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P 사업: 두 판 사이의 차이

(자동 찾아 바꾸기: 「수 밖에」(을)를 「수밖에」(으)로)
잔글 (불필요한 공백 제거)
2번째 줄: 2번째 줄:


==사업목표==
==사업목표==
[[제5공화국]] 이후 3저 호황으로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외환보유고가 높아짐에 따라, 노후화된 국군의 장비들을 현대화된 장비로 교체하는 [[율곡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기는 F-5와 F-4가 주축이었는데, 이중에서 숫적으로 주력의 위치를 차지하는 F-5를 대체하고, 당시 [[북한]]의 공군기들을 압도할 수 있는 최신예 전투기를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총 120대를 도입한다는 내용의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규모의 무기도입 사업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명칭을 FX사업으로 진행하려 했으나, 동시기에 진행된 일본의 FSX사업<ref>현재 일본이 보유한 F-16의 자체 개량형인 F-2의 근간이 된 사업이었다.</ref>이 미국 의회의 반발을 사는 등 진통을 겪게되자, 비슷한 뉘앙스의 사업명칭이 불똥을 맞을까 우려하여 KFP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제5공화국]] 이후 3저 호황으로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외환보유고가 높아짐에 따라, 노후화된 국군의 장비들을 현대화된 장비로 교체하는 [[율곡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기는 F-5와 F-4가 주축이었는데, 이중에서 숫적으로 주력의 위치를 차지하는 F-5를 대체하고, 당시 [[북한]]의 공군기들을 압도할 수 있는 최신예 전투기를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총 120대를 도입한다는 내용의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규모의 무기도입 사업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명칭을 FX사업으로 진행하려 했으나, 동시기에 진행된 일본의 FSX사업<ref>현재 일본이 보유한 F-16의 자체 개량형인 F-2의 근간이 된 사업이었다.</ref>이 미국 의회의 반발을 사는 등 진통을 겪게되자, 비슷한 뉘앙스의 사업명칭이 불똥을 맞을까 우려하여 KFP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후보기종==
==후보기종==
22번째 줄: 22번째 줄:


==후일담==
==후일담==
사실 공군은 쌍발기인 F-18을 적극적으로 원했었다. 물론 공군의 의도대로 F-18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매끄럽게 흘러가나싶던 사업이 F-18의 가격인상이라는 변수를 만나면서 가시밭길을 예고했다. 충분치 않은 예산 상황에서도 북한에 비해 숫적인 우위도 갖추길 원했던 정부의 입장과 안정적인 쌍발기를 원했던 공군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결과적으로 F-18 가격인상 이후 사업을 재검토하는 사이에 F-16은 블록 52로 업그레이드되면서 [[AIM-120 암람]]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고, 기체가격에 요지부동이었던 F-18과 다르게 F-16의 제작사인 제너럴 다니내믹스는 대한민국 정부가 기체선정을 쉽사리 발표하지 않는것에 애가 탄 나머지, 우리측이 제시한 작전요구성능에 포함되지도 않은 [[AGM-88 HARM]]과 같은 민감한 무장<ref>AGM-88은 미국 외에 수출된 전례가 없는 고급 무장이었다.</ref>을 통합시켜 주겠다고 제안했고, 여기에다 미공군은 운용하지 않던 하푼 대함미사일도 통합시켜 주겠다면서 적극적인 자세로 사업에 임했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차세대 고등훈련기 개발사업에 동참할 것과 항공기술 발전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지원을 약속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연달아 제시하였다.  
사실 공군은 쌍발기인 F-18을 적극적으로 원했었다. 물론 공군의 의도대로 F-18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매끄럽게 흘러가나싶던 사업이 F-18의 가격인상이라는 변수를 만나면서 가시밭길을 예고했다. 충분치 않은 예산 상황에서도 북한에 비해 숫적인 우위도 갖추길 원했던 정부의 입장과 안정적인 쌍발기를 원했던 공군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결과적으로 F-18 가격인상 이후 사업을 재검토하는 사이에 F-16은 블록 52로 업그레이드되면서 [[AIM-120 암람]]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고, 기체가격에 요지부동이었던 F-18과 다르게 F-16의 제작사인 제너럴 다니내믹스는 대한민국 정부가 기체선정을 쉽사리 발표하지 않는것에 애가 탄 나머지, 우리측이 제시한 작전요구성능에 포함되지도 않은 [[AGM-88 HARM]]과 같은 민감한 무장<ref>AGM-88은 미국 외에 수출된 전례가 없는 고급 무장이었다.</ref>을 통합시켜 주겠다고 제안했고, 여기에다 미공군은 운용하지 않던 하푼 대함미사일도 통합시켜 주겠다면서 적극적인 자세로 사업에 임했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차세대 고등훈련기 개발사업에 동참할 것과 항공기술 발전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지원을 약속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연달아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예산범위 내에서 120대의 목표수량 달성은 물론이고, 애초에 제시하지도 않았던 추가적인 무장과 각종 기술지원 등의 조건을 흡족하게 생각한 정부는 최종적으로 F-16을 KFP사업의 도입기종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예산범위 내에서 120대의 목표수량 달성은 물론이고, 애초에 제시하지도 않았던 추가적인 무장과 각종 기술지원 등의 조건을 흡족하게 생각한 정부는 최종적으로 F-16을 KFP사업의 도입기종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물론 결정 당시에도 공군은 끈질기게 쌍발기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기종선정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는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정용후 대장을 병원에 감금(...)<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022042015&code=990201 ‘셀프’ 전역사], 경향신문, {{날짜|2019-5-2}}</ref>시키고, 국방부장관을 경질하는 등 강압적인 수단으로 공군의 불만을 입막음하였다. 이후 불명예 전역을 당한 정용후 총장이 이러한 청와대의 불법행위를 폭로하면서 [[감사원]]이 KFP사업 과정을 점검한 결과, 무려 118건에 달하는 비위가 적발되면서 전직 군 고위관계자 6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 현역 장성 8명을 포함한 군장교 53명에 대하여 국방부에 징계를 포함한 인사조치 권고를 하는 등 파장이 상당했다.
물론 결정 당시에도 공군은 끈질기게 쌍발기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기종선정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는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정용후 대장을 병원에 감금(...)<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022042015&code=990201 ‘셀프’ 전역사], 경향신문, {{날짜|2019-5-2}}</ref>시키고, 국방부장관을 경질하는 등 강압적인 수단으로 공군의 불만을 입막음하였다. 이후 불명예 전역을 당한 정용후 총장이 이러한 청와대의 불법행위를 폭로하면서 [[감사원]]이 KFP사업 과정을 점검한 결과, 무려 118건에 달하는 비위가 적발되면서 전직 군 고위관계자 6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 현역 장성 8명을 포함한 군장교 53명에 대하여 국방부에 징계를 포함한 인사조치 권고를 하는 등 파장이 상당했다.


{{각주}}
{{각주}}
[[분류:대한민국 공군]]
[[분류:대한민국 공군]]

2021년 6월 13일 (일) 08:54 판

한국형 전투기사업(KFP: Korea Fighter Program)은 1983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선정사업이다.

사업목표

제5공화국 이후 3저 호황으로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외환보유고가 높아짐에 따라, 노후화된 국군의 장비들을 현대화된 장비로 교체하는 율곡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기는 F-5와 F-4가 주축이었는데, 이중에서 숫적으로 주력의 위치를 차지하는 F-5를 대체하고, 당시 북한의 공군기들을 압도할 수 있는 최신예 전투기를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총 120대를 도입한다는 내용의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규모의 무기도입 사업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명칭을 FX사업으로 진행하려 했으나, 동시기에 진행된 일본의 FSX사업[1]이 미국 의회의 반발을 사는 등 진통을 겪게되자, 비슷한 뉘앙스의 사업명칭이 불똥을 맞을까 우려하여 KFP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후보기종

워낙 거대한 이권이 걸린 사업이었던만큼 세계 유수의 방산업체들이 앞다퉈 자사의 기체들을 예비입찰하면서 경쟁이 시작되었다.

미국 맥도넬 더글라스[2] F/A-18 호넷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3] F-16 팰콘
미국 노스롭[4] F-20 타이거샤크
프랑스 다소 미라주 2000
영국 독일 이탈리아 파나비어[5] 토네이도 IDS

1차 입찰에서 미라주와 토네이도는 탈락[6]했고, 미국의 3개 기종이 본격적인 경쟁에 들어갔다. 그러나 노스롭의 F-20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직접 참관하는 시험비행에서 기체를 몰던 조종사가 G-lock에 빠지면서 추락하는 추태를 보이는 안습 전설을 작성하면서 광탈하였고, 이후 남은 F-18과 F-16을 저울질 한 결과, 최종적으로 F-18이 결정되어 도입을 앞두고 있었다. 특히 F-18은 당시 F-16이 운용하지 못했던 신형 중거리 미사일인 AIM-120 암람을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반전

도입기체가 F-18로 결정되고 도입을 진행하려던 순간, F-18의 제작사인 맥더넬 더글라스는 갑자기 기체의 단가를 40% 이상 높여버리면서 사업이 표류하게 되었다. 이에 당시 청와대국방부는 이러한 뒤통수 작전에 어이를 상실하여 강하게 반발하였다. 물론 환율상승, 인건비, F-18의 해외판매 부진으로 인한 단가상승 등 가격인상 요인은 다양했지만 도입직전 가격을 일방적으로 통보당한 셈이어서 우리로선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이 책정한 예산은 약 44억 달러 정도였는데, F-18의 가격상승은 120대 기준으로 66억 달러 이상의 예산이 필요했고, 44억 달러 예산에 맞추려면 도입수량은 80대 수준으로 크게 낮출 수밖에 없어서 결국 사업을 재검토하였고, 그 사이에 F-18에 밀렸던 F-16에 AIM-120 암람이 통합되면서 F-18의 우위가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1991년, 정부는 KFP사업의 도입기체를 F-16으로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기체변경 과정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후일담 항목에 서술.

F-16 도입

총 5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이후 1991년 10월부터 1단계로 12대의 F-16 전투기를 미국에서 직도입하였고, 2단계로 36대를 라이센스 생산하는 한편, 3단계부터는 주요부품을 국산화해 72대의 F-16을 생산, 2000년 4월까지 사업목표인 총 120대를 성공적으로 도입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라이센스 생산업체였던 삼성항공[7]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예정되었던 KTX-2사업[8]이 백지화 되는 등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정부에 강하게 유감을 표했고, 2002년 완료될 KFP사업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결단으로 삼성항공측의 불만과 정치적인 부담을 덜어내려는 의도에서 추가로 20대의 KF-16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2006년 4월, 140번째 기체가 공군에 인도되어 KFP 사업은 마무리 되었다.

후일담

사실 공군은 쌍발기인 F-18을 적극적으로 원했었다. 물론 공군의 의도대로 F-18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매끄럽게 흘러가나싶던 사업이 F-18의 가격인상이라는 변수를 만나면서 가시밭길을 예고했다. 충분치 않은 예산 상황에서도 북한에 비해 숫적인 우위도 갖추길 원했던 정부의 입장과 안정적인 쌍발기를 원했던 공군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결과적으로 F-18 가격인상 이후 사업을 재검토하는 사이에 F-16은 블록 52로 업그레이드되면서 AIM-120 암람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고, 기체가격에 요지부동이었던 F-18과 다르게 F-16의 제작사인 제너럴 다니내믹스는 대한민국 정부가 기체선정을 쉽사리 발표하지 않는것에 애가 탄 나머지, 우리측이 제시한 작전요구성능에 포함되지도 않은 AGM-88 HARM과 같은 민감한 무장[9]을 통합시켜 주겠다고 제안했고, 여기에다 미공군은 운용하지 않던 하푼 대함미사일도 통합시켜 주겠다면서 적극적인 자세로 사업에 임했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차세대 고등훈련기 개발사업에 동참할 것과 항공기술 발전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지원을 약속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연달아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예산범위 내에서 120대의 목표수량 달성은 물론이고, 애초에 제시하지도 않았던 추가적인 무장과 각종 기술지원 등의 조건을 흡족하게 생각한 정부는 최종적으로 F-16을 KFP사업의 도입기종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물론 결정 당시에도 공군은 끈질기게 쌍발기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기종선정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는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정용후 대장을 병원에 감금(...)[10]시키고, 국방부장관을 경질하는 등 강압적인 수단으로 공군의 불만을 입막음하였다. 이후 불명예 전역을 당한 정용후 총장이 이러한 청와대의 불법행위를 폭로하면서 감사원이 KFP사업 과정을 점검한 결과, 무려 118건에 달하는 비위가 적발되면서 전직 군 고위관계자 6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 현역 장성 8명을 포함한 군장교 53명에 대하여 국방부에 징계를 포함한 인사조치 권고를 하는 등 파장이 상당했다.

각주

  1. 현재 일본이 보유한 F-16의 자체 개량형인 F-2의 근간이 된 사업이었다.
  2. 현재 보잉에 인수됨.
  3. 현재 록히드 마틴에 합병됨.
  4. 노스롭 그루먼
  5. 영국, 독일, 이탈리아가 지분을 가진 합작회사
  6. 사실 5공화국의 정통성 측면에서 미국측에 상당한 약점을 잡혔던 전두환 및 신군부 입장에서는 미국의 비위를 맞춰야 했기에 유럽제 기체는 그저 들러리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7. 현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합병됨
  8. 고등훈련기 도입사업으로 현재의 T-50에 해당한다.
  9. AGM-88은 미국 외에 수출된 전례가 없는 고급 무장이었다.
  10. ‘셀프’ 전역사, 경향신문, 2019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