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내각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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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국민들의 총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고 의회에서의 과반수 이상의 의원들이 모여 하나의 [[내각]]을 구성한다. 의회의 기능은 [[대통령제]]와 거의 동일하나 내각을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내각은 대통령제에서의 행정부에 해당한다. 의원내각제의 특징은 의회는 내각에 대해 내각 불신임을 수 있고, 내각은 의회를 해산시킬 수 있다. 이 권한을 각각 [[내각 불신임권]][[의회 해산권]]이라고 한다.
1714년 영국의 [[앤 여왕]]의 사후 독일에 살던 [[조지 1세]]에게 왕위가 넘어간다. 하지만, [[조지 1세]]는 영어를 줄 몰랐고,<s>Po게르만wer</s> 영국 통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의회]]가 실권을 가지고 [[행정]]을 운용하는 [[체제]]가 만들어졌다.


==개념==
== 역사 ==
국민들의 총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고 의회에서의 과반수 이상의 의원들이 모여 하나의 [[내각]]을 구성한다. 의회의 기능은 [[대통령제]]와 거의 동일하나 내각을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내각은 대통령제에서의 행정부에 해당한다. 의원내각제의 특징은 의회는 내각에 대해 내각 불신임을 할 수 있고, 내각은 의회를 해산시킬 수 있다. 이 권한을 각각 [[내각 불신임권]][[의회 해산권]]이라고 한다.
[[1714년]] 영국의 [[앤 여왕]]의 사후 독일에 살던 [[조지 1세]]에게 왕위가 넘어간다. 하지만, [[조지 1세]]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ref> 그렇다고 매우 말이 안 통하지는 않았다. 링구아 프랑카, 프랑스어는 통했다. 다만 조지 1세는 하노버 통치에 더 신경썼다. 영국 통치는 그냥 의회가 중심으로 주도하는 상황을 내버려두었다. 대신에 의회에 출석하는 대리인을 보냈는데, 이게 나중에 영국 수상이라는 자리의 기원이 되었다.</ref>,<s>Po게르만wer</s> 영국 통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의회]]가 실권을 가지고 [[행정]]을 운용하는 [[체제]]가 만들어졌다.


==세부 형태==
==세부 형태==
*[[입헌군주제]]
*[[입헌군주제]]
:[[영국]], [[일본]], [[캐나다]], [[스페인]], [[오스트레일리아]], [[스웨덴]], [[그린란드]]가 대표적이며, [[군주]]가 [[헌법]]에 입각하여 통치를 하나, 왕은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 의회와 내각에 의한 정치가 이루어진다.
*:[[영국]], [[일본]], [[캐나다]], [[스페인]], [[오스트레일리아]], [[스웨덴]], [[그린란드]]가 대표적이며, [[군주]]가 [[헌법]]에 입각하여 통치를 하나, 왕은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 의회와 내각에 의한 정치가 이루어진다.
*[[의원내각제]]
*좁은 의미의 [[의원내각제]]
:[[독일]], [[인도]], [[이탈리아]], [[그리스]], [[이라크]], [[헝가리]], [[싱가포르]]거 대표적이며 전형적인 의원내각제 형태이다.
*:[[독일]], [[인도]], [[이탈리아]], [[그리스]], [[이라크]], [[헝가리]],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다.
 
[[분류:정치 체제]]

2022년 6월 7일 (화) 22:43 기준 최신판

국민들의 총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고 의회에서의 과반수 이상의 의원들이 모여 하나의 내각을 구성한다. 의회의 기능은 대통령제와 거의 동일하나 내각을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내각은 대통령제에서의 행정부에 해당한다. 의원내각제의 특징은 의회는 내각에 대해 내각 불신임을 할 수 있고, 내각은 의회를 해산시킬 수 있다. 이 권한을 각각 내각 불신임권의회 해산권이라고 한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1714년 영국의 앤 여왕의 사후 독일에 살던 조지 1세에게 왕위가 넘어간다. 하지만, 조지 1세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1],Po게르만wer 영국 통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의회가 실권을 가지고 행정을 운용하는 체제가 만들어졌다.

세부 형태[편집 | 원본 편집]

  1. 그렇다고 매우 말이 안 통하지는 않았다. 링구아 프랑카, 프랑스어는 통했다. 다만 조지 1세는 하노버 통치에 더 신경썼다. 영국 통치는 그냥 의회가 중심으로 주도하는 상황을 내버려두었다. 대신에 의회에 출석하는 대리인을 보냈는데, 이게 나중에 영국 수상이라는 자리의 기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