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이너드 케인스: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잔글 (HotCat을 사용해서 분류:영국인을(를) 삭제함, 분류:영국의 학자을(를) 추가함)
30번째 줄: 30번째 줄:
{{각주}}
{{각주}}
{{경제학 둘러보기}}
{{경제학 둘러보기}}
[[분류:영국인]]
[[분류:영국의 학자]]
[[분류:경제학자]]
[[분류:경제학자]]
[[분류:1883년 출생]]
[[분류:1883년 출생]]
[[분류:1946년 사망]]
[[분류:1946년 사망]]

2018년 6월 15일 (금) 01:06 판

John-Maynard-Keynes.jpg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년 6월 5일~1946년 4월 21일)는 영국경제학자다.

생애

케인스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아버지는 존 네빌 케인스로, 그 역시 경제학자였다.

그는 이튼에 입학하고, 케임브리지의 킹스 칼리지로 가게 되었다. 1905년, 이 곳에서 그는 수학 학위를 받게 된다. 그 후, 인도청의 공무원이 되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학 책 Indian Currency and Finance (1913)를 쓰게 된다.

1908년, 케임브리지로 돌아와서, A Treatise on Probability의 저술에 전념하게 된다. 이 책은 나중에 1922년 출판된다.

1차 세계 대전이 터진 이후, 케인스는 케임브리지를 떠나 전쟁과 관련된 공무를 보게 된다. 그리고 종전 후, 파리 강화 회의에 참여하게 된다. 그의 저작,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 (1919)에서, 그는 베르사유 조약을 공격하여,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는 클레망소, 윌슨, 그리고 로이드조지를 공격하면서, 분노하고 조롱하는 문체로, 도덕적 분노가 크고도 명징하게 울렸다.

1925년 러시아 출신의 발레리나였던 리디아 로포코바와 결혼한다. 그는 그 후 1946년에 죽었다.

학문

그는 확률론(A Treatise on Probability), 정치 분석(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 화폐 경제학(A Tract on Monetary Reform), 거시경제학(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지성사("Newton, The Man") 분야의 업적으로 알려져 있다.

거시경제학을 창시한 경제학자 중 한 사람으로 불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가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택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1]

어록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린 모두 죽는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가장 이기적인 특성이 전체 다수의 최대 이익을 위해 가장 이기적인 것들을 행하게 하리라는 놀라운 믿음이다.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들의 사상은 그것이 옳을 때에나 틀릴 때에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준보다 더 강력하다

같이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