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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8일 (일) 13:1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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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_Shaggs.jpg
그룹 정보
장르
레이블 Third World Recordings
전구성원
도로시 위긴
베티 위긴
헬렌 위긴
레이첼 위긴

개요

"섀그스(The Shaggs)"는 1968년 결성되어 1975년 해체된[1] 미국밴드이다. 멤버들의 아버지 오스틴 위긴(Austin Wiggin)의 주도로 활동하였으며 밴드의 구성원은 모두 위긴 자매들로 구성되었다. 활동 당시에는 형편없는 음악성으로 혹평받은 무명의 지역 밴드였으나 해체 후 후대의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에 의해 재평가되었다.

멤버

  • 도로시 위긴(Dorothy Wiggin) : 보컬, 리드 기타
  • 베티 위긴(Betty Wiggin) : 보컬, 리듬 기타
  • 헬렌 위긴(Helen Wiggin) : 드럼

활동

섀그스는 아버지 오스틴 위긴의 주도로 출발했다. 오스틴 위긴의 어머니는 점성술을 할 수 있었는데, 자신의 아들에게 세 가지 예언을 해주었다. 금발의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할 것이고, 자신이 죽고 난 뒤 아들 둘을 낳을 것이며, 딸들은 대중음악 그룹을 결성해 대성공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이 중 첫 번째, 두 번째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고 오스틴은 마지막 예언 역시 이루어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의 딸들은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도 음악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조급해진 오스틴은 딸들을 학교에서 자퇴시키고 음악 레슨을 시켰다. 위긴스 자매는 이에 반발했지만 아버지가 매우 완고하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의 형식은 당시 유행하던 록 밴드 형태가 되었다. 밴드의 이름은 오스틴에 의해 지어졌으며 당시 유행하던 섀기(Shaggy) 헤어스타일에서 따왔다. 오스틴 위긴은 매니저가 되어 이후 밴드의 모든 활동을 주도한다.[3]

밴드는 1968년 뉴햄프셔의 프레몬트 타운홀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이후로도 밴드는 꾸준히 공연을 가졌으며 이듬해인 1969년의 섀그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 앨범 "Philosophy of the World"가 발매되었다. 물론 이 공연 활동과 음반 취입은 모두 오스틴 위긴의 사재로 이루어졌다. 첫 공연부터 섀그스는 엄청난 혹평을 들었고 밴드가 공연할 때마다 야유와 함께 물병이나 캔이 날아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최고의 록 밴드를 탄생시키겠다 했지만 오스틴 위긴을 포함해서 아무도 음악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었고 제대로 된 레슨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 오스틴은 딸들을 매우 혹독하게 스파르타식으로 레슨을 시켰지만 애초에 본인이 음악에 아무런 재능이나 지식이 없던지라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위긴 자매는 악보는 당연히 읽을 수 없었고, 박자의 개념도 몰랐으며, 기타를 튜닝할 줄도 몰랐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틴은 딸들의 음악적 실력이 갈수록 일취월장한다고 믿었다. 세간의 혹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지역 레코드사에 들러 거금을 들여 첫 앨범을 녹음한다. 오스틴은 당시 전성기였던 비틀즈 등의 밴드처럼 모든 곡을 자작곡으로 채워넣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밴드의 리더였던 맏딸 도로시 위긴에게 작사작곡을 강요한다. 레코드사의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서 녹음은 단 하루만에 완료되었다. 밴드의 첫 앨범은 총 1000장이 제작되었으나 그 중 900장이 빛을 보지 못하고 창고에서 증발했다. 나머지 100장은 어찌어찌 음반 가게에 진열되기는 했으나 악성재고가 되었다. 앨범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팔리지 않았고, 어쩌다가 한 번 팔리는 일이 있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반품되었다. 그리고 앨범이 발매된 직후 레코드사의 사장과 프로듀서가 증발했으며, 그 뒤 레코드사 역시 증발했다.

첫 앨범의 대실패 이후 위긴 가족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오스틴 위긴은 그럼에도 밴드가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으며 세간의 혹평이나 상업적 실패는 그저 성공을 위한 밑거름 정도로 여겼다. 오스틴은 섀그스를 계속 이런저런 행사 등에 활동시켰으며 새로운 앨범을 내줄 레코드사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이미 처절하게 실패한 바닥을 치는 실력의 가족 밴드에 투자해줄 회사는 없었다. 오스틴 위긴은 1975년 그토록 원하던 스타덤에 오른 섀그스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망한다. 애초에 그의 고집에 의해 억지로 유지되던 밴드였던 만큼, 오스틴의 죽음 이후 섀그스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재평가

비록 활동 당시에 섀그스는 혹평 이전에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아본 적이 없는 듣보잡 로컬 밴드였지만,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주류 음악에 대치되는 언더그라운드, 인디 음악이 발생하면서 새그스 역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최초로 섀그스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사람은 프랭크 자파로, 1970년대 초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해 섀그스의 음반을 소개하고 밴드의 곡들을 커버했다. 프랭크 자파 역시 대중들보단 음악 매니아들에게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일반 대중들에겐 소리소문없이 넘어갔지만, 음악 팬들에게 무명이었던 섀그스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프랭크 자파가 말한 "비틀즈보다 낫다(Better Than The Beatles)"라는 문장은 이후 섀그스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1980년 미국의 록 밴드 NRBQ는 자신들의 레이블로 "Philosophy of the World"를 재발매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말만 들어봤지 실제로 접해볼 길이 없었던 섀그스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이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평가는 각양각생이었는데, 롤링 스톤 지에선 "전두엽 절제술을 받은 트랩 가족 같다."[5]는 말로 혹평했으며, 음악 평론가 레스터 뱅스(Lester Bangs)는 "로큰롤 역사에 길이 남을 랜드마크다."라며 극찬했다. 이 레이블은 이후 1975년 경의 녹음물과 몇몇 라이브를 합쳐 섀그스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런지 록 밴드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은 "가장 좋아하는 앨범 50선" 기사에서 "Philosophy of the World"를 5위로 꼽았다.[6]

2001년 인디 레이블 "Animal World"에서 섀그스의 헌정 앨범 "Better Than The Beatles"를 발매했으며, 많은 인디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디스코그래피

Philosophy of the World

Philosophy of the World.jpeg

1. Philosophy of the World

2. That Little Sports Car[7]

3. Who Are Parents?

4. My Pal Foot Foot

5. My Companion

6. I'm So Happy When You're Near

7. Things I Wonder

8. Sweet Thing

9. It's Halloween

10. Why Do I Feel?

11. What Should I Do?

12. We Have a Savior

1969년 3월 9일 발매된 섀그스의 유일한 정규 앨범. 도로시 위긴이 모든 곡을 작사/작곡했다. 오스틴 위긴은 대히트를 예상하고 지역 중소 레코드사 Third World Recordings에 큰 돈을 주고 음반 제작을 의뢰했으나 레코드사 자체가 사기극이였던지라 크게 망했다. 애초에 사기였기 때문에 녹음은 단 하루만에 대충 이루어졌고 덕분에 음질도 썩 좋지 않다. 괴상망칙한 멜로디, 정신나간 가사, 기괴한 보컬 하모니, 튜닝이 아예 안 된 듯한 기타, 생전 처음 드럼을 쳐보는 듯한 드럼 등으로 음반을 들어본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세상에 단 100장밖에 풀리지 않은 엄청난 희귀음반이기도 하며, 재발매된 지금도 초판은 음반 수집가들에게 고가로 거래된다. 음반 속지에는 멤버들의 어릴 적 사진과 공연, 녹음 사진 등이 들어가 있고 아마도 멤버가 그린 듯 한 개인지 뭔지 모를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다.[8]

사실 이 음반의 기괴한 만듦새는 위긴 자매의 의도적인 행위라는 설이 있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고의적으로 엉망인 연주를 했다는 것, 혹은 앨범의 혹평으로 인해 아버지가 밴드를 포기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라는 것. 앨범 발매 당시부터 꾸준히 제기된 설이나 본인들은 부정했다. 그러나 이후 앨범의 내용물보다 나은 연주를 하는 음원이 발굴되고 활동 당시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이 "앨범에 실린 정도로 연주를 못하지는 않았다."고 증언하는 등 여전히 이 앨범이 고의적 태업의 산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Philosophy of the World"는 블렌더 매거진에서 매긴 "가장 위대한 인디 록 앨범 100선"에서 100위로 선정되었다. 피치포크 미디어는 동 앨범에 8.6/10의 평점을 부과했으며 "60년대 최고의 앨범 200선"에서 110위로 선정했다. 모조 매거진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올뮤직에서는 4.5/5의 평점을 매겼다. 반면에 앞서 언급했듯 롤링 스톤지는 이 앨범을 매우 혹평했으며 '역사상 최악의 앨범'이라고도 칭했다. 뉴요커 지 역시 "인상 깊게 나쁘다(Hauntingly bad)"라고 혹평했다.

각주

  1. 이후 1999년과 2017년에 단발성 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2. 1969년부터
  3. 그는 멤버들의 의상을 직접 골랐으며 멤버들의 몸집을 키우는 데에 집착해서 억지로 식사량과 운동량을 늘리기도 했다.
  4. 당장 결성 멤버들을 봐도 알겠지만, 베이스가 없다.
  5. 이 역시 섀그스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6. 1위는 이기 팝의 밴드 스투지스의 "Raw Power"
  7. 레이첼 위긴이 베이스 기타로 참여
  8. 이 정체불명의 동물은 섀그스의 마스코트 비스무리하게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