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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중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가 받을 수 있는 상. 다른 상은 공동수상은 인정하더라도 단체에게는 주지 않는데 비해서 이 상의 경우는 개인이 아닌 단체에게도 수상이 가능하다. 어찌보면 세계 평화를 간절히 원했던 [[노벨]]의 소망에 가장 어울리는 상이라 할 수 있다. | [[노벨상]] 중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가 받을 수 있는 상. 다른 상은 공동수상은 인정하더라도 단체에게는 주지 않는데 비해서 이 상의 경우는 개인이 아닌 단체에게도 수상이 가능하다. 어찌보면 세계 평화를 간절히 원했던 [[노벨]]의 소망에 가장 어울리는 상이라 할 수 있다. | ||
노벨상의 다른 분야들은 [[스웨덴]]에서 시상하지만 평화상만큼은 [[노르웨이]]에서 시상한다. 노벨상에서 가장 중요한 상으로 인정받지만 동시에 매번 수상때마다 정치적 논란에 휩쓸리기도 한다. 명백한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시상하는 다른 분야에 비해 아무래도 주관적인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del>문학상도 충분히 주관적 수상인데...</de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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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 || [[카를 폰 오시에츠키]] || [[독일]] || 독일 내 반전평화운동의 적극적 추진과 독일 재군비 폭로<ref>[[제국의사당 방화 사건]]으로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계속 수용소에 구금된 상태였다. 불행히 살아생전에 상을 수여받지 못하고 1938년 사망. 정치적 이유로 상을 수상하지 못한 최초의 사례이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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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1일 (목) 20:11 판
개요
노벨상 중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가 받을 수 있는 상. 다른 상은 공동수상은 인정하더라도 단체에게는 주지 않는데 비해서 이 상의 경우는 개인이 아닌 단체에게도 수상이 가능하다. 어찌보면 세계 평화를 간절히 원했던 노벨의 소망에 가장 어울리는 상이라 할 수 있다.
노벨상의 다른 분야들은 스웨덴에서 시상하지만 평화상만큼은 노르웨이에서 시상한다. 노벨상에서 가장 중요한 상으로 인정받지만 동시에 매번 수상때마다 정치적 논란에 휩쓸리기도 한다. 명백한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시상하는 다른 분야에 비해 아무래도 주관적인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문학상도 충분히 주관적 수상인데...
역대 수상자
수상연도 | 성명 | 국적 | 인정업적 |
---|---|---|---|
1906 | 시어도어 루즈벨트 | 미국 | |
1919 | 우드로 윌슨 | 미국 | 제1차 세계 대전 후 국제연맹의 창설에 기여 |
1935 | 카를 폰 오시에츠키 | 독일 | 독일 내 반전평화운동의 적극적 추진과 독일 재군비 폭로[1] |
1948 | 수상자 없음 | - | 비폭력불복종 운동의 마하트마 간디 수상이 유력했으나 간디가 암살당하면서 수상자 선정을 하지 않음 |
1961 | 다그 함마르셸드 | 스웨덴 | 국제연합 사무총장으로서 세계 분쟁지역에서 분쟁해소와 평화에 노력. 수상 결정 후 콩고 분쟁 중재차 현지로 향하다 비행기 사고로 추락사하여 수상하지는 못함. |
1964 | 마틴 루터 킹 | 미국 | 미국 시민권 운동을 주도, 특히 차별받는 흑인들에 대한 인권 운동에 기여 |
1965 | 유니셰프 | - | 전 세계 아동에 대한 처우개선 |
1971 | 빌리 브란트 | 독일 | 서독의 총리로서 동유럽에 대한 사과와 화해에 기반한 동방정책을 실현 |
1979 | 마더 테레사 | 인도 | 인도 빈민에 대한 끊임없는 봉사 |
1989 | 달라이 라마 | 티베트 망명정부 | 티베트 독립 운동과 비폭력항쟁의 유지 |
1990 | 미하일 고르바초프 | 소련 | 냉전 종식과 소련 민주화 |
1991 | 아웅산 수지 | 미얀마 | 미얀마의 민주화 및 인권에 대한 기여[2] |
2000 | 김대중 | 대한민국 | 한국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에 기여[3] |
2002 | 지미 카터 | 미국 | 세계 평화와 전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향한 끝없는 봉사 |
2009 | 버락 오바마 | 미국 | 국제 외교와 인류의 협력 강화에 기여[4] |
2010 | 류사오보 | 중국 | 중국의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과 기여[5][6] |
2012 | 유럽연합 | - | 제2차 세계 대전 후 유럽의 화합과 번영에 기여[7] |
- ↑ 제국의사당 방화 사건으로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계속 수용소에 구금된 상태였다. 불행히 살아생전에 상을 수여받지 못하고 1938년 사망. 정치적 이유로 상을 수상하지 못한 최초의 사례이다.
- ↑ 수상 당시 가택연금 상태였기에 남편(영국인)이 대리 수상했다. 가택연금이 해제된 후 21년만에 노르웨이를 방문하여 노벨상 수상 연설을 한다.
- ↑ 한국인의 첫 노벨상 수상
- ↑ 정치적으로 상당히 논란이 되는 수상이었다. 2009년은 오바마 취임 첫 해였고, 딱히 뚜렷한 평화에의 기여는 없었다. 이라크, 아프간 철군이 논의되었지만 평화적 목적이 아닌 순전히 미국 내부적 상황이었고, 핵무기 감축을 논의하긴 했지만 2009년 기준으로 아직 합의가 된 사항은 아니었다. 때문에 이 수상을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만을 보고 준 상으로 보고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우스개소리로 조지 W.부시와 공화당 정권을 끝냈기에 수여한 거 아니냐고도.
이게 사실같은데? - ↑ 중국인의 첫 노벨상 수상. 중국계가 수상한 적은 있으나 중국 국적을 포기한 이후의 수상이어서 중국 국적자로는 류사오보가 처음이다. 중국에서는 류사오보를 애써 무시하고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을 첫 노벨상 수상자로 치켜세우고 있다.
- ↑ 중국이 류사오보를 가택연금하고 그 가족, 친지, 친구들의 출석도 불허하여 류사오보의 사진을 의자에 올려놓는 공석 시상이 이루어졌다. 이후 중국과 노르웨이 양국간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 ↑ 오바마보다 더한 정치적 논란에 시달린 수상이었다. 당시 유럽 일부 국가들의 경제적 위기로 분열위기가 EU 회의론이 나오고 있어 이를 무마하려는 수상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