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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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은 [[대한민국]]에서 [[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의 [[중국]]에서 유래한 [[요리]]를 전문적으로 파는 [[식당]]을 통칭하는 말이다. 일본에도 중국집이 존재한다. '중식당' 또는 '중화요리점' 이라고도 하며 일본에선 중화요리점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chinese restaurant' 이라고 한다.
'''중국집'''은 [[중국]]에서 유래한 [[요리]]를 전문적으로 파는 [[식당]]을 통칭하는 한국어<ref>북한(문화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ref>로, 흔히 [[대한민국]]에서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을 취급하는 곳을 가리킨다. '중식당' 또는 '중화요리점' 이라고도 하지만, 서로 상세한 뜻과 어감이 아주 약간씩 다르다.  


더 나아가 2000년대를 지나 제육볶음, 찐만두, 잡채밥, 뚝배기 불고기 등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메뉴까지 조리하게 되면서 분식집이 하지 못하는 배달 서비스를 살려, 분식집 메뉴를 가져와 판매하는 등 과거 중국풍 음식에만 목 매였던 상황에서 변화하고 있다.
화교가 거의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만큼, 한국 외에도 '중국집'에 해당하는 곳이 있다. 일본에선 중화요리점(中華料理店), 흔히들 '츄카야(中華屋(중화옥))'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차이니즈 레스토랑(Chinese restaurant)' 이라 부른다. 참고로 중국어로는 "쭝찬팅(中餐厅)"이라 한다.


==역사==
본 항목은 주로 대한민국에서 한국식 중식을 위주로 파는 식당에 대해 서술한다.
구한말 중국에서 건너온 [[화교]]들이 인천 근교에 모여 살며 음식을 팔기 시작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중국 요리들을 <del>[[마개조]]</del> [[로컬라이징]]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상기한 짜장면, 짬뽕처럼 원본과 완벽하게 다른 모습으로 한국화된 '중국 음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또는 일본에도 각 나라에 입맛에 맞게 변형된 중화 요리들이 존재한다.  
 
==역사 및 특징==
중국집은 19~20세기 구한말 시대, 망조가 짙게 드리운 청나라에서 (주로 [[산둥 반도]]를 경유하여) 건너온 [[화교]]들이 현재의 [[인천역]] 앞 인근에 정착하며, 그들을 위한 음식을 팔기 시작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다. 다만 당시 호칭은 '청요릿집'으로, 21세기로 비유하면 '중국집'보다는 '고급 중식당'에 더 가까운 이미지였다.
 
그러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내국인 우선 정책의 일환으로, 귀화하지 않은 화교들의 재산 축적에 매우 큰 제약을 걸면서, 수많은 화교들이 중국 본토나 대만으로 떠나갔다. 그 빈자리를 주로 화교계 중식당 밑에서 일하던 한국인 직원들로 대신 채워지면서, 점차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도록 <del>[[마개조]]</del> [[로컬라이징]]이 이루어졌다.
 
당시 '중화요리점(중식당)'은 박정희 정권의 혼분식 장려운동에 최대 수혜자임과 동시에 경제적 규제의 타겟<ref>물가 안정을 이유로 짜장면 가격을 엄격하게 통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ref>이기도 했는데, 이 때 대부분의 '중화요리점'에서 중국 '요리'가 대폭 축소되고 면요리 위주의 '식사'가 주력이 되는, 이른바 '중국집'화(化)가 이루어졌다. 짜장면, 짬뽕(우동)<ref>본래 중국집 3대 음식이라 하면 짜장면/우동/탕수육이었는데, 1990년대에 매운맛 유행이 시작되면서 우동이 짬뽕으로 대체되었다. 애당초 짬뽕 또한 원래는 빛깔부터가 오렌지색에 가깝게 살짝 매콤했을 뿐의 음식이었지만, 마찬가지로 매운맛 유행 때문에 새빨간색으로 바뀐 것.</ref>, 탕수육이 (비록 원본과는 완벽하게 다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음식'의 상징으로 굳혀버린 때가 이 때였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훗날 [[패밀리 레스토랑]]에게 넘겨주기까지 [[외식]]의 대명사급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del>[[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중원 자장면집]]</del> 그러다 1990년대 수도권 위주로 신도시 개발의 본격화에 맞물려 핵가족 및 독신(1인) 가정이 급증하였는데, 이들 대부분은 돈 벌러 상경했다가 땅값 비싼 서울에서 밀려난 중산층 이하가 대다수였는데다 맞벌이인 경우도 적지 않아서, 기존<ref>=1970~80년대까지 대가족 시절의 안주인처럼</ref>처럼 밥상 차리기가 버거워져 매식(買食) 문화가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특히 배달 위주로 운영되는 '중국집'은 그런 주거지 인근을 주로 꿰차고 들어갔는데, 집에서도 자주 만들어 먹는 한식과는 달리, '외식'이면서 낮은 가격대라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치킨]]집 및 [[피자]]집과 함께 배달음식 삼대장에 끼어들 있었다. 그 결과, '중국집'은 집에 밥이 없는데 귀찮을 때 대충 때우는 서민적인 입지로 완전히 굳혀지게 된다.<ref>다만 그 역효과로, 아무래도 가격대가 높을 수 밖에 없는 요리류의 퇴화(=탕수육 일원화)를 더 촉진시키게 되었기도 하다.</ref>
 
더 나아가 배달 문화가 유행하던 2000년대에 이르면 기존 한식집이나 분식집의 취약점이던 제육볶음, 찐만두, 잡채밥, 뚝배기 불고기 등의 한식(분식류)까지 같이 취급하게 되면서 과거 중국풍 음식에만 목 매였던 상황에서 변화하고 있다.


==대중 매체에서==
==대중 매체에서==
1990년대 까지 과거의 매체에서는 [[외식]]의 대명사급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가히 현재의 [[패밀리 레스토랑]]급의 대우라고 할 수 있었다. <del>[[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중원 자장면집]]</del> 또한 어려웠던 시절의 몇 없는 외식 장소로서 어린이들의 선망이 되기도 했던 모양으로<ref>지금은 그냥 집에 마땅히 먹을만한게 없으면 시켜먹는 음식이지만, 90년대 이전에는 짜장면 한 그릇 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대단한 것이었다. 추가적으로 당시엔 급식이라는 개념이 없어 집에서 도시락을 싸갖고 가야 했었다.</ref>,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와<ref>해당 가사는 [https://www.youtube.com/watch?v=efuVbrNLuAk GOD의 어머님께]이다.</ref> 같은 현대의 격언(...)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과거 청요릿집 시절에도 장벽이 높은 외식장이긴 했지만, 훗날 정부 압박으로 크게 하향패치 된 '중국집'마저도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무렵까지의 서민들에겐 경사가 있을 때에나 찾는 선망의 외식장이었다.<ref>지금은 그야말로 허구한 날 시켜먹는 중국집의 최저가 음식(=기본템)에 불과하지만, 90년대 이전에는 짜장면 한 그릇 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대단한 것이었다. 추가적으로 당시엔 급식이라는 개념이 없어 집에서 도시락을 싸갖고 가야 했었다.</ref> 특히 특유의 달콤한 맛 때문에 유난히 어린이들의 인기가 많았던 짜장면은 라면마저 뛰어넘는 꿈의 음식으로 작용하여서, "중국집 간다"보다 '''"짜장면 먹으로 간다"'''라는 표현이 더 대중적으로 쓰이도록 '중국집 = 짜장면'의 이미지를 굳혀버리게 된다.


현재에 들어와서는 이사를 하고 시켜 먹는 음식이거나 집에 밥이 없는데 귀찮을 때 대충 때우는 서민적인 입지가 되었다. 과거보다는 가격이 상당히 비싸졌긴 하지만, 여전히 가격대를 따지고 보면 싸게 적당히 먹을만한 음식점이 별로 없다 보니 현재는 이런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다. 물론 이건 볶음밥, 짜장면 등의 식사류에 한해서 이고 여전히 요리류는 가격이 부담스럽다.  
덕분에 이들이 성장한 이후인 황금기(1988~1997)에는 '중국집 짜장면'의 보급이 눈부실 정도로 빨랐다. 오랫동안 가격 통제를 받은 영향도 있긴 하지만, 짜장면 자체가 들어가는 재료가 많지 않거니와, 조리법도 까다롭지 않아서 대량조리 및 판매에 유리하여, 경제성장률 대비 가격 상승률이 매우 느렸기 때문이었다. 허나 1998년 외환위기로 인해 상황이 뒤집히자 되려 위로의 음식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변화되어 온 기억(추억)이 의도적이나 무의식적으로 매체에 반영되는 일이 잦았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가 [[GOD]]의 노래, [[어머님께]](1999)의 한 구절인 [https://www.youtube.com/watch?v=efuVbrNLuAk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중국집이 등장하는 매체===
===중국집이 등장하는 매체===


== 파는 요리들 ==
== 파는 요리들 ==
한국식 중화요리집 기준
* [[짜장면]]
* [[짜장면]]
** 물짜장, 흔히 그냥 짜장이라고 부른다.
** 물짜장 : [[전주]]에서는 별도의 메뉴를 가리키지만, 그 외 지역에선 간짜장의 상대어로서 일반적인 '짜장면'을 지칭한다.
** 간짜장(乾짜장)
** 간짜장(乾짜장)
** 쟁반짜장
** 쟁반짜장

2024년 4월 25일 (목) 16:25 판

중국집중국에서 유래한 요리를 전문적으로 파는 식당을 통칭하는 한국어[1]로, 흔히 대한민국에서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을 취급하는 곳을 가리킨다. '중식당' 또는 '중화요리점' 이라고도 하지만, 서로 상세한 뜻과 어감이 아주 약간씩 다르다.

화교가 거의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만큼, 한국 외에도 '중국집'에 해당하는 곳이 있다. 일본에선 중화요리점(中華料理店), 흔히들 '츄카야(中華屋(중화옥))'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차이니즈 레스토랑(Chinese restaurant)' 이라 부른다. 참고로 중국어로는 "쭝찬팅(中餐厅)"이라 한다.

본 항목은 주로 대한민국에서 한국식 중식을 위주로 파는 식당에 대해 서술한다.

역사 및 특징

중국집은 19~20세기 구한말 시대, 망조가 짙게 드리운 청나라에서 (주로 산둥 반도를 경유하여) 건너온 화교들이 현재의 인천역 앞 인근에 정착하며, 그들을 위한 음식을 팔기 시작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다. 다만 당시 호칭은 '청요릿집'으로, 21세기로 비유하면 '중국집'보다는 '고급 중식당'에 더 가까운 이미지였다.

그러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내국인 우선 정책의 일환으로, 귀화하지 않은 화교들의 재산 축적에 매우 큰 제약을 걸면서, 수많은 화교들이 중국 본토나 대만으로 떠나갔다. 그 빈자리를 주로 화교계 중식당 밑에서 일하던 한국인 직원들로 대신 채워지면서, 점차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도록 마개조 로컬라이징이 이루어졌다.

당시 '중화요리점(중식당)'은 박정희 정권의 혼분식 장려운동에 최대 수혜자임과 동시에 경제적 규제의 타겟[2]이기도 했는데, 이 때 대부분의 '중화요리점'에서 중국 '요리'가 대폭 축소되고 면요리 위주의 '식사'가 주력이 되는, 이른바 '중국집'화(化)가 이루어졌다. 짜장면, 짬뽕(우동)[3], 탕수육이 (비록 원본과는 완벽하게 다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음식'의 상징으로 굳혀버린 때가 이 때였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훗날 패밀리 레스토랑에게 넘겨주기까지 외식의 대명사급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중원 자장면집 그러다 1990년대 수도권 위주로 신도시 개발의 본격화에 맞물려 핵가족 및 독신(1인) 가정이 급증하였는데, 이들 대부분은 돈 벌러 상경했다가 땅값 비싼 서울에서 밀려난 중산층 이하가 대다수였는데다 맞벌이인 경우도 적지 않아서, 기존[4]처럼 밥상 차리기가 버거워져 매식(買食) 문화가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특히 배달 위주로 운영되는 '중국집'은 그런 주거지 인근을 주로 꿰차고 들어갔는데, 집에서도 자주 만들어 먹는 한식과는 달리, '외식'이면서 낮은 가격대라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치킨집 및 피자집과 함께 배달음식 삼대장에 끼어들 수 있었다. 그 결과, '중국집'은 집에 밥이 없는데 귀찮을 때 대충 때우는 서민적인 입지로 완전히 굳혀지게 된다.[5]

더 나아가 배달 문화가 유행하던 2000년대에 이르면 기존 한식집이나 분식집의 취약점이던 제육볶음, 찐만두, 잡채밥, 뚝배기 불고기 등의 한식(분식류)까지 같이 취급하게 되면서 과거 중국풍 음식에만 목 매였던 상황에서 변화하고 있다.

대중 매체에서

과거 청요릿집 시절에도 장벽이 높은 외식장이긴 했지만, 훗날 정부 압박으로 크게 하향패치 된 '중국집'마저도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무렵까지의 서민들에겐 경사가 있을 때에나 찾는 선망의 외식장이었다.[6] 특히 특유의 달콤한 맛 때문에 유난히 어린이들의 인기가 많았던 짜장면은 라면마저 뛰어넘는 꿈의 음식으로 작용하여서, "중국집 간다"보다 "짜장면 먹으로 간다"라는 표현이 더 대중적으로 쓰이도록 '중국집 = 짜장면'의 이미지를 굳혀버리게 된다.

덕분에 이들이 성장한 이후인 황금기(1988~1997)에는 '중국집 짜장면'의 보급이 눈부실 정도로 빨랐다. 오랫동안 가격 통제를 받은 영향도 있긴 하지만, 짜장면 자체가 들어가는 재료가 많지 않거니와, 조리법도 까다롭지 않아서 대량조리 및 판매에 유리하여, 경제성장률 대비 가격 상승률이 매우 느렸기 때문이었다. 허나 1998년 외환위기로 인해 상황이 뒤집히자 되려 위로의 음식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변화되어 온 기억(추억)이 의도적이나 무의식적으로 매체에 반영되는 일이 잦았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가 GOD의 노래, 어머님께(1999)의 한 구절인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중국집이 등장하는 매체

파는 요리들

  • 짜장면
    • 물짜장 : 전주에서는 별도의 메뉴를 가리키지만, 그 외 지역에선 간짜장의 상대어로서 일반적인 '짜장면'을 지칭한다.
    • 간짜장(乾짜장)
    • 쟁반짜장
    • 삼선짜장
    • 유니짜장
  • 짬뽕
    • 옛날 짬뽕, 흰 짬뽕
    • 삼선짬뽕
    • 볶음짬뽕
  • 우동 - 흔히 알고 있는 그 우동과는 다른 요리다.
  • 울면 - 우동과 비슷한데 전분가루를 넣어 국물이 걸쭉하고 미끈미끈한게 특징이다.
  • 유산슬
  • 난자완스
  • 기스면
  • 탕수육
  • 군만두 - 요리를 시키면 서비스 개념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서비스 음식으로 취급되지만 군만두를 전문으로 파는 곳은 꽤 맛있고 가격도 비싼 편이다. 요즘은 서비스로 주지 않는 집도 많다.
  • 팔보채
  • 라조육
  • 라조기
  • 깐풍기
  • 깐풍새우
  • 양장피
  • 볶음밥 - 직장 때문에 중국집에 일상적으로 식사하러 오는 손님은 짜장면보다 볶음밥을 더 많이 먹는 편이다.

기타

조미료를 과다하게 사용한다고 가장 자주 까이는 업종이기도 하다. MSG 등 조미료가 건강에 무해하다는 것은 입증되었지만, 여전히 음식의 맛을 조미료로 과장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

탕수육과 관련하여 부먹파와 찍먹파의 대결이 종종 벌어지는 장소이다.

함께 읽기

  1. 북한(문화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2. 물가 안정을 이유로 짜장면 가격을 엄격하게 통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3. 본래 중국집 3대 음식이라 하면 짜장면/우동/탕수육이었는데, 1990년대에 매운맛 유행이 시작되면서 우동이 짬뽕으로 대체되었다. 애당초 짬뽕 또한 원래는 빛깔부터가 오렌지색에 가깝게 살짝 매콤했을 뿐의 음식이었지만, 마찬가지로 매운맛 유행 때문에 새빨간색으로 바뀐 것.
  4. =1970~80년대까지 대가족 시절의 안주인처럼
  5. 다만 그 역효과로, 아무래도 가격대가 높을 수 밖에 없는 요리류의 퇴화(=탕수육 일원화)를 더 촉진시키게 되었기도 하다.
  6. 지금은 그야말로 허구한 날 시켜먹는 중국집의 최저가 음식(=기본템)에 불과하지만, 90년대 이전에는 짜장면 한 그릇 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대단한 것이었다. 추가적으로 당시엔 급식이라는 개념이 없어 집에서 도시락을 싸갖고 가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