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팝

브릿팝(Britpop)은 1990년대 영국에서 유행한 록 음악의 장르이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시작된 그런지 열풍의 영향을 받아 등장하여 1990년대 중반 큰 인기를 누렸으나 1997년을 기점으로 빠르게 쇠락했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브릿팝은 영국적인 요소를 내세운 복고풍의 록 음악이다. 브릿팝 밴드들은 주로 1960~1970년대 영국 록 음악을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방법론으로 재해석했다. 비틀즈, 킹크스, 더 후, 롤링 스톤즈 등 19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 시기의 밴드들이 브릿팝의 음악적 기반이었다. 1970년대의 펑크 록, 글램 록이나 1980년대 영국의 인디 록뉴웨이브 역시 브릿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둔 멜로디컬한 팝 록을 발표했다. 브릿팝 곡들은 밝고 경쾌했으며, 설령 가사나 주제 의식이 어두워도 곡 자체는 항상 낙관적인 분위기를 띄었다. 이들은 음악에 있어 "영국스러움(Britishness)"을 추구했으며 적극적으로 영국적 정서를 곡에 녹여내었다. 이들은 미국 문화에 반감을 표시했으며 과거의 영국 음악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였다. 이러한 태도는 1990년대 영국의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 문화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영국 내의 폭발적인 인기에 비해 미국 시장에서는 대부분의 밴드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또한 브릿팝은 당대 영국 사회의 계급 문화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많은 브릿팝 밴드가 자신들을 "노동 계급(Working Class)"이라 정체화했으며 공개적으로 노동당과 당시 당대표 토니 블레어를 지지하고, 영국 왕실과 귀족 등의 상류층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브릿팝은 1980년대 후반 인디 록의 부흥 당시 탄생했다. 이 시기 영국 내에선 다양한 인디 밴드들이 우후죽순 결성되었는데, 그 중 최초의 브릿팝 밴드라 불리는 라스(The La's)가 등장했다. 이들의 유일한 히트곡 There She Goes는 브릿팝의 시작을 알린 곡으로 평가된다. 1990년이 되자 블러스웨이드 등 훗날 브릿팝을 대표하게 될 밴드들이 잇따라 데뷔했는데, 이들의 곡들은 당시 영국 인디 신에서 유행하던 슈게이징과는 확연히 다른 성향의 음악이었다.

한편 1992년 미국에서 너바나, 펄 잼 등의 그런지 열풍이 불자 영국 미디어에서는 이에 맞설 영국 출신의 록스타를 발굴해내고자 했다. 최초로 스타덤에 오른 것은 스웨이드였다. 이들은 1970년대의 글램 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특한 음악성으로 빠르게 인기를 얻었고, 1993년 3월 발매된 데뷔 앨범 《Suede》는 영국에서 가장 빨리 팔린 데뷔 앨범이 되며 새로운 록스타의 등장을 알렸다.[1] 이미 1991년 《Leisure》로 데뷔했으나 상업성에 치중해 개성을 상실했다는 혹평을 받은 블러는 심기일전해서 1960년대 로큰롤을 기반으로 당대 영국 사회에 대한 냉소를 담아낸 《Modern Life Is Rubbish》를 같은 해 4월 발표한다. 같은 시기 맨체스터 출신의 신예 밴드 오아시스크리에이션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고 펄프가 10년의 무명 시절을 끝내고 메이저 데뷔에 성공했다. 이들은 당시 미국 음악에 대항할 만한 뮤지션들을 찾던 영국의 언론들에게 주목을 받는다. 영국의 음악 잡지 셀렉트(Select)의 1993년 4월호의 표지에는 유니언 잭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스웨이드의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과 "Yanks Go Home!"이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쓰여져 있었고, 그 내용물은 영국의 새로운 브리티시 팝(British Pop)음악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를 기점으로 많은 언론들에서 앞다투어 이들을 보도하기 시작했으며, '브릿팝'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1994년 브릿팝은 본격적으로 영국 음악계에 주류로 자리잡는다. 엘라스티카(Elastica), 슈퍼그래스(Supergrass), 애시(Ash), 진(Gene) 등 많은 브릿팝 밴드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스스로 "영국적"임을 강조했고 미국 음악, 현대 영국 사회와 상류 계급을 조롱하며 과거 1960~1970년대 영국 문화를 지향했다. 이는 당시 영국에 불던 '과거 영국의 영광을 되돌리자'는 취지의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 운동의 영향을 받았으며 역으로 이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이들 중 가장 큰 인기를 끌던 밴드들이 블러와 오아시스였다. 블러는 영국의 중산층(Middle Class)의 삶을 비판하는 《Parklife》 앨범으로 차트 1위를 달성하고 음악적으로도 한층 진보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상업성,비평 양면으로 크게 성공했다. 오아시스는 노동 계급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큰 화제를 모았고,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는 스웨이드의 '가장 빨리 팔린 데뷔 음반' 기록을 갈아치우며 오아시스 신드롬을 일으켰다.[2] 이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원만했으나, 서로를 라이벌 관계로 몰아가는 언론에 의해 점차 악화되기 시작한다.

1995년 8월 14일 '브릿팝 전쟁(The Battle of Britpop)'이라 불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블러가 싱글 《Country House》의 발매일을 오아시스의 《Roll With It》의 발매일과 같은 날로 연기한 것이다. 블러는 4집 《The Great Escape》의 발매를 앞두고 노이즈 마케팅을 위해 의도적으로 싱글의 발매를 늦추었고, 오아시스는 이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고 공개적으로 블러를 비난했다.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두 밴드 사이의 갈등은 언론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들의 갈등은 '브릿팝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음악 잡지와 타블로이드의 1면을 장식하며 점차 인기 밴드간의 다툼이 아닌 영국의 계급, 지역 갈등과 얽힌 사회적 이슈가 되어갔다. 싱글의 판매고 자체는 《Country House》가 근소한 차이로 《Roll With It》을 앞서며 블러의 승리가 되었으나, 이후 블러는 싸구려 팝 그룹, 남부 사람, 워킹 클래스인 척 하는 중산층 등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블러의 《The Great Escape》는 당시 영국의 계급주의와 사회적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앨범이었으나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고, 평단의 반응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오아시스는 브릿팝 전쟁에서 승리한 뒤 '노동 계급의 대변인', '북부의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비틀즈 이래 최고의 영국 밴드"라 불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었다. 1995년 10월 2일 발매된 오아시스의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는 전 세계 2000만 장 이상의 판매량, 앨범 차트 10주 연속 1위, 1990년대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등의 엄청난 기록과 함께 평론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199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 중 하나가 되었다.

브릿팝의 몰락은 불현듯 찾아왔다. 브릿팝 전쟁 이후 한동안 슬럼프에 시달리던 블러는 1997년 2월 10일 셀프 타이틀 앨범 《Blur》를 발표하며 "브릿팝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그 말대로 《Blur》는 기존의 브릿팝 색채에서 벗어나 1990년대 미국 얼터너티브 록의 영향을 짙게 받은 앨범이었다. 이는 기존 팬들의 논쟁을 불러 일으켰으나 앨범 자체는 호평을 받았고, 이를 기점으로 블러는 브릿팝에서 벗어나 재기에 성공한다. 한편 영국 최고의 밴드가 되었던 오아시스는 온갖 시상식에서 상을 싹쓸이하고 넵워스 공연에서 25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알코올마약에 중독되어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며 그 동력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8월 21일 발매된 오아시스의 3집 앨범 《Be Here Now》는 그 기대에 걸맞게 발매 당일 42만 장이 팔리며 영국에서 가장 빨리 팔린 음반으로 기록되지만[3],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전작들에 비해 확연히 뒤떨어진 퀄리티로 인해 대중과 평론가들의 싸늘한 혹평을 받으며 밴드의 흑역사가 되었다. 이렇게 오아시스를 비롯해서 여러 브릿팝 밴드들이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범작~졸작을 내놓았고, 블러와 펄프 등의 밴드들은 브릿팝에서 이탈해 버렸다. 또한 1997년은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 버브의 《Urban Hymns》와 같은 브릿팝에 속하지 않는 밴드들이 명반을 발표한 시기이기도 했다. 기존 브릿팝 밴드들이 몰락하고 브릿팝에서 벗어난 밴드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1997년 이후 브릿팝은 주류에서 내려오게 된다.

포스트-브릿팝[편집 | 원본 편집]

포스트-브릿팝(Post-Britpop)은 영국에서 1990년대 후반 브릿팝 열풍 이후 등장한 록 음악의 장르이다. 라디오헤드버브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서정적이고 우울한 감성을 기반으로 한 록 음악이다. 멜로디 위주의 기타 팝이라는 점에서는 브릿팝과 공통점이 있으나, 멜로디와 가사는 브릿팝에 비해 더욱 우울하고 개인적인 감정을 소재로 하며 "영국스러움(Britishness)"을 내세우지 않는다. 브릿팝과 달리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데 성공했다. 유명 밴드로는 콜드플레이, 뮤즈, 트래비스, 스타세일러 등이 있다.

각주

  1. 이후 오아시스의 데뷔 앨범에 의해 갱신.
  2. 이후 악틱 몽키즈의 데뷔 앨범에 의해 갱신.
  3. 이후 아델의 앨범 《25》에 의해 갱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