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틀란트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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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비티 예하의 전방 정찰대 지휘관으로부터 '''"남동방 적 전함 발견"'''이라는 긴급보고가 들어온다. 독일의 주력 함정 세력이 나타난 것이었다. 비티는 남쪽 수평선에서 마스트와 연돌의 긴 대열이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을 발견하다자 바로 반대방향으로 침로를 변경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 와중에 또 다시 뒤쪽에 자리하던 이반 토마스의 전함 4척은 신호를 늦게 발견하고 비티 전대가 다 변침한 뒤에야 변침하였기 때문에 또 다시 뒤쳐져서 진행을 하게 되었다.
잠시 후 비티 예하의 전방 정찰대 지휘관으로부터 '''"남동방 적 전함 발견"'''이라는 긴급보고가 들어온다. 독일의 주력 함정 세력이 나타난 것이었다. 비티는 남쪽 수평선에서 마스트와 연돌의 긴 대열이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을 발견하다자 바로 반대방향으로 침로를 변경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 와중에 또 다시 뒤쪽에 자리하던 이반 토마스의 전함 4척은 신호를 늦게 발견하고 비티 전대가 다 변침한 뒤에야 변침하였기 때문에 또 다시 뒤쳐져서 진행을 하게 되었다.
===북쪽으로의 도주===
===북쪽으로의 도주===
*16:48~18:00
직전의 상황이 히페르가 영국 함대를 유인하고 비티의 함대 세력이 뒤쫓는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비티가 독일 대양함대 세력 전체를 젤리코가 이끄는 주력 함대의 사정거리로 유인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되었다. 히페르의 전대는 쉐르 전대의 앞쪽에서 다시 변침하여 영국의 함정을 따라가는 침로를 취하게 되었고, 쉐르 전대는 이반 토마스의 전함을 포격하기 위하여 접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뒤쳐져 있던 이반 토마스의 전함 4척은 거의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히페르의 전투순양함과 쉐르의 전함 양측으로부터 동시에 포격을 받게 되었다. 통신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보고받은 젤리코의 주력 함선들은 비티 전대와 상봉하기 위하여 항진을 계속하였다. 17:42 젤리코의 전투순양함이 정면에서 영국의 전투순양함을 발견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쫓기던 비티 전대는 주력인 젤리코 전대와 상봉하자마자 접근하는 젤리코 전함들의 침로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독일군의 동편으로 가기 위하여 다시 히페르의 전대와 격렬한 교전을 전개하였다. 한편 18:00무렵 젤리코 제독은 자신의 기함인 아이언 듀크(Iron Duke)에서 안개 사이로 비티의 함정을 볼 수 있었으나 독일군의 함정은 볼 수 없었다.
===주력함대의 교전===
===주력함대의 교전===
===야간전===
===야간전===

2016년 2월 28일 (일) 13:4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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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틀란트 해전.jpeg
군사 충돌 정보
날짜 틀:날짜/출력
결과 승패를 가리지 못함
교전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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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본문 참조
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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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유틀란트 해전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대함대(Grand Fleet)와 독일의 대양함대(High Seas Fleet)가 총력을 투입하여 맞대결한 당시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전투였다. 이 격전은 1916년 5월 31일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에 끝이 난 전투로, 해전이 벌어진 해역이 덴마크의 유틀란트 반도 서쪽 해상이었기 때문에 유틀란트 해전이라고 부른다.

배경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 해군의 전략은 독일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영국의 대함대에 부여된 임무는 독일의 대양함대의 공격으로 부터 영국해안을 방어하고, 해상교통로를 보호하며, 지속적인 봉쇄로 압력을 가하여 독일의 항복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임무를 부여받은 영국의 대함대 사령관 젤리코 제독은 독일함대를 격파하여야 하는 임무와 함대의 보존이라는 임무를 추구해야 하는 두 가지 상반된 임무를 추구해야했다. 이 때문에 젤리코 제독은 넬슨주의로 통용돼ㅣ어 온 전통적인 함대결전보다는 위험을 피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었다.

한편 영국의 대함대에 비해 8:5정도의 전력비로 열세에 처해있던 독일의 대양함대는 이러한 세력으로 현존함대전략을 취하여 발틱해북해에서 제해권을 유지하면서 잠수함을 통한 통상파괴작전을 수행하면서 지상전의 승리에 기대를 걸고 함대를 보존하여 강화협상을 유리하게 하고자 하였다.

양측의 작전계획 및 참가세력

1916년 1월 건강이 악화되어 퇴임한 폴 제독의 후임으로 라인하트 쉐르 중장이 독일의 대양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쉐르 제독은 영국의 대함대 세력을 자신의 대양함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감소시키기 위해 기습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는 영국 해군기지 부근과 도버 해협 입구의 영국 해군의 초계 항로 인근에 유보트기뢰를 부설하였으며, 영국의 수상함 세력을 유인하여 분리시킨 뒤 차단하여 각개격파를 하려고 하였었다. 그의 대담성과 영국 해군의 실수는 독일 함대의 북해 해역의 제해권 장악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반면 영국의 젤리코 제독은 독일과는 달리 분리된 함정 세력간의 교전보다는 함대끼리 한판 붙는 함대결전을 추구하였으며, 이에 따라 그는 북해 지역에 주기적인 정찰을 실시하였다. 젤리코 제독은 함정의 수적 우세로 주간 함포 교전시 적을 격멸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자신이 선택한 상황에서 교전을 할 것으로 마음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1936년 5월 31일 새벽, 독일의 대양함대가 노르웨이 기습전을 위하여 쥬다 만을 출항하였다. 항만을 빠져나온 선두에는 히페르 제독이 지휘하는 전투순양함 5척이 단종진을 형성하고 구축함들이 경계진을 형성하여 호위하였으며, 경순양함들과 구축함들이 전방에 호를 만들어 정찰을 하고 있었다.

히페르 제독이 외해로 나와 북쪽 방향으로 침로를 유지하였을 때 쉐르 제독이 직접 지휘하는 대양함대의 주력전대가 뒤를 따라 나오기 시작하였다. 주력전대는 16척의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6척의 전노급 전함이 단종진을 형성하고 경순양함과 구축함들이 경계진과 정찰진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날 영국의 대함대는 전날 저녁에 기지를 출항하여 외해에 나와있었다. 이미 영국 해군은 무선정보와 암호 해독을 통하여 독일의 함대가 출항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31일 오후 젤리코 제독이 직접 지휘한 영국의 주력전대는 노르웨이 해안 외해 90마일 지점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이 영국의 주력전대에는 드레드노트급 전함 24척이 6개의 횡열진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구축함들이 경계진을 형성하고 경순양함과 구축함들이 전방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외에 주력전대로부터 독일 함대가 접근중인 방향인 남동쪽 17마일 해상에는 비티 제독이 지휘중인 정찰전대의 전투순양함 세력이 순양함과 구축함을 데리고 전진중이었다. 이 전대에는 4척의 고속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배속되어 있었다. 즉 이날 한꺼번에 150척의 영국 함정과 99척의 독일 함정이 각각 2개의 전대로 편성되어 북해상에서 맞딱뜨리게 된 것이다.

구분 영국 독일
드레드노트전함 28 16
전노급 전함 0 6
전투순양함 9 5
장갑순양함 8 0
경순양함 26 11
구축함 79 61
총계 150 99

양측의 참가 전력은 위의 표와 같다. 양측의 전력을 간단히 비교해 보면 주력이라 할 수 있는 드레드노트급과 전투순양함에서는 37:21로 영국이 우세를 보였으며, 함포의 숫자 면에서도 12~15인치 주포 344문을 장비한 영국 함대가 독일 함대의 구경 11~12인치 주포 244문에 비하여 월등히 강력한 상황이었다.

해전의 경과

전투순양함간 교전

전투순양함간 교전

  • 15:48~16:48

영국의 대함대와 독일의 대양함대는 서로 상대방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 장님모드로 서로 충돌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5월 31일 13:20경 정찰전대를 이끌고 있던 비티 제독의 전대 정찰함인 경순양함 갈라타에서 "적 발견"이라는 보고가 들어왔으며, 비티 제독은 즉시 예하 전투순양함을 남남동쪽으로 향하게 하고 증속을 지시하여 독일 대양함대가 도주할 수 없도록 독일 함대 세력과 독일 함대의 항구 방향 사이에 위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반 토마스가 이끄는 4척의 전함은 연돌의 심한 연기 덕분에 비티 제독의 변침 명령을 알아볼 수 없어서 몇 분간 변침이 지연되었으며, 이 때문에 전열에서 이탈하여 10마일이나 뒤처지게 되었다.

15:20경 비티 제독은 적 세력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며, 곧 그 함대가 히페르의 전투순양함 세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교전을 결심하였다. 비티 제독은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전투순양함의 숫자만 6:5로 히페르보다 우세한데다 뒤쪽 10마일에 신형 전함 4척이 열심히 뒤따라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히페르는 비티의 영국 함대와 접촉하자마자 바로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비티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히페르가 후퇴한다면 그 방향은 쥬다 만이 될 것으로 판단하여 뒤쫓기 시작하였다. 이 때 히페르는 영국 전투순양함들을 주력인 쉐르 제독이 이끄는 함대의 전함 사정거리로 유인하려고 하였다. 15:55에 평행으로 항해하던 양측 진형의 간격이 줄어들어 13,000애드 거리가 되자 양측이 사격을 거의 동시에 개시하면서 유틀란트 해전의 최초 교전이 시작되었다.

교전이 시작된지 몇 분 만에 양측의 기함인 라이언과 자이드리츠는 상대방의 포격에 의하여 포탑이 부서졌다. 곧이어 16:05경 영국의 전투순양함 인데패티거블(Indefatigable)의 탄약고가 폭발하면서 침몰하였다. 동시에 승조원 1,015명이 함께 수장되어버리고 살아남은 사람은 단 3명에 불과하였다. 뒤이어 20분쯤 뒤 영국의 전함 퀸 메리도 폭발하여 침몰하고 말았다.

이처럼 비티 제독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동안 뒤쪽에서 따라오던 이반 토마스가 거느린 전함 4척이 16:30에 독일의 전투순양함들을 겨우 사정거리에 넣어 15인치 주포를 발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영국의 구축함들이 진형에서 뛰쳐나와 독일의 대령 방향으로 어뢰 공격을 가하기 위하여 접근하였다. 이 때문에 히페르는 급히 교전 반대방향으로 변침할 수 밖에 없었으며, 독일측의 함열에서도 구축함 15척이 튀어나와 구축함끼리 서로 치고받는 혼전이 벌어졌다.

잠시 후 비티 예하의 전방 정찰대 지휘관으로부터 "남동방 적 전함 발견"이라는 긴급보고가 들어온다. 독일의 주력 함정 세력이 나타난 것이었다. 비티는 남쪽 수평선에서 마스트와 연돌의 긴 대열이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을 발견하다자 바로 반대방향으로 침로를 변경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 와중에 또 다시 뒤쪽에 자리하던 이반 토마스의 전함 4척은 신호를 늦게 발견하고 비티 전대가 다 변침한 뒤에야 변침하였기 때문에 또 다시 뒤쳐져서 진행을 하게 되었다.

북쪽으로의 도주

  • 16:48~18:00

직전의 상황이 히페르가 영국 함대를 유인하고 비티의 함대 세력이 뒤쫓는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비티가 독일 대양함대 세력 전체를 젤리코가 이끄는 주력 함대의 사정거리로 유인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되었다. 히페르의 전대는 쉐르 전대의 앞쪽에서 다시 변침하여 영국의 함정을 따라가는 침로를 취하게 되었고, 쉐르 전대는 이반 토마스의 전함을 포격하기 위하여 접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뒤쳐져 있던 이반 토마스의 전함 4척은 거의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히페르의 전투순양함과 쉐르의 전함 양측으로부터 동시에 포격을 받게 되었다. 통신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보고받은 젤리코의 주력 함선들은 비티 전대와 상봉하기 위하여 항진을 계속하였다. 17:42 젤리코의 전투순양함이 정면에서 영국의 전투순양함을 발견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쫓기던 비티 전대는 주력인 젤리코 전대와 상봉하자마자 접근하는 젤리코 전함들의 침로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독일군의 동편으로 가기 위하여 다시 히페르의 전대와 격렬한 교전을 전개하였다. 한편 18:00무렵 젤리코 제독은 자신의 기함인 아이언 듀크(Iron Duke)에서 안개 사이로 비티의 함정을 볼 수 있었으나 독일군의 함정은 볼 수 없었다.

주력함대의 교전

야간전

결과

각주