하던 소련군에 의해 접수되어 뤼초의 부품 공급용으로 전용되었으나 한편으로는 함을 완성하려고 하였고 여의치 못하여 전후 스크랩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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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크로스로드 작전 때 찍힌 것으로 수중 핵폭발에 의해 격침되었다.
  2. 다만 독일은 조약 당사국은 아니었다.
  3. 오른쪽은 어드미럴 셰어
  4. 사진은 프린츠 오이겐
  5. 약 약 마하 2~3 사이로, 근거리에선 티거보다 관통력에서 앞서는 판터 전차의 주포 탄속과 엇비슷하다.
  6. 뉴올리언스,위치타,볼티모어급 중순양함 등. 더 이전에 건조된 포틀랜드급과 팬사콜라급도 동일하다.
  7. 일명 자라급 중순양함 이라고도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상 차라급이 맞는 표기다.
  8. 독일어권에선 프린츠 오이겐, 영어식으론 프린스 유진(Prince Eugene).
  9. 자매함 뤼초가 아닌, 구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도이칠란트의 새 함명으로 5번함 뤼초가 소련으로 팔려감에 따라 뤼초란 이름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