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조

徐光朝. 대한민국독립운동가.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7년 2월 29일 전라남도 목포부 죽동에서 출생했다. 1917년 3월 23일 평양에서 장일환(張日煥), 강석봉(姜錫奉)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선국민회를 조직하고 전라도 지역 책임자로 선임되어 일제에 대항할 준비를 갖추다가 불행히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1918년 3월 16일 평양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1] 그후 1919년 제주도에서 청년들을 모아 금주회(禁酒會)를 조직하고 돈을 모아 여자 야학을 신설하여 교육하였다. 1920년 9월 목포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이란 주제로 강연하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1922년부터 전라남도 지방을 중심으로 '반도 고학생 친목회' 순회 강연을 개최했다.

8.15 광복 후 1950년 전란보도협회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1963년 전라도 광주에서 군정 연장 반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이후 민정당 전라남도 도당 준비위원과 중앙 위원 등을 지냈고, 1972년 7월 10일에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서동일, 오재영, 한용운, 오세창, 문일평, 방정환, 오기만, 유상규 등과 함께 망우역사문화공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매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서광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디지털구리문화대전[1]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