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단란주점 살인 사건

울산 단란주점 살인 사건
둥지 단란주점 간판 모습.png
사건 현장이 된 울산 둥지 단란주점의 모습[1]
사건 정보
날짜 2001년 7월 4일
장소 울산광역시 중구 옥교동 '둥지 단란주점' (울산 중구 옥교동 160-7 지하)
인명피해 사망 2명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울산 단란주점 살인 사건2001년 7월 4일, 울산광역시 중구 옥교동의 '둥지 단란주점'에서 3인조로 추정되는 범인들이 단란주점 안에 있던 여주인 박 씨(41)와 여종업원 김 씨(41)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도주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의 수사가 계속 이어졌지만 증거가 너무 부족했고, 현재까지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사건 발생 장소[편집 | 원본 편집]

사건의 발생 장소가 되었던 '둥지 단란주점'은 울산광역시 중구 옥교동 160-7번지 건물의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해당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화장품점의 바로 옆 건물, 페인트가게가 입점해있는 건물이었으며, 건물의 앞에는 약간 좁은 도로가, 그리고 건물의 맞은편에는 주차장이 위치하고 있었다.

단란주점 내부를 설명하자면 지하계단을 내려와서 단란주점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는 커다란 무대가 하나 있었고, 무대의 옆에는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단란주점의 둘레에는 총 6개의 방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중앙에는 큰 홀이 있었는데, 홀에서 방들의 앞에는 작은 원형 테이블이 하나, 그리고 무대 앞에는 대형 직사각형 테이블이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주방은 1번 방 바로 옆에 큰 주방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고, 6번 방 옆에는 카운터가 있었으며, 카운터의 옆에는 작은 주방이 또 하나가 있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단란주점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은 곳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건 발생 직전까지도 손님이 많았던 것을 보아 장사도 상당히 잘 되던 단란주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해당 위치에 단란주점이 위치하고 있지 않으며, 건물이 재건축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로드뷰로 보면 지하로 통할 것으로 추정되는 문이 막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위 사진이 바로 둥지 단란주점의 실제 내부 구조의 모습이다. 사진을 보면 특정 위치에 빨간색으로 사람 표시가 되어있는데, 각각 여주인과 여종업원이 목격자에게 피를 흘리는 채 발견된 위치이다.

사건 과정[편집 | 원본 편집]

둥지 단란주점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 것은 7월 3일 오후 7시경, 여주인 박 씨가 안주거리를 챙겨서 자신의 단란주점으로 출근할 때부터였다. 그렇게 홀로 손님을 응대하던 중이었던 오후 9시 30분경, 여종업원 김 씨에게 손님 많으면 도우러 가도 되겠냐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비록 여주인과 여종업원 사이였지만 둘은 아주 친한 사이였고, 나이도 같았기에 마치 절친처럼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마침 손님이 점점 많아지면서 일손이 부족해지자, 박 씨는 김 씨에게 도움을 주러 와줄 것을 부탁했고, 이후 30분이 지난 오후 10시경, 여종업원 김 씨도 단란주점에 도착하여 일손을 돕게 된다.

김 씨가 도착한 이후에도 손님은 계속 늘어 두 사람은 좀처럼 여유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두 명이서 일을 해도 일손이 더 필요하다 싶을 정도였다. 손님이 조금 빠지고 두 사람에게 여유가 생긴 시각은 다음 날인 7월 4일 오전 2시경. 여주인 박 씨와 여종업원 김 씨는 서로의 여유를 즐기고 같이 맥주를 마시기도 하면서[2]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오전 2시 52분, 해당 건물의 2층에 위치한 중국집의 사장이 잠깐 바람도 쐴 겸 1층으로 내려온다. 그 때, 사장은 지하의 단란주점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중국집 사장은 단란주점이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단란주점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는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을 보고 경악을 하게 된다. 단란주점 내부의 바닥은 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처참한 현장에는 여주인 박 씨와 여종업원 김 씨가 다량의 피를 쏟아내며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피해자들의 상태를 설명하자면 박 씨는 머리와 등, 배 부분에 무려 5군데나 칼에 찔린 상태였고, 김 씨는 등과 배 부분에 4군데를 칼에 찔려있는 상태였다. 후술하겠지만, 박 씨의 경우에는 더욱더 끔찍했던 것이, 칼에 의한 상처가 심하여 내부 장기가 밖으로 쏟아진 상태였다. 여주인 박 씨는 상처가 너무 심하여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여종업원 김 씨는 다행히 의식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었으며, 중국집 사장에게 힘겹게 살려달라고 말하는 중이었다.

끔찍한 상황에 너무나도 놀란 중국집 사장은 곧바로 경찰구급차를 불렀고, 이후 도착한 구급대는 아직 숨이 붙어있던 김 씨를 황급히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결국 김 씨도 병원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사건 수사[편집 | 원본 편집]

경찰은 이 사건이 일어난 시각을 7월 4일 오전 2시 21분 ~ 2시 52분 사이로 놓고 수사를 시작했다. 왜 이렇게 시간이 나왔느냐면, 여종업원 김 씨가 오전 2시 17분부터 4분동안 지인과 통화를 한 것이 확인되었고, 그 때까지는 단란주점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중국집 사장이 해당 광경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 시각은 오전 2시 52분. 즉, 이 사건은 불과 약 31분 사이에 벌어진,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범행 동기부터가 상당한 미스테리였다. 현장에는 전혀 강도짓을 하려 했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카운터의 돈통 안에는 그들이 요며칠간 영업을 하면서 벌었던 현금들이 그대로 온전하게 남아있었다. 따라서 강도 살인일 확률은 별로 높지 않게 되었다. 단, 성폭행이 결합된 살인일 확률은 어느 정도 있었는데, 당시 발견된 여종업원은 허리띠가 풀려 바지가 벗겨질려 하고 있었고, 신발 한 쪽이 벗겨져 있었다. 여주인 박 씨에게서는 이러한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고 말이다. 이러한 점들을 모두 보아 범인들은 먼저 여종업원 김 씨에게 성폭행을 시도하였으나, 박 씨가 이를 말리려 들었고, 결국 그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게 되었으며, 홧김에 범인들이 이들을 모두 살해하고 도주한 것이라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가설이긴 했지만, 그저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반 범행일 수도 있다. 이 사건은 현재도 미제 사건인지라 아직도 이 사건에 대한 범행의 동기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그들은 범인들이 사용한 무기를 추측해보게 되는데, 우선 칼에 의한 자창이 여럿 발견되었으므로, 당연히 사용한 무기에는 칼이 들어간다. 또한 수사 중 경찰은 이들에 대한 부검을 실시하게 되는데, 피해자의 두개골에서는 둔기로 맞은 듯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게다가 피해자에게서 발견된 상처의 형태로 보아, 범인들이 피해자를 살해하는 데에 사용한 칼의 종류도 한 종류가 아니었다. 상처의 형태로 보아 외날칼과 예리한 양날칼이 사용되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으며, 또한 상술했다시피 피해자의 장기가 밖으로 나와있었다. 이 경우 장기를 밖으로 끄집어 낼수 있는, 톱니 칼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3] 이렇게까지 분석한 것만으로도, 범인들은 총 4개 이상의 살인 도구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여기서 범인은 혼자의 힘으로는 2명을 4개의 무기를 모두 골고루 사용해가면서 그렇게 잔혹하게 죽이기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므로 범인은 한 명이 아니라는 것도 추측해볼 수 있다.

경찰은 중국집 사장의 증언에서 또 하나의 힌트를 얻게 된다. 중국집 사장은 당시 건물에서 담배를 피우러 잠시 창문 쪽으로 나왔고, 이후 담배를 피우면서 단란주점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중국집 사장은 단란주점의 입구 앞에서 3명의 남자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한다. 시각은 4일 오전 2시 10분 ~ 2시 50분 사이. 중국집 사장의 기억에 의하면, 인상착의를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한 명은 머리가 길고, 또 다른 한 명은 스포츠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김 씨가 지인과 통화한 내용에 따르면 "손님 한 테이블을 빼면 박 씨와 나 이렇게 단둘밖에 없다."라고 통화를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시각이 오전 2시 17분 쯤이었고, 이 통화내역에서 단란주점에 그녀가 언급한 손님 한 테이블을 빼면 아무도 없다고 했었으므로, 결국 중국집 사장이 목격한 3명의 남성이 범인일 확률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 점에서, 경찰은 용의자들을 3명의 남성으로 보고, 목격자들을 찾았으며, 다행히도 중국집 사장 외에 총 2명의 목격자가 있었다. 첫 번째 목격자는 근처의 다른 단란주점에서 일하고 있던 종업원이었는데, 그녀는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하기 직전, 3명의 남자들이 10m 간격으로 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한 명은 20대 쯤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고 했는데, 곤색의 줄무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스포츠 머리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다른 목격자는 이들을 태운 택시기사였다. 그는 사건 현장 인근의 한 편의점 앞에서 3명의 남성을 태웠고, 이후 울산역 방향으로 출발했으나, 얼마 못 가서 그들이 속이 안 좋다며 중간에 내려버렸다고 한다. 택시기사는 이들을 그의 바로 뒷자리에 태운 사람이었기에, 인상착의에 대해 좀 더 잘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3명은 모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들이었고, 1명은 몸집이 큰 편, 2명은 호리호리한 편이었으며, 2명의 남성들은 스포츠형 머리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들의 옷 등은 유심히 보지 못했던 듯 하나 택시기사가 이들의 생김새 등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기에 수사의 디딤돌이 어느 정도 되어 줄 듯 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부족한 증거[편집 | 원본 편집]

이 사건은 증거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앞서 언급한 3명의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는 사건을 도저히 파헤쳐나갈 수가 없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고적 20대 후반의 남성 3명, 스포츠형 머리 2명 등으로는 당연히 범인의 꼬리를 잡을 수가 없었고, 더 많은 증거가 필요했다.

사건이 발생한 시간은 2001년. 아무리 2000년대에 진입하였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에도 CCTV는 제대로 보급되지 않고 있던 실정이었다. 이 곳 단란주점 근처에도 CCTV의 개수가 부족했다. 단란주점의 건물에는 CCTV가 아예 없었으며, 근처 상가에 있긴 했지만, 많은 CCTV가 단란주점 쪽으로 앵글이 잡혀있지가 않은 상태였다. 극소수의 CCTV가 단란주점 쪽으로 앵글이 잡혀있기는 했고, 범인들이 단란주점 입구에 서 있는 모습이 포착이 되기는 했지만, 화질이 너무나도 안 좋아서 범인들의 자세한 모습을 전혀 식별할 수가 없었다. 결국, CCTV는 사건의 수사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경찰이 수사에 큰 난항을 겪었던 이유는, CCTV가 아닌, 지문이었다. 보통 사건 현장을 수사하게 되면, 지문이 사건 해결에 큰 열쇠가 될 수도 있는데, 범인은 지문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물론 범인들이 흔적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닦았을 수도 있지만, 지문이 지워진 또 하나의 이유가 밝혀지는데, 이 단란주점은 잔과 맥주를 시원하게 하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그때그때 냉장고에서 꺼내주는, 그런 방법으로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원한 맥주를 잔에 따르게 되면, 일반적으로 잔의 표면에는 이슬이 맺히게 되고, 이 이슬이 자연스럽게 범인들의 지문을 지웠다는 것. 전자나 후자나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고, 증거는 너무나도 불충분했다. 결국 사건을 때려쳐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범인은 자신에 대한 증거를 남겼다. 수사 도중, 경찰은 단란주점에서 지상으로 연결되는 계단에서, 경찰은 약 10방울의 혈흔, 즉, 핏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이 피가 과연 누구의 것인가. 피해자들은 분명 단란주점 내부에서 살해당하였으므로 피해자들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자연스레 범인의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날 그 시각에는 주위에 그렇게 주목할 만한 소란도 없었고, 단란주점에서도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작은 해프닝도 하나 없었던지라, 범인의 피일 가능성은 더욱더 높아지게 되었다. 물론, 그들이 죽인 피해자의 피가 묻어서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감식 결과 해당 피는 AB형의 피로 밝혀졌으나, 이는 여주인과 여종업원의 혈액형과는 일치하지 않았다.[4] 따라서 그 날 그 시각에 근처 또는 단란주점에 이 사건을 제외하고는 큰 소란도 없었고, 피해자들의 피도 아닌 것으로 밝혀지게 되면서 결국 이 AB형의 피를 가진 주인공이 이 사건의 범인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시 되었다. 범인은 범행 도중 피해자들의 저항에 손가락을 다치게 되었고, 이후 현장을 나오면서 그 혈흔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 혈흔은 현재까지도 이 사건에 관련된 거의 유일한 증거물로 남아있다.

한 가지 더 여담으로 얘기하자면, 혈흔이 남겨진 패턴으로 보아, 범인은 사건을 저지르고도 서두르거나 황급히 도주하지 않고, 태연하게 걸어서 현장을 빠져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범인은 박 씨의 동거남?[편집 | 원본 편집]

일각에서는 여주인 박 씨의 동거남이 범인이 아니냐는 설이 제기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박 씨에게 평소에도 돈을 요구하며 심한 폭행 및 폭력을 일삼았던데다가, 하루도 빠짐 없이 박 씨를 들들 볶았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면서 유족들은 자연스럽게 박 씨의 동거남을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박 씨의 동거남은 알리바이가 입증되어 용의선상에서 제외되는데, 박 씨와 동거남의 집에서 단란주점까지의 거리는 1.9km. 도보로 약 15분 ~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데 당시 동거남은 중국집 사장이 경찰에 신고한 바로 직후인 오전 2시 54분, 단란주점으로 전화를 걸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동거남은 중국집 사장과 통화 후 바로 둥지 단란주점으로 찾아왔다. 동거남이 범행을 저지르고 집까지 가서 흔적을 숨긴 뒤 다시 이 곳으로 오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결국 알리바이가 성립이 되면서 동거남은 범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게 되어 잠시 일었던 논란이 종결되었다.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 사건[편집 | 원본 편집]

결국 증거가 너무나도 불충분했고, 범인에 대해 딱히 알려진 것도 목격자들의 증언을 제외하면 전혀 없었다. 경찰관은 혈흔이라도 유력한 증거로 삼아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해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결국 이 사건에 대한 열쇠는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울산 단란주점 살인 사건은 끝내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으며, 1차 수사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종결되고 말았다.

그런데 저번 태완이법으로 인해 2000년 8월 1일 이후 발생한 모든 살인 사건들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2016년 공소시효 만료 예정이었던 이 사건도 공소시효가 폐지되었고, 이제 범인이 잡힌다고 해도 처벌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경찰은 현재 이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재수사를 고려해보고 있으며, 22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에 대해 열심히 들여다보며, 행여나 무언가 열쇠가 될 만한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제보도 적극 환영이라고 밝혔으니, 혹시라도 이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관할 경찰에 제보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같이보기[편집 | 원본 편집]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사건 발생 3년 전에도 이 사건과 매우 유사한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이 3인조로 보이는 것과 범행 흉기, 범행 장소 등 두 사건은 비슷한 점이 아주 많으며, 일부는 똑같은 범인들의 소행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 2001년의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었기에 단란주점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는 없지만, 상술했듯이 현재는 그 건물의 단란주점 입구로 추정되는 문이 막혀있다. 물론 재건축된 건물일수도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로드뷰로도 볼 수 있으며, 맞은편에는 위에서 언급한 주차장이 보인다.

각주

  1. 둥지 단란주점 간판이 있는 곳이 주점의 입구이다.
  2. 당시 사건 현장에는 김 씨와 박 씨가 마신 걸로 보이는 맥주잔이 몇 개 있었다.
  3. 일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칼로는 장기가 튀어나올 만큼 큰 상처를 내기가 힘들다.
  4. 여주인 박 씨는 B형, 여종업원 김 씨는 A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