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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에른스트 톨러'''(Ernst Toller, 1893년 12월 1일~1939년 5월 22일)는 [[독일]]의 [[극작가]]이자 [[정치가]], [[사회주의]] 혁명가이다.
에른스트 톨러(Ernst Toller, 1893년 12월 1일 ~ 1939년 5월 22일)는 [[독일]]의 [[극작가]]이자 [[정치가]], [[사회주의]] 혁명가 였다. [[1919년]] 독일혁명중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에 참여했으며 [[바이에른]] [[독일 독립사회민주당]] 임시위원장 이었다. 뮌헨이 독일군(Reichswehr)과 자유군단에게 함락된 후 숨어지내던 중 체포되어 뮌헨 인민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0년 바이에른 주정부로 부터 사면받아 석방되었다. 이후 극작가로서 활동하던 중 1932년 스위스로 이주했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후 공식적으로 독일에서 추방되어 파리로 이주했다 다시 런던으로 이주했다. 마지막으로 톨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정착했다. 1939년 초청을 받아 뉴욕에 머무르던 중 늘 가지고 다니던 가죽벨트로 목을 메고 자살했다. 대표작으로는 <군집 인간>, <기계파괴자>, <힘차게 살고 있다> 등이 있다.
 
== 생애 ==
[[1919년]] 독일혁명중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에 참여했으며 [[바이에른]] [[독일 독립사회민주당]] 임시위원장이었다. 뮌헨이 독일군(Reichswehr)과 [[자유군단]]에게 함락된 후 숨어지내다 체포되어 뮌헨 인민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러다 [[1920년]], 바이에른 주정부로 부터 사면받아 석방되었다. 이후 극작가로서 활동하던 중 [[1932년]] [[스위스]]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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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
* [[1921년]]: 군집인간 (Masse Mensch)
* [[1922년]]: 기계파괴자 (Die Maschinenstürmer)
* [[1923년]]: 힌케만 (Hinkemann)
* [[1927년]]: 힘차게 살고 있다 (Hoppla, wir le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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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6일 (토) 11:25 기준 최신판

에른스트 톨러(Ernst Toller, 1893년 12월 1일~1939년 5월 22일)는 독일극작가이자 정치가, 사회주의 혁명가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9년 독일혁명중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에 참여했으며 바이에른 독일 독립사회민주당 임시위원장이었다. 뮌헨이 독일군(Reichswehr)과 자유군단에게 함락된 후 숨어지내다 체포되어 뮌헨 인민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러다 1920년, 바이에른 주정부로 부터 사면받아 석방되었다. 이후 극작가로서 활동하던 중 1932년 스위스로 이주했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후 공식적으로 독일에서 추방되어 파리로 이주했다 다시 런던으로 이주했다. 마지막으로 톨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정착했다. 1939년 초청을 받아 뉴욕에 머무르던 중 늘 가지고 다니던 가죽벨트로 목을 메고 자살했다.

저서[편집 | 원본 편집]

  • 1921년: 군집인간 (Masse Mensch)
  • 1922년: 기계파괴자 (Die Maschinenstürmer)
  • 1923년: 힌케만 (Hinkemann)
  • 1927년: 힘차게 살고 있다 (Hoppla, wir leben!)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