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루미나티

일루미나티(Illuminati)는 계몽주의 시대인 1776년 5월 1일에 (오늘날 독일 영토인) 바이에른 선제후국[1] 잉골슈타트 대학교 교회법 교수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설립한 비밀결사였다. 그 이름은 라틴어로 ‘계몽하다’ 혹은 ‘밝히다’라는 뜻의 “illuminatus”에서 유래되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세상을 밝히겠다는 뜻.

조직의 목적[편집 | 원본 편집]

유럽 근대기에 발흥한 여러 자칭 비밀결사들과 마찬가지로 계몽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사회를 깨우친다'라는 것이 일루미나티의 목적이었다. [2]

해체[편집 | 원본 편집]

일루미나티는 거창한 이름값에 비해서는 너무 빨리 해체됐기 때문에 의외로 한 것이 별로 없으며, 창립자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의 초기 행적에 대한 것도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본디 바이스하우프트는 프리메이슨이 접촉하기도 어렵고 또 너무 폐쇄적이라고 생각해서, 좀 더 열려 있는 단체를 만들고자 일루미나티를 창설했으나현대식으로는 NGO일까?, 당시에 유행하던 계몽주의 사상에 영향받은 사람들이 대거 가입하면서 그 성격이 크게 바뀌어 급진적 비밀단체가 되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회원들간에 주도권을 잡기 위한 파벌 싸움이 극심하였다.

바이에른 선제후국의 6대 선제후 카를 테오도어(Karl Theodor)가 1777년에 즉위했다. 카를 테오도어는 일루미나티를 포함하여 여타 비밀결사 단체들을 용인할 수 없다고 판단, 1785년 3월 2일에 일체의 비밀결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칙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일루미나티도 해산되었다. 고작해야 만 9년밖에 활동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 9년!

이후 지하조직으로 어찌어찌 유지해보려고 했으나 결국 유대가 끊기고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비밀결사를 칭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제대로 비밀을 지키지 못했고, 탄압받으면서까지 조직의 존속을 위해 회원들이 온 몸을 바치지도 못했다.

음모론[편집 | 원본 편집]

일루미나티가 고작해야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해체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간지 넘치는 이름 때문인지 당대 음모론자들의 인상에 크게 남았다. 그래서 또 다른 음모론의 산지였던 프리메이슨과 결부시켜, 일루미나티가 프리메이슨의 하부조직이라느니, 혹은 그 반대라느니, 또는 두 조직은 별개지만 서로 동맹관계라느니 하는 온갖 변종 음모론들이 음모론자들 사이에서 난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음모론자들은 심지어 2백 년이 넘게 지난 현대까지도 살아 있다. 짐 마스, 다니엘 에스툴린, 데이비드 아이크, 라이언 버크, 위리 리나, 모르건 그리카와 같은 자칭 음모론 연구가들은 현대에도 일루미나티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음모론자들은 미국의 고삐를 단단히 쥐고 있는 CFR(미외교협회)와 CFR의 유럽버전인 빌더버그 클럽 그리고 록펠러 가문이 이끄는 삼각위원회로 이어지는 국제적인 3개 권력 단체들의 네트워크를 배후에서 주도하고 있는 최상위 조직이라며 실존한다고 믿으며 자신들의 믿음을 확대재생산한다.

이런 음모론자들의 영향력은 정치인이라고 예외가 아니어서 미국 의회에서도 그리고 미국 대법관의 입을 통해서도 일루미나티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먼저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은 텍사스 주의회에서 10분간의 연설을 진행하면서 "미국 상공업계의 거물들은 하나같이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두려워한다"고 서두를 꺼내면서 "그 대상은 다름 아닌 1920년대부터 미국을 배후에서 군림하고 있는 일루미나티 세력들"이라고 고발하였다. 그리고 미국 대법관 필릭스 프랭크퍼터 역시 "워싱턴의 진정한 통치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일루미나티는 무대 뒤에서 힘을 행사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물론 이런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찻잔 속의 태풍과도 같다. 저희들끼리의 주장을 인용하며 학술적인 척 위장하지만, 실제 역사학자나 사회/경제 전문가들에겐 무시받는다. 음모론자들은 자기네 음모론이 주류담론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서'가 아니라 자기네가 생각하는 악의 축들이 다수를 호도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단지 그네들만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일루미나티 추정 회원[편집 | 원본 편집]

음모론에서 함께 언급되는 집단[편집 | 원본 편집]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당시 바이에른은 신성로마제국과는 별개의 '국가'였다. 지배자인 선제후는 비텔스바스 가문이었다.
  2. 하지만 서양의, 그리고 서양의 영향을 받은 음모론자들은 '신세계 질서(New Would OtherNew World Order)'가 이들의 목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억지 근거를 들이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