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P미디어/역사

1990년대[편집 | 원본 편집]

1991년, 이호연 대표가 대성기획을 세워 ZAM 등의 가수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원 히트 원더였던 ZAM 말고는 별 성과가 없었으나, 당시 SMH.O.T.를 냈을 때 라이벌 기믹으로 젝스키스를 내놓으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성기획은 SMS.E.S를 내놓으면 핑클을 배출했고, 신화를 내놓으면 클릭비를 내놓음으로써 SM과의 라이벌 기믹을 유지한다. 그렇게 해서 대성기획은 SM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대형 기획사가 되었고, 회사명도 DSP엔터테인먼트로 바꾼다.

2000년대[편집 | 원본 편집]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DSP엔터테인먼트에선 아이돌 그룹을 계속 내게 된다. 하지만 모든 그룹이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 준 건 아니었는데, 데뷔한 지 1년 만에 해체한 에이스타일은 실패한 채로 넘어가게 되었다. 다만 보이그룹인 SS501은 당시 3대 팬덤이었던 에 들었을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되었다. 걸그룹 카라 역시 데뷔 당시에는 부진했으나 멤버들의 부던한 노력으로 엄청난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거기다 일본 진출해서도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둔 그룹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는데...

2010년대[편집 | 원본 편집]

2010년, 상기했듯 갑작스럽게 이호연 대표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회사 자체가 기울게 되었다. 결국 소속 아티스트들은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한 채로 데뷔하거나 활동을 하게 되었다. 멤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속사의 삽질이 가장 심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DSP미디어는 상당한 침체기를 겪는다.

우선 카라 이후로 또 데뷔시키려고 했던 걸그룹 레인보우는 멤버를 다 확정시킨 상태였다. 멤버 하나하나를 보면 충분히 뜰 수 있는, 매력 넘치는 멤버들이었는데, 소속사에서 확실히 밀어주지 않거나 이상한 결정을 자주 내리는 바람에[1] 2016년 11월, 결국 멤버들 모두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레인보우의 남동생 그룹이었던 에이젝스는 한국 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로 일본에 무작정 보내는 바람에 결국 결과적으로 망한 그룹이 되었다.

이후 카라 멤버 중 니콜이 탈퇴하고 강지영 역시 탈퇴했다.[2] 그러면서 2014년에 베이비카라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7명의 DSP 연습생이 참여하여 합격자는 카라의 새로운 멤버가 되거나 새로운 걸그룹의 멤버로 들어간다는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의 결과가 매우 참혹했는데, 우선 허영지카라의 멤버가 되었는데 팬들한테 "애초에 1명만 뽑는다는 얘긴 없었는데 왜 1명만 뽑았냐"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남은 6명 중 2명만 새로운 걸그룹인 에이프릴의 멤버가 되었고 나머지는 연습생이 되었다. 이 중 안소진이란 연습생이 일방적으로 DSP에서 퇴출을 당했고, 대전에 있는 자택으로 내려가서 생활을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이름처럼 4월에 데뷔하려고 했던 에이프릴의 데뷔는 미뤄졌다. 결국 남은 3명의 연습생 중 윤채경조시윤프로듀스 101에 출연한다. 나머지 한 명인 유지는 DSP에서 나가서 애플비라는 걸그룹으로 데뷔에 성공했다. 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윤채경과 조시윤은 결국 아이오아이로 데뷔하는데는 실패하지만, 이 중 순위가 높고 화제성이 좋았던 윤채경아이비아이라는 프로젝트 걸그룹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에는 혼성 그룹인 KARD를 데뷔시켰는데, 에이프릴로 데뷔했다가 탈퇴한 멤버인 전소민이 소속된 그룹이다. 처음 혼성 그룹이 데뷔한다고 했을 때는 사람들의 반응이 싸늘한 편이었다. 남녀 듀오가 아닌 혼성 그룹이 데뷔해서 실패한 케이스가 많았기 때문.[3] 그런데 처음으로 공개된 곡인 Oh NaNa가 상당히 잘 뽑힌 곡이었는데다, 해외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으면서 인지도를 올리게 된다! 결국 해외 TV에까지 출연하면서 점점 빛을 보기 시작했고, 이 시점에서 DSP가 정신을 차렸다는 반응이 많아졌다.

에이프릴 역시 사정이 매우 좋아졌는데, 애초에 데뷔할 때부터 괜찮은 곡 퀄리티와 컨셉으로 좋은 평을 들어왔었다. 하지만 소민현주가 탈퇴하면서 그룹 자체가 재정비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 소민이 탈퇴했을 때는 5인조로 지속적인 활동을 했는데, 현주가 탈퇴하면서 데뷔 때의 인원수인 6인조로 다시 되돌리기로 결정했는지 2명을 더 영입한다. 한 명은 프로듀스 101아이비아이로 인지도를 얻은 윤채경이었고,[4] 또 한 명은 비공개 연습생이었던 레이첼이었다.

컨셉에도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는 유아틱하고 어린 평균 나이대를 강조한 컨셉[5]에서 한 편의 동화를 연상시키는 몽환적이고 아련한 컨셉으로 바꾼 것이다. 6인조로 재정비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컴백한 곡인 "봄의 나라 이야기"(이하 봄나이)가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거기다 봄나이를 기점으로 팬덤 인원수가 본격적인 상승세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후 복고 컨셉이었던 "MAYDAY", 다시 아련한 컨셉이었던 "손을 잡아줘"로 호평을 이어가고 있으며, 2018년 3월에는 또 다시 성숙하고 아련한 컨셉인 "파랑새"로 컴백했다. 멤버 개개인의 인지도 역시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기에 에이프릴의 활동을 기대하는 사람들 역시 많아졌다.

다만...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시기라고 해서, DSP에서 아예 논란이나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KARD가 데뷔했을 때도 일부 안무로 인해 논란이 일기도 했으며, 배우로 전향한 이현주를 또 더 유닛에 내보낸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도 논란이 일기도 했다.[6] 거기다 아직 소속 보이그룹으로 있는 에이젝스더 유닛에 출연했다가 전부 탈락의 고배를 마셨는데다, 이후 활동에 대해서도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 사실상 소녀가장인 에이프릴의 활동에 대해서도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아쉬운 부분도 많기에 팬들은 DSP가 좀더 분발하길 원하고 있다.

2018년 2월 14일, 오랜 투병 끝에 이호연 대표가 별세하게 되었다. 향년 64세. 이젠 정말로 DSP에 남은 인원들의 힘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에이프릴3월 12일에 미니 5집 컴백에 4월 25일에 일본 데뷔를 했고, KARD7월 25일에 컴백 예정에 단독콘서트까지 진행할 예정. 2019년 3월 31일에는 오랫동안 활동이 없었던 보이그룹 에이젝스를 해체시켰다.

2020년대[편집 | 원본 편집]

2020년, 걸그룹 에이프릴의 노래 《라라리라라》가 어느 정도 히트를 치면서 상승세를 올리고 있었다. 웹드라마 《에이틴》,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등의 출연으로 멤버 이나은의 인지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던 것. 또한 2021년에는 X1 출신 멤버 손동표가 소속된 그룹 미래소년의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에이프릴의 전 멤버 이현주의 남동생으로 밝힌 사람이 이현주에이프릴 멤버였을 당시 멤버들로부터 괴롭힘과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애초에 탈퇴한 이유도 배우 활동 때문이 아니었으며, 당시 괴롭힘으로 인해 공황장애 및 호흡곤란을 겪고 자살 시도까지 했었다고 한다. 이에 소속사는 사실 확인 중이라는 입장을 취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에이프릴을 비롯해 전 멤버 전소민의 활동까지 비상이 걸렸다. 결국 논란 끝에 에이프릴2022년 1월 28일부로 해체했다.

그리고 2022년 1월 26일, RBW가 DSP미디어의 지분 39.13%를 사들여서 DSP는 RBW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그리고 RBW를 통해 DSP IP에 속해있는 가수들을 컴백시키기도 했는데, 그 예시가 바로 카라이다. 또한 DSP는 굿펠라스엔터테인먼트, 지킴엔터테인먼트 등을 흡수합병해 해당 인력들을 끌어모으면서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2023년DSP미디어 소속 걸그룹 YOUNG POSSE에이프릴 이후 8년만에 데뷔할 예정이다.

각주

  1. 레인보우의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었던 "A" 때는 방송국 검열 때문에 포인트 안무가 바뀌었다. 하지만 그 다음 곡인 "Mach" 역시 명곡이다는 평이 많았고 "A"처럼 뜰 수 있었으나, 뮤직비디오도 없고 활동도 3주만에 스톱하는 바람에 팬들의 원성을 들었다. 특히 2015년 컴백곡이었던 블랙 스완의 실패가 너무 컸다. 다음해 컴백곡인 "Whoo"로 만회하려고는 했지만, 결국 이 곡이 그들의 마지막 곡이 되었다.
  2. 이 과정에서 팬덤 자체가 와해될 수 있었던 사건이 하나 터졌었다.
  3. 2010년MBK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남녀공학이 거의 마지막이었고, 애초에 혼성 그룹 자체가 1990년대에 흥행한 아이돌 그룹 형태였다.
  4. 윤채경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자 DSP에서도 채경을 더 이용하기로 결정한 듯.
  5. 걸스카우트 컨셉이었던 "Muah!"나 말 그대로 요정 팅커벨 컨셉이었던 "팅커벨"을 예로 들 수 있다.
  6. 결국 이현주는 더 유닛 최종 데뷔조인 UNI.T에 들어가게 되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