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34번째 줄: 34번째 줄:
| 2002 || [[지미 카터]] || [[미국]] || 세계 평화와 전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향한 끝없는 봉사<del>[[김일성]]을 비롯한 수많은 독재자들을 제거</del>
| 2002 || [[지미 카터]] || [[미국]] || 세계 평화와 전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향한 끝없는 봉사<del>[[김일성]]을 비롯한 수많은 독재자들을 제거</del>
|-
|-
| 2009 || [[버락 오바마]] || [[미국]] || 국제 외교와 인류의 협력 강화에 기여<ref>정치적으로 상당히 논란이 되는 수상이었다. 2009년은 오바마 취임 첫 해였고, 딱히 뚜렷한 평화에의 기여는 없었다. 이라크, 아프간 철군이 논의되었지만 평화적 목적이 아닌 순전히 미국 내부적 상황이었고, 핵무기 감축을 논의하긴 했지만 2009년 기준으로 아직 합의가 된 사항은 아니었다. 때문에 이 수상을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만을 보고 준 상으로 보고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우스개소리로 '''[[조지 W.부시]]'''와 공화당 정권을 끝냈기에 수여한 거 아니냐고도.<del>이게 사실같은데?</del>
| 2009 || [[버락 오바마]] || [[미국]] || 국제 외교와 인류의 협력 강화에 기여<ref>정치적으로 상당히 논란이 되는 수상이었다. 2009년은 오바마 취임 첫 해였고, 딱히 뚜렷한 평화에의 기여는 없었다. 이라크, 아프간 철군이 논의되었지만 평화적 목적이 아닌 순전히 미국 내부적 상황이었고, 핵무기 감축을 논의하긴 했지만 2009년 기준으로 아직 합의가 된 사항은 아니었다. 때문에 이 수상을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만을 보고 준 상으로 보고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우스개소리로 '''[[조지 W.부시]]'''와 공화당 정권을 끝냈기에 수여한 거 아니냐고도.<del>이게 사실같은데?</del></ref>
|-
|-
| 2010 || [[류사오보]] || [[중국]] || 중국의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과 기여<ref>중국인의 첫 노벨상 수상. 중국계가 수상한 적은 있으나 중국 국적을 포기한 이후의 수상이어서 중국 국적자로는 류사오보가 처음이다. 중국에서는 류사오보를 애써 무시하고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을 첫 노벨상 수상자로 치켜세우고 있다.</ref><ref>중국이 류사오보를 가택연금하고 그 가족, 친지, 친구들의 출석도 불허하여 류사오보의 사진을 의자에 올려놓는 공석 시상이 이루어졌다. 이후 중국과 노르웨이 양국간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ref>
| 2010 || [[류사오보]] || [[중국]] || 중국의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과 기여<ref>중국인의 첫 노벨상 수상. 중국계가 수상한 적은 있으나 중국 국적을 포기한 이후의 수상이어서 중국 국적자로는 류사오보가 처음이다. 중국에서는 류사오보를 애써 무시하고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을 첫 노벨상 수상자로 치켜세우고 있다.</ref><ref>중국이 류사오보를 가택연금하고 그 가족, 친지, 친구들의 출석도 불허하여 류사오보의 사진을 의자에 올려놓는 공석 시상이 이루어졌다. 이후 중국과 노르웨이 양국간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ref>

2015년 6월 11일 (목) 19:56 판

틀:토막글

개요

노벨상 중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가 받을 수 있는 상. 다른 상은 공동수상은 인정하더라도 단체에게는 주지 않는데 비해서 이 상의 경우는 개인이 아닌 단체에게도 수상이 가능하다. 어찌보면 세계 평화를 간절히 원했던 노벨의 소망에 가장 어울리는 상이라 할 수 있다.

역대 수상자

수상연도 성명 국적 인정업적
1906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조선을 팔아먹고 러일전쟁 직후 러일 양국을 중재하여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성립
1919 우드로 윌슨 미국 제1차 세계 대전국제연맹의 창설에 기여정작 미국은 국제연맹에 불참했다는건 함정
1948 수상자 없음 - 비폭력불복종 운동의 마하트마 간디 수상이 유력했으나 간디가 암살당하면서 수상자 선정을 하지 않음
1961 다그 함마르셸드 스웨덴 국제연합 사무총장으로서 세계 분쟁지역에서 분쟁해소와 평화에 노력. 수상 결정 후 콩고 분쟁 중재차 현지로 향하다 비행기 사고로 추락사하여 수상하지는 못함.
1964 마틴 루터 킹 미국 미국 시민권 운동을 주도, 특히 차별받는 흑인들에 대한 인권 운동에 기여
1965 유니셰프 - 전 세계 아동에 대한 처우개선
1971 빌리 브란트 독일 서독의 총리로서 동유럽에 대한 사과와 화해에 기반한 동방정책을 실현
1979 마더 테레사 인도 인도 빈민에 대한 끊임없는 봉사
1989 달라이 라마 티베트 망명정부 티베트 독립 운동과 비폭력항쟁의 유지
1990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냉전 종식과 소련 민주화소련을 말아먹은 혁혁한 공로
1991 아웅산 수지 미얀마 미얀마의 민주화 및 인권에 대한 기여[1]
2000 김대중 대한민국 한국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에 기여[2]
2002 지미 카터 미국 세계 평화와 전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향한 끝없는 봉사김일성을 비롯한 수많은 독재자들을 제거
2009 버락 오바마 미국 국제 외교와 인류의 협력 강화에 기여[3]
2010 류사오보 중국 중국의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과 기여[4][5]
2012 유럽연합 - 제2차 세계 대전 후 유럽의 화합과 번영에 기여[6]
  1. 수상 당시 가택연금 상태였기에 남편(영국인)이 대리 수상했다. 가택연금이 해제된 후 21년만에 노르웨이를 방문하여 노벨상 수상 연설을 한다.
  2. 한국인의 첫 노벨상 수상
  3. 정치적으로 상당히 논란이 되는 수상이었다. 2009년은 오바마 취임 첫 해였고, 딱히 뚜렷한 평화에의 기여는 없었다. 이라크, 아프간 철군이 논의되었지만 평화적 목적이 아닌 순전히 미국 내부적 상황이었고, 핵무기 감축을 논의하긴 했지만 2009년 기준으로 아직 합의가 된 사항은 아니었다. 때문에 이 수상을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만을 보고 준 상으로 보고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우스개소리로 조지 W.부시와 공화당 정권을 끝냈기에 수여한 거 아니냐고도.이게 사실같은데?
  4. 중국인의 첫 노벨상 수상. 중국계가 수상한 적은 있으나 중국 국적을 포기한 이후의 수상이어서 중국 국적자로는 류사오보가 처음이다. 중국에서는 류사오보를 애써 무시하고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을 첫 노벨상 수상자로 치켜세우고 있다.
  5. 중국이 류사오보를 가택연금하고 그 가족, 친지, 친구들의 출석도 불허하여 류사오보의 사진을 의자에 올려놓는 공석 시상이 이루어졌다. 이후 중국과 노르웨이 양국간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6. 오바마보다 더한 정치적 논란에 시달린 수상이었다. 당시 유럽 일부 국가들의 경제적 위기로 분열위기가 EU 회의론이 나오고 있어 이를 무마하려는 수상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