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리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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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리즘'''(Vandalism)은 의도적으로 예술품, [[문화]] 등을 파괴 · 훼손 · 더럽히는 행위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행위로는 낙서가 있으며, 21세기의 가장 유명한 반달리즘으로는 [[탈레반]]의 바미얀 석불 파괴<ref>[http://www.huffingtonpost.kr/2014/03/24/story_n_5018910.html 바미안 석불 복원은 대체 언제?], 연합뉴스, 2014.03.24</ref>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고대 문화유산·유적 파괴를 들 수 있다.<ref>[http://www.huffingtonpost.kr/2015/03/05/is------_n_6812764.html IS, 모술 박물관에 이어 고대 '아시리아' 도시 유적 파괴 개시], 허핑턴포스트, 2015.03.26</ref>
== 이름의 유래 ==
반달리즘은 5세기 유럽 민족 대이동 때 반달족이 이동하면서 이동한 지역을 약탈하고 파괴했다는 '''잘못 알려진 사실'''에서 유래했다.
== 사례 ==
대상을 파괴했음에도 무조건 나쁘게 여겨지지는 않는 사례도 있다. [[일제강점기]]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1995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광복 50주년을 맞아 헐어버린 [[조선총독부]] 건물이 대표적이고,<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81600209131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08-16&officeId=00020&pageNo=31&printNo=22940&publishType=00010 "「민족의 맥」 이제야 이었다" 일제통치 상징 구 총독부 첨탑 철거되던 날], 동아일보, 1995.08.16</ref> [[베를린 장벽]]은 일부 보존된 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민들에 의해 부서져 조각이 되었다.
훼손된 문화재를 복구하려다가 원치 않게 원본보다 훼손되어 반달리즘과 같이 되는 사례도 있다. 19세기 [[스페인]] 화가인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가 그린 프레스코화 '에케호모'(이 사람을 보라)가 그것이다. 이 그림은 [[스페인]] [[사라고사]]의 한 성당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2012년]]에 한 [[할머니]]가 습기로 인해 일부 훼손된 그림을 복원하려다가 미숙한 그림 실력으로 인해 심각하게 나쁜 결과물이 나왔던 사례가 있다.<ref>[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548463.html 스페인 주책 할머니 예수 벽화 복원하려다가…], 한겨레, 2012.08.23</ref>
반대 사례로 [[스페인]] [[그라나다]]에 위치한 [[알함브라 궁전]]이 있다. 원래 이 곳은 11세기 경에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세웠던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의 영향으로 인해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궁전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슬람 국가가 멸망하고 카스티야, 아라곤 등의 가톨릭교 왕조가 강성해지고, 이들이 이슬람교를 몰아내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  [[레콩키스타]](Reconquista·국토 회복 운동) 운동을 펼치면서 [[1492년]]에 이슬람 국가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축출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인 보아브딜 왕이 [[이사벨 여왕]]에게 항복하면서 첫째로 알함브라 궁전을 잘 보존해달라, 둘째로 모두 데리고 갈 수 없는 이슬람인들을 국민으로 받아 달라, 셋째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라는 조건을 요구하였고<ref>[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10/2014071002322.html 이슬람 왕이 국가보다 더 사랑했던 알함브라 궁전], 김귀욱, 프리미엄조선, 2014.07.11</ref>, 비록 이슬람 주민들은 무참한 학살과 추방을 당했지만<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60214020001 <nowiki>[이슬람 문명과 도시]</nowiki>(3)알함브라 궁전을 지닌 스페인 그라나다], 서울신문, 2006.02.14</ref> 궁전은 끝까지 남아 결과적으론 안달루시아 지방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 개요 ==
하지만 원판의 퀄리티를 살리지 못할망정 레플리카만도 못한 복원품 제작으로 인해 문화재 복원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사례도 있는데, 이것도 결과적으로는 반달리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바깥에 방치할 경우 [[산성비]]나 풍화작용 등의 자연현상으로 인해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원형을 잃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호하는 경우도 있다. 그 예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산성비로 인한 부식과 조류 배설물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해<ref>[http://news.donga.com/3/03/20150325/70309655/1 <nowiki>[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nowiki>울고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 동아일보, 2015.07.29</ref> 탑 주변에 유리보호각을 둘러친 [[원각사지 10층 석탑]]이다.<ref>[http://senior.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9/2014081901001.html?senior <nowiki>[국보탐방] [2]</nowiki> 국보 제2호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시니어조선, 2014.08.19</ref>
'''반달리즘(Vandalism, '''{{ㅊ|Half Moonism}}''')'''은 의도적으로 예술품, [[문화]] 등을 파괴 · 훼손 · 더럽히는 행위를 말한다. 21세기의 가장 유명한 반달리즘으로는 [[탈레반]]의 바미얀 석불 파괴<ref>[http://www.huffingtonpost.kr/2014/03/24/story_n_5018910.html 바미안 석불 복원은 대체 언제?], 연합뉴스, 2014.03.24</ref>[[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고대 문화유산·유적 파괴를 들 수 있다.<ref>[http://www.huffingtonpost.kr/2015/03/05/is------_n_6812764.html IS, 모술 박물관에 이어 고대 '아시리아' 도시 유적 파괴 개시], 허핑턴포스트, 2015.03.26</ref>


=== 이름의 유래 ===
일본의 오사카성 천수각과 우리나라의 광화문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신라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목탑이었던 9층 목탑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하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집을 금속 지붕으로 교체하는 작업으로 인해 초가 문화가 거의 소실되었다.
반달리즘은 5세기 유럽 민족 대이동 때 반달족이 이동하면서 이동한 지역을 약탈하고 파괴했다는 '''잘못 알려진 사실'''에서 유래했다. 반달족의 지도자들은 이미 로마 문화를 받아들여 로마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하였고, 그런 까닭에 파괴 행위는 극히 드물었다. 로마의 예술품은 오히려 로마 제국 말기의 노예나 일반인, 빈곤층, 후대의 예술가들이 더 많이 파괴했다. 그리고 관련성이 끊기며 내려오는 후예, 혹은 이주민들이 건축자재로서 문화재를 부숴다 쓴 사례는 역사속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고대 유적들은 악의적인 의미가 아니고서야 이런 과정에서 파괴되었다.


=== 이런것도 반달인가? ===
또한 외국의 문화재를 약탈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원명원의 유물들을 약탈하여<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18/0200000000AKR20160718151200005.HTML <nowiki><中정원 기행> ①훼손된 원명원, 복원작업 어떻게 이뤄지나</nowiki>], 연합뉴스, 2016.07.19</ref>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영국]] 대영박물관에 가겨간<ref name="snatch">[http://m.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28790&referer= 중국, 약탈 문화재 조사 착수...서방과 '문화 전쟁' 가능성], KoreaDaily, 2009.10.22</ref> 프랑스 및 영국 등 옛 서구 열강의 문화재 약탈행위가 그 예이다. 이 경우는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의 침략행위에 따른 일이라 옛 서구 열강 측에서는 쉽게 내줄 없다고 뻐팅기고 있어서 국제적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ref name="snatch"></ref>
반면 반달로 봐야할지 아니면 정당한 행위로 봐야할 지 조금 애매한 것들도 있다.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고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면서 콘스탄티노플(現 [[이스탄불]]에 있던 [[아야 소피아 성당]]을 [[기독교]]의 색채를 없애기 위해 기독교 양식의 벽화를 이슬람 풍으로 덧칠했던 [[아야 소피아 성당]], 우상숭배를 배척하기 위한 목적으로 [[무함마드]]가 대부분의 신상을 파괴해 버린 [[메카 신전]], 그리고 [[일제강점기]]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1995년]] [[8월 15일]][[대한민국]] 광복 50주년을 맞아 헐어버린 [[조선총독부]] 건물 등이 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81600209131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08-16&officeId=00020&pageNo=31&printNo=22940&publishType=00010 "「민족의 맥」 이제야 이었다" 일제통치 상징 구 총독부 첨탑 철거되던 날], 동아일보, 1995.08.16</ref> 이런 경우는 대개 그 나라 입장에서 보기 싫은 것들은 국가에서 직접 없애버리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이를 보는 관점이 달라질 있다.


또한, 훼손된 문화재를 복구하려다가 원치 않게 원본보다 훼손되어 반달리즘으로 오인되는 사례도 있다. 19세기 [[스페인]] 화가인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가 그린 프레스코화 '에케호모'(이 사람을 보라)가 그것이다. 이 그림은 [[스페인]] [[사라고사]]의 한 성당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2012년]]에 한 [[할머니]]가 습기로 인해 그림이 일부 훼손되어 이를 복원하려다가 미숙한 그림 실력 때문에 원본보다 더 안 좋은 결과물이 나왔던 사례가 있다.<ref>[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548463.html 스페인 주책 할머니 예수 벽화 복원하려다가…], 한겨레, 2012.08.23</ref>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미리 가져가지 않았으면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라는 시각도 만만찮은데 실제로 19~20세기 초반까지 이집트와 그리스는 문화재가 너무 널려 있었던 탓인지 그저 돈벌이용으로 취급하거나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는 시각이 덜했다고 한다. 또한 [[현대]]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인 [[ISIL]]가 모술 박물관의 문화재를 파괴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공분을 산 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대부분 모조품이라 [[이라크]] 정부측에서 그리 중요하게 여긴 것 같지 않다는 반전이 있기도 했다. 모술이 속해 있는 니네베 주의 주지사를 맡고 있는 나틸 알누자이피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한 말에 따르면, 동영상에서 훼손된 유물 중 진품은 모술 고고학 공원에 있는 아시리아 시대의 '독수리 날개 달린 황소'와 '로즈한의 신'(the God of Rozhan) 등 2점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2/28/0200000000AKR20150228051051070.HTML "'IS 파괴' 모술박물관 유물은 대부분 모조품"(종합)], 연합뉴스, 2015.03.01</ref>


반대 사례로 [[스페인]] [[그라나다]]에 위치한 [[알함브라 궁전]]이 있다. 원래 이 곳은 11세기 경에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세웠던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의 영향으로 인해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궁전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슬람 국가가 멸망하고 카스티야, 아라곤 등의 가톨릭교 왕조가 강성해지고, 이들이 이슬람교를 몰아내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  [[레콩키스타]](Reconquista·국토 회복 운동) 운동을 펼치면서 [[1492년]]에 이슬람 국가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축출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인 보아브딜 왕이 [[이사벨 여왕]]에게 항복하면서 첫째, 알함브라 궁전을 잘 보존 해달라, 둘째, 다 데리고 갈 수 없는 이슬람인들을 국민으로 받아 달라, 셋째, 남아 있는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라는 조건을 요구하였고<ref>[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10/2014071002322.html 이슬람 왕이 국가보다 더 사랑했던 알함브라 궁전], 김귀욱, 프리미엄조선, 2014.07.11</ref>, 비록 이슬람 주민들은 무참한 학살과 추방을 당했지만<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60214020001 <nowiki>[이슬람 문명과 도시]</nowiki>(3)알함브라 궁전을 지닌 스페인 그라나다], 서울신문, 2006.02.14</ref>, 궁전은 끝까지 남아 결과적으론 안달루시아 지방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으로 전통 건축물이나 문화재가 상당수 소실되었다.


하지만 원판의 퀄리티를 살리지 못 할 망정, 레플리카만도 못 한 복원품 제작으로 인해 문화재 복원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사례도 있는데, 이것도 결과적으로는 반달리즘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바깥에 방치할 경우 [[산성비]]나 풍화작용 등의 자연현상으로 인해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원형을 잃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호하는 경우도 있다. 그 예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산성비로 인한 부식과 조류 배설물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해<ref>[http://news.donga.com/3/03/20150325/70309655/1 <nowiki>[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nowiki>울고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 동아일보, 2015.07.29</ref>
== 같이 보기 ==
</ref> 탑 주변에 유리보호각을 둘러친 [[원각사지 10층 석탑]]이다.<ref>[http://senior.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9/2014081901001.html?senior <nowiki>[국보탐방] [2]</nowiki> 국보 제2호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시니어조선, 2014.08.19</ref>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 [[탈레반]]
* [[문화대혁명]]
* [[분서갱유]]: 이것도 엄연한 반달리즘이다.


또한, 외국의 문화재를 약탈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원명원의 유물들을 약탈하여<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18/0200000000AKR20160718151200005.HTML <中정원 기행> ①훼손된 원명원, 복원작업 어떻게 이뤄지나], 연합뉴스, 2016.07.19</ref>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영국]] 대영박물관에 가겨간<ref name="snatch">[http://m.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28790&referer= 중국, 약탈 문화재 조사 착수...서방과 '문화 전쟁' 가능성], KoreaDaily, 2009.10.22</ref> 프랑스 및 영국 등 옛 서구 열강의 문화재 약탈행위가 그 예이다. 이 경우는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의 침략행위에 따른 일이라 옛 서구 열강 측에서는 쉽게 내줄 수 없다고 뻐팅기고 있어서 국제적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ref name="snatch"></ref>
== [[위키]]에서의 반달리즘 ==
{{참고|문서 훼손}}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미리 가져가지 않았으면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라는 시각도 만만찮은데 실제로 19~20세기 초반까지 이집트와 그리스는 문화재가 너무 널려 있었던 탓인지 그저 돈벌이용으로 취급하거나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는 시각이 덜했다고 한다. 또한, [[현대]]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인 [[ISIL]]가 모술 박물관의 문화재를 파괴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공분을 산 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대부분 모조품이라 [[이라크]] 정부측에서 그리 중요하게 여긴 것 같지 않다는 반전이 있기도 했다. 모술이 속해 있는 니네베 주의 주지사를 맡고 있는 나틸 알누자이피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한 말에 따르면, 동영상에서 훼손된 유물 중 진품은 모술 고고학 공원에 있는 아시리아 시대의 '독수리 날개 달린 황소''로즈한의 신'(the God of Rozhan) 등 2점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2/28/0200000000AKR20150228051051070.HTML "'IS 파괴' 모술박물관 유물은 대부분 모조품"(종합)], 연합뉴스, 2015.03.01</ref>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위키]] 역시 특성상 반달리즘의 대상이 되곤 한다. [[위키백과]]의 영향으로 인해 [[대한민국]] [[네티즌]]들에게는 반달리즘이 [[위키]]에서의 문서 훼손 행위로 알려져 있지만,<ref>[[Wikipedia:Wikipedia:Vandalism]]</ref> 정식 명칭은 '''문서 훼손'''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도 위키 문서를 훼손하는 행위는 문서 훼손이라는 표제어를 설정하여 반달리즘과 명확히 구별하고 있다.<ref>[[위키백과:반달리즘]], [[위키백과:위키백과:문서 훼손]]</ref>


==위키위키에서의 반달리즘==
{{각주}}
{{참조|문서 훼손}}


[[위키피디아]]의 영향으로 인해 [[대한민국]] [[네티즌]]들에게는 반달리즘이 [[위키위키]]에서의 문서 훼손행위로 알려져 있지만<ref>[[Wikipedia:Vandalism]]</ref>, 정식 명칭은 '''문서 훼손'''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도 위키위키 문서를 훼손하는 행위는 문서 훼손이라는 표제어를 설정하여 반달리즘과 명확히 구별하고 있다.<ref>[[위키백과:반달리즘]], [[위키백과:문서_훼손]]</ref>
[[분류:범죄]]

2023년 10월 10일 (화) 06:46 기준 최신판

동상을 반달리즘 중인 IS 테러리스트

반달리즘(Vandalism)은 의도적으로 예술품, 문화 등을 파괴 · 훼손 · 더럽히는 행위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행위로는 낙서가 있으며, 21세기의 가장 유명한 반달리즘으로는 탈레반의 바미얀 석불 파괴[1]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고대 문화유산·유적 파괴를 들 수 있다.[2]

이름의 유래[편집 | 원본 편집]

반달리즘은 5세기 유럽 민족 대이동 때 반달족이 이동하면서 이동한 지역을 약탈하고 파괴했다는 잘못 알려진 사실에서 유래했다.

사례[편집 | 원본 편집]

대상을 파괴했음에도 무조건 나쁘게 여겨지지는 않는 사례도 있다. 일제강점기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1995년 8월 15일대한민국 광복 50주년을 맞아 헐어버린 조선총독부 건물이 대표적이고,[3] 베를린 장벽은 일부 보존된 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민들에 의해 부서져 조각이 되었다.

훼손된 문화재를 복구하려다가 원치 않게 원본보다 훼손되어 반달리즘과 같이 되는 사례도 있다. 19세기 스페인 화가인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가 그린 프레스코화 '에케호모'(이 사람을 보라)가 그것이다. 이 그림은 스페인 사라고사의 한 성당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2012년에 한 할머니가 습기로 인해 일부 훼손된 그림을 복원하려다가 미숙한 그림 실력으로 인해 심각하게 나쁜 결과물이 나왔던 사례가 있다.[4]

반대 사례로 스페인 그라나다에 위치한 알함브라 궁전이 있다. 원래 이 곳은 11세기 경에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세웠던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의 영향으로 인해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궁전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슬람 국가가 멸망하고 카스티야, 아라곤 등의 가톨릭교 왕조가 강성해지고, 이들이 이슬람교를 몰아내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 레콩키스타(Reconquista·국토 회복 운동) 운동을 펼치면서 1492년에 이슬람 국가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축출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인 보아브딜 왕이 이사벨 여왕에게 항복하면서 첫째로 알함브라 궁전을 잘 보존해달라, 둘째로 모두 데리고 갈 수 없는 이슬람인들을 국민으로 받아 달라, 셋째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라는 조건을 요구하였고[5], 비록 이슬람 주민들은 무참한 학살과 추방을 당했지만[6] 궁전은 끝까지 남아 결과적으론 안달루시아 지방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원판의 퀄리티를 살리지 못할망정 레플리카만도 못한 복원품 제작으로 인해 문화재 복원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사례도 있는데, 이것도 결과적으로는 반달리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바깥에 방치할 경우 산성비나 풍화작용 등의 자연현상으로 인해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원형을 잃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호하는 경우도 있다. 그 예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산성비로 인한 부식과 조류 배설물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해[7] 탑 주변에 유리보호각을 둘러친 원각사지 10층 석탑이다.[8]

일본의 오사카성 천수각과 우리나라의 광화문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신라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목탑이었던 9층 목탑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하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집을 금속 지붕으로 교체하는 작업으로 인해 초가 문화가 거의 소실되었다.

또한 외국의 문화재를 약탈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원명원의 유물들을 약탈하여[9]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영국 대영박물관에 가겨간[10] 프랑스 및 영국 등 옛 서구 열강의 문화재 약탈행위가 그 예이다. 이 경우는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의 침략행위에 따른 일이라 옛 서구 열강 측에서는 쉽게 내줄 수 없다고 뻐팅기고 있어서 국제적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10]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미리 가져가지 않았으면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라는 시각도 만만찮은데 실제로 19~20세기 초반까지 이집트와 그리스는 문화재가 너무 널려 있었던 탓인지 그저 돈벌이용으로 취급하거나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는 시각이 덜했다고 한다. 또한 현대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인 ISIL가 모술 박물관의 문화재를 파괴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공분을 산 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대부분 모조품이라 이라크 정부측에서 그리 중요하게 여긴 것 같지 않다는 반전이 있기도 했다. 모술이 속해 있는 니네베 주의 주지사를 맡고 있는 나틸 알누자이피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한 말에 따르면, 동영상에서 훼손된 유물 중 진품은 모술 고고학 공원에 있는 아시리아 시대의 '독수리 날개 달린 황소'와 '로즈한의 신'(the God of Rozhan) 등 2점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11]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으로 전통 건축물이나 문화재가 상당수 소실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위키에서의 반달리즘[편집 | 원본 편집]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위키 역시 특성상 반달리즘의 대상이 되곤 한다. 위키백과의 영향으로 인해 대한민국 네티즌들에게는 반달리즘이 위키에서의 문서 훼손 행위로 알려져 있지만,[12] 정식 명칭은 문서 훼손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도 위키 문서를 훼손하는 행위는 문서 훼손이라는 표제어를 설정하여 반달리즘과 명확히 구별하고 있다.[13]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