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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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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의 도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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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일본어는 음성언어로만 존재하고, 문자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한자가 도입된 것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사기]]」에서 오우신 [[천황]](応神天皇) 때에 [[백제]]가 [[논어]]와 [[천자문]]을 바쳤다고 하며 이를 한자 전래의 시초로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이미 중국에서 문자가 전래됐다고 여러 유물에서 나타나는 흔적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본래 일본어는 음성언어로만 존재하고, 문자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한자가 도입된 것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사기]]」에서 오우신 [[천황]](応神天皇) 때에 [[백제]]가 [[논어]]와 [[천자문]]을 바쳤다고 하며 이를 한자 전래의 시초로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이미 중국에서 문자가 전래됐다고 여러 유물에서 나타나는 흔적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2015년 7월 15일 (수) 14:20 판

일본의 문자

일본에서 사용되는 문자에는 신대문자 말고[1] 한자, 가나가 있다.

구성

오늘날 일본어에 사용되는 글자는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일본어는 이에 따라 표기 방법으로 표의문자표음문자 모두를 사용하는 언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전개

한자의 도입

본래 일본어는 음성언어로만 존재하고, 문자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한자가 도입된 것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사기」에서 오우신 천황(応神天皇) 때에 백제논어천자문을 바쳤다고 하며 이를 한자 전래의 시초로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이미 중국에서 문자가 전래됐다고 여러 유물에서 나타나는 흔적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편, 한자중국에서 만들어진 이래, 형(形)/음(音)/의(義)로 분류되는 한자의 3요소가 주요 특징으로 자리잡아왔는데, 이는 일본에 전해질 때도 그대로 일본에 맞게 변화되어 적용되었다. 형태로 예체, 음으로 자음(한자 소리), 의로 훈(訓)을 도입하여 한자에 음훈(音訓) 두 종류로 체계화된 이해 구조를 만들어서 학습되었다.

음훈의 은 한자의 중국 발음을 기초로 한 읽기 방법이고, 은 한자 뜻에 맞게 일본말을 맞춘 읽기 방법이다. 이 두 가지로 읽기 방법을 나누면서 일본말을 한자로 표기할 수 있게 되었고, 나라시대까지는 유일한 문자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

만요가나

한자를 본래의 의미와 무관하게 일본어의 음절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하는 문자다. 한자의 소리만을 빌려서 일본어를 나타내는 가나 문자의 초기 형태를 만들게 되었다. 만요가나가 초서체와 일부 획 생략과 같은 간략화를 거쳐서 지금의 히라가나가타카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원문) 都流藝多知 伊与餘刀具倍之 伊尓之敝由 佐夜氣久於比弖 伎尓之曾乃名曾
(가나표기) 剣大刀(つるぎたち) いよよ()ぐべし (いにしへ)ゆ (さや)けく()ひて ()にしその()

(읽기) 츠루기타치 이요요토구베시 이니시에유 사야케쿠오히떼 키니시소노나조
— 오오토모 고지히노(大伴家持), 만엽집(만요슈, 万葉集) 제 20권 4467수

이와 같은 사례를 보면 한자의 읽기 음대로 읽으면 시를 그대로 읊을 수 있다. 물론 만엽집에 이런 표기 방법이 널리 쓰이긴 했지만, 한자 뜻으로만 지어진 노래도 있어서 만엽집의 표기 방법이 곧 만요가나와 동일하다고 보긴 어렵다. 만요가나는 5세기 철검에서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7세기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오사카 시 주오 구 나니와궁 터에서 발굴된 목간에도 이와 같은 표기가 쓰여서 이 표기가 당시 체계를 갖추고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자를 한자의 음만 빌려서 나타냈다는 점에서 가나(仮名), 즉 빌려온(가짜) 이름이라는 뜻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이에 상대되는 의미로 한자를 마나(真名)라고 불렀다.

우리 나라의 고려 속요를 나타낸 향찰 표기와 유사한 점이 있다.

한자가나 혼용문

일본어는 중국어와 달리 교착어[3]이므로, 조사조동사 또는 활용 어미를 한자의 표의성에 더해야만 한다. 가나가 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한자는 획수가 많아서 표기하기에 불편했고, 뜻에 맞춰 글자가 많았기 때문에 문자 학습에 어려움이 많았고, 읽는 방법도 다양해서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 生을 적더라도 통용 한자표에 せい・しょう・いかす・いきる・いける・うまれる・うむ・おう・はえる・はやす・き・なま 이와 같이 12개의 음과 훈이 있으므로 아무 단서 없이 문맥 속의 정확한 읽기 방법을 찾긴 어렵다.[4]

후에 등장하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처럼 생김새가 명확하게 다른 표음문자로 구분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만요가나만으로는 해석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히라가나의 성립

만요가나의 글자체를 문서화하면서 한자의 글자체에 너무 많은 획수는 빠르게 적는데 불편했다. 종이에 빠르게 쓰기 위해서 특유의 문체를 갖게 되었고, 획수도 줄여서 일부 획을 생략하게 되었다.

글자체의 부드러움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9세기 경부터 히라가나는 자립된 문자로서 사용되기 시작되었다.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와 같은 곳에서 이것이 표기 방법으로 쓰이게 되었다. 글자체의 인상에서 여성적인 느낌을 주며, 여성에게 해방된 문자라는 인식이 있다.

をんなもしてみむとてするなり
(여자도 해보겠다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다)
(=남자도 쓴다고 하는 일기라는 것을 여자인 나도 써보려 한다)


지은이가 남자인데 여자인척 한 건 함정 넷카마

실제로 도사닛키(土佐日記) 서두에 적힌 기노 쓰라유키의 위와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의 문자라는 인식이 있었고, 헤이안시대를 거치면서 여류 문학으로 다양한 수필과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히라가나가 자리잡기 전에 소우가나(草仮名)가 중간 과정이었다고도 여겨진다.

가타카나의 성립

글자 기원의 자획을 생략하는 것을 통해 만들어진 글자로, 헤이안시대 초기 한문 훈독의 장에서 한문의 텍스트와 좁은 글자 사이 또는 행간에 읽기 위한 메모로서 쓰이면서 한자를 일부 생략하면서 만들어졌다. 마가나(真仮名)라는 만요가나의 다른 이름과 대칭되는 이름으로 가타(かた)는 불완전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때까지는 한자의 보조문자격으로, 훈점[5] 자료로 붙었고 자립한 문자 체계가 아니었다.

한자와 가타카나의 수적 비율 관계가 역전되면서, 헤이안시대 후기에는 가타카나를 주로 하는 문장이 점차 쓰여지게 되었다.

12세기 무렵 현재의 가타카나와 흡사한 모양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자

16세기 크리스챤 자료에서 선교사들이 일본어를 학습하기 위해 일본어 음성언어를 포르투갈식 로마자로 쓴 것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문명개화 때 일본인의 피아 인식의 관점에서 문화적 격차를 줄이기위해 기존의 표기를 버리고 로마자를 쓰자는 로마자론자(ローマ字論者)가 출현하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 일본어를 소리나는대로 표기하는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며, 지금도 Nihon 같이 표기하는 것은 로마자 표기에 의한 명백한 일본어 표기에 속한다.

현대 일본어

어간은 한자로, 오쿠리가나를 뒤에 붙여서 쓰는 것이 일반적인 표기가 되었다. 21세기 현대에도 일본어에서 한자가나 문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만 한자가 어렵다보니 당용한자가 정해져서 무조건 범위 내의 한자를 쓰도록 제한한 적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상용한자가 도입되어 생활에 필요한 한자의 범위와 읽는 법을 지정하되 제한하지는 않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상용한자로 인해 우리 나라와 같은 단어임에도 한자 표기가 단순화된 경우를 볼 수 있다. 양서류(兩棲類)를 일본어 음이 똑같은 両生類(りょうせいるい)로 바꿔버린 경우가 그 사례다.

히라가나가 주요 표기 문자로 떠올랐다. 여성적인 표기라는 점에서 20세기 초반까지만해도 공식 문서에서 널리 가타카나가 사용되었던 것이, 1945년 전후로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지위가 반전되었다고 한다. 현재 가타카나는 외래어 표기와 고유 명사, 학명 등 학술적인 분야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6] 물론 가타카나가 다른 발음을 갖고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므로 문자에 근본적인 기능적인 차이가 있다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마음가짐의 차이랄까

각주

  1. 신대문자는 신이 내려준 문자(?)란 의미로 한자 이전부터 써오던 표음 문자 여럿(다양한 종류)을 합쳐서 부르는 명칭이다. 항목을 참고하면 알 수 있지만, 에도 시대에 주로 행해진 역사 왜곡의 결과물과 같다. 일본 위키백과에선 중립적인 척 신빙성 있다는 주장을 늘어놓고 있지만 양심있는 전문가들이 날조 인정을 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일본판 환빠가 틀림없다!
  2. 国語学概論 (白藤禮幸, 杉浦克己 저) 출처
  3.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 또는 어간문법적인 기능을 가진 요소가 차례로 결합함으로써 문장 속에서의 문법적인 역할이나 관계의 차이를 나타내는 언어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한국어, 터키어, 일본어, 핀란드어 등이 예시다.
  4. 다만, 이후부터 현대까지 한자에는 뒤에 받치는 오쿠리가나(送り仮名)가 붙어서 정확한 읽기 방법을 제시해준다. 生きる로 적으면, いきる라는 읽기 방법 하나로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5. 훈점(訓点)은 한문을 훈독하기 위하여 찍은 부호를 가리킨다. 오쿠리점(한자의 전후좌우 모서리 등 점을 찍는 위치에 따라 읽는 법을 표시하는 방법), 오쿠리가나와 후리가나, 오코토점(ヲコト点)(한자의 전후좌우 모서리 등 점을 찍는 위치에 따라 읽는 법(후속 어미)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같은 것을 포함한다. 주로 불경에 쓰여서 가타카나를 아예 승려의 문자라고도 불렀다.
  6. 승려의 문자였다는 과거 역사를 비춰봐도 학술적이고 진지먹는 문자라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