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린 스핏파이어

Chirho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12월 10일 (월) 14:18 판 (→‎개발)

Supermarine spitfire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제2차 세계대전영국전투기로 사실상 영국유럽을 구한 전투기라 할수있다. 이름인 스핏파이어는 불똥이란 뜻이며 제2차대전에 투입되어 영국군의 기체로 상당한 활약을 하며 호커 허리케인과 함께 2차대전 영국 공군의 주역기로서 각인되었고 날으는 기사의 칼 등의 별명을 얻었다. 됭케르크 철수작전 밑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Bf109등과 같은 독일기들과 격돌해 전투에서 전략적 승리를 거두면서 전쟁 초반 풍전등화의 유럽 전선의 붕괴를 막은 의미가 있는 기체이다. 서부전선 외에도 아프리카태평양 전역에서 활동하였고 전후 제3세계 공군에 보급되기도 하여 한국전쟁과 중동전쟁에서도 그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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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300px-Ray Flying Legends 2005-1.jpg
무기 정보
종류 전투기
길이 9.12m,9.47m,9.96m (Mk la, Mk Vb, Mk IVX, Mk XIVe )
11.23m(Mk la, MkVb, Mk XIVe,), 9.9m(Mk IVX HS)

개발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는 1930년대 중반 영국 공군의 차기 단엽 금속제 전투기 도입사업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시대가 금속제 단엽 전투기의 개발이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에서 개발되기 시작되었고 영국은 당시 보유하고 있던 비금속제 복엽기와는 세대 자체가 다른 이들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의 필요성에 차기전투기 도입을 추진한다. 이 계획으로 영국의 요구 사항 E7 / 30의 속도 시속 400킬로미터 이상에 4정의 기관총을 장착한 전금속 주야간 능력 확보 등의 사항을 확인한 슈퍼마린사의 레지날드 미첼은 이전 슈니이더 트로피 항공대회에 출전하전 자사의 경주용 비행기를 기반으로 슈퍼마린 224식의 항공기를 시험기로 제조하게 된다. 224기는 롤스로이스 고쇼크 엔진을 사용하는 갈매기 날개 형식의 기체로 전체적인 외형은 스핏파이어와 유사했지만 조종석의 케노피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다.

슈퍼마린224식

224는 후에 슈퍼마린 300식으로 발전되면서 영국 공군은 계약을 체결하고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300을 기반으로 스핏파이어의 개발이 진행된다.

실전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 후 프랑스를 지원하기 위해 영국 공군도 프랑스 내로 투입되었다. 이때 투입된 전투기는 호커 허리케인으로 스핏파이어는 영국 방공을 위해 투입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당시 영국 공군 전투기 부대 사령관이였던 휴 다우닝 장군의 결정으로, 스핏파이어를 투입시키고 싶어하는 처칠을 비롯한 수뇌부의 압박에도 휴 다우닝은 끝내 스핏파이어 부대를 이미 패배가 확실한 프랑스로 보내지 않았고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면서 프랑스에 주둔하던 호커 허리케인이 독일로 넘어가게 되었지만 그의 결단으로 스핏파이어마저 독일에게 넘어가 공군전력에 큰 손실을 입는걸 막을수 있었다. 이들 스핏파이어가 본격적으로 독일 루프트 바페와 맞붙은 것은 됭케르르 철수작전에서 철수하는 영국군을 엄호하면서 였으며 지상군 엄호와 이를 요격하기 위해 달려드는 Bf109에 맞서 덩케르크에서 분전하면서 스핏파이어는 당대 최강이라던 Bf109의 호적수라는 것을 과시하였다. 됭케르크 철수작전에서 이틀째 되던 날 영불해엽이 잔잔해 지며 철수 작전에 희망이 보였지만 독일군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Ju 87 슈투카나 Ju 88 폭격기로 철수하는 함선들을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혔고 영국은 필사적으로 모든 가용전력을 동원하여 이를 저지하려 했다. 스핏파이어 역시 본토방공 임무에서 벗어나 철수 함대 방공 임무의 주역으로 출격했다. 문제는 요격 대상이 폭격기만 있다는게 아니였으니 독일 루프트 바페의 Bf109가 영국 공군의 요격을 막으며 철수작전이 진행중인 해안에서 좀 떨어진 해상에서 두 기종간 격렬한 공중전이 전개되었다. 여기서 영국은 177기의 전투기를 손실하였고 많은 수의 스핏파이어가 이 손실 수에 들어간다. 그러나 스핏파이어 역시 많은 수의 Bf109를 격추시켜 향후 영국 본토 항공전의 서막을 열었다.

됭케르크 철수작전인 다이나모 작전이 종료되고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본격적으로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한 영국 상륙작전인 바다사자 작전에 돌입하려 했으나 히틀러 본인도 독일 해군의 역량 부족과 노르웨이 침공에서 독일 해군 순양함들이 영국 순양함들에게 큰 피해를 입는 등 독일 해군의 능력으론 상륙을 시도한다 해도 영국 해군에 의해 가로막힐건 뻔해 보였다. 제해권을 영국으로부터 빼앗지 않는 이상 상륙작전은 불가능 했고 이런 난관을 넘고 영국을 굴복시킬 방법을 고민하던 나치 수뇌부 앞에 나타난 자가 공군원수 헤르만 괴링이였다. 괴링은 공군을 이용해 영국 해군을 제압한다는 계획을 내세웠으며 해군도 수뇌부도 모두 만족할만한 계획이였다. 7월 4일 이후 히틀러는 본격적인 공격 명령을 내렸고 사실 그 이전부터 영국 도버 해엽 상공에선 양측의 산발적인 공중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독일 공군은 영국 도버 해엽을 봉쇄하여 이를 지나는 영국 수송선들을 공격했고 영국군은 맞서 출격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 와중에 10일에는 독일 공군의 대규모 공격이 있었고 스핏파이어와 허리케인으로 구성된 영국 공군기들간 교전이 벌어졌고 31일 동안 벌어진 비슷한 양상의 전투에서 영국은 45대의 스핏파이어를 손실했다. 영국은 스핏파이어와 허리케인까지 합쳐 150대를 손실했고 독일은 80대의 전투기를 잃었다. 이것이 영국 본토 항공전의 시작인 도버 해엽 전투다. 이 도버 해엽 전투가 있은 후의 8월 10일, 히틀러는 영국 폭격을 명령하였고 본격적인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된다. 이날 폭격으로 6개의 비행장이 일시적으로 무력화 되었고 20대 안팍의 폭격기가 지상에서 파괴되었지만 비행장은 오래 지나지 않아 복구되었고 손실된 폭격기 수도 미미해서 사실상 큰 피해는 주지 못했다. 오히려 다음날 슈투카 편대가 스핏파이어 부대에 의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8월 13일의 신나는 뇌조사냥' 이란 공중전이 발생하고 이 전투에서 스핏파이어와 영국 공군기들은 47대에 달하는 독일기를 격추시키는 쾌거를 올렸다. 그 후 런던 대공습과 70일간의 야간 폭격으로 영국을 밀어붙이던 독일의 선전 속에서도 스핏파이어는 폭격기 호위에 치중하느라 공세적 입장을 취하기 힘든 Bf109E를 상대로 전과를 꾸준히 올렸다 그리고 9월 15일, 마침내 전황을 바꿀 날인 베틀 오브 브리튼 데이가 왔다. 바다사자 작전이 21일에 예정되어 있었던 만큼 시간은 촉박했고 괴링은 결국 주간폭격을 재개시키면서 1100대의 항공기를 출격시켰다. 영국은 630대의 전투기를 출격시켜 대응에 나섰고 이 전투에서 스핏파이어가 Bf109E를 상대하는 사이 호커 허리케인이 폭격기 요격에 나서는 팀플레이를 보여줬고 스핏파이어는 요격 임무를 수행하는 허리케인을 엄호하였다. 스핏파이어는 전투기 12대를 이날 격추했고 호커 허리케인의 폭격기 격추는 56대에 달하는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 전투에서 스핏파이어의 역할은 폭격기를 호위하는 방어막을 뚫어 요격작전에 요격기들이 나설수 있도록 해준 것이며 영국 본토 항공전 내내 스핏파이어의 중요 임무중 하나였다. 괜히 스핏파이어가 영국 본토 항공전의 승리에 가장 큰 기여자가 아닌 샘이다. 이 전투 이후 독일은 사실상 영국 공격을 단념한다. 지중해에서의 몰타 항공전에서도 이탈리아 공군과 이를 지원하는 독일 루프트 바페와도 재접전을 벌였고 몰타에 가해지는 독일의 공격을 저지하는데 운용되었다.그중 함재형 시파이어 편대는 영국 항모 HMS 이글에서 이함해 900킬로미터의 거리를 비행하며 작전을 펼쳤다.

이들은 일부가 유럽 전선 외에도 먼 태평양 전선에서도 독일기들이 아닌 일제의 제로 전투기들과 교전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동남아 주둔 영국군과 호주 공군의 전투기였다. 태평양 전쟁 초반 일본의 동남아 침공 과정에서 스핏파이어는 제로에 의해 크게 고전하며 체면을 구겼다. 그러나 스핏파이어에겐 사정이 있었는데, 동남아 전선에 투입된 스핏파이어들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사용하기 위해 보크스 필터라는 모래 유입 방지용 필터를 달아 놓았는데 이게 워낙 돌출되어 있어 항력이 크게 증가해 속도를 40km이상 저하시키고 운동성에 큰 제약이 걸렸다. 거기에다가 엔진 성능이 저하되는 악재도 있었고 제일 큰 문제는 조종사들이 막 훈련 마치고 투입된 초짜들이였다는 점이다. 반면 일본측 조종사들은 중일전쟁에서 실전까지 경험한 숙련된 조종사들이였다. 식민지군은 본토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였던 데다 보급도 갑작스런 개전으로 원할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동남아의 습한 기후는 고공에서 기관포 등에 자주 문제를 일으켰으며 결함을 일으켜 앞서 말한 보급문제와 맞물려 많은 비전투 손실을 냈다. 사실 고전했다는 것도 격추된 비중보다 비전투 손실이 더 컸다. 이를 두고 영국 본토 항공전에 Bf109대신 항속거리가 긴 제로센을 투입했으면 승리했을거라고 일본 우익들이 떠들어 대기도 하는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스핏파이어는 제로센에게 저속 선회전만 열세일 뿐 기동성과 엔진출력,화력 등, 모든 면에서 우세한 전투기며 무려 Bf109E형과 싸워 승리한 전투기다. 당연히 Bf109E는 제로센이 동급의 기체라고 할수도 없을 만큼 Bf109는 제로센을 압살하는 성능을 보유한 당대 최강의 제공기였다. 제로센은 최대 속력이 500킬로미터 중반대밖에 안되지만 동남아에 배치된 스핏파이어는 본 성능대로라면 시속 600킬로미터는 가뿐히 넘는데다 고출력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으로 상승력도 제로센보다 훨씬 우세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핏파이어는 총탄 몇발 맞았다고 불타오르지 않는 튼튼한 내구성을 갖추고 있는 전투기다. 만약 제로센이 영국 본토 항공전에 투입되었다면 말 그대로 제로센은 추풍낙엽 신세에 영국 본토 항공전은 그저 그런 헤프닝으로 끝났을것이 뻔하다. 단순히 수적 열세에 전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유리한 위치를 점했을 뿐 제로센은 스핏파이어보다 명백한 열세의 전투기일 뿐이다.

한국전쟁

중동전쟁

형식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