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대장군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은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촉한의 장수들 중에서 군공이 뛰어난 다섯 명의 상장(上將)에게 내려진 특별한 칭호이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오호대장군이라는 명칭이 등장하지 않으므로 《삼국지연의》의 창작이다. 중국에서는 간략하게 오호장 또는 오호상장으로 부른다.

또한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이 관여했다는 고전소설인《수호전》에도 '마군오호장'라는 오호대장군이 나왔지만 조명을 받는 쪽은 삼국지연의의 오호대장군 쪽으로 묻히는 편이다. 애초에 수호지 인물들 중 삼국지연의에서 모티브로 따온 애들이 있고, 삼국지쪽 오호대장군들은 실존인물이고 수호지쪽 오호대장군들은 가상인물이니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배경[편집 | 원본 편집]

관우, 장비는 모두 만인지적(萬人之敵)이라 칭해진 당세의 호신(虎臣, 범 같은 신하)이었다. 관우는 조공(曹公)에게 힘써 보답하고 장비는 의(義)로써 엄안(嚴顔)을 놓아주었으니 아울러 국사(國士)의 풍모가 있었다. 그러나 관우는 자부심이 강하고 장비는 난폭하고 은혜롭지 못하여 자신의 단점으로써 패망하게 되었으니 이치의 상례로다. 마초는 융족과 용력에 의지해 자신의 일족을 망쳤으니 애석하구나! 곤궁함에 처하여 이로 인해 태평함으로 나아갔다면 더 낫지 않았겠는가! 황충, 조운은 굳세고 사납고 씩씩하고 용맹하여 아울러 조아(爪牙, 발톱과 어금니. 용맹한 무장을 비유)가 되었으니 관(灌, 관영灌嬰), 등(滕, 등공 하후영夏侯嬰)의 무리로다.[1]
— 촉서 6권 관장마황조전에 기입된 진수의 평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가 한중을 평정한 후, 주변의 권유에 따라 한중왕에 오르면서 비로소 익주를 온전히 평정하게 되었고, 이후 논공행상을 통해 특별하게 공로가 높은 다섯 명의 장수들을 묶어서 오호대장군에 임명하였다. 정사 삼국지에는 이런 오호대장군과 관련된 서술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삼국지연의의 창작으로 볼 수 있고, 삼국지연의가 집필된 시기를 고려하면 정사 삼국지 촉서에 수록된 『관장마황조전』(關張馬黃趙傳)이라는 열전의 주인공들을 토대로 오호대장군이라는 명칭으로 각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성원[편집 | 원본 편집]

아래 직위는 오호대장군 임명 시점(유비가 한중왕에 등극하던 시기)의 직위이다.

  • 전장군 관우
    도원결의를 통해 유비와 형제의 의를 맺은 개국공신.
  • 우장군[2] 장비
    관우와 함께 도원결의를 통해 유비와 형제의 의를 맺은 개국공신.
  • 좌장군[3] 마초
    익주 평정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유장의 항복을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 후장군 황충
    한중을 놓고 조조와 맞붙었을때 적군의 상장인 하후연을 무찔러 한중을 얻는데 큰 공로를 세운 점을 인정받았다.
  • 익군장군 조운
    비록 사방장군의 관직에는 들지 못하였으나 오랜 시간 유비를 곁에서 보필하면서 크고 작은 공을 세운 점을 인정받았다.

관우, 장비, 마초, 황충은 각각 중책으로 여겨지는 사방장군을 차지했지만, 조운은 그보다는 위상이 낮은 직위를 받았음에도 연의에서 줄곧 유비의 호위무사, 돌격대장, 특히 촉한의 후주로 등극하는 유비의 아들인 유선을 장판파에서 구출해낸 전적 등을 고려하여 위상을 높여 오호대장군의 일원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물론 정사 삼국지에서도 관장마황조에 포함된 인물이니만큼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조운이 오호대장군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화[편집 | 원본 편집]

정사와 연의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대목은 한중왕에 오른 유비가 논공행상을 통해 직위를 부여할 때 관우가 황충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정사에서 관우는 전장군의 작위를 하사받던 자리에서 황충이 후장군의 작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접하고선 유비의 사자로 온 비시의 면전에서 "대장부가 어찌 그런 늙은이와 나란히 설 수 있겠느냐"면서 불만을 표출하였다는 일화가 촉서 비시전에 기록되어있다. 연의에서도 정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황충을 폄하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비시가 이치를 들어 관우를 설득하였고 관우가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면서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정사를 기준으로 관우 입장에서 오랜 시간 유비와 함께 동고동락을 해왔던 장비와 조운은 당연히 상을 받는게 마땅하다 생각했고, 마초는 비록 몰락하긴 했지만 한때는 서량의 군벌들을 이끌던 군웅이었고 조조와 크게 싸워 관중을 위협하는 등 인상적인 장면도 있었기에 수긍하였으나, 유비 세력에 들어온 경력이 짧은 황충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차에 자신과 엇비슷한 위치의 작위를 받았다는 점에 불만을 표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의에서는 오호대장군의 일원이 되는 마초가 유비에게 귀순했다는 소식을 들은 관우가 마초의 명성에 자극받아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를 겨뤄보고자 직접 익주로 들어가겠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갈량이 "마초의 용맹은 동생인 장비와 우열을 다툴 정도는 되지만, 미염공(관우)의 절륜함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 무마시키는 장면도 등장한다.

의미[편집 | 원본 편집]

삼국지연의》에서 오호대장군이라는 특별 칭호를 부여한 것은 유비가 오랜 시간 방랑을 끝마치고 비로소 온전하게 한중과 익주를 평정하여 촉한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연의 자체가 촉한을 주인공으로 보는 이른바 촉한정통론 시각에서 쓰여진 소설이니만큼, 주인공인 유비가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한 것을 강조하기 위한 극적 장치로 볼 수 있고, 여기에 오호대장군에 포함된 인물들도 자연스럽게 그 위상이 높아지는 효과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면서 위촉오 삼국이 정립되어 본격적인 대결 구도를 형성한 것은 사실이며, 아직 관우가 형주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던 시기였으므로 유비의 최전성기를 부각하는 훌륭한 장치로서 기획된 요소라 할 수 있다.

오호대장군에 빗대여 위나라 팬덤오자양장이라는 칭호를 붙인 다섯 명의 상장을 부각시키게 되었고, 오나라 팬덤은 강동십이호신이라는 칭호를 붙인 장수들의 그룹을 형성시키게 되었다. 물론 오자양장, 강동십이호신은 《삼국지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 후대의 2차 창작으로 볼 수 있다.

부작용[편집 | 원본 편집]

연의등 각종 창작물에서 푸시를 받아 수백년간 삼국지 컨텐츠의 인기몰이에 주도하였지만, 그 인기가 많은 만큼 부작용 또한 컸다.

어떤 문제냐면 각종 창작물에서 이들과 몇몇 인물들에 대한 비중이 너무 크게 나와 후한 말~서진까지 활약한 다른 사람들의 비중까지 묻혀버리는 것이 큰 문제이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관우와 황충은 오호대장군을 통해 하사받은 작위가 최종 작위가 되었다. 관우는 이후 형주공방전에 패하면서 촉으로 퇴각하던 도중 손권에게 사로잡혀 처형당했고, 황충은 작위를 하사받은 이듬해 자연사[4]했다. 장비와 마초, 조운은 유비가 촉한의 황제에 등극한 이후까지 생존하여 더 높은 작위를 받았다. 그러나 장비와 마초는 유비가 죽기전에 각각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병사하여 조운 혼자 유비 사후 살아남게 되었다.

각주

  1. 출처
  2. 유비가 촉한의 황제에 오른 이후 거기장군까지 승진함
  3. 유비가 촉한의 황제에 오른 이후 표기장군까지 승진함
  4. 연의에서는 수명이 연장되어 이릉대전 전투 중 오나라 장수 마충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