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연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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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 박진경 대령 후임으로 제11연대장에 최경록 중령, 부연대장에 송요찬 소령 부임
*6월 21일 : 박진경 대령 후임으로 제11연대장에 최경록 중령, 부연대장에 송요찬 소령 부임
*6월 30일 : 폭우로 인해 경비대의 작전 보류
*6월 30일 : 폭우로 인해 경비대의 작전 보류
*7월 1일 : 김봉호 제주경찰감찰청장, 경찰의 불법부정 근절 약속과 함께 귀순자는 양민으로 인정한다고 천명
*7월 1일
일 : 도내 여행증명제도 폐지‧어획금지 해제
**김봉호 제주경찰감찰청장, 경찰의 불법부정 근절 약속과 함께 귀순자는 양민으로 인정한다고 천명
**도내 여행증명제도 폐지‧어획금지 해제
*7월 5일 : 목포~제주간 정기연락선 여행증명제도 폐지
*7월 5일 : 목포~제주간 정기연락선 여행증명제도 폐지
*7월 10일 : 철도경찰 100명 제주도에 파견
*7월 10일 : 철도경찰 100명 제주도에 파견

2017년 4월 3일 (월) 11:32 판

1947년

  • 3월 1일 : 제주민전 주최 제28주년 3‧1절 기념식 개최. 응원경찰의 발포로 관덕정과 도립병원 앞에서 주민 6명 사망, 8명 중경상을 당하는 "3‧1사건" 발생
  • 3월 5일 : ‘제주도 3‧1사건대책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투쟁위원회’ 결성
  • 3월 7일 :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각 읍‧면위원회에 ‘3‧1사건 대책 투쟁에 대하여’ 지령서 하달
  • 3월 8일 : 3‧1사건 조사를 위해 미군정청‧주조선미육군사령부 합동조사단(단장 카스티어 대령) 내도
  • 3월 10일 :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3‧1사건에 항의하는 민‧관 총파업 돌입. 13일까지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6개 기관‧단체에서 파업에 가세
  • 3월 12일 : 경무부 최경진 차장, 제주파업 사태 언급하면서 “원래 제주도는 주민의 90%가 좌익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발언
  • 3월 14일
    •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 파업진상 조사차 내도. 포고문 발표
    • 우도 민청원들, 우도경찰관파견소 간판을 파괴하고 소각
    • 박경훈 제주도지사, 스타우드 제주도 군정장관에게 사직서 제출
  • 3월 15일
    • 전남경찰 122명, 전북경찰 100명 등 응원경찰 222명 제주도 도착
    • 조병옥 경무부장, 파업주모자들을 검거하라는 명령 하달
  • 3월 중순:미군 CIC 제주사무소 설치
  • 3월 16일 : 제주경찰감찰청내에 본토 출신 경관들을 중심으로 특별수사과(과장 이호) 설치. 파업 직장의 간부급 연행하여 취조
  • 3월 17일 : 중문지서 응원경찰대,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는 군중에 발포해 주민 8명 부상
  • 3월 18일
    • 경기경찰 99명 제주도 도착. 응원경찰 총 421명으로 증가
    • 강인수 제주경찰감찰청장, “3‧1사건으로 검속된 사람은 200명 가량”이라고 발표
  • 3월 20일
    • 조병옥 경무부장, 3·1사건 진상조사 담화에서 “제1구경찰서에서 발포한 행위는 정당방위이며 도립병원 앞에서의 발포행위는 무사려한 행위로 인정한다”고 발표
    • 미군정보팀, “제주의 총파업에는 좌‧우익이 공히 참가하고 있으며, 제주도민 70%가 좌익단체 동조자”라고 보고
  • 3월 22일 : 남로당, 전국적으로 24시간 파업인 ‘3‧22 총파업’ 전개
  • 3월 24일 : 독직사건 관련 신우균 전 제주감찰청장에 대해 경무부 사문위원회에서 파면 결정
  • 3월 26일 : 교원들의 잇단 검거에 제주북교 학부모들 구속교원 석방 요구
  • 3월 28일 : 경무부, “파업선동자 전국에서 2,176명 검거, 제주는 230명”이라고 발표
  • 3월 31일 : 제주도 산업국장 임관호 등 제주도청 간부 10여 명 검속
  • 4월 1일 : 조병옥 경무부장, 파업사건에 가담한 제주 경찰관 66명에 대해 징계파면했다고 발표
  • 4월 2일 : 제주도 군정장관에 베로스 중령 부임
  • 4월 10일
    • 제주도지사에 전북출신 유해진 발령
    • 제주경찰감찰청, 파업 검속자는 500명에 이르며 이중 260명을 군정재판에 회부했다고 발표
  • 4월 28일
    • 응원경찰대의 교체병력으로 철도경찰 245명을 제주 경찰에 배속. 제주경찰 정원 500명으로 증원됨
    • 제9연대장 장창국 소령 명의로 제주신보에 “국방경비대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다”라고 표명한 「국방경비대 모병」광고 게재
  • 5월 6일 : 제주검찰청, “경찰감찰청으로부터 송치된 3‧1사건 피고는 328명”이라고 발표
  • 5월 7일 : 응원경찰대 400여 명, 제주에서 철수
  • 5월 21일
  • 5월 23일 : 3‧1사건 관련 재판에 회부된 328명에 대한 공판 완결. 체형 52명, 집행유예 52명, 벌금형 56명, 나머지 168명은 기소유예 및 불기소 처분
  • 5월 24일 : 강동효 제1구경찰서장 수뢰사건으로 해임
  • 5월 26일 : 피의자 고문사건으로 한림지서장‧차석 등 경찰관 2명 구속
  • 6월 1일 : 경찰, 삐라살포 혐의로 제주읍내 중학생 20명 검속
  • 6월 2일 : 제주여중 3학년생, 파시즘교육 반대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
  • 6월 6일 : 구좌면 종달리에서 민청 집회를 단속하던 경찰관 3명이 마을 청년들로부터 집단폭행 당한 세칭 ‘6‧6사건’ 발생
  • 6월 16일 : 제주 경찰, “종달리 사건 수배자가 71명에 이른다”고 발표
  • 6월 18일 : 삐라를 붙인 혐의로 기소된 교원양성소‧조천중학원 학생 10명에 체형 등 언도
  • 6월 20일 : 여러 마을 청년들, 삐라 살포혐의로 재판에 회부됨
  • 6월 22일 : 제주신보, ‘3‧1사건 희생자 유가족 조위금’이 31만 7,118원에 이른다고 보도
  • 7월 : 제주도 민전(의장 현경호) 제주도에 단체등록, 재발족
  • 7월 3일 : 삐라사건으로 집행유예 판결받은 학생이 퇴학처분을 당하자 제주농업학교 3학년 학생들이 이에 반발, 농성
  • 7월 14일 :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청장회의 참석 후 “제주도만은 좌우가 손을 잡고 나가도록 합작운동에 노력할 심산”이라 피력
  • 7월 18일 : 전 제주도지사 박경훈, 제주도 민전 의장에 추대
  • 7월 19일 : 근로인민당 당수 여운형 암살 당함
  • 7월 28일 : 제주도 군정장관 베로스 중령, “좌‧우익의 정당을 물론하고 그 관계자가 관공리 직원으로 취직할 수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 원칙”이라고 표명
  • 7월말 : 한림면 명월리에서 하곡수집을 거부하는 농민들과 우익청년 단체원간에 충돌
  • 8월 7일
    • 제주에서 ‘미군을 축출하자’는 반미 삐라 나돎
    • 제주 CIC, “극우파 제주도지사는 좌익분자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그의 암살을 요구하는 삐라가 여러 장 뿌려졌다”고 보고
  • 8월 8일 : 안덕면 동광리에서 보리수매 독려차 마을을 방문했던 관리들이 마을 청년들로부터 집단폭행 당함
  • 8월 12일 : 미군정, ‘8‧15폭동음모사건’과 관련해 좌파세력에 대한 대규모 검거작전 개시. 전국 검속자 1만 3,769명
  • 8월 13일 : 조천면 북촌리에서 경찰이 삐라를 붙이는 소년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발포해 주민 3명에 총상
  • 8월 14일 : 제주 경찰, ‘8‧15폭동음모’와 관련 제주민전 의장 박경훈 전 제주도지사를 비롯, 도청 간부‧사회인사 등 20여 명 체포
  • 8월 17일 : ‘8‧15폭동음모’와 관련 검속됐던 제주민전 의장 박경훈 등 석방
  • 8월 19일 : 제주도 전역에 곡물수집 반대 삐라 살포됨
  • 8월 28일 : 유해진 도지사, 사상문제를 이유로 이관석 학무과장 등 도 과장급 4명을 권고 사직시키는 것을 시발로 인사정비 착수
  • 8월 31일 : 하곡 전체수집률 6~7월간 6%, 제주도는 1~3월 7% 에 불과
  • 9월 7일 : 제주도 식량사무소장 박태훈, 자택에서 정체불명의 청년들로부터 테러 당함. 서북청년단원의 소행으로 밝혀짐
  • 9월 8일 : 전 제주도 민전 의장 현경호 제주중 교장의 집을 감찰청 직원을 사칭한 청년이 습격. 제주 CIC의 조사 결과 서북청년단 단원의 소행으로 밝혀짐
  • 9월 17일 : 제2차 미소공위 결렬. 미국, 한반도문제 UN에 상정
  • 9월 21일 : 22개의 우익청년단체가 통합, 대동청년단 발족
  • 9월 27일 : 제주경찰감찰청 수사과, 불온서류 발각됐다며 생필품영단 직원과 제주농업학교‧제주중 교사 등 36명 검속
  • 10월 6일 : 제주지법, 3‧1절 집회를 주도했던 전 제주도 민전 의장 안세훈에 집행유예 선고
  • 10월 7일 : 구좌면 행원리에서 대청 단원과 지방청년이 충돌. 대청원 5명과 지방청년 11명 체포
  • 10월 18일 : 경찰후원회(회장 홍순용) 결성
  • 10월 19일 : 제주 CIC, “당원확장 운동을 하던 대동청년단 단원들, 제주도 동쪽끝 마을에서 테러행위. CIC에서 조사중”이라고 보고
  • 10월 21일 : 독청‧광청으로 양분된 대동청년단 제주도지단부 통합하기로 합의
  • 10월 24일 : 제주 CIC, “최근 대동청년단의 통합은 ‘우리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내용을 상부에 보고
  • 11월 2일 : 서북청년회 제주도본부(위원장 장동춘) 발족
  • 11월 3일
    • 딘 소장 제3대 주한미군 군정장관으로 취임
    •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사설단체의 불법 기부강요 행위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면서 경고문 발표
  • 11월 5일 : 통행금지 시간이 오후 10시부터 오전 5시까지로 변경
  • 11월 12일 : 미군정청 특별감찰관 넬슨 중령, 제주도지사 유해진에 대한 특별감찰에 착수. 이 조사는 1948년 2월 28일까지 실시.
  • 11월 14일 : UN총회, 한반도에서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미국안 통과
  • 11월 18일 : 제주 CIC, “서북청년회 지도자, 제주도에서 자금모금을 위한 광범위한 테러행위에 대해 경고를 받고 CIC에 사과했다”고 보고
  • 11월 21일 : 제주군정청 법무관 스티븐슨, 제주 CIC 대표 메리트, “유해진 지사가 우익집회를 제외한 어떤 집회도 허가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서를 특별감찰반에 제출
  • 11월 25일 : 서북청년회 제주도단장이 ‘제주도는 조선의 작은 모스크바’라고 말해 왔다고 제주 CIC가 상부에 보고
  • 11월 26일 : 딘 군정장관 제주도 시찰차 내도. 28일 귀경
  • 12월 3일 : 베로스 중령 후임으로 맨스필드 중령이 제주도 군정장관으로 부임
  • 12월 7일 : 제주 CIC, “경찰 당국이 제주도 경찰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상부에 보고
  • 12월 26일 : 제주도 추곡수매 실적 11%로 전국(84월5%)에서 가장 부진

1948년

  • 1월 8일 : UN한국임시위원단 서울 도착
  • 1월 중순 :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조직부 연락책 경찰에 검거. 조직책의 전향으로 남로당 제주도당의 조직 체계도가 노출됨
  • 1월 22일 : 제주 CIC, “제주경찰이 신촌리에서 열린 남로당 조천지부 불법회의장을 급습, 106명을 검거하고 폭동지령 문건 등을 압수했다”고 보고
  • 1월 26일 : 1월 22일 체포된 106명 외에 추가로 115명이 체포됨. 제주 CIC, “연행자 221명 중에서 63명을 방면했는데, 그들은 남로당 당원이었다”고 보고
  • 1월 30일 : 김영배 제주경찰감찰청장, ‘1‧22 검거사건’과 관련 “경찰은 남로당에 가입한 자를 탄압하는 게 아니고 그들의 비합법적 행동에 철퇴를 내리는 것”이라고 발표
  • 2월 1일 : 9연대장 이치업 중령 후임으로 부연대장 김익렬 소령 임명
  • 2월 7일
    • 전국에 비상경계
    • 좌파세력,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해 전국적 총파업으로 몰고 간 ‘2‧7투쟁’ 전개
  • 2월 8일 : 조천면 함덕리에서 청년들이 도로차단 후 담을 치우려 하던 도청 자동차 운전사와 충돌. 긴급출동한 경찰이 청년 12명을 체포
  • 2월 9일
    • 안덕면 사계리 청년들, 마을에서 술마시던 경찰관 2명을 집단구타
    • 저지지서, 청년들에 의해 피습당함
  • 2월10일
    • 조병옥 경무부장, ‘2‧7폭동’으로 전국적으로 39명이 사망했으며 8,479명이 검거됐다고 발표
    • 고산지서 경찰이 시위하던 군중에게 발포, 주민 1명 중상
  • 2월 11일 : 제주경찰, ‘2‧7사건’여파로 제주에서 방화 1건, 테러 9건, 시위 19건이 발생했다고 발표. 3일 동안 290명 체포
  • 2월 26일 : UN임시총회에서 “UN한국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 단독선거를 실시하자”라는 미국안 채택
  • 2월 말 : 남로당 제주도당 임원들의 ‘신촌회의’에서 강‧온파의 논쟁 끝에 12대 7로 무장투쟁 방침이 결정됨
  • 3월 6일 : 조천지서에서 취조를 받던 조천중학원생 김용철 고문치사
  • 3월 10일
    • 조천중학원 학생들과 주민들, 지서에 몰려가 고문치사 사건 항의 시위
    • 성산면 관내 청년 66명, 남로당을 탈퇴해 대동청년단에 가입한다는 성명 발표. 이후 남로당 탈퇴 성명 줄이음
  • 3월 11일 : 미군정청 특별감찰관 넬슨 중령, 제주도 지사 유해진에 대한 특별감찰보고서에서 유 지사 해임과 제주도 경찰행정에 대한 조사, 과밀 유치장 조사 등을 딘 장관에게 건의
  • 3월 14일 : 모슬포지서에서 대정면 영락리 청년 양은하 고문치사 사건 발생
  • 3월 15일 : 남로당 제주도상위에서 전남도당 오르그가 참석한 가운데 첫째 조직의 수호와 방어의 수단으로써, 둘째 단선‧단정 반대 ‘구국투쟁’으로써 무장투쟁 결행 최종 결정
  • 3월 20일 : 애월면 새별오름에서 훈련 중이던 자위대원들과 애월지서 경찰‧서청‧대청단원간 충돌
  • 3월 28일
    • 이승만, 방한중인 미 육군성 드래퍼 차관에게 제주도를 미군기지로 제공할 의사 있음을 표명
    • 남로당 제주도당, 회합을 갖고 무장투쟁 개시일을 4월 3일로 결정
  • 3월 29일 : 한림면 금릉리에서 미군정을 비판하던 청년 박행구가 경찰과 서청에 잡혀 즉결처형됨
  • 3월 30일 : 전국 일원에서 5‧10총선거 선거인 등록업무 개시
  • 4월 1일 : 국회 선거위원회, 각도별 국회의원 수 발표. 전체 200명중 제주 3명 배정
  • 4월 3일 : 제주도에서 무장봉기 발발. 350여 명의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새벽 2시를 기해 제주 도내 12개 지서를 공격하고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습격. 경찰 4명, 민간인 8명, 무장대 2명 사망
  • 4월 5일
    • 미군정, 약 100명의 전남경찰을 응원대로 급파하고 제주경찰감찰청 내에 제주비상경비사령부 설치(사령관 김정호 경무부 공안국장)
    • 미군정, 제주도 도령(道令)공포해 제주 해상교통 차단하고 미군 함정 동원해 해안봉쇄
  • 4월 8일
    • 미국, 주한미군을 48년 12월 말까지 철수키로 잠정 결정
    • 제주비상경비사령관 김정호, 무장대에 대한 소탕전을 전개한다는 포고문을 발표
  • 4월 10일 : 국립경찰전문학교 간부후보생 100명, 제주에 파견
  • 4월 13일 : 제9연대, 북제주지구 경비치안 확보차 제주읍에 특별부대 파견
  • 4월 14일
    • 최종 선거등록 결과 제주도는 127,752명 중 82,812명이 등록해 64월9%(전국 평균 91월7%)로 전국 최하위 기록
    • 조병옥 경무부장, 선무문 발표
  • 4월 16일
    • 딘 군정장관의 명령으로 남한 전역에 향보단 창설
    • 경무부 공보실장 김대봉, 조병옥 경무부장의 특명으로 선무활동차 제주에 파견
  • 4월 17일 : 미군정, 맨스필드 중령을 통해 제9연대에게 경찰과 협조하여 진압작전에 참가하도록 명령
  • 4월 18일
    • 딘 군정장관, 맨스필드 중령에게 제주도 주둔 경비대의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무장대 지도자와 교섭할 것을 지시
    • 무장대, 선거사무소 습격해 관련 서류 탈취
    • 유해진 도지사 외 32명을 위원으로 한 시국수습대책위원회 결성
  • 4월 19일 : 무장대, 조천면 신촌리 투표소 습격‧방화
  • 4월 20일 : 미군정, 미고문관 드루스 대위와 부산 제5연대 소속 1개 대대를 제주도에 파견
  • 4월 22일
    • 제주비상경비사령부,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오후 8시부터 익일 오전 5시까지로 변경
    • 김익렬 9연대장, 무장대에게 평화협상을 요청하는 전단을 비행기로 살포
  • 4월 24일 : 미국 워싱턴포스트지, "한국 섬 폭동 발발 46명 사망"이라는 제목 아래 제주사태 첫 보도
  • 4월 27일
    • 제주에서 미 20연대장 브라운 대령, 24군단 작전참모부 슈 중령, 59군정중대장 맨스필드 중령 등이 회동해 대책회의 개최
    • 경비대 5연대와 미 20연대 정찰대를 동원한 수색작전 전개
  • 4월 28일 : 제9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 총책 김달삼과 평화협상 진행. 72시간내 전투중지 등에 합의
  • 4월 29일
    • 딘 군정장관, 극비리에 제주도 방문
    • 슈 중령, “제주도에 있는 현재의 병력만으로도 상황을 진정시키는데 충분”하다는 요지의 보고서 제출
    • 김정호 제주비상경비사령관, “오후 8시 이후 전도의 통행을 금지하고 위반자는 사살해 버리는 강경한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고 밝힘
  • 5월 1일
    • 세칭 ‘오라리 방화사건’ 발생해 평화협상 파기
    • 무장대, 제주읍 도평리에서 선거관리위원장 살해
  • 5월 3일
    • 미군 수뇌부, 경비대사령부에게 “무장대를 총공격하여 제주사건을 단시일 내에 해결하라”고 명령
    • 미국 뉴욕타임스지, 제주도 무장대가 ‘경찰무기 압수, 경찰‧서청 처벌, 5‧10선거 취소 확약’ 등 5개항의 항복조건을 제시했다고 보도
  • 5월 5일
    • 제주읍 미군청청 회의실에서 딘 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조병옥 경무부장, 송호성 경비대사령관, 맨스필드 중령, 유해진 도지사, 김익렬 9연대장, 최천 제주경찰감찰청장 등이 모여 이른바 ‘5‧5 최고수뇌회의’ 개최
    • 무장대, 화북리 선거관리위원장과 내도리 구장 등을 살해
  • 5월 6일 : 미군정, 김익렬 9연대장 해임, 신임 9연대장에 박진경 중령 임명
  • 5월 10일
    • 5‧10선거 실시. 제주도 62월8%로 가장 낮은 투표율 기록. 북제주군 갑‧을 2개 선거구는 과반수 미달로 선거무효됨
    • 무장대, 중문면 상예리 2구를 습격하여 대청단장 부부와 국민회 상예리 책임자를 납치 후 살해
  • 5월 11일 : 무장대, 제주읍 도두리에서 마을 선거관리위원장, 대동청년단장, 또는 그들의 가족들을 5월 19일까지 잇따라 납치해 살해
  • 5월 12일 : 미군정, 구축함 크레이그호를 제주도에 급파해 해안 봉쇄활동
  • 5월 15일 : 제11연대 수원에서 제주로 이동(연대장에 제9연대장인 박진경 중령 취임). 기존의 제9연대는 제11연대에 합편됨
  • 5월 18일
    • 국회선거위원회, 딘 군정장관에게 제주도의 북제주군 갑‧을 양 선거구에 대하여 선거무효 선포를 할 것을 건의
    • 수도경찰청 최난수 경감이 인솔하는 특별수사대 제주도에 파견
  • 5월 19일 : 철도경찰 350명과 제6관구 및 제8관구 경찰관 100명 등 총 450명이 경무부 지령에 의하여 제주로 출발
  • 5월 20일
    • 미군정, 미6사단 예하 광주 주둔 제20연대장인 브라운 대령을 제주지구 미군사령관으로 파견
    • 경비대원 41명이 모슬포 부대에서 탈영
  • 5월 21일 : 미군정, 남제주군에서 오용국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고 발표
  • 5월 22일 : 탈영한 경비대원 41명 중 20명이 대정 부근에서 체포
    • 5월 25일 : 남로당 기관지 "노력인민", 제주도 사태에 대해 첫 보도
    • 5월26일 : 딘 군정장관, 제주도 북제주군 갑‧을 양 선거구의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6월 23일 재선거를 실시하겠다는 포고 발표
    • 5월28일
    • 유해진 제주도지사가 경질되고 제주 출신의 임관호가 지사로 임명됨
    • 조병옥 경무부장, 치안상황 시찰차 제주도 방문
  • 5월 31일 : 제헌국회 개원. 이승만, 국회의장에 선출
  • 5월 하순 : 통위부 고문관 로버츠 준장, 제주도 시찰
  • 6월 1일 : 박진경 11연대장, 대령으로 진급
  • 6월 2일 : 제주주둔 미군사령관 브라운 대령, “제주도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모조리 휩쓸어 버리는 작전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밝힘
  • 6월 10일 : 딘 군정장관, 6월 23일 시행하기로 한 북제주 갑‧을 양구의 재선거를 무기연기한다는 행정명령 제22호를 발표
  • 6월 11일 : 제주경찰감찰청장 최천, 감독 불충분 등을 이유로 정직처분
  • 6월 17일 : 제주경찰감찰청장에 제주 출신의 김봉호 임명
  • 6월 18일 : 박진경 제11연대장 숙소에서 부하에 의해 피살. 딘 군정장관과 로버츠 준장, 제주에 내려와 현지 사정 조사한 뒤 박 연대장 시신 수습 후 귀경
  • 6월 21일 : 박진경 대령 후임으로 제11연대장에 최경록 중령, 부연대장에 송요찬 소령 부임
  • 6월 30일 : 폭우로 인해 경비대의 작전 보류
  • 7월 1일
    • 김봉호 제주경찰감찰청장, 경찰의 불법부정 근절 약속과 함께 귀순자는 양민으로 인정한다고 천명
    • 도내 여행증명제도 폐지‧어획금지 해제
  • 7월 5일 : 목포~제주간 정기연락선 여행증명제도 폐지
  • 7월 10일 : 철도경찰 100명 제주도에 파견
  • 7월 15일 : 제9연대를 제11연대에서 배속해제하여 재편성(연대장에 송요찬 소령, 부연대장 서종철 대위)
  • 7월 19일 : 철도경찰 200명 제주도에 파견
  • 7월 20일 : 이승만, 국회에서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
  • 7월 21일 : 3여단의 2개 대대가 부산에서 제주도로 이동해 9연대에 배속
  • 7월 22일 : 제9연대 본부, 작전상 제주도 모슬포 대촌병사에서 제주읍으로 이동
  • 7월24일 : 제11연대 제주도에서 경기도 수원으로 이동
  • 8월 5일 : 9연대 미군 고문관, 정보 분야(S-2)에서 제주출신이 배제됐음을 보고
  • 8월 6일 : 제1관구경찰청, 제1차 응원부대와 교대할 제2차 응원대 파견
  • 8월 11일 : 제주도 민보단 창설
  • 8월 12일 : 9연대 미군 고문관, 작전 분야(S-3)에서 제주출신이 배제됐음을 보고
  • 8월 13일 : 제주도 여행증명제 부활
  • 8월 14일 : 박대령 암살사건에 대한 고등군법회의. 문상길, 신상우, 손선호 배경용 4명에 대해 총살형, 양회천 무기, 강승규에 대해 5년 징역을 언도
  • 8월 15일 :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공포
  • 8월 20일 : 8월 20일을 전후 응원경찰 800명 가량이 제주에 증파
  • 8월 21일 : 김달삼,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주석단 일원으로 선출
  • 8월 24일 : 이승만 대통령과 하지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군사안전잠정협정’ 체결함으로써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계속 미군에 귀속
  • 8월 25일
    • 제주도비상경비사령부, ‘최대의 토벌전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내용이 포함된 포고문을 발표
    • 미군 제1보병연대 1개 소대, 제주 주둔 임무 교대
  • 8월 26일 : 주한미군 임시군사고문단(PMAG) 설치
  • 8월 27일 : 하지 주한미군사령관 이임하고 콜터 장군이 주한미군사령관에 임명
  • 8월 29일 : 응원경관대 800명 제주도에 도착
  • 8월 31일 : 경남 제7관구 경찰청, 제주도 응원부대 파견
  • 9월 8일 : 제주읍 삼양리 거주 13살 소년, 삼양지서에서 고문치사
  • 9월 9일 : 김일성을 수상으로, 박헌영홍명희김책을 부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선포
  • 9월 19일 : 소련, UN결의에 따라 북한 주둔군의 연말 철수방침 밝힘
  • 9월 23일 : 박진경 암살사건 관련 문상길‧손선호 총살형 집행. 신상우‧배경용은 총살형 집행 직전 특사로 감형
  • 9월 27일 : 일반사면령(대통령령 제6호) 공포
  • 10월 1일 : 정일권 경비대 총참모장과 김영철 해안경비대 참모장, 제주 시찰
  • 10월 2일 : 수도경찰청과 제8관구청 응원경찰대 제주도에 파견
  • 10월 5일 : 제주경찰감찰청장에 제주 출신 김봉호에 이어 평남 출신 홍순봉 임명
  • 10월 8일 : 이승만, 미군철수 연기를 요구
  • 10월 9일 : 로버츠 고문단장, 5여단 고문관 트리드웰 대위에게 제주도 작전에 효율적으로 개입할 것을 촉구
  • 10월 11일 : 제주도경비사령부(사령관 김상겸 대령) 설치
  • 10월 17일 : 송요찬 9연대장, 제주 해안에서 5㎞이상 지역에 통행금지를 명령하면서 이를 어길시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총살에 처하겠다는 내용의 포고문 발표
  • 10월18일
    • 제주해안 봉쇄
    • 여수주둔 제14연대 1개 대대 제주도에 증파명령
  • 10월19일
    •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발생
    • 제주도경비사령관 김상겸 대령, 14연대 반란사건에 대한 문책으로 파면됨. 송요찬 9연대장, 제주도경비사령관 겸직
  • 10월 23일 : 무장대, 제주읍 삼양지서와 조천면 관내 조천지서‧함덕지서를 일제히 공격
  • 10월 24일 : 무장대, 이덕구 명의로 정부에 선전포고. 토벌대에게 호소문 발표
  • 10월 28일
    • 9연대 장병 100명 가량이 남로당 프락치로서 무장대와 내통했다는 혐의로 연행당하는 사건 발생
    • 미군보고서, “은밀한 모병을 통해 서북청년단 단원들을 제주에 파견했다”고 보고
    • 토벌대, 애월면 일대에 대한 대대적 토벌작전 결과 애월‧대정 양 지부원 약 100명을 고성리 부근에서 완전 포위‧격멸했다고 보고
  • 10월 하순 : 채병덕 통위부 참모총장, 제주 시찰
  • 11월 1일 : 무장대와 내통한 혐의로 일부 경찰이 체포되는 소위 ‘경찰 프락치 사건’ 발생
  • 11월 7일
    • 토벌대, 구좌면 행원리 가옥 20여 채를 방화하고 주민 10여 명을 총살
    • 군경합동토벌대, 남원면 중산간 마을인 의귀리‧수망리‧한남리를 급습해 피신하지 않은 노인과 어린이를 총살하고 가옥 대부분을 방화
    • 무장대, 서귀면 서귀리를 급습해 민가에 방화
  • 11월 8일 : 로버츠 주한미군사고문단장, 주한미군사령관에게 “CIA는 훌륭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9연대장 송요찬 중령은 강력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고
  • 11월 9일 : 김두현 제주도 총무국장, 서북청년회 사무실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
  • 11월 13일 : 토벌대, 애월면 하가리에서 가옥에 방화하고 남녀노소 25명을 집단총살 한 뒤, 소길리 원동마을에서 주민 50~60명을 집단총살하는 등 이 날을 기점으로 약 4개월간 중산간마을을 초토화하고 주민들을 집단총살
  • 11월 15일 : 로버츠 고문단장, 주한미군사령관에게 CIA 활동의 우수함을 칭찬하고 “제주도 파견 한국군 3개 대대를 주로 서북청년회 단원으로 충원시킬 계획”임을 보고
  • 11월 17일 : 이승만 대통령, 대통령령 제31호로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 선포
  • 11월 19일 : 제주경찰감찰청, 제주도경찰국으로 개편
  • 11월 20일 : 국방부, 군 작전과 군기(軍機)를 보호하고 보도의 정확성을 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 관계 기사의 사전검열을 천명
  • 11월 27일 : 콜터 장군 “로버츠 군사고문단장 휘하에 있는 고문단들에 의해 만족할 만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그들은 모든 한국군 야전부대에 배치돼 있다”고 밝힘
  • 11월 28일 : 무장대, 남원면 남원리와 위미리를 집중공격해 주민들을 집단살해하고 가옥에 방화
  • 11월30일 : 법률 제9호로 국군조직법 공포
  • 12월1일
    • 국가보안법 공포
    • 로버츠 고문단장, 국방부 참모총장에게 서신을 보내 계엄령을 어떻게 시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
  • 12월 3일
    • 1차 계엄고등군법회의 개정. 「수형인 명부」에는 12월 3일부터 12월 27일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민간인 871명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 것으로 기록됨
    • 무장대, 경찰지서 소재지인 구좌면 세화리를 대대적으로 습격해 주민 50명 가량을 살해하고 40가호 150채에 방화
    • 송요찬 9연대장, 미군임시군사고문단에 “11월 20일부터 27일 사이에 폭도 122명 생포, 576명 사살했다”고 보고
  • 12월 6일 : 송요찬 연대장, “미군 조종사 에릭슨 중위가 10월 10일부터 현재까지 정찰비행을 통해 반란을 진압하는데 훌륭한 지원을 했다”고 미 24군단장에게 추천서를 보냄
  • 12월 12일 : 유엔총회,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하면서 미‧소 양군의 조속한 철군을 요구
  • 12월 13일 : 서북청년회 단원 620명이 정식 경찰로 임용
  • 12월 15일
    • 국군조직법에 따라 통위부는 국방부로, 조선경비대를 대한민국 육군으로 개칭
    • 제9연대를 제5여단에서 해편하고 제2여단에 편입
    • 토벌대, 표선면 토산리 주민을 집합시킨 후 18세부터 40세까지의 남자와 일부 젊은 여자 등 150여 명을 표선국교로 끌고 가 감금했다가 12월 18일과 19일 양일에 걸쳐 집단총살
  • 12월 16일 : 제2연대 선발대, 제주에 도착
  • 12월 17일
    • 미 국무성, 1948년 12월말까지 주한미군을 철수키로 결정한 대한정책지침인 ‘NSC-8’에 대해 이를 재고해 줄 것을 요청
    • 미군보고서, “최근 제9연대의 진압작전이 계속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그 이유는 수준 높은 작전을 전개하려는 욕망과 제2연대 성공자들의 훌륭한 업적에 부응하려는 욕망 때문”이라고 보고
  • 12월 18일
    • 로버츠 고문단장, 이범석 국무총리와 채병덕 참모총장 등에게 서신을 보내 송요찬 연대장의 지휘력에 대해 거듭 칭찬하면서 이런 사실이 신문과 방송, 대통령 성명에 의해 크게 일반에 알릴 것을 권고

일 : 토벌대, 여자 3명과 어린이가 포함된 구좌면 하도리‧종달리 주민 10여 명이 숨어 있던 ‘다랑쉬굴’을 발견, 굴속으로 불을 지펴 질식사 시킴

  • 12월 19일
    • 9연대 선발대, 제주를 떠나 대전에 도착
    • 대동청년단‧서북청년회 등이 통합해 대한청년단 결성
    • 서북청년회 단원 250명 제주 도착. 이중 25명은 경찰, 225명은 군인이 됨
  • 12월 21일
    • 채병덕 참모총장, 로버츠 고문단장의 12월 18일자 권고에 대해 “담화를 통해 송요찬의 활동을 소개할 것이고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하도록 추천할 것이며, 송요찬에게 훈장을 수여할 것”이라고 답신
    • 토벌대, 함덕리 대대본부에 자수해간 조천면 관내 주민 150명을 제주읍 속칭 ‘박성내’라는 냇가로 데려가 집단총살
  • 12월22일
    • 대전에서 출발한 제2연대 1대대, 제주에 도착
    • 토벌대, 표선면 가시리에서 소개온 주민들 중 ‘도피자가족’ 76명을 속칭 ‘버들못’ 위쪽 밭에서 집단총살
  • 12월 25일 : 소련, 북한주둔 소련군을 완전 철수했다고 발표
  • 12월 29일 : 2연대(연대장 함병선), 9연대와 교체해 제주에 주둔
  • 12월 30일 : 국방부 보도과장, 기자회견을 통해 “폭도 진압을 일단락 지었으므로 수삼일 내로 계엄령을 해제하겠다”고 발언
  • 12월 31일 : 제주도지구 계엄령 해제

1949년

1950년

1951년 이후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