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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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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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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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 추격전]]의 발단인 라인 훈련 작전에서 3번함 프린츠 오이겐이 전함 비스마르크와 함께 투입되어 순양전함 [[후드]]에 화재를 발생시켰고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 명중탄을 냈다. 이를 기준으로 비스마르크는 후드에게 포격을 가하여 결국 후드를 격침시켰다.
오이겐은 1941년 비스마르크 추격전으로 알려진 라인 연습 작전에 참가해 HMS 후드와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게 명중탄을 내는 활약으로 히퍼급 중 가장 인상적인 활약상을 보여주었으나, 후드 격침 직후 연료탱크가 파손되는 손상을 입은 비스마르크와 해어져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였고 1달여 후인 6월 1일 항구로 귀환한다.
그 뒤 영국 해엽 돌파작전인 캘베로스 작전에서 [[샤른호르스트급 순양전함|샤른호르스트급 전함]] 두척(샤른호르스트,그나이제나우) 과 함께 도버 해엽을 통과해 북해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고 기뢰에 접촉한 두 전함들과는 달리 무사히 킬 운하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다.
 
대서양에서 북해로 무대를 바꾼 프린츠 오이겐은 1942년 2월 노르웨이로 이동하던 중 영국 잠수함 트라이던트가 발사한 [[어뢰]]에 함미를 직격당하며 대파되었다.
항행 불능 상태가 된 오이겐은 인근 트론하임 항구에서 응급수리를 받은 뒤 5월 킬 항에서 연말까지 모든 수리를 완료하며 훈련함으로 전열에 복귀했다.
한동안 연습함으로 있던 오이겐은 전쟁 말기인 1944년 발트해 전역에서 요새화된 섬과 연안을 포격하고 지상군을 지원하는 것으로 다시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시기엔 투쿰스 포격을 비롯해 소련의 배후 도시들을 포격하는 한편 추축국에서 중도 이탈한 핀란드에서 독일군 철수 선단을 호위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오이겐은 대형 사고를 치는데, 10월 15일 경순양함 라히프치히를 들이받아 라히프치히를 대파시킨 것으로, 오이겐은 1달여의 수리 기간이 필요한 경미한 손상을 입은 반면에 라히프치히는 수복이 불가능하여 기본 수리만 받은 후 사실상 퇴역 상태가 되어 항구를 벗아나지 못했다.


[[어드미럴 히퍼]]와 블뤼허는 노르웨이 침공 작전인 베저위붕 작전에 투입되었다.
[[어드미럴 히퍼]]와 블뤼허는 노르웨이 침공 작전인 베저위붕 작전에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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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초는 소련에 판매 후 페트로파블롭스크로 개명되었고 1942년 인양 뒤에는 탈린으로 개명되었었다.
뤼초는 소련에 판매 후 페트로파블롭스크로 개명되었고 1942년 인양 뒤에는 탈린으로 개명되었었다.


전쟁 막바지 [[바렌츠 해 해전]]에서 히퍼를 기함으로 한 통상파괴전단이 영국 선단을 제압할 기회를 얻었지만 소극적 교전수칙에 의해 어영부영한 대응을 보였고 히퍼는 영국 순양전단이 13km 밖에서 발사한 6인치(15cm) 포탄 3발에 기관부를 피탄당하는 피해를 입어 전열에서 이탈하였다.
전쟁 막바지 [[바렌츠 해 해전]]에서 히퍼를 기함으로 한 통상파괴전단이 영국 선단을 제압할 기회를 얻었지만 소극적 교전수칙에 의해 어영부영한 대응을 보였고 영국 순양전단이 13km 밖에서 발사한 6인치(15cm) 포탄 3발에 기관부를 피탄당하는 피해를 입어 전열에서 이탈하였다.


이 손상으로 퇴역한 히퍼는 킬 항에서 부유포대로 사용되다 1945년 5월 3일 연합군의 공습을 받고 침몰한다.
이 손상으로 퇴역한 히퍼는 킬 항에서 부유포대로 사용되다 1945년 5월 3일 연합군의 공습을 받고 침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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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Bundesarchiv DVM 10 Bild-23-63-14, Kiel, Kreuzer "Prinz Eugen", Stapellauf.jpg|240픽셀|썸네일|'''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
[[File:Bundesarchiv DVM 10 Bild-23-63-14, Kiel, Kreuzer "Prinz Eugen", Stapellauf.jpg|240픽셀|썸네일|'''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


히퍼급의 3번함으로 1936년 4월 23일 킬에 위치한 크루프 게르마니아 조선소에서 기공되었고 1938년 8월 22일 진수되었다.
히퍼급의 3번함으로 함명은 사부아 공작 외젠<ref>독일어권에선 프린츠 오이겐, 영어식으론 프린스 유진(Prince Eugene).</ref>의 이름을 땄다.
1936년 4월 23일 킬에 위치한 크루프 게르마니아 조선소에서 기공되었고 1938년 8월 22일 진수되었다.
1940년 취역 직전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았으나 경미한 손상 외에는 피해가 없어 그해 8월 1일 정상적으로 취역한다.
1940년 취역 직전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았으나 경미한 손상 외에는 피해가 없어 그해 8월 1일 정상적으로 취역한다.


취역한 오이겐은 1941년 비스마르크 추격전으로 알려진 라인 연습 작전에 참가해 HMS 후드와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게 명중탄을 내는 활약으로 히퍼급 중 가장 인상적인 활약상을 보여주었으나, 후드 격침 직후 연료탱크가 파손되는 손상을 입은 비스마르크와 해어져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였고 1달여 후인 6월 1일 항구로 귀환한다.
1941년 라인 연습 작전과 1942년 영국 해엽 돌파작전에 참여하였고 어뢰에 피격된 후에는 발트해로 활동 영역을 옮겨 종전 때 까지 배후도시 포격 및 지상군 지원 포격에 주력하였는데, 그 시기 유일한 대함 전과로는 경순양함 라히프치히를 들이받아 대파시킨 것이 있다.
그 뒤 영국 해엽 돌파작전인 캘베로스 작전에서 [[샤른호르스트급 순양전함|샤른호르스트급 전함]] 두척(샤른호르스트,그나이제나우) 과 함께 도버 해엽을 통과해 북해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고 기뢰에 접촉한 두 전함들과는 달리 무사히 킬 운하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다.
전쟁 끝자락인 1945년 4월 뤼초와 함께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은 오이겐은 뤼초가 격침당하는 와중에도 생존하여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피신해 그곳에서 종전을 맞이하였다.
 
대서양에서 북해로 무대를 바꾼 프린츠 오이겐은 1942년 2월 노르웨이로 이동하던 중 영국 잠수함 트라이던트가 발사한 [[어뢰]]에 함미를 직격당하며 대파되었다.
항행 불능 상태가 된 오이겐은 인근 트론하임 항구에서 응급수리를 받은 뒤 5월 킬 항에서 연말까지 모든 수리를 완료하며 훈련함으로 전열에 복귀했다.
 
한동안 연습함으로 있던 오이겐은 전쟁 말기 발트해 전역에서 지상군을 지원하는 것으로 전투에 다시 투입되었다.


영국 해군에 의해 접수된 오이겐은 전후 미군에게 전리품으로 넘겨져 USS 프린츠 오이겐으로 개명된 뒤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원자폭탄 에이블과 베이커에 피폭되어 예인 중 콰잘레인 환초에서 좌초, 침몰한다.


[[File:Lutzow1940.jpg|240픽셀|썸네일|'''뤼초'''(Lützow)]]
[[File:Lutzow1940.jpg|240픽셀|썸네일|'''뤼초(Lützow)''']]


5번함 뤼초는 1937년 2월 8일에 기공되어 1939년 1월 7일 진수되었으나 1940년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으로 미완성된 채 소련으로 매각된다.
5번함 뤼초는 1937년 2월 8일에 기공되어 1939년 1월 7일 진수되었으나 1940년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으로 미완성된 채 소련으로 매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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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초는 인양된 다음 페트로파블롭스크에서 탈린(Талрин)으로 개명되었으며 종전 후인 1953년에 연습함으로 전환되며 드네프르(Днепр)로 재 개명되었다.
뤼초는 인양된 다음 페트로파블롭스크에서 탈린(Талрин)으로 개명되었으며 종전 후인 1953년에 연습함으로 전환되며 드네프르(Днепр)로 재 개명되었다.
뤼초는 1956년 해상 막사로 개조되면서 군함으로의 임무를 마감하였고 1958년 4월에 함적에서 제명되며 퇴역 처분을 받는다.
뤼초는 1956년 해상 막사로 개조되면서 군함으로의 임무를 마감하였고 1958년 4월에 함적에서 제명되며 퇴역 처분을 받는다.
===미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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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Aerial reconnaissance photo of German heavy cruiser Seydlitz at Bremen on 8 May 1942 (NH 91659).jpg|240픽셀|썸네일|'''자이틀리츠'''(Seydlitz)]]
[[File:Aerial reconnaissance photo of German heavy cruiser Seydlitz at Bremen on 8 May 1942 (NH 91659).jpg|240픽셀|썸네일|'''자이틀리츠(Seydl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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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0일 (화) 14:57 판

틀:군함 정보

어드미럴 히퍼급 중순양함 (Admiral Hipper klasse Schwere kreuzer)은, 나치 독일중순양함이다.

나치 독일의 해군 크릭스마리네의 중순양함으로 제1차 세계대전독일 제국 해군 제독 프란츠 폰 히퍼로부터 유래했다.

개요

Admiral Hipper ONI.jpg

크릭스마리네 내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한 수상함으로 노르웨이 침공과 비스마르크 추격전 등, 대서양 전역에서 벌어진 여러 작전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다.

초도함인 어드미럴 히퍼와 3번함인 프린츠 오이겐이 잘 알려져 있고 모두 5척이 건조 및 진수되어 4척이 취역하였다.

건조

운용

활약

오이겐은 1941년 비스마르크 추격전으로 알려진 라인 연습 작전에 참가해 HMS 후드와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즈에게 명중탄을 내는 활약으로 히퍼급 중 가장 인상적인 활약상을 보여주었으나, 후드 격침 직후 연료탱크가 파손되는 손상을 입은 비스마르크와 해어져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였고 1달여 후인 6월 1일 항구로 귀환한다. 그 뒤 영국 해엽 돌파작전인 캘베로스 작전에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두척(샤른호르스트,그나이제나우) 과 함께 도버 해엽을 통과해 북해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고 기뢰에 접촉한 두 전함들과는 달리 무사히 킬 운하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다.

대서양에서 북해로 무대를 바꾼 프린츠 오이겐은 1942년 2월 노르웨이로 이동하던 중 영국 잠수함 트라이던트가 발사한 어뢰에 함미를 직격당하며 대파되었다. 항행 불능 상태가 된 오이겐은 인근 트론하임 항구에서 응급수리를 받은 뒤 5월 킬 항에서 연말까지 모든 수리를 완료하며 훈련함으로 전열에 복귀했다. 한동안 연습함으로 있던 오이겐은 전쟁 말기인 1944년 발트해 전역에서 요새화된 섬과 연안을 포격하고 지상군을 지원하는 것으로 다시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시기엔 투쿰스 포격을 비롯해 소련의 배후 도시들을 포격하는 한편 추축국에서 중도 이탈한 핀란드에서 독일군 철수 선단을 호위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오이겐은 대형 사고를 치는데, 10월 15일 경순양함 라히프치히를 들이받아 라히프치히를 대파시킨 것으로, 오이겐은 1달여의 수리 기간이 필요한 경미한 손상을 입은 반면에 라히프치히는 수복이 불가능하여 기본 수리만 받은 후 사실상 퇴역 상태가 되어 항구를 벗아나지 못했다.

어드미럴 히퍼와 블뤼허는 노르웨이 침공 작전인 베저위붕 작전에 투입되었다. 당시 작전 도중 트론하임 북서쪽의 히퍼는 영국 구축함 글로우웜과 조우해 글로우웜의 충각 공격을 받았으며 큰 손상을 입었으나 4월 9일 트론하임에 입성해 탑승하고 있던 병력을 성공적으로 상륙시키며 트론하임을 점령한다.

그러나 상륙 함대의 기함으로, 함께 투입된 블뤼허의 결과는 좋지 못했는데, 새벽 5시 경 오슬로 점령을 위해 피요도르에 접근하던 블뤼허는 탑승한 독일군 산악부대원을 상륙시키려 하던 중 피요도르 사면에 구축된 오스카보리 요새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요새로부터 1.8km 거리까지 접근한 블뤼허는 280mm 해안포로 집중 공격당했고 요새에서 발사한 어뢰에 피격당하며 2시간 만에 침몰하였다.

당시 블뤼허는 취역한지 불과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최신함이었으나 이 작전으로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며 크릭스마리네에 큰 손실을 남겼다.

한편 뤼초는 소련 해군에서 운용되며 자매함들과는 반대로 '독일을 상대로' 싸웠다. 뤼초가 소련 해군의 순양함이 된 것은 독소 불가침조약 때 독일이 공여한 것으로 1940년 까지 70%가 건조되었다. 그러나 독소전의 발발은 뤼초의 운명을 바꿔놓았고 건조가 취소된 뤼초는 부유 포대로 레닌그라드를 공격하는 독일군에게 포격을 가했다. 이에 루프트바페는 공습으로 독일제 순양함을 파괴해야 했고 결국 슈투카의 공격에 격침되나 1942년에 인양 후 재생 작업으로 부활, 레닌그라드를 포위한 독일군들에게 다시금 불벼락을 선사해 준다.

뤼초는 소련에 판매 후 페트로파블롭스크로 개명되었고 1942년 인양 뒤에는 탈린으로 개명되었었다.

전쟁 막바지 바렌츠 해 해전에서 히퍼를 기함으로 한 통상파괴전단이 영국 선단을 제압할 기회를 얻었지만 소극적 교전수칙에 의해 어영부영한 대응을 보였고 영국 순양전단이 13km 밖에서 발사한 6인치(15cm) 포탄 3발에 기관부를 피탄당하는 피해를 입어 전열에서 이탈하였다.

이 손상으로 퇴역한 히퍼는 킬 항에서 부유포대로 사용되다 1945년 5월 3일 연합군의 공습을 받고 침몰한다.

전후

프린츠 오이겐과 뤼초(탈린), 그리고 항공모함으로 개장중이다 중단된 자이틀리츠가 전후까지 살아남는다.

뤼초는 종전 후 1953년 드네프르로 개명된 뒤 1958년까지 소련 해군에서 훈련함과 해상 막사로 운용되다 퇴역하였다.

한편, 미국의 노획품이 된 프린츠 오이겐은 미 해군 함정인 USS 프린츠 오이겐으로 취역해 1946년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실험함으로 동원되었다. B-29에서 투하한 24kt의 원자폭탄 에이블(A)이 만든 핵폭발에서 살아남은 프린츠 오이겐은 2차인 베이커(B)에도 동원되어 수중 핵폭발에 의해 손상을 입었으나 침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농도 방사능 오염을 뒤집어 썼기에 승선이 불가능하여 수리 대신 인근 콰잘레인 환초로 예인되던 중 좌초되면서 폐함 처분된다.

특성

동급 함정

취역

어드미럴 히퍼(Admiral Hipper)

1935년 함부르크의 블롬 운트 포스 에서 기공되어 1937년 7월 6일에 진수한 히퍼급의 네임쉽으로 1939년 4월 25일 크릭스마리네로 배치되었다.


블뤼허(Blücher)

히퍼급의 2번함으로 1935년 킬에서 기공된 후 1937년 6월 8일에 진수되었다.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

히퍼급의 3번함으로 함명은 사부아 공작 외젠[1]의 이름을 땄다. 1936년 4월 23일 킬에 위치한 크루프 게르마니아 조선소에서 기공되었고 1938년 8월 22일 진수되었다. 1940년 취역 직전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았으나 경미한 손상 외에는 피해가 없어 그해 8월 1일 정상적으로 취역한다.

1941년 라인 연습 작전과 1942년 영국 해엽 돌파작전에 참여하였고 어뢰에 피격된 후에는 발트해로 활동 영역을 옮겨 종전 때 까지 배후도시 포격 및 지상군 지원 포격에 주력하였는데, 그 시기 유일한 대함 전과로는 경순양함 라히프치히를 들이받아 대파시킨 것이 있다. 전쟁 끝자락인 1945년 4월 뤼초와 함께 영국 공군의 공습을 받은 오이겐은 뤼초가 격침당하는 와중에도 생존하여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피신해 그곳에서 종전을 맞이하였다.

영국 해군에 의해 접수된 오이겐은 전후 미군에게 전리품으로 넘겨져 USS 프린츠 오이겐으로 개명된 뒤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원자폭탄 에이블과 베이커에 피폭되어 예인 중 콰잘레인 환초에서 좌초, 침몰한다.

뤼초(Lützow)

5번함 뤼초는 1937년 2월 8일에 기공되어 1939년 1월 7일 진수되었으나 1940년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으로 미완성된 채 소련으로 매각된다. 소련은 매각된 뤼초를 페트로파블롭스크(Петропавловск)로 재명명 했고 1941년 70%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8월 15일 취역, 레닌그라드 공방전에 투입되었다. 공방전 동안 해상 부유 포대로 활용되던 뤼초는 배치 한달여 만인 9월 17일 한스 울리히 루델이 모는 슈투카의 공습으로 같은 장소에서 활약하던 전함 마라와 같이 격침되었다.

그러나 1년 뒤인 1942년 9월 10일 뤼초를 인양한 소련 해군은 17일에 항구로 들여와 3문의 함포를 재생시켜 전선으로 복귀시킨다. 부활한 뤼초는 다시 화력 지원 임무에 전용되었고 1944년 소련군의 독일군 포위망을 돌파하는 공세에서 지상군에게 지원 사격을 해 주었다. 뤼초는 인양된 다음 페트로파블롭스크에서 탈린(Талрин)으로 개명되었으며 종전 후인 1953년에 연습함으로 전환되며 드네프르(Днепр)로 재 개명되었다. 뤼초는 1956년 해상 막사로 개조되면서 군함으로의 임무를 마감하였고 1958년 4월에 함적에서 제명되며 퇴역 처분을 받는다.

미취역

자이틀리츠(Seydlitz)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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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독일어권에선 프린츠 오이겐, 영어식으론 프린스 유진(Prince Euge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