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붉은악마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4월 11일 (월) 12:3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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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문화재

서울특별시에 있는 조선 시대 5대 궁궐 중 하나. 1997년 대한민국의 고궁으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창경궁 북쪽에 있다.

들어가보면 여러 모로 놀라게 된다. 우리 조상이 물려주신 것에 대해 보존해야 한다는 관념이라고는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는 다른 유적들과는 달리 여기는 진짜 다른 나라의 고궁들과 견주어도 거의 전혀 밀리지 않을 보존 시스템과 관리 수준을 자랑한다. 진짜 곳곳에 경비를 삼엄하게 세워놓았고 곳곳에 유네스코의 마크가 달린 설명용 표지판들, 곳곳에 달려있는 CCTV들이 숭례문 방화범 같은 놈이 와도 안심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철저하고 믿음직하게 관리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네임 클라스를 엿볼 수 있는 부분.

창덕궁 관리의 위엄(...)

안에 들어가보면 가이드들이 전부 개량한복을 입고 있다. 근데 겨울일 경우 누비솜옷을 넣은 거의 패딩에 가까운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긴 한데...솔직히 추워보인다.

경복궁과 창덕궁을 비교하면 여러 모로 재미있는 차이점이 많은데 원래 조선의 왕궁은 경복궁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대신 창덕궁에서 왕이 기거하게 되고 그 오랜 기간 동안 거의 훼손없이 보존되고, 흥선대원군경복궁이 중건되어 새로 짓게 되었다가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돚거질로 상당 전각을 잃게 되고 상당 부분 훼손되는 바람에 다시 일부 건물들을 현대에 새로 지었는데 이래서인지 경복궁은 가보면 궁궐을 갓 짓고 난 후인 조선 건국 직후를 연상시키고 창덕궁은 오랜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는 대한제국 때의 개화기의 꿈과 한이라는 양면의 감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상술했듯 경복궁은 조선 건국 직후를 연상시키는 곳으로 건물들도 전반적으로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양식들을 연상시킨다. 이는 경복궁 중건이 개화기 이전 그 흥선대원군의 유명한쇄국 정치 시절에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 하지만 창덕궁은 말 그대로 조선 초기부터 그대로 내려온 건물로서 시대의 유행에 따라 건물 내부나 그 외의 것을 조금씩 바꿔나갔는데 이래서인지 창덕궁 내부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개화기의 고궁을 연상시킨다. 양 궁궐이 지어진 시기를 비교해 보면 아이러니.

게다가 아래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특이하게도 대부분의 현판들이 글씨가 황금색으로 써져 있다. 경복궁의 현판 글씨가 전부 흰색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특이한 점. 참고로 황금색은 창덕궁에 곳곳에 쓰이고 있는 색이기도 하다. 인정전 항목에서 후술.

구조

돈화문 (敦化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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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정문이다. 경복궁의 정문이 광화문이라면, 창덕궁의 정문은 돈화문인 셈.

돈화문 앞의 넓은 뜰의 끝부분에 돌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는 음푹 파인 곳이 있는데, 여기서 사진찍을때 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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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창덕궁 입구 아니랄까봐 입구부터 관리가 삼엄하다. 4개국어로 위험물품을 금지하고 있으며 수거통도 있다(...) 돈화문에 있는 이 출입관리소에서 표를 끊어야 창덕궁에 입장할 수 있다.

돈화문 안에 들어가면 여러 나무들이 담을 두르고 우리를 맞이한다.

금천교 (錦川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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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첫번째 수상 구조물. 1411년에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동다리이다.

단 지금은 다리 밑에 물이 흐르지 않는다.

길이 12.9m, 폭 12.5로 국왕의 행렬이 지나갈 수 있는 넓은 규모를 하고 있다.[1]

진선문 (進善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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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서 돈화문을 통해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두번째 문.

궐내각사 (闕內各司)

왕실 관련 집무실로, 지금의 중앙청사랑 비슷한 개념의 일을 하는 곳이다.[2] 규장각, 봉모당, 서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연하지만 종로에 있는 성균관과는 다른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없어졌지만,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이후 지속적으로 복원한 결과 2005년 거의 복원을 완료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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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내각사 안에서 자라고 있는 향나무.

봉모당 앞에는 천연기념물인 750년 넘은 창덕궁 향나무가 살고 있는데,이건 뭐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네... 궁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이 나뭇가지를 향으로 썼다고 한다.

인정전 (仁政殿)

금천교와 진선교를 통해 들어가면 왼쪽에 인정문이 보인다. 이 인정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으로 창덕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들 중에선 가장 먼저 볼 수 있다.

인정문 (仁政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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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창덕궁 외행랑채.

인정문은 인정전과 창덕궁 외행랑 뜰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외행랑의 경우 원래는 건물이 존재했으나 지금은 기둥만 남아있다.

인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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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본궁이다. 경복궁에 근정전이 있다면 창덕궁에 인정전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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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앞에는 경복궁 근정전과 마찬가지로 품계석이 놓여있는데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근정전의 품계석은 흥선대원군 때 만들어진 것이고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애초에 품계석이란 정조가 문신과 무신이 품계의 위아래에 대한 개념없이 뒤죽박죽 개판으로 서자 이것을 정리하기 위해 최초로 세운 것으로 상술했듯이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는데 정조는 임진왜란 전의 왕이었더라, 후의 왕이었더라? 당연히 품계석을 최초로 세운 곳은 창덕궁이 되었다. 이것이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창덕궁의 것을 베껴와서 만든 것.

근데 한가지 웃기는 점은 당연히 창덕궁의 품계석이 경복궁의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는데 경복궁 품계석은 현장학습을 온 무개념 중학생들이 발로 차서(...) 깨지는 바람에 상당수 훼손되었는데 창덕궁의 품계석도 경복궁과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이 만져볼 수 있음에도 거의 훼손이 없다시피하다. 하긴 이게 훼손되면 유네스코의 체면이 안 서긴 하겠다만...

바닥을 보면 알겠지만 바닥을 포장할 때 박석을 쓴 경복궁과는 달리 이쪽도 상당히 고르지 못한 편이긴 하지만 비교적 사각형에 가까운 돌들로 포장해놓았다. 사진에 보이는 쇠고리는 인정전에서 행사가 있을 때 인정전 지붕에서부터 길게 늘어지는 거대한 차일(천막)을 걸어놓을 때 쓰던 고리이며 이는 경복궁 근정전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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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전의 내부 모습.

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붉은색 커튼이 쳐져있는 근정전과는 달리 황금색의 커튼이 쳐져있다. 이는 조선대한제국 때에 고종 황제가 황제를 선포하면서 여태까지 황제의 색이라서 중국 눈치보느라 쓰지 못하고 그 다음으로 가장 높은 색인 붉은색을 대신 썼었던 색인 황금색을 이제야 마음대로 썼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단 고종 황제의 곤룡포도 이전까지 왕의 곤룡포의 색인 붉은색이 아닌 황금색으로 된 곤룡포를 입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숙장문 (肅章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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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창덕궁 외행랑 뜰에서 인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곧장 직진해서 가면 볼 수 있는 문.

내의원 (內醫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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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에서 쓰이는 약을 조제하던 관청이다.

희정당 (熙政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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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 중 하나.

보물 제815호인 창덕궁 희정당은 외형은 조선 최고의 건축 양식을 담았으며 과연 그렇게 굉장히 화려한 단청을 자랑하면서도 단조롭지도 거추장스럽지도 않고 굉장히 균형잡힌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독특하게도 세세하게 뜯어보면 서양식 건축 양식을 부분부분 도입했으며 내부는 완전히 서양식 집기로 도배되어있다.

희정당의 원래 이름은 숭문당(崇文堂)이었다. 1496년 12월 연산군 때 숭문당이 소실되자 고쳐 희정당이라 칭하였으며,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가 1917년 대화재 이후 경복궁의 강녕전(康寧殿)을 이전하여 1920년 12월에 재건된다.[4]

원래 희정당은 창덕궁의 내전에 속한 건물이었는데, 조선 후기에 들어 임금의 침전이 딸린 편전으로 쓰이다가 개화기에 이르러 어전회의실로 사용하게 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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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당의 정문에는 마차나 어차(임금이 타던 자동차)를 몰고 임금을 태운 채 직접 문 앞까지 배웅할 수 있는 일종의 차도가 있다. 여기 위에 올라서 보면 우선 처마의 화려한 단청에 감탄을 자아내게 되고, 또 이 근대 서양문물과 전통방식이 혼합된 듯한 이색적인 구조물을 보면서 진짜로 순종 황제가 금방이라도 캐딜락을 타고 나간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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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당 내부의 모습. 희정당 내부에 있는 풍금.

보면 알겠지만 내부에는 서양식 집기들이 있다. 물론 왕이 사용하던 도구들로 대단히 고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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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당 오른쪽 끝에 난 작은 문을 통해 들어가면 대조전 뒷뜰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나오는데 여길 통해 들어가면 매화가 만발해 있어 굉장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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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전 뒷뜰 매화밭 계단에 앉아 본 모습.

대조전 (大造殿)

대조전을 정면에서 본 모습.
대조전을 뒷뜰에서 본 모습.

희정당이 창덕궁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이라면, 이쪽은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창덕궁 대조전은 국왕과 왕비가 같이 자던쓰던 침전으로 조선 시대 내전 중 창덕궁 내전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이며 보물 816호이다. 국왕의 침전인 강녕전과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들 별도로 두는 경복궁과는 달리 창덕궁은 대조전을 국왕과 왕비가 같이 사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화재로 소실된 후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6]

지붕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창덕궁, 아니 조선 시대의 모든 기와집과는 다른 특이한 점이 보이는데 지붕의 기왓장을 고정시키는 데 쓰는 회반죽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즉 용마루가 없는 희한한 형태인데 이 양식을 '무량각 지붕'이라고 한다. 이 양식은 경복궁의 강녕전, 교태전, 그리고 창경궁의 통명전에서도 보이는 양식으로 이 전각들은 왕과 왕비의 침전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즉 조선시대의 국왕과 왕비의 침전에는 용마루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무량각 지붕을 만들기 위해서는 꼭대기에 기역자처럼 생긴 특수한 기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만드는 데에 엄청난 돈이 든다고 한다.

궁궐 침전에 왜 용마루가 없는지는 미스테리. '으로 상징되는 왕의 침소에 용마루가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은 전해지는 속설일 뿐 확인할 길이 없다.[7]

경훈각 (景薰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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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전 뒷뜰에 들어가면 있는 건물이다. 정말 구석진 곳에 숨어있어 찾기 힘드니 주의.

경훈각 벽에 있는 아궁이.

경극문 (慶極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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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전에서 서쪽으로 오가는 문이다.

경극(慶極)은 '경사가 가득하다'는 뜻이다.

그 외 건물들

대조전뒷뜰유리창.jpg 대조전뒷뜰유리창2.jpg 대조전뒷뜰유리창3.jpg

그 외에도 유리창으로 된 건물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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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지붕받침 양식. 오리부리모양의(...) 배수장치.

희한하게도 곳곳에 갈고리같이 생긴 금속으로 된 지붕받침과 오리 머리비둘기야 먹자 모양의 빗물을 흘려보내는 배수장치가 있다. 현대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원래 조선시대부터 있던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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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을 돌아다니다 보면 벽돌로 된 굴뚝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왠지 서양의 저택을 연상시킨다.

선정전 (宣政殿)

1804년 중건하였다. 선정문에 선정전까지 지붕으로 덮인 복도로 이어져있다.

선정문 (宣政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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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궁궐 중에선 특이하게도 문에서 궁까지 복도로 이루어져있다. 사실 지극히 조선의 양식대로 만들었음에도 선정문에서 선정전까지 걸어가면 굉장히 이색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복도가 선정전 지붕을 가리기 때문에 선정전의 예쁜 청기와 지붕을 전부 사진에 담고 싶어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선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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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평상시에 거처하던 곳.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양식이며 창덕궁의 건물 중에선 유일하게 청기와로 지붕이 덮여있는 건물이다.[8]

청기와 지붕이라 그런지 정말 아름다우며, 미로같은 창덕궁 건물들 사이에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건물이다.

후원 (後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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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을 세계에 알린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 최고의 원림.
창덕궁의 궁중 원림으로 조선 시대 임금의 산책로로 지어진 후원으로 원래는 1405년 10월태종 때 별궁으로 지은 것인데, 이후 1592년에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지고, 1609년 광해군 때 중수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이 후원을 보고 후원의 아름다움에 핡핡대며(...) 창덕궁 후원이라는 엄밀한 이름이 존재함에도 비밀 속의 정원이라는 오그라드는 뜻인 비원(祕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외국에는 이 이름을 영어로 직역한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응?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이 이름은 광복한 후에도 유지되었으며, 이후 일제의 잔재를 없애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원래의 이름인 창덕궁 후원이라는 명칭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이 후원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예약을 하여야만 한다. 창덕궁 자유관람은 별도 예약이 필요없으나 문화재 보호 및 후원 일대의 생태계 보호를 위해 일일 출입인원을 철저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 참고로 문화재 해설사가 동행하며 관람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 소요된다.

후원 관람을 예약하고 해설사의 해설 하에 이동하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후원 답사 코스의 시작이다. 우선 예약하는 장소에서 후원까지 가려면 꽤 걸어야 하는데 이때 양옆의 흙담이 눈을 끈다. 특이하게 양쪽 흙담을 장식하는 타일이 무늬가 다른데 왼쪽은 마름모무늬, 오른쪽은 정사각형무늬로 덮여있다.

부용지(芙蓉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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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이라고 하면 대부분 생각하는 이미지.

창덕궁 후원에 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연못. 주변엔 다양한 활엽수들이 절묘한 모양으로 자라있어 가을에 단풍이 들면 주변을 오색 찬란하게 물들인다.

천원지방 사상에 입각해서 부용지 연못의 전체 형태는 네모난 형태이고 연못 중앙의 섬(?)은 동그란 모양이다.

실제로 가보면 의외로 말로만 듣던 그런 엄청난(...) 이미지에 비하면 비교적 초라한 편이라 거대한 중국식 원림이나 유럽식 정원에 익숙한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지만 사진을 찍으면 정말 신기하게 예쁘게 찍힌다. 컴퓨터 바탕화면용으로 소장하고 싶을 정도. 물론 이 정도로 찍으려면 아마추어 사진작가급은 되어야겠지만...

직접 가보면 재밌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죄다 딱 봐도 가격이 장난 아닐 것 같은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각자의 사진 좀 찍어본 솜씨를 뽐내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하나같이 부용지의 네모난 곳의 꼭짓점 부분에 위치한 건물 바로 앞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하나같이 절묘한 자세로 찍어대는데 이게 관광객인지 사진작가인지... 참고로 이들이 서 있는 위치가 부용정을 가장 예쁘게 찍을 수 있는 최고의 위치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감으로 어디에서 찍어야 하는지 대충 아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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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을에 진짜 끝내주는 각도에서 찍힌 사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창덕궁 후원의 야간 모습.

심지어 야간에도 경치가 끝내준다. 현대에 조명을 설치했는데 후원의 변화무쌍한 식물들과 아름다운 경관을 아래에서 비추며 절경을 만든다.

부용정 (芙蓉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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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지에 위치한 정자.

다른 정자들의 형태와는 차별성을 추구해 한국 정자치곤 가장 화려한 편이지만 최대한 자연 속에 묻혀놓아 주변 경관과의 괴리가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다.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수수하지 않고 화려한 디자인이라 자연 경관에 비해 지나치게 튀지도, 너무 묻히지도 않게 딱 적당히 자연 경관에 어울린다. 마치 원래 자연에 있었던 나무나 바위같이 자연스러운 느낌. 정조가 여기서 낚시를 즐겼다는 일화가 전해져온다.

애련정 (愛蓮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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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조선시대엔 이 애련정 바로 앞의 연못인 애련지에서 연꽃을 키웠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옥류천 (玉流川)

소요정 (逍遙亭)

관람지 (觀纜池)

관람지의 모습. 저 너머로 관람정이, 그 너머로 희미하게 존덕정이 보인다.

굉장히 예쁘게 생긴 호수와 특이하게 생긴 정자들이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관람정 (觀纜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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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게 지붕이 초승달 모양으로 생겼다.

존덕정 (尊德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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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정원치고는 특이하게도 이중지붕과 이중기둥의 형태이다. 별로 튼튼해보이지도 않은데 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의문이지만 몹시 화려하다.

기둥 하나씩마다 큰 기둥 하나 앞에 작은 기둥 3개가 에워싼듯한 독특한 4줄 기둥 구조를 하고 있다.

참고로 존덕정 앞에는 관람지에서 흘러오는 물이 다리 밑으로 흘러오는데 이 흘러온 물은 존덕정 뒤에서 또다른 연못인 존덕지를 형성한다.

존덕정 앞에서 관람지를 찍은 사진.

기타

  • 동쪽에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창경궁과 바로 닿아있다. 둘이 위치도 비슷하고 이름도 비슷하여서 헷갈려하는 사람도 꽤 있다. 이외에 북쪽 담벼락 넘어에는 성균관대학교 명륜캠퍼스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