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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220
|생몰년도||? ~ 2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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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장(雲長), 장생(長生)
|자||운장(雲長), 장생(長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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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산시성 윈청현
|출생지||산시 성() 윈청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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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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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촉(蜀)
|국적||촉(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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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관우는 삼국시대 촉나라 무장이자 오호대장군 중 한 사람이다.
'''신간 족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병신인 관우!'''
 
'''중국 역사상 최강의 도적놈'''
 
== 소개 ==
관우는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삼국지의 인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가치가 전혀 없는 무뢰배일 뿐이다.''' 관우는 그 인생부터가 이미 '''도적놈으로 시작해서 도적놈으로 끝났다.''' 그나마도 관우는 본명조차 아니었고 본래 이름은 고우, 자는 장생이었다. 관우는 어렸을 때 하동에서 살다가 그 곳의 소금장수를 암살하고 도주했다. 때문에 관우는 수염을 길러 자신의 얼굴을 숨긴 뒤 탁현 누상촌으로 도주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름을 관우, 자를 운장으로 바꿨다. 이후 관우는 도주한 곳에서 [[유비]]()랑 [[장비]]()를 만나서 의기투합을 했다. 한마디로 관우는 미해결된 살인사건의 범인인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관우는 유비와의 의리 운운하지만 실제로 '''삼국지정사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고 그야말로 개소리다.''' 유비가 [[조조]]()에게 좌장군 관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나라 14대 천황인 [[유협]]()의 명령을 받들어 황명에 따라 조조를 암살하려다 적발될 위기에 몰리자 도주했는데, '''관우는 이 때 진의록의 처 두씨를 얻어먹으려고 조조에게 항복한 뒤 들러붙어 있었다.''' 그런데 조조는 워낙 여색을 좋아하는 위인인지라 두씨를 자기가 차지하고 관우에게는 모르는 척 일관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관우는 존나 개빡쳐서 조조로부터 도망쳐서 다시 유비의 부하가 되었다. 도중에 관우는 장비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어야 했는데, 사실 장비가 관우에게 창을 휘두르며 화를 낼만하다.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유비를 배신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관우의 일생 마지막 역시 도적질을 하다가 끝났는데 관우는 당시 형주에서 위나라와 싸워서 [[우금]]()과 [[방덕]]()을 생포해서 승리를 거두고, 방덕은 관우에게 참수당하고 우금이 항복을 하자 뜬금없이 군주둥이가 3만개나 생겨버리고 말았다. 이 때문에 관우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몰렸다. 문제는 관우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는 점이다. 바로 오나라 땅인 상관에 있는 [[손권]]()의 군량고를 상습적으로 털어먹은 것이다. 이 때문에 손권은 머리끝까지 개빡쳐서 관우를 체포하기에 이르렀고 '''관우는 손권에게 쌀값을 변상하지 못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어린 시절 ==
추가바람.
 
== 정의의 심판을 받다 ==
{{인용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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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魏)에서 우금(于禁)을 시켜 번성을 구하게 했지만, 관우는 우금 등과 인마(人馬) 수만을 다 잡아 들이고, 양곡이 부족함에 기탁해 상관(湘關)의 미곡을 마음대로 취하였다.
위(魏)에서 우금(于禁)을 시켜 번성을 구하게 했지만, 관우는 우금 등과 인마(人馬) 수만을 다 잡아 들이고, 양곡이 부족함에 기탁해 상관(湘關)의 미곡을 마음대로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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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나라의 일이오.”
“이는 나라의 일이오.”
|정사 촉서 관우전}}
|정사 촉서 관우전}}
중국 건안(建安) 24년 음력 [[12월]]에 임저(臨沮)에서 아들인 [[관평]]과 함께 손권의 군대에 붙잡혀 참수당했다.


==기타==
중국 건안(建安) 24년 음력 [[12월]]에 임저(臨沮)에서 아들인 [[관평]]()과 함께 손권의 군대에 붙잡혀 참수당했다.
[[추가바람]]
 
<references/>
== 능력 ==
 
 
=== 두뇌 면에서의 평가 ===
 
 
=== 무술 면에서의 평가 ===
 
 
== 인격 ==
 
 
== 처세 ==
 
 
== 기타 ==
 
 
[[분류:삼국지 등장인물]]
[[분류:삼국지 등장인물]]

2016년 4월 16일 (토) 10:26 판

관우.jpeg
관우(關羽), 고우(高羽)
생몰년도 ? ~ 220년
운장(雲長), 장생(長生)
출생지 산시 성() 윈청 현()
사망지 건업()
시호
묘호
국적 촉(蜀)

신간 족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병신인 관우!

중국 역사상 최강의 도적놈

소개

관우는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삼국지의 인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가치가 전혀 없는 무뢰배일 뿐이다. 관우는 그 인생부터가 이미 도적놈으로 시작해서 도적놈으로 끝났다. 그나마도 관우는 본명조차 아니었고 본래 이름은 고우, 자는 장생이었다. 관우는 어렸을 때 하동에서 살다가 그 곳의 소금장수를 암살하고 도주했다. 때문에 관우는 수염을 길러 자신의 얼굴을 숨긴 뒤 탁현 누상촌으로 도주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름을 관우, 자를 운장으로 바꿨다. 이후 관우는 도주한 곳에서 유비()랑 장비()를 만나서 의기투합을 했다. 한마디로 관우는 미해결된 살인사건의 범인인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관우는 유비와의 의리 운운하지만 실제로 삼국지정사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고 그야말로 개소리다. 유비가 조조()에게 좌장군 관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나라 14대 천황인 유협()의 명령을 받들어 황명에 따라 조조를 암살하려다 적발될 위기에 몰리자 도주했는데, 관우는 이 때 진의록의 처 두씨를 얻어먹으려고 조조에게 항복한 뒤 들러붙어 있었다. 그런데 조조는 워낙 여색을 좋아하는 위인인지라 두씨를 자기가 차지하고 관우에게는 모르는 척 일관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관우는 존나 개빡쳐서 조조로부터 도망쳐서 다시 유비의 부하가 되었다. 도중에 관우는 장비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어야 했는데, 사실 장비가 관우에게 창을 휘두르며 화를 낼만하다.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유비를 배신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관우의 일생 마지막 역시 도적질을 하다가 끝났는데 관우는 당시 형주에서 위나라와 싸워서 우금()과 방덕()을 생포해서 승리를 거두고, 방덕은 관우에게 참수당하고 우금이 항복을 하자 뜬금없이 군주둥이가 3만개나 생겨버리고 말았다. 이 때문에 관우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몰렸다. 문제는 관우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는 점이다. 바로 오나라 땅인 상관에 있는 손권()의 군량고를 상습적으로 털어먹은 것이다. 이 때문에 손권은 머리끝까지 개빡쳐서 관우를 체포하기에 이르렀고 관우는 손권에게 쌀값을 변상하지 못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어린 시절

추가바람.

정의의 심판을 받다

위(魏)에서 우금(于禁)을 시켜 번성을 구하게 했지만, 관우는 우금 등과 인마(人馬) 수만을 다 잡아 들이고, 양곡이 부족함에 기탁해 상관(湘關)의 미곡을 마음대로 취하였다. 관우는 서황과 더불어 예전부터 서로 경애했다. 멀찍이서 함께 대화했는데 다만 평생(平生-평소)의 일만 말할 뿐 군사(軍事)는 언급하지 않았다. 잠시 뒤 서황이 말에서 내리며 영을 내렸다, “관운장의 머리를 얻어 오는 자는 금 1천근을 상으로 내릴 것이다.” 관우가 놀라고 두려워하며 서황에게 말했다, “대형(大兄), 이 무슨 말이오!” 서황이 말했다, “이는 나라의 일이오.”

— 정사 촉서 관우전

중국 건안(建安) 24년 음력 12월에 임저(臨沮)에서 아들인 관평()과 함께 손권의 군대에 붙잡혀 참수당했다.

능력

두뇌 면에서의 평가

무술 면에서의 평가

인격

처세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